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뿌존뿌존
오늘은 조각이라고 하기엔 다들 긴 글들 뿐이네요.
정식으로 단편이 되기엔 무언가 부족하기에 이렇게 한꺼번에 글을 씁니다.
여러번의 수정작업을 거친 글들이니, 예쁘게 봐주세요:)
당신의 차가운 그늘에, 이 글이 따뜻한 볕이 되길 바라며.
1.
[단심가]
최승철
"세봉아..! 세봉이 아니더냐..?"
".......예?"
학교 가던 도중,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세봉아...! 아, 네가 왜 이 흉물스러운 곳에 있는 것이냐!"
누구신지,
"누구세요?"
"너마저도 날 모른체하는것이냐! 아까 궁에 들어가려 숭례문을 두드려댔는데
아무도 열어주지 않아 내 얼마나 당황했는줄 아느냔 말이다..!"
아니, 숭례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사람이 아직도 있단말야?
"아니, 죄송한데요. 경찰서 가보시는게......"
"경.....경찰? 그게 무엇인.."
"저 바빠서요, 죄송합니다"
"아니..! 세봉아!!"
아침부터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뒤에서 울부짖는 그 사람을 뿌리치고 학교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아, 그 사람. 지금 생각해보니 한복을 입고 있었던가?
붉은 색에, 용이 그려진?
+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이상한 이름을 부르며 내 팔을 부여잡던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신경쓰지 말자. 그저 어디가 아픈 사람이거나,
사회 실험의 일종일지도 몰라.
그리고, 나의 간절하고도 어리석었던 그 기도는,
학교가 끝나고 건물을 나서자 마자 산산조각 나버렸다.
"아니, 김세봉이라는 학생은 여기 없다니까요?"
"아니, 글쎄! 짐이 오늘 아침에 세봉이가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단 말이다!"
"아니, 언제봤다고 반말이신...."
"예끼!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임금을 앞에 두고 머리를 조아리질 못할 망정!"
"아니, 김세봉이 누군데요!!"
"뭬야!"
후,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못 본거다.
못 본거다, 못 본거..못..
"아니 내, 보았다고 하지......."
눈이 마주쳤다.
금방이라도 선도부 임원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들던
그 붉은 한복의 사나이가, 분노에 가득차 옷을 벗어던지던 그 사나이가 나를 봐버렸다.
이건 정말 진심인데, 난 좇됬다.
"세봉아!!!!!!!"
그리고, 그 사내에게 쏠려있던 관심은,
그러니까 적어도, 어림잡아 100쌍은 된 것 같던
눈동자들이 일제히 날 향했다.
아, 이런 관심, 익숙치 않은데.
재빠르게 굴린 머리, 그리고 더 재빨리 내 앞으로 뛰어온 그 사내.
그리고, 금방이라도 날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설명하거라. 이게 다 무슨 일인지, 그리고 넌 왜 변했는지"
+
너무나도 창피한데다가, 귀까지 피가 쏠리는게 느껴져,
"야, 내가 진짜 미안. 우리 사촌 오빠가 술을 마셔서"
라고 선도부 친구들에게 대충 둘러대곤 그 사내를 끌고 눈에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이 무슨..!"
당황한 듯한 표정의 사내,
근데요 아저씨, 지금 내가 더 당황스럽거든?
숨을 후, 내뱉고
"얘기 해봐요. 처음부터. 아저씨 누구야"
그러자 급격히 흔들리는 사내의 눈동자.
"........정녕, 너 마저도 날 저버린 것 이냐?"
"................."
그러지마요, 그런 눈으로 날 보면 내가 마음이 약해지잖아.
"아니, 난 그쪽이 누군지 모르겠지만요, 난 세봉이가 아니라 김세봉이라구요."
"........김...........세봉"
"무슨 소린지 이해했어요? 그쪽이 찾는 사람 나 아니라고."
"허나, 이리도 똑 닮을 수가 없다......이리...."
아니, 이 사람 아까부터 계속 헛소리만 늘어 놓는다.
그러니까 아저씨,
"그러니까요, 지금 그쪽이 하고 싶은 말은,
김세봉이란 사람을 찾고 있고, 그 사람이 나랑 닮았다고요?"
"........아니, 네가 김세봉이야. 확실하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때 지잉-, 하고 울리는 진동벨.
"먹고 집으로 돌아가요."
+
"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딸기 스무디 시켰어요. 괜찮죠?"
"딸기.........스..다시 한번 말해주지 않겠느냐."
"아뇨, 그냥 먹어요. 그리고, 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그리하든지"
"도대체 이 뻘건 옷은 왜 입고 있는건데요?"
"그건 짐이......"
그리고, 잔을 이리저리 돌리던 그 사내가 스무디를 쪽, 하고 빨아들이자 마자 반전되는 시야,
쿵, 하고 바닥으로 쏠리는 몸.
+
"마마, 정신이 드시옵니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박상궁! 주상전하께 일러라! 세자빈마마께서 눈을 뜨셨다 일러라!"
"예-"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
여기도 나무, 저기도..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그 사내의 얼굴.
"끄아아아아ㅏㅇ아!!"
+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걱정스런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이상한 한복입은 할머니들,
그리고 놓을 수 없는 그 사내의 손.
그리고 여전히 묘한 미소를 띈 채 잠들어 있는 그 사내.
"아니 이 사람..."
"보름 전 세자저하와 세자빈 저하께서 손을 꼭 붙잡으신 채로 별궁 뒷편 연못 앞에서 발견되셨사옵니다.
어찌된 연유인지는 모르나, 두 분의 손을 떼어놓을 수 없어, 부득이 하게 된 일이옵니다.
송구하옵니다 마마."
"아니........그게....."
내가 세자빈이란다.
그리고 이 사내는, 세자..?
그리고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바깥.
그리고 내게 속삭이는 그 할머니.
"주상전하께서 드신답니다."
갑자기 열리는 문, 그리고 후다닥 뛰어들어오는 한 할아버지.
"빈궁.! 빈궁! 괜찮으신겝니까?"
"........예?"
"어찌 아직도 손을 꼭 붙잡고 계신 겁니까. 그때 왜 연못으로 향하신 겁니까!"
"아니........저기..."
그 할아버지의 말에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직까지도 꼭 붙잡고 있는 그 사내의 손,
뿌리치려 해봤지만 뿌리칠 수가 없다.
마치 풀로 단단히 고정시켜놓은 것 처럼.
도대체 난 여기에 왜 오게 된거지?
그리고, 저 사내를 보면 자꾸 눈물이 차오르는건 왜 그런걸까.
2.
[미인도]
부승관
"아- 하지 마라"
"왜, 부끄러운거야?"
"아-니. 그냥 좀 그래"
"치, 그래도 나 봐야지 예쁜 그림 그릴 수 있어"
".........알겠어"
종이 위를 수놓는 소년의 손길이 바쁘다.
그의 붓이 지나갈때면,
종이 위엔 소녀의 또렷한 눈과,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이 종이를 예쁘게 채운다.
"자, 됐다. 어때? 예쁘지?"
"..............."
"...........왜 아무 말 도 안해"
"너무, 너무 예뻐서. 고마워 승관아"
"뭐, 이런걸 가지고, 이 그림 이름을 뭐라 지을까? 미인도?"
"미인도?"
"그래, 미인도"
"아니야, 내가 미인은 무슨"
"내 눈에만 예쁘면 됬어. 넌 나한테 충분히 과분한 사람인걸"
"...................."
붉어지는 소녀의 볼,
소녀의 입가로 향하는 소년의 고운 손.
충혈된 두 사람의 눈, 거칠어진 숨결.
".................미인도라 부르자. 이걸 화원에 내면, 아주 좋아하시겠지?"
".............그럼"
"직인을 찍기 전에 네게 하고 싶은 말을 이 곳에 남길거야"
".....뭐라고 쓸건데?"
"그건 비밀."
"안 알려주면 내가 모르잖아..!"
"다음생에 보게 될지도 모르잖아"
"치,"
2016년, 현재
"야..."
".................."
"근데 이거 너랑 좀 닮은것 같아"
"...................?"
"그렇지 않아?"
".........누가 그렸대?"
"...........이 그림은...........어...
신원 미상의 어린 화가가 사랑하는 임을 그려
화원에 양도한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시간은 지나지만 그때의 순간은 변하지 않는다.
"그림 한켠의 귀퉁이에는,"
떨려오는 소년의 목소리
"미인도, 라는 제목과 함께,
널 이리도 사랑하는데, 너와 헤어지는 것은 참 괴롭겠구나
다시 만나는 날엔, 꼭......."
그리고 흐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