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사생]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엑소 03
꾸역 꾸역 남은 피자들을 먹은 뒤에야 비로소 포만감이 느껴졌다.
하. 그냥 웃음이 나왔다. 날 죽도록 괴롭힌 그 들이 멋대로 시켜놓은 피자 따위를 먹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이젠 만족해? 내가 이렇게까지 돌아버리니까 만족해 너네는? 왜, 니네가 원하던게 이런 삶이었잖아?
백현은 지금 이 순간 제일 미운 사람을 떠올려보았다. 이상하게도 사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였다. 백현은 이 지경까지 되도록 자신이 한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항상 사생을 피하기 일쑤였으며,
어쩌다 마주치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도망치는 것. 그게 자신의 모습이였다.
한심했다. 그렇게까지 사생을 싫어하면서 정작 실제로 만나면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는 게.
좆같았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사생활까지 침해받아야된다는게. 마음만 먹으면 나도 똑같이 사생질을 해주고 싶었다.
다음 생엔 꼭 가수로 태어나길 빌게.
그래야 내가 지긋지긋하게 너네 따라다니면서 발목잡지. 응?
"백현아"
복수심에 불타올라 미친 상상따위를 하고 있는 백현의 머리에 누군가에 손이 얹혀졌다.
"왜"
"힘들어하지마. 다 지나갈 일이야"
다 지나갈 일이라며 씁쓸하게 웃어보이는 민석이였다.
민석은 실질적으로 제일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제일 침착하고 신중했다.
백현은 그런 민석이 괜히 맏형이 아니라고 느꼈다.
민석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백현은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졌다.
"형"
"응?"
"나.. 잘하고 있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거냐는 자신의 물음에 한동안 대답이 없던 민석이 말했다.
"니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하고 있는거야"
백현이 풋하고 웃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적어도 니 자신이 후회할 일은 하지말라는 거야"
민석이 말하는 순간 백현의 머리에 무언가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였다.
내 자신이 후회할 일은 하지말라..
백현은 분명 지금 자신이 후회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거짓 교통사고 기사를 내달라며 아는 기자분들께 모두 전화를 걸어 기사를 냈고,
뉴스에도 나왔으며, 팬들 역시 숙소에는 전보다 찾아드는 횟수가 줄었다.
그래. 나 잘하고 있는거다.
"우리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멀찍이 떨어져있던 세훈이 형들에게 묻는 듯 했다.
형들은 대답 대신 옅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어쩌면 제일 힘든 건 백현이 아닌, 세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막내이기 때문에, 제일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형들이 하는 모든 것에 토를 달기가 쉬운 게 아니였다.
세훈은 방송에서는 엑소의 실세라느니 뭐라느니 그렇게 비춰졌지만 현실 상 세훈은 그런 성격이 아니였다.
장난기가 많기는 했지만 형들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았으며, 항상 형들이 이끌어가는 데로, 자신의 역할에 맞게 행동했다.
그런 세훈이, 형들도 힘들어하는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백현은 문득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노래불러줄까?"
그냥 이 처진 분위기에 있기가 힘들었다. 자신때문에 처진 분위기라는 걸 알면서도 이 분위기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래 밖에 없으니까.
백현은 대답없는 공간에서 천천히 한 소절씩 내뱉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 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 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계속 해서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노랫 소리가 멈췄다.
"흐..흐윽.."
백현은 울고 있었다. 한 소절 한 소절 부를 때마다 백현의 목소리가 떨리는 가 싶더니
끝내 백현은 울음을 터트렸다.
가사가 자신의 상황에 너무 잘 맞았기 때문일까, 한동안 백현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강아지가 낑낑대듯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백현에, 멤버들은 마음아파했다.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백현이 마저 못부른 노래를, 종대가 이어부르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를 끝마치고 한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 정적을 깬건 경수였다.
"노래 잘하네"
뜬끔 없는 그의 말에 조용하던 멤버들이 전부 웃음을 터트렸다.
울다 웃는 백현에, 찬열이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변백현! 너 울다가 웃으면.."
"야! 너 뒤질래?"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는 찬열과 백현의 목소리를 계기로
한동안 숙소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