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남편, 최고의 사업 파트너 김준면.
[09]
그날이후 며칠이고 준면은 나에게 찾아 왔다. 며칠 후면 있을 거라던 장기 출장은 뒷전이 되어버린 건지, 늘 내가 식사를 마치고 한 두마디씩 구박을 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병실을 떠났다.
그의 손에는 항상 장미가 들려 있었다. 그는 날 항상 다정스럽게 꼭 안아줬다.
그런데도 항상 마음 한 켠 어딘가엔 슬픈 느낌이 서려있었다.
이 사람은 내가 궁지에 몰려야만, 정말 죽을 것같이 절박할때에만 이렇게 여지를 보이곤, 또 평소처럼 싸늘한 모습으로 돌아올 게 분명했으니까.
우린 어째서, 어디서부터 잘못 됐던 걸까.
슬픈 꿈을 꿨다.
오늘 나, 당신이 나오는 꿈을 꿨어.
평소같이 병실을 찾아 온 너의 손에는 하얗디 하얀 국화 한 송이가 들려 있었어.
너는 힘 없는 모습으로 내게 터덜터덜 걸어 왔어.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 끝에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당신이 장대비를 맞았음을 말해주고 있나 봐.
근데 이상했어, 꽃은 거센 비바람 속에서 어쩜 그렇게 싱그럽게 살아 숨쉬고 있던지, 풀이 죽지도, 시들지도 않은 국화를 당신이 내게 건넸어.
근데 나도 진짜 등신같은 게, 평소엔 당신이 장미를 줘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그날따라 그 국화 한 송이에 그렇게 기쁜 거 있지.
그래서 정신이 팔려서 막, 그 국화를 들고 웃고 있는데 말이야, 문득 당신 옷이 눈에 띄는 거 있지.
이상하게 흰 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 또 검은색 넥타이…, 딱 옷차림이 누구 조문할 법한 옷차림이야. 그렇게 한참 당신 옷을 살피는데, 자세히 보니까 빗물에 씻겨 나갔는지 흐릿하게 누군가의 핏자국이 당신 옷에 한가득이야.
근데 당신이 날 잡고 막 흐느껴 울어, 무릎을 꿇고, 병실 침대에 앉아있는 날 끌어안으면서 미안하다고 아이처럼 엉엉 울어. 난 당신이 당최 나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어서 벙찐 표정으로 당신을 함께 안고 내려다보기만 했어.
그리고 나서 고개를 들어서 저―기, 벽걸이로 된 거울 속의 나를 살피는 데 말이야, 어딘가 이상한 거야.
내가, 내가 아니야.
거울 속의 나와 소름끼칠 정도로 닮은 그 여자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었어.
바보같은 난 나중에야 눈치챘어, 당신이 외치면서 흐느끼는 그 이름이 내가 아니었다는 그 사실을.
그리고 깊은 단잠에서 깼어.
준면씨, 그 여자 있잖아, 나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내가 아니었던 그 여자말이야, 그 여잔 대체 누구야?
누구길래 당신을 그렇게 서럽게 울렸었던 건데?
대답해 줘, 응?
*
그 뒤로 며칠이고 그러한 괴상한 꿈은 어느샌가 나에게 악몽의 형태로 변질되어 몇 번이고 찾아 왔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화염에 타는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매일 꿈속에서 하릴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거센 비바람과 천둥번개치던 그 날도 어김없이 퀭한 눈으로 밤을 지새우려던 참이었는데, 병동 문을 열고 익숙한 인영이 들이닥쳤다.
독한 술냄새를 잔뜩 풍기는 당신,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당신, 맥없이 축 처진 당신의 어깨. 어디선가 많이 마주친 것 같으면서도 그날따라 낯설었던 당신의 그 느낌.
"술 냄새 나…."
코를 틀어 막고 눈을 찌뿌렸다. 그가 가끔씩 과음하고 들어올 때면 자주 하던 제스쳐였다. 근데 당신은 뭐가 그렇게 반가운지, 비식비식 웃더라.
옆에 있던 스탠드 전등을 켜니까 그제서야 당신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물이 뚝뚝 흘러 내리는 머리카락 하며, 흠뻑 젖어버린 셔츠 하며, 꼴이 엉망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손에 들려 있던 국화를 보고나서야 내 표정은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당신이 운다. 젖은 몸을 하고서 날 끌어 안는다. 물기가 축축한 당신의 손길에 내 옷도 따라 젖는다. 당신이 흐느껴 운다. 당신의 눈물이 내 소매를 적신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그저 당신을 끌어 안고 등을 어루만진다. 놀랍도록 처연한 당신의 모습에 난 고개를 숙인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
"은재야…."
당신의 입에서 마침내 그녀의 이름 석자가 탁 터져 나왔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절규하던 그는 나의 품에 쓰러져 잠들었다.
"여보."
"…"
"나 이제 물어 봐도 돼?"
대체 그녀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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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7개월만에 찾아 뵙는 절 용서해주세요.
여러분, 전 절대로 나태하고 오만방자한 인간이 아닙니다, 글을 쓰고싶어서 미치겠는 사람인데 여건이 안 돼서 못 왔던 겁니다.
믿어주세여ㅠㅠ... 드디어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기분이네요...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덕분에 감도 잃어부러쓰^^
다음 화부터 본격적으로 준면이 이야기 들어가려고 오늘 확 전개 빼부러쓰ㅠㅠ
정말 죄송하지만, 암호닉 또! 새로 받아야 할 것 같네요ㅠ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면목이 없어요,
아무래도 반년이 넘는 기간이 짧은 세월도 아니고 떠나신 분들이 많을 거라는 판단끝에 내린 결정이에요...ㅠㅠ 정말 자주 오겠습니다. 항상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