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오백] 도작가의 손페티쉬 : 수(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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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무표정으로 타자를 두들기던 경수가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다정한척 꾸며냈다.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안에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비추고 있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우연히 이 장면을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나 두리번거릴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응, 백현아.”
아무튼 경수는 이어서 부드럽게 백현이를 불렀다. 백현을 호명하려는 목적이 아닐 때에도 혼자서 불러보곤 해서 자연스런 어조였다. 경수는 백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그 이름을 불렀다. 백현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양심이 콕콕 찔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외침이었다.
“오늘도? 많이 아픈 거야?”
머뭇거리며 오늘도 아파서 못 오겠다고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요 꼬맹이를 어쩔까 싶은 거다. 괴물에게 좇기 듯 헐레벌떡 집을 나서는 모습에 급한 일이 있나 했던 게 첫 날 일이고, 누나 병간호 때문에 못 오겠다고 한 말에 부모님이 해외에 계시니 어쩔 수 없지 한 게 이 틀이다. 이전부터 잡혀있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가야겠다고 할 때엔 선약이 먼저지, 해서 사흘을 넘기고 나흘째인 오늘은 언제 말하나 했던 아프다는 말이 드디어 나왔다. 그럼 내일은 누가 돌아가실라나? 경수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마우스 휠을 마구잡이로 굴려 되었다.
“그래. 푹 쉬고, 내일 보자.”
전화가 끊겼다. 경수는 통화 시간이 뜨는 휴대폰 화면을 응시했다. 삼일이 지났으니 오늘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고민하느라 살짝 오른쪽으로 기운 고개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제 자리에서 두 번 까딱였다. 함께 까딱이던 손이 쓰던 글을 마무리하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그래, 고민과 반성은 삼일 내내 충분히 했다.
변백현. 백현아.
경수가 백현이가 두고 간 검정 목도리를 칭칭 돌려 매는 사이에도 그는 백현을 불렀다. 그러자 떠오르는 건 백현의 손이었다. 정말 그 손은 정말, 정말! 글 쓰는 일로 돈을 벌고 밥을 먹는 주제에 경수는 그 손에 대해 표현하기가 벅찼다. 내 마음에 그려온 손에 꼭 맞는 손. 특별하게 왼손 엄지에는 초콜릿색 점도 콕 박혀있다. 그렇지만 손만이 제 취향이고 손만 떠오른다면 제가 직접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경수가 본인을 피하는 백현이를 직접 만나러 가는 이유는, 도작가님-하고 저를 부르는 아이의 입술이 생각나고 빨갛게 언 두 귀가, 코를 훌쩍이던 둥근 콧등이 생각나서. 길게 말해 뭐하나, 한마디로 계속 생각나니 직접 보러가겠다는 게지. 행동파 도경수가 오랜만에 목표물을 향해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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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평소처럼 문을 열며 물은 백현이 굳은 채로 뒷걸음질 쳤다. 갑작스런 손님도 그 걸음에 맞춰 백현의 집 안으로 전진했다. 신발을 벗고 식탁 위에 짐을 내려놓은 경수가 천천히 저를 뒤따라 들어온 백현을 보았다.
“도작가님, 어떻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 안 할 거야?”
“안녕하세요. 그런데,”
“안녕.”
경수가 목도리를 풀어 백현에게 건 냈다. 자연스레 품 안에 목도리를 갈무리한 백현이가 어버버 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수는 가만히 백현의 눈을 응시했다. 잠깐 마주쳤던 시선이 왼쪽 허공 한번, 그 아래로 한번 향하더니 고개를 푹 숙여 사라져버렸다.
“아프다더니, 괜찮아?”
“네, 네. 자고 일어났더니 괜찮아졌어요.”
백현의 목소리 끝이 사그라졌다. 경수가 흐음 소리를 내며 백현의 모습을 면밀히 살폈다. 매일매일 보다가 고작 며칠 못 보았다고 저 모습이 굉장히 보고 싶었다. 숙여진 고개 뒤로 보이는 목을 보던 경수가 꼼지락 거리는 두 발을 볼 때까지 백현은 식은땀만 흘리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백현아. 땀난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그럼요. 당연히 괜찮죠!”
귀엽잖아. 어설프게 웃는 모습을 보며 경수가 한쪽 입만 올려 웃었다. 제일로 보고 싶던 모습이 눈에 보이니 좋아 죽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경수가 외투를 벗어 식탁 의자에 잘 걸쳐놓았다.
“뭐, 뭐하시려구요.”
“우리 모델 병간호.”
“괜찮다니까요!”
와. 방금 뒤집어진 목소리였어. 백현이 부끄러워하라고 부러 놀란 척 눈을 크게 떴던 경수가 그의 품 안에 있던 목도리를 낚아채 식탁 위에 대충 얹어놓았다. 그리고 백현이를 빤히 바라보자 화들짝 놀라 두 손을 뒤로 숨겼다. 그 모습을 더욱 유심히 지켜보던 경수가 툭 내뱉었다.
“방에 가서 누워있어.”
저는 괜찮으니 이만 돌아가시라고 칭얼거리는 백현이를 쓰읍. 하는 소리로 제압한 경수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밥을 해주고 싶지만 아프다니까 죽을 해줘야겠다. 그렇다. 도경수의 그건 보고 싶은 변백현을 보는 것이었고, 이건 삐진 것이었다. 그건 이뤘으니 이제 이걸 해야지. 어린 애 같은 심보로 경수가 쌀을 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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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가 시키는 대로 방에 들어온 백현이 방을 어슬렁거리다 책상 의자에 대충 쌓여진 옷가지들을 들어 옷장 안에 쑤셔 넣었다. 사실 백현은 갑작스런 경수의 방문에 아직도 패닉이여서 사고 회로가 평소보다 한 발 느린 상태였다. 그래서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손가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절로 뜨거워지는 약지가 꾹꾹 눌리는 모습을.
사실 백현이 아픈 것은 사실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돌아와서도 계속 뜨겁게 달아오르는 약지를 꾹꾹 누르고 깨물고 꽉 감싸 매는 통에 약지가 아팠다. 아, 그리고 입술도 아팠다. 그 때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입술을 깨물었더니 후에는 입술을 깨물어서 그 때 모습이 떠오르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머리가 아픈 것 같다.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는 경수가 턱하니 제 집 안에 있으니 생각하지 않아도 절로 다른 방향으로 툭 튀어나와 머리가 아픈 것이다. 어디선가 경수 특유의 향수 냄새가 나는 듯도 해서 코에서 경수가 튀어나오고, 어서 자버리자 눈을 감으면 경수가 움직이는 소리로 인해 귀에서 경수가 튀어나오고. 백현의 온 몸이 경수투성이로 뒤덮일 즈음에 방문이 열리고 경수가 들어왔다.
“백현아, 죽 먹고 자. 약은 있어?”
“아니요. 약 먹을 정도는 아니여서.”
계속해서 아프다고 세뇌한 덕분일까, 백현이는 아무렇지 않게 경수 앞에서 아픈 척을 해보였다. 그 모습에 슬핏 웃은 경수가 짐짓 걱정된다는 듯 표정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백현의 앞머리 사이를 헤집고 그 이마의 온도를 가늠했다. 뜨거워. 방금까지 찬 물로 요리하던 경수의 손은 차가워서 뭐든 뜨겁게 느낄 상태였기에 가능했다. 물론 경수도 그를 알지만 모르는 척 열 나네-하고 중얼거렸다.
“힘들잖아. 먹여줄게.”
“아니요, 저 혼자 먹을 수 있으니까..”
수저를 들고 실랑이를 부리던 백현이 손이 경수의 손가 닿자 피한 것은 백현이였다. 흡사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크게 뜬 눈이 침대 위를 방황했다. 두 손은 이미 재빠르게 이불 속에 숨긴 상태였다. 경수의 눈이 또 다시 가늘게 뜨여 그 모습을 살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려는 백현의 모습에 경수가 죽을 한 수푼 떠 후-하고 불었다.
“아- 해.”
고민과 반성은 많이 했지만 지금은 삐진 상태니까 멋대로 할 거야. 저보다 어린애를 데리고 심술을 부리는 경수의 속내였다. 물론 평소 백현이 보았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에 백현은 다른 점을 알 수 없었다. 아- 백현이 입을 벌렸고 그 사이로 경수가 잡은 수저가 들어갔다.
-
“가시게요?”
“응. 가봐야지. 누워있어.”
일어서려는 백현이의 가슴팍을 토닥여준 경수가 코트의 단추를 끼며 대답했다. 백현은 얌전히 누워서 방과 부엌을 오가는 경수를 살폈다. 휴대폰과 지갑을 챙긴 경수가 마지막으로 든 것은 검은 목도리였다. 백현이는 괜히 경수를 안 본 척 방 천장을 응시했다. 이어서 시야가 목도리로 가득 찼다. 경수가 백현의 얼굴 위에 목도리를 올려놓은 탓이었다. 경수의 냄새가 훅하고 백현을 덮쳐왔다.
“백현아, 나 갈게.”
“네...”
그리고 이어서 귓가에 ‘내일도 아플 거지? 아파야 돼, 꼭. 알았지?’ 하는 목소리가 주문을 걸 듯 속삭였다. 주문에 걸린 백현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수의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멀어지고, 발걸음 소리도 멀어지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백현도 잠에 들었다. 백현은 잠들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더 이상 약지가 뜨겁지 않다는 것을.
+한마디
엄청난 지각이네요. 몇 주만에 온건지 정말 죄송해요ㅠㅠ 그런데 시험기간보다 바쁜 이 말도 안되는 11월..
지금도 과제하다가 슬쩍 빠져나와서 새벽에 왔답니다. 요새 매일 새벽 5시에 자고 있어요ㅎㅎ... 잠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투표 결과로 1번이 나왔더라구요. 그럼 글을 써야하잖아요? 그런데 하도 안쓰니까 이어서 뭘 쓰려고 했는지 까먹었어요ㅎㅎㅎㅎ.....
그래서 이번 화는 더 재미가 없어요. 그치만 다음부터 나올 것들을 위한 포석이니 그렇구나하고 넘어가주세요....
정말 죄송해요 글을 못써서. 그래서 늘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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