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김태형] Just Two Of Us 05
"미안."
주어와 목적어가 사라진 문장이었지만 그에게 말했다. 애초에 무슨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보러 온 김태형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말은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
문득 내려다 본 그의 손이 빨갛다. 껴 입는 걸 좋아하지 않는 김태형은 비교적 얇은 옷차림으로 다녔는데. 얇은 옷차림 때문인지 추운걸 지독히도 싫어했는데, 오늘도 추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가 유난히도 더 커보였다. 힘들다고 투정부리며 너에게 틱틱 대는 나를 받아주는 너는 참 큰 사람이었나보다.
"참, 뭐가 미안한데"
"그냥....몰라"
"얼씨구"
"뭐든 미안해, 내가"
"알면 됐어. 그러니까 민윤기랑 엮이지 말란 말이야, 어?"
“그래"
나의 확답에 한결 마음을 놓았는지 알아들었으니 다행이라며 덧붙였다. 땅에 뭐라도 흘린걸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김태형이 표정을 흘깃 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긴, 내 마음도 내가 잘 모르는데 표정 한 번 봤다고 김태형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는 없겠지.
"들어왔다 갈래?"
이대로 보내기엔 다 하지 못한 말도 있고, 추운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몸 좀 녹이고 가라고 말했다. 김태형은 내 말에 대답 대신 나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난데 없는 긴장감에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여전히 김태형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 미안" 이내 정신을 차린 건지 미안하다며 사과해오는 그에게 추워서 정신이 나간거냐고 물었다.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그냥 처음이잖아. 킥킥 웃으며 말하는 김태형한테 물었다. 뭐가?
"너희 집 들어오라고 한거, 처음이니까 좀 당황스러워서"
"아-. 싫으면 말고."
괜히 툴툴대며 뒤돌아섰다. 사람 미안하게 만드는데 재주가 있다니까.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그에게 나는 편한 친구가 될수는 없었나보다. 집에 잠깐 들어오라는 내 말이 그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우리는 왜 알아왔던 그 긴 시간동안 서로 발톱만 내세우며 으르렁 대기만 했던걸까.
먼저 걸어가는 내 신발 옆으로, 나보다 반 뼘은 큰 것 같은 김태형의 신발이 옆에서 걸었다. 같이 걸어가며 김태형은 오늘 하루는 뭐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는 둥, 인공눈물을 제때 사서 챙기라는 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고 있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계속 가슴 어느께부터 목까지 간질거리는 생경한 이 느낌이 뭔지 한참을 생각해야했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이 감정의 정의를 내리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었으니까. 현관문 앞에 서서 문을 열기 위해 도어락을 풀기 전, 그대로 돌아서 김태형을 바라봤다. 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에게 왜 그러냐고 묻는 김태형을 향해 말했다.
"사실 나 잘못한거 하나 더 있어."
"어차피 내일 학교 가면 알게될 텐데, 내가 선수치는거야. 매도 먼저 맞는게 좋으니까."
이상했겠지. 도어락 풀다말고 잘못한게 더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내가 지금 할 말들에 김태형의 반응을 예상해봐도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뜸을 들이고 있을까.
"들어가서 천천히 이야기 해."
이내 김태형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를 다독였다. 도어락을 풀게끔 내 몸을 돌려주는 김태형을 제지하며 말했다.
지금, 지금 말해야 될 것 같아. 하는 내 말에 그럼 말해보라며 김태형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사실 오늘 동아리 회식에서, 김선배가 네 얘기를 했어."
"김석진 형?"
"응"
"그 형이 왜."
"나보고 너랑 뭐 있는거 아니냐고 물어봤거든. 근데 그 선배가 나한테 관심있어 하는거 내가 모르는 사실도 아니고, 그냥 지기 싫었어.
그래서 너랑 잘해보려고 하는 중이라고, 오늘도 너 삐져있으니까 풀어주러 가야한다고 하고 나왔어."
언제부터 눈을 감고 있었던 건지. 내 눈 위로 김태형의 큰 손이 얹어졌다. 질끈 감아 잔뜩 힘이 들어갔던 눈에 힘을 풀자 눈을 뜰 수 있었다. 가려진 눈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게 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김태형의 목소리만 흘러들어왔다.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 되묻는 나의 말에 그게 잘못한거냐며 다시 재차 물었다.
"화 안나?"
"화가 왜 나."
"그야 내 맘대로, 남들 앞에서 사실도 아닌걸 말했으니까,."
"무슨, 됐어 얼른 문이나 열어"
잠시나마 속앓이 했던 내가 안타까웠다. 그래도 그닥 기분 나빠 하지 않는것 같아 다행이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들어와. 라는 말과 함께 김태형을 돌아봤을 때. 김태형의 눈빛에 담긴 말들을 읽을 수 없었다.
아니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김태형의 눈이 너무 슬퍼보여서, 모르는 척 할 수 밖에 없었다.
"안 들어와?"
"오늘은 그냥 가야겠다."
"왜?"
"그냥. 좀 피곤하네. 다음에 초대해. 휴지들고 올게"
이 말을 끝으로 돌아서려는 김태형을 붙잡은 건 나였다. 갑자기 왜?, 갑자기 돌아간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이유를 물으며 붙잡았다.
잡힌 김태형이 돌아섰을 때,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렇구나, 네 마음이 이렇구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너랑 잘해보려고 했어. 이유도 원인도 계기도 없는데, 그냥 그랬어.
나름 같은 마음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일방적이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너한테 직접 들으니까 좀 슬프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줍잖은 위로도, 아니라는 변명도, 그렇다고 너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내 진심도. 너와 내가 더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느낀 지금 이 순간.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서러움보다 발전할 가능성에 더 기쁘다는 내 맘을 전하기엔 아직은 내가 가진 용기가 부족했으니까.
한 번 더 너에게 상처를 준 나는 생각보다 더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일 보자. 먼저 갈게"
오늘도 돌아서는 김태형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한 번만 뒤돌아봐주길 간절히 기대했다. 한번만 뒤돌아봐준다면, 정말 용기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야속하게도 멀어져가는 김태형은 더이상 내게 눈길을 주지 않고 아파트에서 내려갔고, 닫힌 현관문에 스르륵 기대 앉았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기도 한데, 얼마나 돌아왔는지.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겠는 이 꼬일대로 꼬여버린 실을 어떻게 해야할지 누구한테라도 묻고싶은 밤이었다.
+) 곧 이어 업로드 될 사담을 꼭 읽어주세요.
메일링과 그동안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