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 피아노 포엠 - 눈은 하늘의 배려일까요?
"좋아해."
"... ..."
"고등학교 때부터, 쭉."
수정이와 했던 대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우려는 커녕 생각치도 못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야 말았다.
대답을 준비했을리가 없었다. 그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절대 그럴 일 없다며 굳건하게 다짐했던 이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자, 정국은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왜 대답을 망설이냐는 수정의 말이, 그 당시엔 전혀 맘에 다가오지 않던 그 말이 마치 내 심장을 관통하듯 저 멀리서 날아와 박혔다.
확실히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말 한마디에도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좋아했잖아, 설레했잖아. 그런데 왜.
도무지 이런 상황에 익숙치 않았던 나는 그저 울고싶어졌다.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엄마를 잃었을 때의 그 불안함, 지금이 딱 그 마음이었다.
결국 나는 정국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안해."
"... ..."
"미안해. 정국아."
희미하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마 정국이와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우리 사이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먼저 정적을 깬건 다름 아닌 정국이었다.
"미안할게 뭐가 있어."
"... ..."
"내가 미안해. 너 혼란스럽게 한 것 같아서."
"... ..."
"여기서부턴 혼자 갈 수 있지? 조심히 들어가."
여전히 숙여져있던 내 머리를 두 어번 쓰다듬은 정국이 뒤를 돌아 몇 걸음을 내딛다가, 무언가 말할 것이 남은듯 아, 하고 뒤를 돈다.
'이걸로 어색한 사이는 안됐으면 좋겠어. 내가 술을 좀 마셔서...그래서...그냥.' 하고 말 끝을 얼버무리고선 다시 갈 길을 간다.
발자국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을 때가 되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내가 품을 수 있는 시야엔 정국이 없었다.
차라리 방금 전 상황이 깨어날 꿈이었으면 했다. 그럼 나만 혼란스러워하면 그만인데. 정국이가 아파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 집으로 가려는 발걸음을 옮길때면 꽤나 늦은 시각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휴대폰이 울린다.
'김태형'
받고 싶지 않은 전화는 아닌데, 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미 머릿 속이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꽤 힘들었다.
전화는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하지만 전화의 주인공을 아파트 입구에서 마주쳤다. 어쨌거나 나는 저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걸까.
대화를 하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주체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그를 지나쳤다.
누가봐도 아무런 얘기 없이 집을 나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그는 짐짓 화가 난 말투와 표정을 하고 지나쳐 걸어가는 내 팔을 잡아 저지했다.
"뭐하다 이제 와. 전화는 왜 안 받아."
"...놔. 얘기는 나중에 해."
"이모 걱정시키지 말라면서 왜 니가 이런 짓을 하냐고."
"...미안."
"김탄소."
"...놔 줘. 부탁이야."
평소와는 다르게 쏘아붙이지 않고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내 팔을 놔주는 대신에 오히려 나를 당겨 이번엔 내 두 팔을 모두 잡아 자신과 마주보게 한다. 눈은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도통 고개를 들지 않자, 제 키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 기어코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열심히 고개를 피한다.
"피하지 마."
"... ..."
"무슨 일 있었어?"
"없어."
"없긴. 얼굴에 다 써있는데."
"... ..."
"나 무슨 일 있어요, 라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장난스럽게 웃는 김태형이 밉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혹시나 부끄러운 상황이 닥쳐도 이 정도 쯤이야 괜찮아, 하고 넘길 수 있는 용기가.
"나 궁금한거 있는데."
"응, 뭔데?"
"너...그, 여자..."
"여자?"
"소개...받았다며."
"소개?"
점점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에 곰곰히 생각하던 김태형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아, 그거. 하며 말을 이어간다.
"나 소개 안 받았어."
"... ..."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안 받았어. 정말로."
"...그럼 아까..."
"아, 그 누나는 선배. 잠깐 만나서 얘기하던 중이라 너 아픈거 알면서 바로 못갔어. 미안해."
"... ..."
큰 돌덩이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실 몇 대 더 맞아도 될 것 같았다.
여태 소문이라는 것에 휩쓸리던 내가 바보였고, 내 생각이 짧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너무 늦었지만, 늦은만큼 내 진심을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
가까운 지름길을 놔두고 괜히 먼길을 힘들게 돌아온 것 같아.
모든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내가 넋을 놓고 김태형을 바라보자, 한결같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왜. 내가 먼저 솔탈이라도 할까봐 걱정했나봐?"
"...어."
"...응?"
"걱정했다. 이 나쁜 놈아."
생각치 못한 내 반응에 도리어 김태형이 당황했다. 나는 그런 김태형을 놔두고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오려 했으나, 금새 다시 붙잡히고만다.
"정말? 정말 걱정했어?"
"아, 몰라. 물어보지마."
"왜 걱정했어?"
"걱정 안했어. 잘못 말한거야."
"뭐가 그렇게 걱정이 됐어, 응?"
신나서 나를 놀리는 김태형이 여전히 밉지가 않았다. 그래서 정국이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
한편 다음 날 깨어난 지민이는 탄소에게 불안한 마음으로 카톡을 하는데...
[ 저...저기...탄소야... - 박지민 ]
[ 왜 ]
[ 내가 뭐...어제...실수한거라도...? - 박지민 ]
[ 없어 ]
[ 정말? - 박지민 ]
[ 나한테 술 꼴은 목소리로 뭐라고한거랑 정국이랑 내가 힘들게 방까지 옮겨놓은거 빼면 ]
[ ... - 박지민 ]
[ 미안.... - 박지민 ]
[ 진심 미안... - 박지민 ]
[ 아니야 괜찮아 좀 어이가 없고 어깨가 아프긴 했지만 괜찮아 정말이야 ]
[ ...ㅠㅠㅠㅠ미안해ㅠㅠㅠㅠ - 박지민 ]
[ 괜찮다니까 바닥에 놓고 밟아버리고싶었는데 괜찮아 ]
[ ㅠㅠㅠㅠ내가 잘못했어ㅠㅠㅠㅠ - 박지민 ]
[ 그나저나 정국이가 오히려 고맙다는데 무슨 소리야 이거?ㅠㅠ - 박지민 ]
[ 어...몰라도 돼 ]
[ 왜...?ㅠㅠㅠ - 박지민 ]
[ 취해서 기억안나면 몰라도 돼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럼그럼 ]
[ 탄소야ㅠㅠㅠㅠㅠ - 박지민 ]
-
와 매우 짧다 원래 저번 화 뒤에 있어야 할 내용인듯...
뭐...이런걸 어남태라고 하나요 요즘 언어로...?ㅎㅎ(아재스멜)
이번 화를 보고 다들 확신하시겠죠 이런 뻔한 글에 반전같은건 없을거에요
다만 제목에 정국이를 추가했던건 너무 당연스럽게 이야기를 보면 재미가 없으니까ㅎㅎ
이제 남은건 여러분들이 원하시던 그런 내용들일것 같네요
끝까지 저와 같이 달려주시는 각각의 독자님들께 항상 감사드려요
진지충은 이만 사라지도록 하겠읍니다...총총...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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