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애의 발칙함
제 11장, J
SPECIAL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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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하네.
이제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는 날씨는 푸르기 짝이 없다.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을 조금 늦추고 싶지만 조바심을 내어 빠르게 걸어본다.
대학 근처의 골목은 번잡하다. 요란하게 밖에서 음식집 전단지를 돌리는 젊은 아르바이트생들도 있고, 점심을 해결하려는 학생 무리도 보인다. 곳곳에 심어놓은 나무는 싱그러운 초록빛을 띄었으며 나뭇가지 위에는 참새들이 짹짹 거린다. 시끄럽고 부산스럽지만 싫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 카페 앞에 서 문을 활짝 열었다.
" 시원해라. "
문을 열자마자 끼치는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 때문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들떠서 어깨를 몇 번 으쓱이고 고개를 푸욱 수그리고 ‘나 지금 완전 암울’ 이라 티를 내고 있는 여자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고구마라떼 두 잔이 머그컵에 담겨 있었다. 윽 더워 죽겠는데 이 날씨에 라떼가 웬 말이냐며 타박하려다가 그래도 내 몫의 음료를 미리 시킨 게 어디냐며 군 말없이 분명 내 몫일 게 분명한 라떼를 한 입 마셨다. 달달하니 맛있지만 그래도 지금 라떼 먹는 건 오바였어. 티 나지 않게 인상을 찌푸렸다.
" 오늘은 또 무슨 일이실까? "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아주 재밌는 일이 생겼다.
뜨거운 머그잔을 손에서 놓고 말을 걸자 앞에 있는 여자는 답답하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다. 아마 울기라도 했는지 물기는 없지만 눈가가 벌겋게 충혈 된 김탄소가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물을 가치가 없을 만큼 뻔한 이유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웃음이 나올 뻔 했는데 억지로 목구멍으로 집어 삼켰다. 지금 내가 소리 내서 웃으면 답지 않게 독한 구석이 있는 김탄소가 적어도 이틀은 내게 먼저 연락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요즘 내 인생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사람이니 그런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지.
" 나 정말 미치겠어. "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로 대학에는 한 살 일찍 발을 디뎠다.
자고로 남자는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한다는 아버지의 지론대로 행한 효자 아들래미라고 할까나. 나를 개인적으로 아끼는 교수의 강력한 푸쉬로 대학 레드카펫을 사뿐히 걸었다지. 입학할 때는 마음도 싱숭생숭하더니 막상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일찍 가길 잘 한 것 같더라. 재미도 없고 낭만도 없던 지긋지긋한 남고에서 벗어나니 공기가 다 상쾌했으니 말이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학교생활은 여전히 단조로웠다. 하지만 그 단조롭던 내 생활패턴에 흥미를 끈 게 있다면 바로 김탄소와 김태형이었다.
" 김태형이 정말 날 사랑하긴 하는 걸까? "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지만 앞에 놓은 잔에는 김이 폴폴 나는 뜨거운 라떼라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김탄소는 퍽 고단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 네 기분을 같이 공유해 줄 수가 없는데. 그래도 사람이 예의라는 게 있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제 마음을 공감하기라도 한 줄 알았나본지 눈가가 금세 또 울먹울먹 해 진다. 아우 야. 울지 마. 누가 보면 내가 너 울린 줄 알거 아니야. 이 카페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학교 사람들인데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어쩌려고 그러냐. 너 김태형이랑 사귀는 거 지나가는 똥개도 다 안다고! 그렇지 않아도 너랑 나랑 요즘 불어 다니는 거 입방아 찧고 있는 기지배들이 얼마나 많은데. 물론. 그건 나쁘지 않지만. 사실 입 싼 애들 앞에서 부러 너한테 어깨동무도 하고 그런다?
" 짜증나 진짜.. "
나이에 비해 명석한 두뇌를 제외하면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나는.
일학년이지만 나이는 신입생들보다 어려서 동생님- 밥 사주세요. 하고 들러붙는 액면가는 젖살 통통한 고딩처럼 보이는 20살 누님들께 밥도 몇 번 사주면서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잘난 얼굴인 건 알았지만 대학에 가서는 어린놈이라 상대도 안 해주겠거니 했었는데 역시나 본판 불변의 법칙 탓인지 나는 인기가 꽤, 아니 엄청 많았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백옥 같던 내 피부가 대학 걱정에 조금 거칠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남자다움이 돋보이는 것 같아 거울을 보며 내심 만족했던 나다. 그렇게 나 잘난 맛에 4년의 대학생활을 즐기던 내 귀에 들려오게 된 두 명의 유명인사가 바로 김태형과 김탄소. 나랑 같은 학번이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대학입학이라는 늦은 결정에 오티 한 번 가지 않던 내가 너희의 얼굴을 봤을 리가 없었다. 과를 넘어서서 학교 전체에서 꽤 이름을 날리던 너희를 보며 처음에는 그저 요란한 CC구나. 캠퍼스 커플은 얼어 죽을. 씨발씨발 했었지.
얼마나 지랄스럽게 사귀기에 학교 전체에서 입방아를 찧어댈 정돌까 싶었는데, 너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참 조용한 애였다. 착실하게 학교를 다니는 여대생. 시험기간이 아닌데도 도서관에 자주 출몰하기도 했고, 애들 다 조는 수업시간에도 고개를 뻣뻣히 들고 경청하질 않나 개인과제는 물론 조별과제도 완벽하게 해내고마는. 교수님 추천의 낙하산이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대한 학점을 많이 이수해 놔야 싶었던 나는 무리해서 시간표를 짰고, 때문에 너와 겹치는 수업이 많았다. 사실 저번 조별과제 때 내가 해가야 할 부분 스크랩을 다 해놓고도 너에게 주지 않았었다. 철학은 정말 내 스타일도 아니고 그 쪽에 관심도 없던 나지만 3학점이나 되는 교양을 듣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철학 과목은 교양주제에 과제도 엄청 많고 심지어 모든 과제가 조별과제로 나갔다. 딱 한 가지 좋은 건 중간고사를 보지 않고 과제로 대체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건 누군가에게 행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행을 주는 것이었다.
내가 너에게 알게 모르게 흥미를 갖기 시작한 사실을 하늘이 알기라도 했는지 너와 나는 같은 조가 됐고, 3명으로 구성된 팀에는 불쌍하게도 여자는 너 하나였다. 지금은 조가 바뀌었지만 한 때 같은 조였던 그 오타쿠의 이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비하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오타쿠였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대한 예의는 이미 씹어 먹었는지 큰 등치를 숨기며 매일 치즈 소시지를 까먹기 바빴고, 무거운 등산 가방에는 가슴이 비정상 적으로 큰 여자가 그려진 일본 야한 만화를 가지고 다녔지. 과도 경영과가 아니라 다른 과였기 때문에 김탄소도 아예 그 돼지는 쳐다보지도 않더라. 확인한 순간 느꼈겠지. 아 얘는 열심히 공부할 놈은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그 덕에 김탄소가 나를 꽤 의지하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당히 인사만 하고 서로 이름만 아는 정도? 처음 보는 나를 당연히 같은 4학년으로 생각했던 김탄소는 내가 자신과 같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나를 좀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하긴 같은 학번에 군대에 다녀와 나이 많은 오빠는 봤었어도 생일이 빠른 것도 아니면서 일찍 대학에 들어온 케이스는 드무니까.
아, 물론 4학년은 맞지만. 지금까지 지켜 본 결과 꼭 내가 아니더라도 김탄소는 사람을 대할 때 어느 정도의 선을 두고 대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저렇게 튀는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애가 왜 술 먹는 날이면 날마다 안주로 씹히는 걸까? 혹시 한 번 뒤집히면 성격이 완전 파탄잔거 아닐까? 시험해 보고 싶던 나는 마침 시험 대체 조별과제를 할 때 잠수를 탔다. 두 통 정도의 문자가 왔지만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의 연락도 없었다. 그리고 수업이 들은 날 김탄소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게 인사를 했고 혼자 PPT를 다 준비해 발표까지 군더더기 없이 끝냈다. 아무 말도 없이 잠수를 탄 내게 화를 내지도 않았고 면박을 주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교수님한테 내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김탄소가 준비한 PPT자료 하단에는 전정국 이라는 내 이름 석 자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가 있었다.
"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막 참을 수가 없어. "
그 후로는 의도적으로 김탄소 주변을 맴돌며 접근을 했다.
소름 돋게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내가 마음먹은 여자 치고 안 넘어오는 여자가 없었기에.
"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난 되게 스트레스 받거든. "
" ......흠 "
" 아니. 별 거 아닌 건데도 왜 말을 안 해? 그건 날 사랑하지 않는 다는 증거지? "
" 남자인 내가 봤을 때는. "
'남자'라는 일반화를 시킨 후 가정을 하자 김탄소가 어서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귀엽네 진짜.
" 김태형이 그렇게 누날 좋아하진 않는 거 같다. "
" ..... "
통통한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진다.
" 그러니까 너한테 관심 없는 김태형은 뻐엉- 차버리고 나랑 사귀자니까요? "
거짓말.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김탄소 다르게 김태형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 내가 봐도 김태형은 김탄소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다. 원래 남자는 남자가 봐야 알거든. 내 눈에는 그리 썩 좋은 남자처럼 보이진 않아도 현재 김탄소를 사랑하고 있긴 하구나. 는 보였다. 남자새끼가 재수 없게 온갖 매너 다 떨고 다니는 거 보면 딱 이지 않은가. 듣기로는 사귄지 3년 째 라던데 저 바퀴벌레 같은 커플한테는 권태기도 안 오나? 둘이 확 깨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머그컵을 들어 호로록 내용물을 마셨다. 그래 뭐 천천히 기다려야지. 견고해 보여도 틈은 있기 마련이다.
"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멍청아! "
말도 안 되기는.
" 네가 좋아. "
" ....... "
" 나도 네가 좋아. 귀여운 동생으로서. 라는 소리 할 거면 여자고 뭐고 한 대 줘 박아버릴 거야. "
" .......... "
"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놀란 척 하기는. "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뒷머리를 긁적인다. 저건 필히 김탄소가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제스처인데 누굴 닮아서 저렇게 눈치가 없는지, 내 말이 민망해질 정도로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다. 그래도 그런 곰같은 여자가 사람을 홀리는 앙큼한 여우같은 매력이 있다니까 또
" ...미안하지만 난 태형이가 있거든. 넌 안 돼 "
메롱-
빨간 혀를 빼꼼 내밀며 얄밉게 웃는다.
되는 지 안 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
확실히 김탄소는 사람을 대할 때 거리를 둔다.
아무도 모르게 적정한 선을 두고 벽을 쌓아 올리지.
하지만 그 벽을 깬 순간. 적정선을 밟고 지나친 순간 견고하게 쌓아올렸던 자신의 본래 모습을 허물없이 보여준다. 내가 학점과 바로 직결되는 조별과제를 해 오지 않고 연락을 씹을 때도 마이웨이를 걷던 김탄소는 이제 내가 조금의 실수라도 하면 쨍알거리지 바쁘다. 아무튼 다채로운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 그래서 오늘의 고민은 뭔데요 "
난 분명히 김태형과 김탄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자신이 있는데 난 안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김탄소가 조금 짜증나져 아까부터 불만이었던 라떼를 조금 들먹이다가 별 반응이 없기에 오늘의 고민이 뭐냐고 물었다. 여자들은 꼭 자신의 불만을 어디에 풀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더라. 어쩌겠어.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일단 아쉬운 쪽이 나니까 맞춰줘야지.
상담 주제는 항상 김태형이었고, 그래 오늘의 고민은 뭐야? 김태형이 네 말을 안 들어줬어? 아니면 여자 후배한테 밥 사줬어?
" 자기 얘기를 안 해 "
나는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 엉? "
" 자기 얘기를 안 한다고. 지는 나에 대해서 다 알려고 하면서, 내가 저에 대한 거 하나라도 물으려고 하면 말을 막 돌린다니까? 한 두 번은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의도적인 게 틀림 없어. "
사뭇 진지해진 표정에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김탄소는 이따금씩 저런 별 것도 아닌 고민을 나에게 토로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김탄소한텐 별 것도 아닌 고민이 아닌 모양이었다. 여자랑 남자랑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일까? 저게 고민의 주제가 되는 건가? 물론 자신은 철저하게 빠지면서 남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는 김태형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뭐 변태 사이콘가보지.
" 나도 김태형 부모님 만나는 거 어려워. 그래도 남자들은 자기 가족들한테 잘 하는 여자에게 호감을 많이 느낀다고 해서.
한 번 놀러가도 되냐고 내가 먼저 물어봤거든? 난 솔직히 칭찬해 줄 줄 알았어! 그런데 기겁을 하고 도리질을 치는 거야. 그러면서 나보고 뭐라는 지 알아? 네가 거길 왜 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네가 거길 왜 가라는 말이 나한테 할 소리야? "
화가 나긴 했는지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다행히 하이톤으로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톤에 목을 흠흠 다듬는다.
잔뜩 흥분한 김탄소를 두고 하마터면 네가 김태형 집에 왜 가. 갈 거면 우리 집 오던가. 하고 속마음을 그대로 말 할 뻔했다.
" 내가 안 가면 누가 가는데? 나 말고 집에 데려가는 여자는 따로 있다는 소리야 뭐야. 내가 창피해? 가족 소개시켜주기 싫은 거야?
아 말 할수록 스팀이 오르네? "
얼굴이 빨개졌다.
반짝반짝 사과같다.
사과같은 네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오.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
화를 내고 있는 김탄소를 앞에 두고 동요를 흥얼거린다.
아아. 물론 속으로.
" 응? 태형이가 왜 그러는 걸까? "
그런 표정 짓지 말라니까.
아랫배가 묵직해 진다구.
" 말했잖아요 "
" 응? "
" 걘 누날 안 좋아한다니까 "
장난스러운 내 답변에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놓인 티슈를 내 얼굴로 집어 던진다.
내 얼굴을 맞고 떨어진 티슈를 잡아 들었다.
언제까지 네가 나를 피할 수 있나 보자.
내 연애의 발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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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배'입니다. 후배님들(부둥부둥)♥
폭풍연재!!
저번에 8화를 쓰면서 완성돼간다던 SPECIAL STORY - J 살 붙여서 급하게 왔습니다.
같은 토익학원에 같은 대학 맞아요!
토익학원 얘기까지는 못 썼지만 아무튼 그 두 곳에서 많이 만나다 보니 빨리 친해진 것이고요! 절대 착각이 아니어요 8ㅁ8
저는 개인적으로 정국이 참 맘에 드네요
발칙하다...♡
거기다 똘끼까지 좀 첨가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후배님들의 반응 = 충격..!!
이번엔 좀 오래 못 볼 것 같아 폭풍연재좀 해봤어요ㅠ-ㅠ
잘 지내고 계세요 후배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