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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단편/조각 만화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성찬 엑소
응가야 전체글ll조회 658l 3


"2016년 첫 눈 오는 날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2016년 첫눈 오는 날

자박, 밟히는 눈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이상한 호기심이 들었다. 폴짝 뛰어 아무도 밟지 않는 눈밭에 자신의 두 발자국을 나란히 남기고 싶었다.
발바닥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함께 떠오른 핸드폰은 발목까지 쌓인 눈이 집어 삼켜버렸다.



"너는 여전히 잘 흘리고 다니네."



그 말과 동시에 놀란 심장은 스스로 두 발을 조종하지 못하게 했다.
털썩, 쓰러져 버리기 전에 목소리의 주인은 바닥에 내팽개쳐지기 직전의 몸을 자신의 온 팔로 감싸 안았다.



"안녕, 보고싶었어."





2013년 11월 그녀의 이야기

강의가 막 끝난 강의실, 늦게 빠져나간 사람들끼리의 공간 속 어색함이 싫어 허둥지둥 짐을 싸는 설이다. 
뭐든 급하면 실수하기 마련인데, 역시나 가방에 들어가야 할 공책이 책상 아래로 나뒹굴었다. 
허리 숙여 급하게 집으려던 설이의 눈 앞으로 보이는건 공책이 아닌, 남자라고 하기엔 무척 하얗고 고운 손이였다. 



"여기. 이거 주우려던거 맞지?" 




설이는 자신의 손에 노트를 쥐어준 햐안 손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두꺼운 쌍커풀이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동그란 콧망울이 귀여운 손만큼이나 하얀 피부의 남자가 자신향해 웃고 있었다. 그 남자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싱그러웠다.



"고마워."
"뭘, 그런거가지고. 너가 그렇게 고마우면 다음에 밥이나 한 번 같이 먹자."



그리곤 그는 설이의 어깨를 가볍고 부드럽게 툭툭, 가방을 고쳐메고서 강의실을 나가는 무리들과 함께 섞였다. 
향기가 좋으면 사람의 첫인상 호감도가 좋다고 했던가, 공책을 주워준 그에게서 좋은 향이 났다.
무슨 향일까, 쥐어준 공책을 들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설이는 뒤에서 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야, 설! 빨리 나와! 오늘 소개팅 있는거 잊었어?"



소리의 주인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설이와 같은 과 동기, 일순이였다. 
일순이는 문을 넘어 성큼성큼 들어와 설이의 손에 있던 공책을 거칠게 가방에 넣고, 설이의 손목을 잡아채 강의실 밖으로 향했다.



"말했지! 너 주말엔 알바하느라 안된다하고! 공강시간에 겨우겨우 맞춘거란 말이야. 너 이번 년도엔 꼭 연애해! 이 언니가 보기 안쓰러워서 그래!
"나 그런거 안한다고 했는데.."
"뭐? 얘가 또 그 소리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일순이에게 끌려나와 건물 밖으로 막 나섰을 때, 빠른 걸음으로 쿵쾅쿵쾅 걷던 일순이가 멈추고 설이를 노려보았다.
일순이의 표정에 잔뜩 기가 죽어 눈치만 보던 설이는 요리조리 눈을 굴리다가 일순이와 딱 눈이 마주친 순간 수긍하고 말았다.



"아, 알았어.."
"알았으면 빨리 택시 타! 내가 불렀어."



설이가 자초지종을 묻기도 전에 일순이는 설이보다 빠르게 택시문을 열고 설이를 택시안에, 아마 구겨넣었다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다.
택시 문을 탁! 하고 닫은 일순이는 앞좌석에 앉아 백미러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택시기사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 택시기사는 엑셀을 밟았고, 설이는 부탁한 적도 없는 택시를 타고 어딘지 모르는 소개팅 장소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택시가 빨간불도 초록불처럼, 속도는 스포츠카 처럼 달리는 바람에 설이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주저앉았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았다. 



"걱정마! 학생! 사고 한번 난적 없는 택시야! 약속 시간 늦었다며! 총알택시가 뭔지 보여줄게!"



아저씨의 말을 미리 해석했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하는건데, 설이는 떨리는 다리를 붙들고 가방을 챙겨 만나기로 했던 카페 문을 열었다.
커피향이 코를 자극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좋은 향이 그 향 위를 덮었다. 



"어? 또 만나네? 수업 없나봐?"



아까 강의실에서 만난 그 남자가 설이의 어깨를 톡 건드렸고, 덕분에 고개를 돌린 설이는 가까이서 그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훑을 수 있었다.
'어? 이 남자?'


"공책 남!"



'아뿔싸, 공책 남이 뭐야.'
자기도 모르게 뱉은 말이 예의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 공책남이 푸흐흐 웃었다.



"공책 남이야, 나? 공책 남말고 이창섭이라고 불러줘."
"아, 죄송해요.."
"아냐,아냐,괜찮아."



손사래를 치며 정말 괜찮다고 몇 번이나 어깨를 다독여주는 공책남, 아니 창섭이에게 설이는 다정함을 느꼈다.
'무척 다정한 사람이구나.'



"아니면.. 죄송하고 또 고맙잖아? 나한테? 그럼 지금 밥사주라. "
"아..지금?"



설이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에서 창섭이는 설이가 선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럼 다음에 사줘. 오늘 선약 있어?"
"아.. 그게.. 소개팅이.."
"아.. 소개팅..?"



창섭이가 잠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던 설이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처음 만난 사인데, 도끼병도 유분수지, 설이는 자신을 나무랐다.



"그럼 다음에 꼭 사줘? 갈게! "



창섭이는 우물쭈물 미안해하는 설이를 지나쳐 함께 온 무리들과 카페 밖으로 나갔다.
설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작업거는 건가? 겨우 공책하나 집어줬다고 밥을 사달라니.'
그리고는 또 생각들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듯 아까보다 더 격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다 지워버린 생각들 사이로 번뜩 떠오른 것은 일순이가 마련해준 소개팅이었다.
일순이가 무섭게 째려보는 얼굴이 머리속에 그려진 순간 설이는 필사적으로 소개팅 남을 찾으려 두리번 댔다.


설이는 소개팅 내내 그 하얀 밀가루 같은 창섭이의 얼굴이 떠올라서 자꾸 소개팅 남의 말을 놓치고 말았다.
'일순이가 이 사람 되게 재밌는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있잖아요. 제가 웃긴얘기 하나 해줄까요? 진짜 웃겨요. 아니, 눈이 요만한 애가 있었거든요? 근데 호랑이를 만나서 어떻게 됐게요?"
"어떻게 됐는데요..?"
"이렇게 됐대요!"



...재미 하나도 없다. 그래도 소개팅 나온 사람 조금이라도 재밌게 해주려고 잘생긴 얼굴 마구 찌그러뜨리는 그를 보니, 고맙기도 하고 웃어 주자 싶어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요. "
"그쵸? 먹힐줄 알았다니까. 설이씨 이런 개그 좋아하는구나? 다른 것도 있어요. 들어봐요!"



진짜 설이가 재밌어서 웃었다고 생각했는지, 반쯤 들떠서는 비둘기 성대모사를 하는 그를 보니 그냥 재미 없다고 말할걸 그랬나, 싶어지는 설이였다.
쉴새없이 개그를 시도하는 그를 보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점심을 먹었던 설이는 그와 헤어지고 몇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배가 불렀다.



"체한 것 같아."



어색한 것이 곧 죽어도 싫었던 설이에게는 아무래도 처음 보는사람과 하루를 보내는 소개팅은 버거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 공책남에게 반말을 했던가? 되게 귀엽게 생겼었는데. 되게 자연스럽게 말을 놨었네. 신기하다.'

그 두툼한 눈두덩이가 휘어지며 예쁜 곡선을 그리던 눈과 오물조물 말하던 그 두툼한 입술을 떠올리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정말 귀엽게 생겼어.'

그러다가도 체한 것 처럼 순간순간 배가 찌릿찌릿 아파왔다. 
소화도 시킬겸 그 다음 수업시간 전까지 있을 장소를 물색하던 설이는 본강의실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기숙사 옥상을 떠올렸다.



"일순이 불러서 몰래 들어가면 돼!"



기숙사에 사는 일순이의 지문을 이용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층장인 일순이를 통해 옥상열쇠를 얻어낼 수 있었다.
옥상에서 살랑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은 설이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고 포근한 햇살은 온몸을 가볍게 휘감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이 여유로운 공기를 모두 들이쉬려는데 그 적막을 깨는 귀여운 목소리가 설이의 귀를 간지럽게 했다.



"안녕! 여기서 뭐해?"



소음의 근원지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아까 떠올렸던 그 얼굴이 그대로 눈에 담겼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반대로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어? 나는.. 공강이라 잠깐 여기 있으려고.."
"아까 소개팅은 잘 했어?"
"응. 아마 그럴걸? 근데 난 별로였어."



흐음, 창섭이가 입술을 앙 다물고 입꼬리를 올려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상대방은 나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나는 별로였다, 이 말이지?"
"아,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그건 모르지! 상대방도 내가 마음에 안들었을 수도 있고.."
"나라면 마음에 들었을 거 같아."
"뭐를..?"
"내가 그 소개팅 했더라면 너 마음에 들었을 거 같다구~"



창섭이가 폴짝, 높은 난간을 두 팔로 지탱한 채 긴 다리로 바닥에 착지했다.



"너 예쁘잖아."



봄바람과 함께 싱그럽게 다가오는 창섭이가 느리게 걷는 것 같았다.
창섭이는 반대편 바닥, 다른 말로는 설이의 옆에 놓인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들쳐맸다.



"나 이제 수업가봐야해. 다음에 또 보자!"



설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툭툭, 그의 손길이 꼭 따뜻한 햇살처럼 설이의 마음을 간지렵혔다.



"아참! 너 열쇠있어? 나는 이걸로 들어온거라서.. 옥상 문 꼭 잠가!"



주머니에 옷핏을 꺼내 흔들어 보이는 창섭이 개구져 보였다.
옥상문이 탁, 닫히고 핸드폰 액정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보는데 어쩐지 후끈거리더라니 토마토처럼 빨개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운 설이다.
'이것도 인연이면 인연인가, 하루에 세번이나 마주치고.'



"아니야! 아니야!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무슨! 인연은 무슨! 여자친구도 있을 것 같이 생겼더만. 정신차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미 설이의 마음 한 구석에는 창섭이의 웃는 모습이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봄 바람이 살랑 불고, 설이의 마음도 찰랑 달콤하게 촉촉해졌다.





2013년 11월 그의 이야기

옥상을 빠져나간 창섭이는 몇계단 가지 못한채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고, 얼굴을 감싼 손 사이로 비치는 빨간 두 볼이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예쁘다고 해버리면 어떡하냐.."



창섭이는 설이를 처음 본 것이 아니지만 설이는 오늘 창섭을 처음 알았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처음 본 사람이 자신에게 예쁘다고 하는 꼴은 거의 고백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창섭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쉽게 진정시킬 수 없었다.

설이를 처음 본 건 공책을 주워주었던 그 수업 첫 날 첫 시간이였다.



"저기 교수님.. 제 이름 안부르셨어요..!"



주목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주뼛거리며 손들 들더니, 제 할말은 다 하고서야 자리에 앉는 설이였다.



"제가 수업을 바꾸게 되어서요. 아마 명단에 이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학생은 이름이 뭔가?"
"각설입니다. "



푸흡,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트린건 창섭이 뿐만이 아니였다. 
제 이름도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창섭인데 자신보다 더 특이한 이름에 보다 더 특별한 성을 가진 사람이라니, 신기하다 못해 우스웠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아니고.'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설이는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했다.



"성이 특이하고 이름도 특이하군. 알겠네! 강의 끝나고 확인해보고 다음엔 꼭 이름을 부르도록 하겠네!"
"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은 설이는 침착했던 아까의 모습과 정반대로 귀가 빨개진 채 애꿎은 볼펜만 만지작 댔다.
'이름이 각설이라 각설이같이 생길줄 알았더니 생긴건 귀엽네.'

그때부터 창섭이는 설이를 매시간 관찰하는 것이 이 수업의 주된 일이 되어버렸다.
설이는 언제나 제 할 말은 다했다. 조별과제를 할 때에도, 발표를 할 때에도.
창섭은 설이의 그 후 반응이 좋았다. 제 자리로 가서 빨개진 얼굴로 제 소지품을 만지막 만지작 대는 모습, 그게 귀여웠다.

창섭이는 중간고사가 지나고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이주 전까지 꽤 오래시간 설이를 지켜봤다.
언제 부터였는지는 몰라도 가끔씩은 설이가 예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자주 보여주진 않았지만 설이가 한 번 웃을 땐 온 세상이 밝아지는 듯 느껴졌다.
'웃을 때가 예쁘네.'



"기말고사 공지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처럼 한 쪽 팔을 괴고 설이를 주시하던 창섭이는 조교의 말에 처음으로 강의실 앞으로 눈길을 주었다.
기말고사가 2주 남았지만 모두 그렇게 신경쓰고 있는 눈치는 아니였다.
이유인 즉슨, 이 수업의 이름이 '연애의 목적' 이었기 때문이다.



"수업 첫날 OT시간에도 말했듯이, 기말고사는 보고서로 제출하세요. 보고서에는 자신의 연애의 목적과 가치관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데이트했던 사진, 느꼈던 감정! 담기면 무조건 A+!"



그러니까 조교가 말한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 수업의 교수는 학생들의 연애를 권장하고, 실제 수업에서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A+을 주겠다는 것, 학생들에게는 아주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기말고사가 이주 남았다라. 미친놈 처럼 같이 기말고사 과제 준비하자고 해볼까.'



"자, 공지 끝. 점심 맛있게 먹어요."



깊은 고민에 빠진 창섭이 뒤로 학생들은 조교를 따라 삼삼오오 무리지어 밥 생각에 들뜬 채 소란스럽게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창섭은 재빨리 설이를 눈으로 쫓았다. 
뭐가 저리 급한지 아직 허둥지둥 짐을 싸고 있는 설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저기.."



내 뱉은 창섭의 말이 설이의 귀로 향하지 못하고 허공을 둥둥 맴돌았다.
그때 설이가 툭, 공책을 흘렸고 창섭은 재빠르게 먼저 공책을 주웠다.



"진짜 못말린다니까. "
"어?"
"여기.이거 주우려던거 맞지?"



'저 당황한 표정 좀 봐.'
동그란 눈과 살짝 벌려진 입술, 항상 봤던 표정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귀엽게 느껴져 창섭은 제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고마워."



가까이에서 들으니 설이의 얇지만 너무 작지 않은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창섭이의 귀에 박혔다.
'나 지금 말 건건가?'
심장이 콩닥콩닥, 설이의 손에 쥐어준 공책 덕에 스친 손길부분이 화끈화끈, 모든 포커스가 설이와 자신에게 비춰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야, 빨리와. 이창섭!"



뒤로 부르는 제 친구의 목소리에 모든 것이 깨져버렸지만, 우선은 설이와 이야기를 나눈 것에 만족했다.



"뭘, 그런거가지고. 너가 그렇게 고마우면 다음에 밥이나 한 번 같이 먹자."



데이트 신청이라니, 자기가 뱉어놓고 제 말에 화들짝 놀라는 창섭이었지만 자연스러운 척 설이를 향해 웃어보였다.
설이가 살짝 웃어보인 것도 같았는데 창섭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부른 무리를 향했다.



"뭐하냐! 나 말했잖아. 오늘 소개팅 있다고. 수업 끝나면 바로 이 형님 건물로 뛰어오라 했지? 이 형님이 여기까지 행차해야겠어?"
"까분다. 육성재. 너가 빠른 생년만 아니였어도 나한테 형이라고 하는건데. 진짜 아쉽다."
"시끄럽고! 빨리 가자. 친구들 밑에서 기다려."



성재와 창섭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만나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아주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란 없는 막연한 사이였다.
가끔 자신이 형님이랍시고 까부는 것만 아니면, 아니 어쩌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창섭이에게 성재는 아주 소중했다.

어쨌든 창섭은 성재와 투닥투닥 대며 건물 밖을 나섰다.
건물 밖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껌을 딱딱, 소리내어 씹으며 사나워 보이는 한 여자가 신경이 곤두선 채로 창섭을 노려보고 있었다.



"좀 비켜봐요. 사람이 한 번에 왜이렇게 많이 나와! 정신이 없네! 설이 얘는 왜이렇게 안나와! 비켜!"
"아, 죄송합니다."



창섭의 사과가 마음에 차지 않는 다는 듯, 일순은 창섭을 밀치 듯 지나쳐 갔고 그런 일순이 못마땅한 성재였다.



"뭐야, 지가 전세냈어? 됐어. 무시해. 승차감이나 확인해보자. 쟤 새차 뽑았댄다. 역시 부자집은 다르지 않냐?"



창섭은 일순의 행동에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애써 잊어버리고 성재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승차감 좋다, 이러쿵 저러쿵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다가 창섭은 잊고있던 성재의 소개팅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근데 너 소개팅이라고? 갑자기 무슨 소개팅이야?"
"몰라! 선배가 자기 아는 여자애 친구라는데. 예쁘대. 나도 이제 연애 좀 해보려고. 솔직히 이 얼굴 연애 안하고 살기엔 아깝지 않냐?"
"어이가 없다."
"여자 백명은 꼬실 외모잖아. 내가 안그래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어? 야! 나 여기 세워줘! 빨리! 여기서 만나기로 했거든."



성재가 운전하는 친구의 어깨를 잡고 창밖의 커피숍을 가르키며 재촉했고 그런 성재를 보던 창섭도 같이 거들었다.



"야! 우리도 같이 내릴게! 곧 수업가야돼. 커피 하나 뽑아가지고 갈래."
"너 수업 없잖아? 오늘 수업 끝났잖아."
"있어. 너가 모르는 수업 있어."



시간표 바꿨냐?, 투닥투닥 대며 내가 먼저 내리겠다는 유치한 싸움을 하며 성재와 창섭은 차에서 내려 커피숍으로 향했다.
창섭은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성재는 매너랍시고 여자가 오면 같이 시키겠다며 자리로 향했다.



"너네 이제 빨리가. 훠이. 훠이. 부정타. 얼른 썩 꺼져!"



괴상한 얼굴로 벌레 쫓듯이 자신과 친구들에게 손짓을 하는 성재를 보며 창섭은 웃음이 났다.



"갈거야, 가~"


그때 딸랑, 뛰어왔는지 바람에 날린건지 머리가 한껏 산발 된 설이가 숨을 헐떡대며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창섭은 단번에 설이인 것을 알았다.
햇빛이 설이를 비추는 건지, 설이가 빛나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느껴질 만큼 설이가 예쁘게 느껴졌다.
'오늘은 한 번 더 만나네.'

왠지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설이의 입에서 나온 소개팅 소리에 그 기대는 바스락 한 줌의 재처럼 깨져버렸다.

'설마, 소개팅하는 상대가 성재일라고.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건 왜일까, 설이가 성재의 앞자리에 쭈뼛쭈뼛대며 앉는 것을 포착한 순간 창섭은 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야, 나 수업간다.."
"어디가! 점심 안먹어? 진짜 수업있어?"



'오늘 수업은 자체휴강이다.'
복잡한 생각이 있거나, 기분이 좋을 때 창섭이 찾는 아지트같은 장소가 있었는데, 그 곳은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기숙사 옥상이었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게 열쇠로 잠가놓는 덕분에 기숙사 안으로만 들어가기만하면 방해받지 않고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능숙하게 뒷주머니에서 옷핀을 꺼내 머리에 비비는 창섭이다. 
덜컥, 옷핀으로 문고리를 몇 번 쑤시니 금방 열려버리는 옥상문이 싱겁다는 듯 창섭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만의 아지트로 들어갔다.

'역시 여기만 오면 기분이 좋다니까.'
메고 있던 가방은 바닥에 던져지듯 내팽겨쳐졌고, 창섭은 개의치않는 다는 듯 옥상 난간에 올라앉았다.
좋은 느낌도 잠시, 약간은 수줍은 듯이 성재에게 인사하던 설이의 모습이 떠오른 창섭은 인상을 찌푸리고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아이씨!"



거친 음성에 반항하는 것처럼 창섭이의 육두문자가 나오기 전에 핸드폰이 먼저 띠링, 울렸다.



-완전 내 스타일. 개그 취향 딱 맞아. 이상형을 만난 것 같다. 이 형이 잘되면 너도 다리 놔줄게.
-꺼져. 임마. 소개팅이나 해.



창섭은 다소 거칠다 싶어, 다시 꾹꾹 문자를 지우고 자신의 화난 마음이 드러나지 않게 노력하며 답장을 고쳐보냈다.



-알겠다.



그리고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머리속은 온통 성재에게 빙긋 웃어주는 설이의 얼굴로 가득했다.
'그 자식 재밌는 놈이니까 금방 호감은 살거고, 얼굴도 잘생겨서 금방 마음에 들텐데.'

싱그럽게 불어오는 바람은 창섭이의 머리칼을 쓸었다.
'그러게 진작 먼저 말걸지 그랬어', 창섭이는 봄바람이 그렇게 말거는 것 같았다.




"제기랄!"



결국 거친 육두문자가 창섭이의 입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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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요루~~~~~##잘보고간다 독방설이
8년 전
응가야
고마우어~!!!
8년 전
독자2
세상에.. 얏삐 달길 잘했어.. 크헑 이글이 내 취향저격해써...ㅋㅋㅋㅋ신알신하고 갈께용
8년 전
응가야
신알신이 뭐딩???! 고마워 ㅠㅠ
8년 전
독자5
신작알림신청! 이거 하면 쓰니가 글 올리면 나한테 알림왕!
8년 전
응가야
아아! 우아! ㅠㅠ감덩.. 고마워! ㅠㅠㅠ
8년 전
독자3
헐ㅠㅠㅠ좋다 이창섭 듣는편지랑 들으니까 괘설렘 ㅠㅠㅠ♡♡♡♡
8년 전
응가야
ㅠㅠ고마워잉!
8년 전
독자4
으어 설레 재밌다...남녀시점둘다 나와서 더 재밌어여유ㅠㅠㅠㅠ♥♥
8년 전
응가야
고마워유!!
8년 전
독자6
잘 읽고가여!!!!!!다음편도 기대할게요♡♡
8년 전
응가야
대박 ㅠ ㅠ 고마워요!
8년 전
독자7
진짜대학가면저럴수있나여..ㅜㅜㅜㅜㅜㅜ대학가면 상철선배밖에없다던데..
8년 전
응가야
아.. 저럴 수 없어요 ..... 상철선배....ㅎ.......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럴수..없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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