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이번엔 김태형이 엠티에 갔다. 지금 나는 늦은 밤, 엄마아빠와 함께 티비를 보는 중이었다.
약 두 달 전만 해도 원래 우리 집에 없던 김태형이지만, 엄마는 태형이가 없으니 집 안이 텅텅 빈 것 같다고 했다. 난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다.
우리는 김태형이 짐을 싸던 어젯밤부터 엠티를 떠나던 오늘 아침까지, 가지 말까? 가. 진짜 가? 가. 라는 식의 대화를 수십 번 반복했다.
그리고 김태형이 없는 오늘,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엄마."
"왜."
"아빠."
"응?"
"나 남자친구 생김."
그 말을 하는 순간 엄마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누구냐 묻는 반면, 아빠는 어떤 새끼가 우리 딸래미를 빼앗아가냐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김태형, 하는 내 뒷말에 아빠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한결같이 평화롭던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아직 안 사겼니, 너네?"
"...예?"
"난 또, 어렸을 때부터 사귀는 줄 알았지~"
"무슨 소리야, 엄마..."
"태형이가 너 되게 좋아했잖아~"
김태형이 날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찌됐건 난 김태형이 날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김태형이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나 빼고 다 몰랐던걸지도. 아, 박지민도 몰랐지만.
와중에 아빠는 태형이정도라면 충분히 사위로 삼을만 하다며 이제 스무 살이 된 나의 남편을 미리 점쳐두고 있었다.
아빠, 그런 짓은 다메요...
그렇게 나의 첫 남친 공개이야기는 마치 일상 대화처럼 물흐르듯 지나갔고, 티비 소리 속에서 들리는건 나의 휴대폰 진동소리 뿐이었다.
[ 나 취할 것 같아 이러다 - 김태형 ]
[ 취해봐 어디 ]
[ 너 내 주사모르지 - 김태형 ]
[ 주사가 뭔데? ]
[ 너처럼 애교부리는거 - 김태형 ]
[ 언년한테 애교부리게 ]
김태형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름 개정색을 하고 답장을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건 답장이 아니라, 전화였다.
순간 놀라서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뛰쳐들어갔다. 문을 닫고 통화버튼을 누른 채,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방금 질투했지, 맞지?'
"아니, 어느 년한테 애교부리냐고. 개새야."
'...일단 진정해. 애교 안 부릴게.'
"그래, 그래야지."
어디서 나한테 감히 밀당질이야? 늘 느끼는거지만 나에게 꼼짝 못하고 매번 져주기만 하는 김태형과 내가 진심으로 싸우려면 얼마나 큰 일이 터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손 대신 귀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통화를 계속했다.
"나 엄마랑 아빠한테 말했어."
'뭐를?'
"너랑 사귄다고."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어떤 반응이셔?'
"좋겠지. 나보다 널 더 좋아하시잖니."
'다행이다. 이제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면 돼?'
"누가 너랑 결혼한대?"
'그럼 누구랑 하게.'
스무 살에 벌써 결혼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도 웃기고, 빈말이라도 너와 결혼하겠다는 말은 죽을만큼 하기싫은 것도 웃겼다.
이제 겨우 첫 연애를 해보는 나에게 결혼이라니, 초등학교 때 수능 얘기를 하는것 못지않게 나에겐 머나먼 이야기 같았다.
낯부끄러운 말을 하지 않으려 이리저리 말을 돌렸다. 딱히 할 말이 있어 통화를 시작한 것은 아니니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생길 찰나에 김태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탄소 보고싶다.'
"우리 엄마도 너 보고싶대."
'너는?'
"...나도."
'아,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더 보고싶다.'
박지민이 들었다면 쌍욕을 날렸을 대화를 나누다 김태형은 꽤나 아쉽다는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제 다시 들어가야겠다. 이따 페이스톡할게.'
"이따가 언제야, 나 잘래."
'그럼 하는 수 없지. 잘 자.'
"최대한 버텨는 볼게. 안 잔다고는 안 했다."
'노력하는거로도 이쁘네. 끊는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이렇게 전화통화까지 하고 나니 엄마가 집이 비어보인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
김태형과의 전화통화가 끝난 후 어떻게 됐냐고?
잤음.
푹 잠.
ㅎ.
나는 통화를 하며 누워있던 그대로 잠들어 아침에 그대로 눈을 떴다.
늦은 아침이었지만 다행히 오늘은 공강이어서 집에서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하지 못하고 잠든 것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생겨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를 하며 보내놓은 '몇 시쯤 도착 예정?'이라는 문자에 '거의 다 왔어.'라는 답장을 받고선 집을 나섰다.
혼자 뻘쭘히 서있던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왔다.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속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김태형을 찾았다.
그리고 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후, 마침 내가 서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 ..."
"... ..."
김태형은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니, 씩 웃으며 두 팔을 벌리더라.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김태형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의 팔이 나를 감싼다.
"어제부터 왜 이렇게 이쁜 짓을 많이 하지."
"전화 못했잖아, 어제."
"어이구, 그래서 공강인데도 나 마중 나온거야?"
"응. 딴 년한테 애교 안 부렸지?"
"그럼. 내가 누구한테 애교를 부려."
팔은 아직도 서로를 안은 채 얼굴은 서로를 마주보고 아무 말 없이 서있다가, 김태형은 예고없이 내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자동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먼저 살폈다.
다행히 가까이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나선, 김태형의 어깨를 팡팡 쳤다.
"미쳤어. 미쳤어!"
"미안. 나도 모르게."
"모르게는 무슨."
"그니까 누가 그렇게 이쁘래?"
"어우, 토할 것 같아."
사귀기 전이나, 사귄 후나 김태형의 능글거림은 달라진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잠은 잘 잤어?"
"그건 내가 물어봐야지. 술 마시느라 잠도 못잤지, 너?"
"응. 나 피곤해. 너 또 가위 눌릴까봐 걱정되서 한숨도 못잤어."
"말이나 못하면."
분명 밤을 새도 술 때문에 밤을 샜을것이 뻔한데 저런 식으로 이유를 바꿔말한다. 저런 것도 어떻게 보면 타고난 말재주같아서 박수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피곤하니 얼른 집으로 가자는 내 말과 함께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러나 김태형은 집 대신 까페에 가자고 말했다.
"피곤하다며?"
"농담이지, 너랑 있는데 뭐가 피곤해."
"갑자기 까페는 왜?"
"그냥 앉아있는거지, 뭐."
결국 김태형의 등쌀에 못이겨 까페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그것을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으면 김태형은 갑자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하지만 울리는 것은 내 휴대폰이었다.
"와. 아직도 저장명이 김태형이야?"
"...고단수네. 이렇게 확인을 하다니."
"바꿔줘, 빨리."
"뭘로. 차단 1호로?"
"태형, 하트."
"... ..."
수정이나 엄마, 아빠. 그 누구에게도 하트를 붙혀본 적이 없는데 자신의 이름에 하트를 붙혀달란다.
그러는 자신은 나를 어떻게 저장해놨나 싶어 이번엔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김태형의 휴대폰 화면에 뜬 글자는 바로 이랬다.
'♥♥♥탄소♥♥♥'
하트가 하나도 없는 나도 심하지만 저것도 너무 심한거 아니냐, 솔직히.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으로 김태형을 바라보니, 여전히 하트를 붙혀달라며 자기 주장을 열심히 늘어놓고 있었다.
"내가 너의 첫 남자친군데 이럴 수가 있어?"
"넌 나 처음 아니잖아."
"...어?"
뭐, 딱히 극딜하려던건 아니고 중학교 때 김태형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갑자기 기억나,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김태형은 황당하거나, 아니면 당황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아니야?"
"...나도 처음인데."
"응? 너 중학교 때 여친있지 않았어?"
"없었어. 그거 걔가 일부러 소문 내고 다닌거야."
"와, 인기 쩔었네. 김태형. 그런 소문도 나고."
다 지난 일에 본인도 사실이 아니라하니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법한 이야기였다. 물론 정말 사귀었던 사이라 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말 돌리지 말고, 빨리 하트 붙혀줘."
"아, 더럽게 조르네. 됐냐?"
"난 여섯 개나 되는데."
"내 남친이 여섯 명이 되지 않는 한 하트 여섯 개 붙힐 일 없다."
"그래. 여기서 만족할게."
겨우 김태형 뒤에 하트 하나를 붙혀주니 처음엔 썩 맘에 들어하지 않다가, 내가 던진 말에 수긍을 하며 받아들인다.
말로는 피곤하지 않다고 하지만 엠티를 다녀왔는데 안 피곤할리가 없는 김태형이 거의 엎드리듯이 몸을 수그리다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 나도 엄마한테 말했어. 우리 사귀는거."
"뭐라셔?"
"엄마는 손녀가 좋대."
"... ..."
하여튼 이모, 삼촌이나...우리 엄마, 아빠나...다 똑같아...심지어 김태형도...
내가 혹시 연애가 아니라 결혼을 한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우리의 가족들은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멀쩡한건 나 하나 뿐인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도망을 쳐야겠다.
"난 이 결혼 반댈세."
"내가 한 말 아니야, 우리 엄마가 한 말이지."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걸로."
"왜 그래, 우리 뽀뽀도 한 사이잖아."
"아. 나 진짜 집 나간다."
"알았어. 그만할게."
-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엠티로 두 화 우려먹기...(울뛰)
벌써 이 썰이 20화라니 스스로에게 큰 박수짝짝
곧 다들 개강이나 개학 하시겠네요! 아...개강하기 싫다....
학생 여러분 화이또. 직장인 여러분들도 화이또. 우리 모두 화이또.
~♥~ ~♥~〈 소꿉친구 김태형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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