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고객 권순영 X 웨딩플래너 너
“늙어서 잘생긴 남자 밝히는 거 아니야.”
“그 말이 갑자기 왜 나와?”
“아, 왜. 아까 걔 있잖아. 대표인가, 뭔가 하는 애.”
“네가 전 대표님이랑 친구냐? 걔 거리게?”
“걔랑 친구하기 싫은데?”
“누가 너보고 전 대표님이랑 친구 하랬어? 말 놓지 말라니까.”
“진짜 사귀냐?”
권순영은 조수석에 앉아 쉴 틈 없이 떠들어 댔다. 꺼내는 얘기의 요지는 모두 전 대표 얘기였고, 아이마냥 투덜대는 권순영에 딱히 전 대표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네가 무슨 상관이야?”
“뭐를.”
“내가 남자를 만나든, 연애를 하든. 네가 알 권리는 없어.”
"알 권리가 왜 없는데?"
"결혼하잖아. 너."
틈을 보이지 않고, 계속 쏘아붙이던 권순영은 제 마지막 말과 동시에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조용히 곁눈질로 조수석을 쳐다보았고, 아무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던 권순영의 표정은 몹시 굳어있었다. 내려. 15분을 달려 권순영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오피스텔은 외관만 얼핏 봐도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도착과 동시에 권순영에게 차키를 넘겨주었고, 제 집과 정반대에 위치한 권순영 오피스텔에 도저히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 들렀다 갈래?"
"미쳤냐,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12시."
"됐다, 너랑 무슨 말을 하ㄴ."
권순영은 아무렇지 않게 대뜸 들렀다 가라며 자신의 집을 가리켰다. 가지 않겠다는 행동을 보이자 무작정 제 손목을 끌어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야, 놔. 진짜 미쳤냐?"
"뭐, 그 정도까지야. 친구 사이에 집도 못 놀러 가나."
"나 버스 시간도 끊겨서 걸어가야 된다고."
"내가 데려다주면 되지."
"너 술 먹어서 내가 데려다준 거 아니야."
"아, 맞다."
영혼 없는 말투로 제 말에 대답을 하곤 그대로 도어락을 풀어 문을 열어 재꼈다. 대략 90평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복층형 집에 남자 혼자 산다는 게 좀 신기하기도 했다. 또 이름 날리는 기업 대표 아들이라는 걸 생각하니 이 정도면 적합한 거 같았다.
"가정부 있나 보네."
"어, 어떻게 알았냐."
"네가 이렇게까지 깔끔히 치울 애가 아니잖아."
"치울 수도 있지."
"그 버릇이 고쳐졌을 리가."
권순영은 인정한다는 듯이 작게 피식 웃어 보였다. 우리 집 거실만 한 소파에 앉아 거실을 둘러보았다. 와, 진짜 크네. 왜, 시집오고 싶어? 금세 편한 옷으로 입고 나온 권순영이 제 옆에 서슴지 않게 앉아 대뜸 질문을 던졌다.
"말 좀 가려서 해라. 곧 결혼하는 애가."
"결혼하는 사람이면 이런 장난도 못 치냐?"
"당연한 거 아니야?"
"왜?"
"반대로 생각해 봐."
"해봤어."
"아무 생각 안 들어?"
"응."
미친놈.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앉아있던 몸을 아무 생각 없이 편한 자세로 바꿔 누워 권순영을 쳐다보았다. 야, 너 치마. 권순영 잠시 인상을 확 구기더니 소파에 널브러진 쿠션을 내 다리 위로 올려놓았다.
"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새벽까지 다른 남자 집에 있으면 좋아?"
"아니, 진짜 싫어. 남자 죽일 거 같아."
"뭐야, 반대로 생각해봤다며."
"응, 해봤다고."
"네 신부가 새벽에 다른 남자 집에 있다니까?"
"어, 근데."
"싫다며. 아, 진짜 상종 못할 새끼."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해보라며."
"어, 그니까 네 신부를 생각해야지."
"영희 씨 말고, 다른 사람 생각했는데."
"아, 그럼 누구!"
말이 통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다리 위로 올려져 있던 쿠션을 권순영에게 던졌다.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던 권순영은 제가 던진 쿠션을 가볍게 받아 채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 진짜 김칠봉. 아까보다 더 훤히 드러나는 제 다리에 잔뜩 정색을 하더니 이내 방으로 들어가 큰 이불을 가지고 나오는 권순영이었다.
"그거 뭐 어쩌라고."
"다리 덮어."
"이 큰 거를? 담요는."
"담요 없어."
"그럼 다른 이불은."
"겨울 이불이랑 이거 하나 밖에 없는데?"
"네가 밤에 덮고 자는 이불인데, 고작 나 다리 가리라고 가져왔다고?"
"그럼, 계속 다 보이게 가만히 내버려 둘까? 뭐 나야 좋지."
이불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끝내 권순영이 제 다리 위로 살포시 덮어주었다. 침실에서 쓰는 이불이라 그런지 부피가 크고 땅에 질질 끌렸다. 이불에서는 은은하게 권순영 냄새가 풍겼다. 권순영의 편안한 냄새 때문인지 멀쩡했던 정신이 점점 몽롱해졌다.
"야, 김칠봉 자?"
"안 자."
"눈 다 감겼는데?"
"...."
"집... 안 가게?"
"...."
"하여간, 이불만 덮으면 아무 데서나 잠드는 버릇은 평생 못 고친다니까."
•••
크고 푹신한 곰돌이 인형 품에 안겨 있는 기분이 들었다. 코 끝 사이로 은은하게 풍겨 오는 섬유 유연제 냄새로 기분 좋게 눈을 떴다. 눈이 떠짐과 동시에 내가 안겨 있는 것이 곰돌이가 아닌 임을 확인하고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낯선 침대와 제 방이라고 하기엔 부담스러운 방 크기. 앞에 있는 사람은 권순영.
"야, 너 뭐야!"
"미인은 잠꾸러기라던데, 어딜 가나 예외는 있나 보네."
"네가 왜 여기 있어!"
"내 방이니까."
"나는 여기 왜 있는데!"
"내가 데리고 들어왔으니까."
"이 미친 변태새끼!"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나는 안고 있던 권순영과 제 손을 떼어내고 그대로 침대 밑으로 밀었다. 아...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권순영은 허리를 쥐어 잡고 아픈 듯 고통을 호소했다.
"아파...?"
"안 아프겠냐"
"그니까 왜 네가 나를 안고 있냐고."
"너도 안겼잖아."
"ㅁ, 미친새끼... 내가 언제!"
"와, 너 새벽에 기억 안 나?"
"뭐래..."
"만지고, 안기고, 비볐던 게 누구인데. 이제 와서 시치미 떼겠다?"
그대로 귀를 막아 권순영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애썼다. 김칠봉 미친년. 붉게 달아오른 열에 얼굴은 이미 주체할 수 없이 빨개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심히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순간 문득 보이눈 시계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10시.
"미쳤어? 10시잖아!"
"10시가 왜."
"너 출근 안 해?"
"내 출근 시간은 자유라."
"아, 망했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시간이 없는 탓에 세수만 간단히 하고 나와 소파에 내팽개쳐진 휴대폰을 들어 현관으로 향했다. 어디 가냐. 츄리닝 차림으오 잔뜩 뻗친 뒷머리를 긁적이며 분주히 움직이는 저를 보며 말을 거는 권순영이었다.
"늦었어."
"부대표가 무슨 힘도 없냐?"
"어, 나 힘없어. 간다."
"기다려. 태워다 줄게."
"아, 너 준비하는 거 언제 기다려. 그냥 갈게."
"차키만 가지고 나오면 돼. 엘리베이터나 잡고 있어."
엘리베이터가 2대씩 있으나 마나였다. 두 개다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발만 동동 굴렸다. 여기가 몇 층이었지. 아 맞다. 40층. 제일 꼭대기가 층이라는 걸 깨닫고 괴성의 몸부림을 부렸다.
"뭐 하냐."
"쓸데 없이 왜 꼭대기 층에 살아 가지고."
"1층에 살 수는 없잖아. 애매한 층은 더 싫고."
"너는 내가 출근할 거라 생각 안 했어?"
"오늘 주말인 줄 알았지."
"진짜 대책 없는 새끼... 인간아, 날짜는 보고 살아."
"오늘 날짜 모른다고 죽진 않잖아?"
권순영은 슬리퍼를 찍찍 끌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뒤로 잔뜩 뻗친 까치집에 아디다스 츄리닝 세트로 맞춰 입은 권순영은 평소와 다르게 앳된 모습을 띄웠다. 나는 의식 없이 뻗친 권순영 머리를 쓰담았다. 제 손길에 한 번 놀라더니 이내 능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높이에 맞게 다리를 구부리는 권순영이었다.
"왜 구부려."
"너 만지기 편하라고."
"이제 안 만질 건데?"
"계속 만져주지. 나 머리 만지는 거 좋아하는데."
"아, 그럼 더 안 만져야겠다."
치사하게 굴기는. 1층에 도착하고 권순영은 유유히 주차장으로 먼저 나섰다. 이곳에 지리를 알리가 없는 나는 그저 권순영 뒤를 졸졸 따라야 했다. 삐빅. 차키 소리와 함께 운전석 문이 열렸다. 곧이어 저도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몸을 실었다.
"아, 맞다. 전 대표..."
문득 오늘 아침에 데리러 온다는 전 대표에 말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아, 어떡해... 급하게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다. 다행히 부재중은 없었고, 민규의 문자만이 읽지 않은 메시지로 띄어져 있었다.
'여보세요.'
-민규야, 전 대표 출근했냐?
'아, 부대표님! 요즘 지각에 맛 들였죠?'
-또 까불어. 전 대표 출근했냐고.
'와... 진짜 둘이 뭐 있네. 있어. 매일 전 대표부터 찾고."
-아니, 출근했냐니까?
'했어요. 나무늘보 전 대표가 웬일인지 출근 시간보다 더 일찍 왔던데.'
-아... 알았어. 끊어.
'아니, 부대표님. 지금 오고 계ㅅ'
왜, 누구인데. 권순영은 저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있어. 민규라고. 점점 가까워지는 회사에 뭔지 모를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전 대표?"
"어? 전 대표 뭐."
"아까 아침에 네 폰으로 전화 왔던데."
"그래서?!"
"내가 받았지."
"야, 그걸 네가 왜 받아!"
"그 새끼는 아침부터 왜 전화했대? 나 걔 때문에 깼잖아."
"아니! 너 뭐라고 했어."
"너 자고 있다고 했지. 내 옆에서. 그래서 못 바꿔 준다고."
"...진짜 또라이 새끼."
"걔랑 만나지 말라니까."
권순영 말과 동시에 회사 로비 앞으로 차가 멈춰졌다. 몇 번 심호습을 가다듬고 권순영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내리는려는 순간 로비 앞에서 손님 배웅을 하고 있는 전 대표가 보였다. 인기척 없이 조심히 문을 열고 재빠르게 뛰어 들어가려 할 때, 클랙슨을 울리는 권순영에 그대로 전 대표 시선은 제게로 꽂혀졌다.
"부대표?"
"아... 전 대표님, 좋은 아침이네요."
"음, 좋은 점심이 아닐까요?"
"그럼, 전 대표님, 좋은 점심입니다."
"오늘 많이 늦었네요. 집에서 나오는 거 맞죠?"
"그럼요. 집에서 나오는 거 맞아요."
"아침에 어떤 남자가 받길래..."
"아, 제 동생이에요. 왜요? 제 동생이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요?"
"아, 이상한 말은 아니고..."
"내가 언제부터 승관이었냐?"
일이 잘 넘어간다 싶었지만 그새 제 옆으로 쪼르륵 다가와 초를 치는 권순영이었다. 언제 쓴 건지 푹 눌러쓴 모자 틈 사이로 나를 무섭게 노려 보는 권순영에 몸이 움찔했다. 전 대표는 모자 때문에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멀뚱히 권순영을 쳐다보았다. 곧이어 권순영은 낮은 음성과 함께 거칠게 모자를 벗고 전 대표를 노려보았다.
"어, 그러게요. 부대표 동생은 아닌 거 같은데."
"아, 저 그게..."
"저희가 동생보다 더 진득한 사이라."
"네?"
"우리 칠봉이가 아침잠이 많아서요."
"ㅁ, 미친. 권순영, 뭐라는 거야."
"아침에는 제가 책임지고 데려다주니까 앞으로는 전화 안 하셨으면 하는데요."
"오늘은 제가 데리러 가겠다고 먼저 약속을 해서요."
"대표가 고객한테 너무 예의 없는 거 같네."
더보기 |
여러분... 저번 주에 아무 말없이 잠적 탄 작가르를 용서하세요.... 분명 저번 주는 일요일 10시 10분에! 꼭! 올리려던 생각이었는데... 왜 그 계획이 무산됐을까요? 하하하;;;;;;; 저번 주에 안 왔다고 벌써 저 잊으시면 안 돼요 ㅠㅅㅠ 사실 오늘 12시 10분에 올리려 했는데 트랙 리스트 뜨는 바람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너무 여유 부리다가 오늘 급하게 쓰고 올린 건데... 이번 화는 노잼 예상. 아 맞다! 승관이는 여주 남동생이에요 +_+ 그리고 한가지 더 죄송한 게... 암호닉을 못 정리해왔어요 ㅠㅠ 우리 사랑하는 독자님들... 절대 귀찮은 게 아닙니다! 단지 정리하는 걸 까먹었을 뿐... 다음 화는 꼭! 호시 십 분에! 더 재밌어진 내용과 암호닉을 들고 찾아오겠씁니다! 회원, 비회원 모든 독자님들 사랑해요... + 암호닉은 늘 받아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