티비 속 여자 아나운서가 오늘의 날씨를 말해준다. 어제의 이어서 오늘도 추적 추적하게 비가 오는 그런 날이라 했고, 창문을 꽉꽉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빗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조금있으면 출근을 해야 하는데 어제 입고 그대로인 검은 정장을 입고 출근할수는 없어 샤워를 마치고 새 정장을 입었다. 그러다 초인종이 울려 뛰어가 문을 열어보니 검보라빛의 고양이가 문 앞에 서 있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잘도 숨어있었던건지 뽀송뽀송한 털이 빛났다.
"니가 우리집 초인종 눌렀냐?"
고양이는 당연히도 대답이 없고 그저 묵묵히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배가 고픈가? 부엌으로 뛰어가 왜 있는지도 알턱없는 참치캔을 갔고 오니 고양이가 냐옹 냐옹 희미하게 운다. 능숙하게 뚜껑을 따고 바로 앞 바닥에 내려줘도 먹지도 않고 계속 냐옹 거리며 울기만 한다.
"뭐가 그렇게 슬퍼서 우냐……."
손가락 끝으로 코를 툭 툭 치니 확 물어버린다. 그러나 아기고양이라서 그런지 별로 아프지 않아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먹어라. 좀. 출근을 할 시간은 다가오고 고양이는 여전히 울기만 할 뿐이다. 결국은 어쩔수없다는 생각에 캔을 더 가까이 밀어주고 문을 닫았다. 문을 닫고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 거울앞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확인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와락 안아오는 느낌에 놀라서 뒤돌아보니 태민이가 서있다.
"뭐야?! 말도없이!"
태민이는 여전히 해사하게 웃으며 내 넥타이를 다시 고쳐매주었고, 나는 조금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머리카락이 차갑다. 분명 밤에 보일러 켰을텐데… 태민이는 왜? 하고 나를 올려다본다. 아니야.
"오늘 몇시에 올꺼야?"
"외근은 아니니까 걱정마."
"일찍와 알았지?"
"알았어."
가방을 챙겨들고 현관으로 가는데 태민이는 다시 잠을 자려는건지 뒷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안들린다. 아닌가? 놀래켜주려는건가? 신발을 갈아신으려하다가 뒤를 휙 돌자 역시나 태민이가 서있다.
"잘다녀와."
짧게 입을 맞추는데 이상하게 입술도 차갑기만 하다.
"너 뭐했어?"
"응?"
"너 설마 주방에 있던 참치캔 니가 사온거야? 밖에 고양이때문에?"
"응…."
"어쩐지 고양이가 왜그렇게 뽀송뽀송하나 했어. 감기걸리겠다."
가볍게 안아 등을 토닥이자 태민이가 목을 끌어안더니 이내 몸을 떼고 환하게 웃어준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따라. 어디 아프기라도 한건지 핏기가 가셨다. 워낙 어디든 탈이 잘 나고 몸이 약해서 이렇게 추운날 함부로 밖에 돌아다녔다가 독한 감기에 걸리기 쉽상이었던 터라 몇번이고 주의했었는데 오늘 나 몰래 나갔다 와서 그런지 감기에 걸렸나보다.
"병원안가?"
"병원?……가기싫어."
"왜 또. 병원에 가야지 빨리 낫지."
"…가기싫은데…."
어허, 하고 어린애를 혼내듯 하자 태민이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볼에 한가득 바람을 채우고 쳐다본다. 귀여워. 손으로 뺨을 만지니 차가운 살결이 지문을 타고 느껴진다.
"나 갈께. 어디 나가지말고. 병원가고. 알았지?"
"…알았어…."
"기다리고있어."
"응……."
태민이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어기적거리면서 잡은 소매끝을 놓아주질 않는다. 늦는데 나. 태민이는 고개를 숙이고 잔뜩 풀이 죽어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고 소매끝을 집요하게 힘을주어 잡아당긴다.
"진짜 무슨 일 있어?"
아무말없이 고개만 그저 절레절레 흔들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고는 안심시키려는지 웃어보이고는 잡은 소매를 놓아주었다.
"나 갈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그저 고개만 위 아래를 까딱까딱, 그대로 문을 열어 집을 나오는데 오늘따라 안좋았던 표정이 자꾸 거슬린다. 어쩌지…진짜 어디 아픈가. 하지만 회사에 가야한다. 애써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을 뒤로한 채 주차되어 있는 차로 가려는데 고양이가 서 있다. 이번에는 잔뜩 비를 맞은건지 아까 뽀송뽀송하던 털은 사라졌다. 아직 어린 고양이일텐데…. 어릴수록 몸이 약한건 인간이나 짐승이나 똑같다. 고양이를 안아들자 신경질적으로 날을 세우고 물지만 별로 신경쓰지않고 뒷뜰에 있는 자그만한 창고에 넣어주었다. 어차피 조그만한 통로가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 돌아다니겠지. 다시 차로 가려는데 고양이가 냐옹 냐옹 또 다시 울기 시작한다. 별로 신경쓰지 않고 차로 갔다.
회사에 도착하니 이상하게 사무실 식구들이 당황한듯 쳐다본다. 왜왔어요?
"내가 오면 안되나?"
"아니…그게………."
지나치게 담담하 나를 믿을수가 없다는듯이 쳐다보다가 자기들끼리 입을 다물고 다시 일을 이어한다.
"김종현? 종현이?"
뭐야…. 나도 자리에 앉아 일을 하려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으니 규현이형이 내 얼굴을 보고는 믿기지않는다는듯이 굳어버린다.
"왜그래?"
"너……."
"무슨 일 있어? 다들 왜이래?"
규현이형을 무언가를 말하려는듯 입을 열었다가 금방 닫아버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야. 내 자리에 앉아서 일을 시작했다. 어제 정리를 다 하지 못한 서류를 끝내야 했고 기한을 넘겼는데도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그저 괜찮다고 말하는 최팀장님께 감사했다. 평소에는 나를 못죽여서 안달이던 놈이 왠일로 이렇게 다정한지 모르겠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나고 몇십분이 지나고서야 서류를 끝냈는데 다들 밥을 먹으러 간건지 썰렁하다. 기다려주지…. 대충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섰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규현이형이 들어온다.
"밥 먹을래?"
"먹을래가 뭐야? 당연히 먹지."
"…그래…뭐 먹을래?"
"그냥 편의점이나 가자."
평소와 다르게 오늘따라 조용하고 뭔가 일부러 자제하려는듯한 규현이형을 적응할수가 없고 낯간지러웠다. 편의점에 도착하고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이 분위기가 죽도록 어색해 일부러 대화를 이끌어가는데 오늘 아침 일이 생각났다.
"형."
"응?"
"이 동네에 언제부터 도둑고양이가 돌아다녔지?"
"뭐 소리야? 아줌마들이 도둑고양이들이 자꾸 쓰레기봉투 파먹는다고 다 없앴잖아. 그거때문에 기사도 났었는데…."
"그러니까. 근데 우리 집 앞에 고양이가 있더라."
"가정집 고양이 아니야?"
"그런가? 근데 목걸이가 없는거보니 가정집은 아니였어. 고양이 키울까?"
"너 동물 안좋아하잖아."
"아니 태민이가 오늘 아침에 고양이사료를 사왔더라…어? 왜그래?"
규현이형이 먹고있던 삼각김밥을 떨어트리고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굳어져서 쳐다본다.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야…….
"뭘?"
"……죽었잖아……."
"누가? 고양이가?"
"……태민이 어제 죽었잖아."
"……."
"너 왜그래 종현아…."
맞다. 이태민 어제 죽었었지.
차를 주차하고 집 앞으로 걸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라빛의 고양이가 나를 반긴다. 냐옹- 그 고양이를 무시한채 천천히 내 방으로 들어가자 태민이가 서있다. 기다렸다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