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언제였지, 중학교 때였나. 그 날도 비가 참 많이 내렸다. 봄은 아니고, 여름 장마의 시작 쯤이었을거다.
학교에 등교할 때 비가 안 오길래 우산을 놓고 나왔더니, 점심시간부터 내내 내린 비는 학교가 파한 후에도 그치질 않았다.
다행히 김태형에게 우산이 있어서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 기억에 김태형과 한 우산을 쓴 건 그 날이 처음이었지 싶다.
그 때의 김태형에 비해 지금의 김태형은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키도 많이 크고, 더 성숙해지기도 했고.
말을 마친 김태형은 다시 몸을 일으켜 나를 바라본다. 꽤나 초조하다는듯한 표정이었다.
요즘 김태형을 보면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저럴 땐 정말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의 모습같다.
나는 그런 김태형을 가만히 올려다 보며, 눈을 마주쳤다. 그 외에 모든 것들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우리 곁을 지나간다.
나, 사실 여태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아. 드디어 알게 됐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몇 마디 말 대신, 고개를 딱 한 번 끄덕였다.
나의 작은 고갯짓에도 그의 얼굴엔 화사한 웃음이 꽃을 피운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향해 웃어 보였다.
속에서 꽉 막혀있던 무언가가 시원하게 뚫린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론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었다.
참 부끄러운 이 상황에 괜히 말을 돌렸다. 그럼에도 나에게 닿는 김태형의 다정한 시선은 걷힐 줄을 몰랐다.
"너 때문에 내 옷도 젖었어."
"미안."
"그만 봐..."
"부끄러워 하기는."
방금까지 초조해하던게 누군데, 사람이 대답 하나에 갑자기 이렇게 달라지다니.
김태형은 우산을 들지 않은 한 손을 내 볼에 얹었다.
"예쁘다."
-
우리는 서둘러 집에 왔다. 홀딱 젖어버린 김태형이 감기라도 걸릴새라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끌고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특별한 사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달라진 것은 없었다.
원래부터 우린 가까웠고, 한 집에 살았으며,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였으니까.
"빨리 씻고 나와. 감기 걸려."
"씻는동안 보고싶어서 어떻게 참아?"
"...헤어지자."
"미안."
끝까지 화장실 문에 매달려 버티는 김태형을 간신히 밀어넣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코트를 벗었다.
사실 아직도 어벙벙한 기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나 지금 20년만에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긴거야...? 그리고 그게 김태형...?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멜랑꼴리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 위에 엎어져 몸부림을 쳤다.
갑자기 김태형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김태형이 다 씻었는지 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 문이 활짝 열렸다.
"자?"
"아니..."
"그럼 뭐해."
"생각중이었어..."
"내 생각?"
"...아니..."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김태형 생각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저런 말 따위는 귀에 들리지도 않는 건지, 싱글벙글 웃던 김태형은 손에 들고있던 드라이기를 흔들며 말했다.
"나 머리 말려줘."
나는 침대 위에 앉고, 김태형은 침대 옆 바닥에 앉은 후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정적보단 드라이기의 소음이라도 방에 가득 차는게 나았다.
예전에는 우리 둘이 싸워서 어색했던 적은 있지만, 지금은 무언가 다른 어색함이었다. 물론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기껏해야 뒷통수를 몇 번 쓰다듬은 적은 있어도 이렇게 손으로 직접 머리칼을 헤집는건 거의 없던 일이었다.
어째 여자인 나보다 더 머릿결이 좋은듯한 갈색 머리카락들이 부드럽게 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간다.
어느정도 머리가 말라 드라이기를 껐다. 앞을 바라본 채 아무 말이 없길래 고개를 쭉 빼서 뭐하나 봤더니,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만 있다.
"졸려?"
"머리 만져주니까 졸려..."
"가서 자. 비 맞고 뛰니까 피곤하지."
내가 미친게 분명하다. 저렇게 졸리다고 멍하니 앉아있는게 귀여워 보이다니, 내가 미쳤어. 분명 미쳤다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고선, 내 앞에 보이는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가서 자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여전히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두 팔을 쫙 펼친다.
바로는 아니지만 저 행동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내가 괜히 모르는 척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드라이기를 주워들었다.
김태형을 무시하고 드라이기를 가져다 놓기 위해 문을 열자, 기어코 내 뒤에서 나를 끌어안는다.
"무거워."
"그러게 누가 그냥 가래."
내가 드라이기를 김태형의 방에 가져다 놓으러 가는 길에도 김태형은 끝까지 내 등에 안겨 쫓아왔다.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김태형도 떼어놓기위해 내 목에 둘러진 두 손을 잡으려는데 돌연 몸의 방향을 틀어 방에서 나가게한다.
결국 또다시 그 상태로 내 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김태형은 나에게서 떨어졌다.
"잘 자."
"아직 열시도 안 됐는데?"
"그럼 더 안고있을까?"
"갑자기 졸려. 잘래."
물론 농담이겠지만 자연스럽게 말을 하던 김태형이 내 반응에 웃음을 짓고 방 문을 닫았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손과 머리만 빼고 목 끝까지 올려 덮고선 휴대폰을 잡았다.
[ 목걸이 잃어버리면 죽는다 - 김태형 ]
[ 잃어버리면 또 주워주면 되지 ]
[ 그래서 잃어버리겠다고...? - 김태형 ]
[ 아니ㅎ ]
[ 보고싶어 - 김태형 ]
[ 조용히 해 ]
능글맞아...능글맞아 죽겠어, 정말...
나에게 생긴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던 수정이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카톡을 보냈다.
늦은 밤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답장은 아주 빠르게 도착했다.
[ 수정쓰 나 할얘기가 있어 ]
[ 둘 중 누구야 - 수덩이 ]
[ ... ]
[ 너 점쟁이야? ]
[ 같이 사는 그 친구야? - 수덩이 ]
[ 응...ㅎ ]
[ 아이고 우리 탄소가 솔탈을 하다니 - 수덩이 ]
[ 이 언니가 너를 참 잘 키운것 같구나 - 수덩이 ]
[ 그래서 뽀뽀는 했어? - 수덩이 ]
[ 아 무슨 뽀뽀야ㅡㅡ ]
[ 아직 안했어? 아쉬워라... - 수덩이 ]
[ 언제할거야? - 수덩이 ]
[ .... ]
[ ㅋㅋㅋㅋㅋㅋㅋㅋ농담이야 - 수덩이 ]
[ 애긴줄 알았더니 남친도 만들어오고ㅠㅠ다컸네 다컸어ㅠㅠㅠ - 수덩이 ]
-
"뭐?!"
다음 날 우리는 가장 먼저 박지민을 만났다. 박지민은 나와 김태형이 사귄다는 그 사실보다 김태형이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란 듯 했다.
어쩐지, 그걸 모르니까 나한테 정국이도 소개시켜주고 밀어주려 노력한거겠지만.
그는 이 셋 중에 자신만 솔로라는 현실에 좌절했고, 나란히 앉아있는 우리 둘을 보며 한숨을 안주삼아 술을 물처럼 마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집이 아니라 까페에서 만날걸 그랬나보다.
김태형이나 박지민에게 내 술취한 모습을 전부 보여주었기에 딱히 술을 사릴 이유는 없었다.
마침 박지민이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박지민이 따라주는 술을 곧이 곧대로 받아마셨더니 김태형은 보란듯이 내 술잔을 뺏어 자신이 마셔버린다.
"야. 김탄소 술 그만 줘."
"...와. 이제 지 여친이라 이거지."
"아하...하. 아니야. 지민아. 내가 따라줄까?"
"됐어...커플 따위..."
뭐 이런다고 우리 셋의 우정이 파괴되는 일은 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민에게 어서 좋은 여자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지민이 술을 마시는 속도에 맞춰 몇 잔을 받아마시니 벌써 세상이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나와 지민을 두고 김태형이 화장실을 간 틈을 타, 박지민은 내게 물었다.
"너도 김태형 좋아했냐."
"그랬나봐."
"괜히 미안하네. 정국이한테도, 너한테도."
"뭐가 미안해. 우리 둘이 잘 해결된 일이니까 괜찮아."
"나만 솔로야..."
"하하...너도 곧 생길거야."
울상을 짓는 지민을 애써 웃으며 달랬다. 그런 와중에 김태형이 화장실에서 돌아오고, 이번엔 지민이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섰다.
나는 지민과 대화를 하며 참던 어지럼증이 한번에 몰려와 내 옆에 김태형이 앉자마자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김태형은 그런 내 볼에 손을 얹는다.
"어지러워?"
"응..."
"주는걸 다 받아마시니까 그렇지."
"몰라...잔소리 하지마."
"넌 엠티가면 큰일났다. 어쩌냐, 널."
"가서 술 마시고 선배들한테 애교나 부릴란다."
"죽어."
-
끊을 타이밍 못잡아서 뚝 끊은듯한 느낌ㅎㅎ
저번 화에 암호닉 신청 해주시는 분들이 갑자기 늘어가지구 놀랐네여하핳ㅎㅎ
그래서 좋다구여허헣하하핳
그리고 댓글 수도 늘어서 심쿵사로 영영 잠들뻔했어여
여러분들이 이러시면...제가...완결 내기가 힘들자나여...왠지 더 써야할 것 같고...
일단 힘닿는데까진 써보께여...사랑함다...러브...엘...오...븨...이....♡
~♥~ ~♥~〈 소꿉친구 김태형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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