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우가 경찰인 경우
그 날은 비가 오는 겨울 밤이었어. 눈이 오기는커녕 비만 주륵주륵 쏟아지기에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가던 길이었지.
발걸음을 계속하며, 넌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 버렸어. 너의 발걸음에 맞춰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너는 겁을 먹고 말아. 평소엔 밤 늦게 다녀도 아무 일 없었던 길이었는데.
조금만, 조금만 더 걸으면 큰 길이 나오지만, 이미 누군가가 너의 뒤에 바싹 따라붙어 버리고 말아.
공포심이 극에 달한 너는 두 다리를 움직일 힘조차 잃어버렸어.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였고, 뒤에 있는 사람이 어깨를 잡아올 쯤부터는 기억이 없었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질끈 감았던 눈을 떠 보니, 경찰이었어. 순찰을 나온 참이었나 봐. 비가 더 세차게 쏟아졌어.
그의 한 마디에 너의 뒤를 쫓던 사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야. 우산을 손에 꼭 쥐고 있던 우산을 놓치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아.
'요즘 밤 길이 흉흉해요.'
'.......'
'무서웠죠.'
'.......'
'앞으론 조심해요, 항상 이렇게 재빠르게 도와줄 순 없으니까.'
떨어진 너의 우산을 주워들곤, 비에 젖어가는 너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너를 달래주는 그야.
불안감에 미친듯이 뛰고 있는 심장이,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니 심박수가 줄어드는 것 같았어.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게 웃어보이는 그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어.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당연한 일인데.'
'......그래도.'
이름이라도 묻고 싶었지만, 빨리 업무를 봐야할 것 같은 그였기에 너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집에 들어가.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
그게 벌써 몇 달이나 됐는지 몰라. 그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하면 안 되는 장난 전화도 걸어본 너야.
그러다 정말 그가 받아서 머뭇거린 뒤 바로 끊어 버렸지. 고맙다는 말이라도 전하고 싶은데.
오늘은 조별 과제를 해 오지 않은 복학생 선배 때문에 F를 받은 날이야. 발걸음이 무거웠어.
왜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까. 나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나 보다.
왜 그 선배를 어르고 달래서 일을 시키지 않았을까. 일찍 발표 대본을 써서 넘겨줄 걸 그랬나 봐.
너가 잘못한 건 없는데도 불구하고 넌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 해.
우울한 밤이야.
이 길로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걷고 보니 그 날의 그 길이었어.
그 날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넌 발걸음이 그 자리에서 멈춰 버려.
그 날과 다른 바가 없었어. 너의 뒤를 밟는 발소리도, 갑자기 쏟아내리는 비도.
"항상 동행할 수 없다고 말했잖아요."
뒤를 돌아보니 우산을 쓴 그였어. 단호하게 내뱉어진 말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유했어.
너에게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는 그를 보니 왠지 모를 울컥한 마음이 드는 너야.
이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어.
"오늘 하루 힘들었어요?"
"......."
"누가 힘들게 했어, 응?"
서러움이 북받쳐 아무런 말도 이어나가지 못하는 너의 등을 토닥이는 그의 손길에, 넌 더 눈물을 쏟아내.
오늘 하루, 힘들었어요. 그리고,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울다, 너의 눈에 들어온 건 그의 명찰이었어.
흐릿한 시야를 비집고 들어온 그 이름 석 자에, 넌 놀라고 말아.
"......전원우?"
"기억 못할 줄은 알았는데, 진짜 몰랐나 보네."
"........"
"약속했었잖아."
약속,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너와 원우는 서로 좋아하던 사이였던 것 같아.
'서로'였는지, 일방적이었던 건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원우의 대한 기억이 많이 아린 걸 보니, 넌 원우를 많이 좋아했나봐.
예전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해. 기억을 되짚다, 원우가 이사가기 전 원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
그 날 집에 와서 펑펑 울었던 너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고.
"어렸을 때라, 표현이 좀 오그라들긴 하는데."
"......."
"내가 커서, 더 멋있어져서, 너 보러 갈 거라 그랬잖아."
"........"
그래, 그랬었지. 왜 바로 널 알아보지 못했을까. 지나간 시간 동안, 원우는 훨씬 키가 컸고, 목소리도 더 낮아졌고, 소년의 모습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남자에 더 가까워진 것 같아. 그렇게 조각난 기억들을 맞춰보니, 우린 어느덧 많이 커 있었다.
원우의 낯간지러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너야. 어느덧 비가 그치는 것 같아.
소나기였나 봐, 소나기.
"힘든 것도, 다 소나기 같은 거야."
"......."
"금방 왔다가 없어지는 거."
"......."
"앞으로, 같이 해."
"......."
"밤길도, 밥 먹는 것도, 다."
우산을 접으며 원우가 웃으며 말했어.
"비처럼 사라지지 않을게, 다시는."
꼭 써야지, 하구 벼르고 벼른 글입니다!'^'
원우의 제복은 정말 옳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원우도, 우리도 서로에게 비처럼 잠깐 왔다 사라지는 존재가 되지 않구
늘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소나무가 되었으면 해요 !
그럼 전 또 글을 찌러 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