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불주의,씬 없음 주의)
"사과, 포도....송...송뵹...?"
"송편."
"송....병..."
"송."
"송,"
"편."
"평."
아, 이 형 진짜. 허심탄회하게 웃으며 다시 한자 한자 나열된 단어를 천천히 읊어주었다. 고등학생 2학년이면서도 그 쉬운 송편 하나 조차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이 형은 중국 교환 학생으로 온 장이씽.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열 아홉이지만, 교과 수준을 고려해서 수업은 나와 같이 2학년 과정을 수료중에 있다.
한국어 실력이 이렇게나 엉망인데 어떻게 교환학생이 된거야, 구박하듯 물어보면 그 크고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응?" 하며 바라보는데, 이걸 혼낼수도 없다. 사실 말 자체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말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것 같지만, 지난 여름방학 때 부터 약 2개월간 꾸준히 지켜본 나로썬 그의 국어 실력은 좋게 봐줘야 5살. 성적이 좋아서 교환학생이 된 건가?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으나 내 앞에선 그저 우물거리는 꼬맹이 정도의 실력을 행사할 뿐이었다.
"송평....송...."
"그건 그만하고, 이것부터 하자. 따라해봐. 자, 컴퓨터"
"컴퓨터."
"이건 잘하네?"
"...computer.종대, 바보."
아차 싶었다. 이건 외래어지. 언제 배웠는지 바보 라는 말까지 써가며 샐샐 웃는데, 저 폭 들어가는 보조개 하고는. 민망함에 황급히 <뽀로로와 함께하는 한글교실>이라 적힌 책을 덮어버리고 질세라 "오늘은 여기까지 할래, 아 피곤하다." 하며 마무리를 지어버렸다. 그러자 이 놈의 장이씽은 멍하니 쳐다보다가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었다. 식탁이 흔들릴 만큼 웃어대는 그는 곧 의자를 땡겨 내 옆으로 슬그머니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여전히 얼굴 가득한 미소를 띄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영어 너무 많이 써. 컴퓨터, 티비, 프레젠테이션, 셀 폰..."
"휴대폰이야."
"음.....마이 미스테이크."
한 쪽 팔을 괴어 물끄러미 날 쳐다보며 미스테이크니 뭐니 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참 기분이 묘하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녀석에게 왜 한국말을 가르치냐고? 교환학생이 온다는 소식에 미래의 중어중문학과 김종대님이 가만히 있을쏘냐, 교환학생 홈스테이 공고가 뜨자마자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홈스테이 신청을 해 놓았었다. 자취를 하는 입장이라 가능했던 일인 만큼, 나에겐 큰 행운으로 다가왔다. 제2외국어도 중국어, 아직 중국어 실력은 한참 떨어지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분명 실력이 늘 것이다. 그리고 저 교환학생은 나의 중국어 공부에 쓰일 소중한 선생님이라 이 말이지. 한국어를 조금씩 알려준다는 조건으로 중국어도 배워볼 심산이었는데, 생각보다 심하잖아 이건. 겨우 5살 정도의 한국어 어휘실력에 나는 홈스테이 하루 만에 노동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의 한국어 전용 강사가 되었다. 그래서 학교가 마친 이 늦은 시간까지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고!
물론 아주 거두어 들이는게 없지만은 않았다. 가끔씩 중국어 단어를 알려주는데, 중학생들도 알만한 그런, 워아이니 라던지. 중국어를 쓸 때의 이씽 형은 한국어를 쓸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있었다. 진짜 열 아홉의 모습 같은. 언젠가 한번 중국에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는데 빠른 속도로 중국말을 하는 형은 지금까지 어벙한 모습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같았다. 물론 모국어니까, 또 나에겐 외국어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학교에서도 한 학급의 반장으로써 교환학생을 우직하게 이끌어주라는 담임의 말에 대답하듯 난 수업 하나하나 그를 살펴야 했다. 그도 나와 코드가 맞는지 날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고, 화를 내거나 거절한 적도 전혀 없었다. 약 2개월 동안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사실만은 여전했다. 그가 처음 왔을때, 뒤에서 짱깨니 어쩌니 뒷담하는 무리들을 까버린 사건 덕인지는 몰라도 이씽 형은 짧은 시간안에 우리 반에 정착할수 있었고, 지금은 모두 그를 형 대접하고 있다. 나를 제외하고.
"종대, 중국어 알려줄까?"
"뭘 또. 워아이니, 그런거?"
"아니야."
진지한 척 미소를 띄어보이는 그가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내 손 위에 그의 손을 겹쳤다. 분위기까지 잡고 징그럽게 왜이러냐며 손을 쑥 빼내자 멀거니 바라만 보던 형이 슬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는다. 이젠 내가 가르치는 거야, 따라해봐. 형의 발음이 썩 좋게 들리는건 뭘까.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조용히 고개만 까딱이는 날 쳐다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발음 어려우니까 천천히 ..Qǐng qiángjiān wǒ"
"칭...챵찌안..워?"
"다시."
"请...强奸...我......请强奸我."
"okay."
형은 여전히 예의 그 예쁘고 순진무구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아마 나도 눈치채지 못하게 내 어깨에 얹힌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请强奸我. Qǐng qiángjiān wǒ.
(날 강간해줘.)
.
음 어
시간이 된다면 레이 시점으로 불마크 달고 더 쓸지도 몰라요! 으앙 부끄렁
너무 급하게 쓰느라 영 이상한뎈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언제 나중에 잘 다듬어서 오겠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