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우리의 겨울
21
스스로 술을 잘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될 수 있으면 취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정말로. 하지만 어제는 느닷없는 나의 과거 폭로전에 술에라도 기대야 할 것 같아서, 한 잔 두 잔 기울였는데 - 살아 생전 술을 가장 많이 마신 날이 됐다. 덕분에 정신이 깼지만,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문득문득 머릿속을 스쳐가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 그 장면들이 제발 꿈이길 바라며, 눈을 떴다. 아침이 두렵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정국이었다. 나는 아이가 깨지 않게끔 조심스레 침대를 벗어났다. 그리고는 곧장 그의 책상 옆에 있는 전신거울로 향했다.
'정꾸우 셔츠 여기 떠러져써... 내가 입을래애...'
...아닐거야. 나는 내 살갗을 덮은 낯선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거울을 바라봤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아니나 다를까, 한참이나 큰 그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엉망으로 잠긴 단추 탓에 한 쪽 어깨는 완전히 드러난 상태였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참을 쥐어 뜯었다. 미쳤나봐. 김탄소. 나는 차마 뱉지 못한 비명들을 속으로 삼켜낸 뒤, 욕실로 향했다. 일단 아이가 깨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했다. 나는 우선 몰골이 아닌 얼굴을 세수하고는 차분히 단추를 채웠다. 제대로 하나씩. 그의 칫솔과 나란히 있는 내 칫솔을 빼들어 양치를 시작했다. 입 속에서 불어나는 거품처럼 걱정은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양치가 끝나고 현관문 앞에 놓여 있는 내 가방에서 립스틱을 빼들었다. 화장은 좀 그렇고... 입술이라도 어떻게 좀 하면 사람 같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제법 붉게 발린 입술은 민낯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완벽한 불협화음이었다. 나는 이미 될 대로 진행 된 상황에 잠시동안 고민을 하다, 그냥 필름이 끊긴 컨셉으로 밀고 나가야겠다 싶어 다시 그의 옆에 누웠다.
아이는 여전히 잠 들어 있었다. 나는 간 밤 나 때문에 고생했을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잠에 든 정국이의 얼굴은 여전히 소년다움이 가득했다. 남자치고 얼굴의 선이 예쁜 정국이었다. 나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그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러자 립스틱이 내 입술 모양을 그대로 담아 그의 볼에 그려냈다. 아이는 간지러운 느낌에 살짝 제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완전 귀여워. 나는 아이의 목부터 얼굴까지 지난 밤 내가 부린 추태는 잊고, 마구 입을 맞춰댔다. 곳곳에 피어나는 입술모양이 잠 들어 있는 정국이와 묘하게 어울렸다. 지금 아이는 지나치게... 색정적이었다. 나는 순간 화르륵 타오르는 얼굴에 정국이가 잠에서 깨기 전에 내 흔적들을 닦아주어야겠다 -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는데. 아이는 내 두 손을 제 한 손으로 잡아채며, 낮은 목소리로 '반칙 아닌가' 하고 말을 뱉었다. ...안 잤어?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버버거리고만 있는데, 정국이는 태연하게 제 몸을 일으켜 침대를 벗어났다. 어디가?
"어디가?"
"술 냄새 나서 도망."
"...기억 안 나."
"얼씨구?"
아이는 내게 한껏 장난기 어린 말투로, 술 냄새가 나서 도망간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제법 당당하게 기억이 안 난다고 대꾸했는데, 아이는 내 대답을 듣고는 걸음을 멈춰 나를 어이 없이 바라봤다. 얼씨구? 하며.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달싹였다. 그러자 아이는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내고는 - 씻고 나올게. 하며 욕실로 향한다. ...씻어? 전혀 내 예상에 없던 시나리오였다. 아이는 내가 안 된다고 말하기도 전에 욕실로 들어갔다. ...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입에 칫솔을 문 정국이가 욕실 문을 열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제 볼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이거 뭐야. 나는 이번에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달싹였다. 아이는 제 손가락으로 칫솔을 가리키며 다시 나를 가리켰다. 아마, 양치 끝나고 보자는 소리겠지. 나는 그의 제스쳐를 이해하지 못 한 척,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곧 이어 정국이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가 끊김과 동시에는 침대가 작게 일렁였고. 나는 이불을 살짝 들췄다. 그러자 바로 내 눈 앞에서 나를 지긋히 바라보고 있는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제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간지럽게 건들였다. 아주 천천히, 야하게. 나는 살짝살짝 내 입술을 훑는 그에게 뭐해애. 하며,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아이는 내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을 생각인지, 내 등을 제 손으로 단단하게 감싸온다. 이거 입술 자국 다 누가 이랬어. 하며. 나는 여전히 모르쇠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아이는 내 입술을 가볍게 물어왔다. 아이가 장난치듯, 얄궃게. 그리고 잠시 멀어지며 '난 알겠는데.' 하고, 내 귓가에 제 목소리를 속삭인다. 몇 년 째 아이를 만났지만,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아니,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아이였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그의 품으로 파고 들려는데, 정국이는 다시금 내 아랫 입술을 물었다. 눈을 감지 않은 채로, 내 시선에 제 시선을 올곧게 맞추며. 나는 참을 수 없이 간질거리는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와 속눈썹이 서로 마주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거리였다. 그러자 아이는 내게 한 번 더 멀어지며, 귓가에 속삭인다. '눈 뜨지. 어제 벌인데.' 나는 어제 벌이라는 소리에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떴는데 - 아이는 좀 전의 짙은 입맞춤과 어울리지 않게, 말갛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나는 어제 혼자 달아올랐다가, 식지도 못하고. 그 마음 그대로 밤을 보냈는데.
그 달아오른 마음 좀,
지금은 너가 느껴봐.
아이는 제 말을 끝으로 내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는 제대로 채워져 있는 단추를 보면서, '왜 채웠어. 다 채워도 야한데.' 하고는 첫 번째 단추를 풀어낸다. 순식간에 들어난 목덜미와 쇄골이었다. 나는 온 몸에 피어오르는 야릇한 감정에 어디서 난 용기인지, 내 손을 두 번째 단추로 가져갔다. 하지만 내가 단추를 채 풀러내기도 전에, 아이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빠가 해줄게.
*
그 날은 하루종일 정국이에게 시달렸다. ...여러모로. 정국이가 끓여준 콩나물 국을 먹을 때에도, 아이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질문을 퍼부었다. 전 남자친구들과의 결별 이유. 석진 오빠와의 명확한 관계 - 뭐 그런 것들을. 나는 그 날 몇 번이고 그와 앞으로는 취할 때까지 술을 먹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질문과 샐쭉한 눈초리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이와 특별한 것 없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차올랐다. 둘 다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따뜻했다. 정국이는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내게 팔배게를 해주던 팔을 빼냈다. 나 알람 바꿨어. 하며.
원래 잠이 많은 편이라 어떤 알람에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그였다. 그에게 알람을 바꾸면 뭐해, 못 일어나는데 - 하고 말을 건네니. 정국이는 제법 단호하게 이번에는 다르다며 핸드폰을 찾아 볼륨버튼을 올렸다. 뭐길래.
[정구기 오빠아. 구기 오빠야? 꾸기 오빠야? 오빠아아아. 오! 오오오오빠아를 사라해. 아! 아아아아아 마니마니해애. 흐흥]
아이는 나를 향해 애써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어때?
핸드폰 하나 부시고, 새로 사줄까. 그냥.
*
정국이와의 시간은 그렇게 쌓여갔다. 차곡차곡. 아이는 다음 학기에 학교로 복학을 했고, 나 역시 내 작품 관련 인터뷰와 시상식들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때문에 전처럼 서로의 얼굴을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변함없이 나를 사랑했다. 혹시라도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묻지 않아도 제가 먼저 일러주었고, 술자리에 가게 될 때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제 위치를 알렸다. 집에 들어가서는 인증샷까지 보내고. 또 가끔 전화로 무의식 중에 밥을 먹지 않았다는 말을 흘리면, 몇 시가 됐던지 간에 현관문 문고리에 도시락을 걸어두고는 짧은 문자를 보냈다. 밥 두고 왔으니 먹으라고. 나는 그때마다 그에게 집에 들어오라고 하지만, 아이는 글을 쓸 때의 나를 배려해 늘상 괜찮다고 답해왔다. 집필 중에는 누구보다 예민하고 날카로웠기에 그런 나를 위해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얼굴을 마주 보는 시간이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사랑했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몇 번의 계절이 더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정국이는 대학교 졸업을 앞뒀고, 나 역시 지난 시간 동안 집필한 새 신작의 출판을 앞두는 때가 왔다.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로였다. 시작을 알리는 겨울.
모든 게 얼어버리고, 깨져버려도 당연해지는.
그런 완연한 겨울이었다.
*
나는 어느덧 마지막 이십 대를 보내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이번 연말은 그 어느때보다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었다. 화려하다는 게 뭐 시끌벅적하게 놀고 싶다 - 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나와 같은 친구들을 만나 마음도 정리하고 지나간 시간도 추억하며. 새로 다가올 숫자를 맞이하고 싶었달까.
출판의 마지막 단계라 갖은 일로 예민해질 때로 예민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을 나 역시 오랜시간 기다려왔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간 자주 봐 왔던 친구들과 또 기억 저 편에 자리잡고 있던 친구들까지 만나는 자리였다. 마냥 소녀 같았던 우리들이 이제 삼십 대라니. 우리는 쉴 새 없이 떠들다가도 순식간에 한숨을 내쉬었고, 또 잠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 밝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청첩장을 꺼냈다. 봄의 신부가 된다는 소식과 함께. 사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미 결혼을 했거나, 날이 잡힌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닥 놀라운 소식도 아니였다. -내 주변 친구들이 유독 결혼이 일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들 '너가 결혼이라니!' 하며, 여고생처럼 호들갑을 떨기 바빴다. 그렇게 한참을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을까. 어느새 대화의 화제는 자연스레 내게 넘어왔다.
사실 그 동안 내게 언제까지 연애만 할 거냐며 다그치던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정국이의 나이도 생각해야겠지 않겠냐며, 말을 돌렸다. 친구들은 나이가 별 대수냐며 그러다 헤어지면 답도 없다는 - 나름의 조언들을 남기고는 했다. 하지만 여자 마음이라는게, 그래도 결혼은, 그니까 청혼은 남자가 먼저 해주었으면 하고 또 화려한 프로포즈는 아니더라도 진심이 담긴 프로포즈는 받고 싶고 - 그랬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사실, 몇몇 친구들은 나와 아이의 연애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둘 다 기념일은 서로의 생일만 챙기는 편이었다. 뭐 1주년, 2주년 그런 것도 하다 말았다. 딱히 기념일을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한 날들을 챙기지 말자고 한 것도 나였고. 그냥 만나면 그 때 그 날, 하고 싶은 걸 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쉬고 - 그렇게. 커플링도 안무를 하는 그와 글을 쓰는 나한테는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아서, 안 하기로 합의 봤다. 또 일에 있어서는 서로를 완전히 존중해주는 우리였다. 아이의 직업상 여자 안무가와 접촉이 많을 때가 있는데, 아이는 그때마다 내게 먼저 말을 해주었다. 나 역시 그가 나를 이해하는 것처럼, 그를 이해하려고 했고. 하지만 친구들은 나의 이런 연애가 '이상적'이면서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러려니 - 하고 넘겼을 이야기였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달랐다.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것도 꼭 - 해야겠다. 다짐한 적이 없었는데, 왜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조바심을 내고 있는 걸까. 혹시 나만 이런 건 아닐까 - 정국이는 왜. 내게 한 번도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사람이고, 사랑이었는데. 정말로 그랬는데. 그 '사람'과 '사랑'에 자꾸만, 물음이 던져졌다. 그 물음은 작은 돌맹이가 되어서 내 마음에 던져졌고, 지금껏 잔잔했던 내 마음은 - 그 작은 파장의 울림에 크게. 아주 크게 요동쳤다.
*
친구들을 만난 다음 날, 나는 정국이를 만나기 위해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지난 밤 아니, 꽤 오랫동안 자꾸만 나를 괴롭혀 오는 생각들을 떨쳐버리려고 애쓰며. 오랜만에 보는 아이였기에 그 앞에서 걱정 가득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괜한 생각에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나였다.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과 아이의 음료를 주문하고 카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창문 너머로 겨울이 보였다.
음료를 받기 위해 진동벨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다들 추운 날씨 탓에 카페로 몰려들어, 실내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직원에게 진동벨을 건넸지만, 직원은 아직 내 차례가 아니라며 진동벨의 오작동을 사과했다. 굳이 다시 자리까지 돌아가기에도 귀찮아 그냥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옆으로 자리를 비켜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자꾸만 내 귓가에 제 숨결을 불어넣었다.
과거 사건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 나였기에, 누군가 귓가에 다가오는 것에 있어서는 극도의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다. 파리하게 떨리는 손을 스스로 제어시키며 살짝 고개를 둘려 바라보니,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방금 카페 안으로 들어온 건지, 제 손을 마주 잡은 채로 입김을 불고 있었다. 나보다 키가 큰 여자였기에 그 여자의 입김은 곧이 곧대로 내 귓가에 닿았다. 의도한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괜찮아지지는 않았다. 정중하게 말을 건네볼까 했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이라,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내 옆의 사람들이 나가고 나서야, 여자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저기..."
"저요?"
여자는 자신을 향한 말이냐며, 내게 '저요?' 하고 물었다. 나는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 자꾸 입김이 귀에 닿아서요. 그러자 여자는 사람들의 말소리 때문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네? 하고 되물었다. 나는 조금 전보다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자꾸 입김이 귀에 닿아서요! 여자는 그제야 내 말을 알아차렸는지, 아 - 하고는 제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왜요? 하며. 나는 무어라 설명해야 여자가 나를 이해해줄까 싶어, 얕은 생각에 빠졌는데 - 그녀는 내 대답을 듣도 전에, 무심하게 제 말을 던졌다.
별 게 다.
나는 여자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만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제 눈높이보다 아래 있는 나를 쳐다보다가, '입김 안 불게요. 됐죠?' 하며 팔짱을 낀다. 여자의 태도는 분명 지나쳤다. 나는 내 음료를 건네는 종업원을 등진 채로, 여자를 마주했다.
"저기요."
"또 왜요."
"말씀을 왜 그렇게 하세요."
"아니. 손 좀 시려워서 입김 좀 불었다고 욕 먹긴 또 처음이라."
"...그게 아니고."
여자의 말에 말문이 막힌 내가, 그녀에게 과거의 일이라도 설명해야 하나 싶어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 종업원이 내 어깨를 건들이며 '손님 음료 받아가세요.' 하고 말을 건넨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매듭지고 싶어서, 정국이가 오기 전에 그냥 자리로 가있어야지 생각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아!"
누군가 떨어트린 장갑을 밟고 삐끗한 내가 휘청였다. 동시에 음료는 내 앞에 서 있던 그 여자에게 쏟아졌다. 여자는 짧은 비명과 함께 제 옷을 바라봤고, 나는 자꾸만 엉키는 상황에 시선이 흔들렸다. 주변 사람들이 나와 여자의 주변에서 벗어났다. 여자는 내게 간간히 비속어를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는데, 당황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의 습관이 여기서도 툭 - 하고 튀어나왔다. 나는 고개만 숙인 채로 바닥에 쏟아진 음료만 바라봤다.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여자는 대답없는 내게 더욱 화가 난 건지,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순간 누군가 내 팔목을 강한 힘으로 낚아챘다. 저절로 올라간 고개였다. 정국이었다. 아이는 나를 제 편으로 당기고는 입을 열었다.
사과해.
여자가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아이의 시선이 내게 향해 있었다. 정국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게, '누나가 잘 못 한거잖아.' 하고 말을 꺼내며 다시 한 번 사과하라는 말을 반복한다. 아이의 냉정한 말투에 금방이라도 주저 앉아 울 것만 같았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여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는, 황급히 바깥으로 나왔다. 따라오는 발자국은 없었다.
창문 너머의 겨울에,
내가 서 있었다.
혼자.
*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 못 했기에, 아이가 내게 그리도 차가웠을까. 나는 그냥, 그 때의 그 일이 여전히 힘들어서 - 그래서. 말을 꺼낸 것 뿐이었는데. 정말 그것 뿐이었는데. 두꺼운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잡은 손목이 아려왔다. 정국이는 대체 왜.
이토록 화가 났을까.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전개가 너무 빠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부족한 부분들은 텍파로 채워나갈게요.
본 편보다 텍파가 더 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좀...! 들지만, 그래도! 으쌰으쌰 하겠습니다.
저 초록글 두 번 됐어요! 어제 단편과 뮤보 19화.
음. 아직은 많이 부끄럽고, 그래요.
사실 그런 위치를 바라고 쓰는 글이 아닌만큼, 스스로 들뜨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
하지만 그래도 뮤보를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는 고맙다는 마음 전하고 싶어요.
모든 마음 돌릴게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암호닉 + 혹시라도 신청했는데 추가 안 되신 분들 꼭! 말씀 해주세요! ㅜㅅㅜ 꼼꼼히 본다구 보는데, 빼먹는 분들이 계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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