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중-지켜줄게
웃음을 파는 여자와, 어떻게 해서든 그 웃음을 꼭한번 보고싶었던 남자의 이야기.
입안 가득 쓰게 채워지는 담배 연기를 한번 훅- 뱉어낸 후 담배꽁초를 발로 짓이겨 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앳된 얼굴을 하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내 모습을 째려보는 시선들이 이따금 느껴지긴 했지만, 알게뭐람. 주변 시선을 개의치 않은 채 담배갑에서 새로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길게 빠진 담배의 모습이, 괜시리 얄밉게 느껴져 라이터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두어번 퉁퉁, 튕겨냈다. 재수없긴. 그렇게 담배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으면, 갑작스런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담뱃갑이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무슨...?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면, 살짝 굳은 얼굴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뭐하는거냐는 표정으로 그렇게 그 남자를 가만히 응시하면, 그 남자는 굳은 표정 그대로 내게 묻는다. 몇살? 그에 기가찬 내가 픽, 웃으며 무슨 상관이세요, 그쪽이. 하며 응수하면, 그는 더더욱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거두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오는 짜증과 답답한 분위기에 그 남자의 발밑 어딘가에 침을 퉷, 뱉곤 대답한다. 열여덟. 그리고선 대답이 없는 그 남자의 손아귀에서 담배갑을 확 채간 뒤 가게로 걸음을 재촉했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갈 때 쯔음, 뒤에서 들린 그의 말을 차게 무시한 채.
"오빠, 돈 많은데."
미치겠다. 제가 돈이 많다며 씨익 웃던 그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가 않는다. 첫 눈에 반해서, 웃는게 예뻐서 따위의 거창한 이유가 아닌, 얄미워서. 정말 그 얼굴이 얄미워 죽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대단하다고 저를 믿고 활짝 웃어보이는 그 미소를 얼굴에서 싹 가시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하며 다시한번 내 명함을 쳐다봤다. 열여덟에 고작 이런 명함이라니.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주야 이리와," 하며 내 이름을 불러오는 마담의 말에 아까 그 남자의 생각 탓에 굳어있는 얼굴 그대로 홀쪽으로 향했다. 내 표정을 살피던 마담은 내게 웃으라는 듯, 잔뜩 경직된 내 입매를 억지로 두 손가락으로 끌어올린다. "여주야, 오늘 중요한 손님 오시는 날이니까, 내가 긴말 안해도 알지?" 날 믿는다는 듯 퍽 다정스런 손길로 내 어깨를 감싸오는 마담의 행동에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와 상반된 시큰둥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런 날 바라보던 언니들은, 가증스럽다는 듯 제각각 냉소를 흘리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년아, 그 손님 접대하는거만으로도 복받은 줄 알아." 잔뜩 상기된 톤으로 말해오는 언니들의 말에 마담은 백번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마담의 성화에 못이겨 도착한 룸은, 특별한 손님들이 올때만 열어둔다는 특실이었다. 여기 올 사람들이면 꼬부랑 할아버지들밖에 없을텐데, 문득 들어오기 전에 향수를 뿌리지 않은 사실이 후회됬다. 나오면 홀애비 냄새 날텐데. 그런 잡생각들과 함께 들어선 룸에는, 내 예상을 깨버리는 인물이 앉아있었다. 그는 내얼굴을 보더니,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던 전과 같은 그 미소를 지어보이곤 말했다.
"아가, 안녕."
내 속을 박박 긁어놓은 것도 모자라 뭐, 아가? 그의 말에 인상을 써보였다. 그렇게 잔뜩 구겨진 내 얼굴을 보는 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어, 손님 앞에선 그런 얼굴 하면 안될텐데,"
그의 말에 애써 입매에 웃음을 싣고, 그에게 대답했다. 이제 됐어요 손,님? 손님이라는 두 글자에 힘을 실어 말하는 내 모습을 보던 그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리와, 앉아."
이내 그는 제 옆을 가리켜 보이더니 내게 말해왔다. 순간 내가 왜요, 하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서있는 내 발이 아프기 시작했던 터라, 군말없이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그의 옆자리에 앉으면, 그는 웃으며 제 손으로 내 머리를 두어번 쓸어내렸다.
"말 잘듣네, 아가."
문득 그의 손을 아프도록 꽉 잡아 한번 비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까스로 그 충동을 참아낸 채, 그의 티없이 맑은 낯빛에 맞게 나도 한번 억지로 웃어보였다. 그러자 그는 조금은 가라앉은 눈으로 내게 말해온다.
"아, 더 환하게 웃으면 예쁠텐데. "
그런 그의 말에 억지로 웃고있던 표정을 순식간에 일그러트린다. 아저씨가 나였으면, 이렇게라도 못 웃을껄요. 나의 대답에 그는 한번 가볍게 웃어보이더니, 내 얼굴을 제 두손으로 감싸온다.
"아가, 내이름은 이석민인데.그리고 아저씨 말고 오빠"
그에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내비치자, 그는 한번 더 웃어보이더니 내게 말한다. 아저씨가 아니라 이석민이라고요, 내이름. 그리고 나 오빤데. 그에 아,하고 소리내어 한번 말하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석민은 만족한 듯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인 채 내 얼굴에서 손을 내린다. 그가 내 얼굴에 손을 대고 있던 찰나에 느껴진 온기가 너무도 생생해서, 문득 그의 손이 내 얼굴에 조금만 더 오래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는 답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 느껴본 생소한 온기에, 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런 호의에 익숙해진 척을 애써 해야만 했다. 다른 손님들과는 다르게 내게 그 어떠한 기분나쁜 접촉도 않은 채 그저 내게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만을 하던 석민은, 이내 시간을 한번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올께, 아가. 그동안 나 꼭 기다려주기?"
이 한마디만을 남긴 채 떠나는 석민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마자, 언니들은 득달같이 내게 달려와선 어땠냐고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질문에 난 대답할 생각도 않은 채 그저 곧바로 내 방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가만히 침대에 누운 그 순간마저도 석민의 미소가 떠올라 가슴이 평소보다 몇배는 더 빠르게 뛰는걸 느낄 수 있었다. 석민이 내게 지어준 미소는 여태껏 이세상 그 누구도 내게 한번도 지어주지 않았던 그런 깊은 미소였기에.
그렇게 다음 날도 또 그 다음날도, 석민은 기다렸다는 듯 그 가슴뛰는 미소를 항상 얼굴 가득 담은 채, 날 보러 먼저 와주었고, 그런 석민의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투, 그 모든 것에 난 더 밝게 웃어보이며 그와의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지길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랬다. 그가 가고 나면, 언니들은 항상 석민처럼 돈도 많고 능력있는 사람이 내게 정착하는 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했다. 그래, 석민은 어느새 내게 정말 그런 존재가 되어버리고 있었다. 마치 내게 일어난 하나의 기적같은 사람. 그렇게 내 삶에 조용히 스며든 석민은, 어느새 내게 점점 익숙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일상에 평범하게 다가온 그에, 불현듯 힘이 든건 한순간이었다. 이렇게나 예쁜 미소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나 순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 이미 더럽혀진 마음과 나쁜 생각들로 가득 차버린 내 곁에 머물다니, 처음엔 그저 미안하던 마음이 이내 그가 밖에서 다른 여자에게 나에게 하는 것과 다를 것 없이 대할까, 하는 의심으로까지 번졌다. 내 자신에게 줄곧 향해있던 증오가 어느새 그를 향한 질투와 적개심으로 돌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질투는, 정말이지 무서운 감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다시 찾아온 그에게, 난 평소와는 다르게 잔뜩 날이 선 태도로 일관했다. 날 보듬어주려는 그를 애써 밀어내며 멀어지려 애를 썼고, 그런 나의 행동을 알아차린 석민은 쓰게 웃었다.
"아가, 뭐가 문제야."
제 머리를 한번 쓸어올리며 내게 묻는 석민에게 난 여전히 날이 선 말투로 대답했다. "뭐가 문제긴, 그런거 없는데." 이내 내 대답에 상처를 받은건지. 제 입술을 가만히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석민을 보며, 난 자조적인 웃음을 한번 지어보였다. "솔직히 같잖아, 아저씨가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려 애쓰는거. 그래봤자 난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난 절대로 여기서 못빠져나가." 그런 나의 말에 석민은 더 낮게 제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떤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양, 다시 날 올려다보는 석민에게 난 기가 차다는 듯 허, 하고 코웃음을 지어보이곤 다시금 대답했다. "아저씨, 정말 애야? 뭐가 어떻긴, 다른 사람들이 아저씨를 대하는 거랑, 날 대하는 건 달라." 잠시 말을 멈추고 쳐다본 석민은,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상처입은 눈을 본 이상,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아저씨의 세상과 내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이 한마디와 함께 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 고개를 돌린 순간 보인 석민의 표정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의 마지막 표정을 머리로 되새기며, 난 멀어지는 발걸음에 내 몸을 실은 채 눈을 감았다.
그날 이후로 석민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난 석민이 아닌 다른 손님들을 받아야만 했다. 가만히 내 옆에 앉아 내 얘기만을 들어주던 석민과는 다르게 내게 제각각 다른 것들을 원하며 탁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오직 석민만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래도 벗어나지지 않는 추억에 그렇게, 하루하루 벽을 보며 잠에 들곤 했다. 그렇게 혼자 생각하다보면, 괜스레 그를 원망하게 되어버렸다. 그때, 내 말을 그냥 흘려듣지. 내가 한 말 다 잊어서, 아무일도 없었던것 마냥 또 그렇게 염치없는 웃음으로 날 반기며 사랑해주지.
억지로 맞이한 다음날은, 싸한 공기가 맴돌았다. 마담은 부스스한 내 모습을 보며 급하게 내 어깻죽지를 감쌌다. "여주 너, 오늘부터 2차 나가." 마담의 말에 눈이 탁하게 풀어졌다. 그리곤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아, 그래. 난 이제 혼자니까.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한동안 손을 대지 않았던 담배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불을 붙이는 손이 겉잡을 수 없이 떨려, 불길이 일렁였다. 그에 일렁이며 타오르는 불길에 가만히 손을 갖다대려다, 갑자기 내 손을 쳐내는 행동에 놀라 고개를 쳐들면, 그곳엔 그가 서있었다. 그와 나의 처음처럼, 그렇게. 석민은 제가 쳐낸 내 손을 가만히 쥐고 있더니, 가까스로 입을 뗐다.
"아가, 내가 너 이러라고 안 찾아온거 아닐텐데."
조용히 말하는 석민의 목소리에 줄곧 머금고 있던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그는 처연하게 흐른 내 눈물을 조용히 뺨에서 닦아내더니, 이내 내 눈을 마주보며 제 허리를 굽힌 채, 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아가, 오빠는 이젠 정말 아가 없이는 아무것도 안될거 같아서 여기까지 아가 데리러 왔는데."
먼저 말을 꺼낸 석민은 조용히 무언가 참으려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아가 말대로 아가 네 세계는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꺼내 오느라 오빠 정말 힘들었어."
쓴웃음을 지어보인 석민은 가만히 내 앞으로 제 손을 내민 채 입을 열었다.
"아가, 오빠만 믿고 손 잡아줄 수 있어?"
"나 정말, 아가 없인 안될거 같아. 아가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가도 역시, 오빠 없인 안되겠지?"
어제 만개 컴퓨터 책상 위에서 잠들어버렸어요... 일어나자마자 다시 글 쓰고 전 다시 꿈나라로... 멀리멀리... 싸랑해요 꽃님들! 오랜만의 개인의 연애사네요...ㅠㅠㅠㅠ 사실 2주 전 부터 쓰고 있었는데ㅠㅠ 글이 많이 막혀서 오래걸려버렸네요ㅠㅠ 암호닉은 아직 정리중!꽃봉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