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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좋아한다, 나아가서는 사랑한다 따위의 오글거리는 감정은 정국에게 있어 지극히도 불필요하며 불편한 것이었다. 사랑이란 꼭 사탕 같아서 입에 담으면 혀로 굴릴 때마다 까끌까끌한 감촉을 남겼고 감히 삼키려 들면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목젖을 꼭 잡고 버텼다. 어쩔 때는 껍질이 사탕 위로 눅진하게 눌어붙어 그 고귀한 자태 한 번 감상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찰나의 달콤함이 좋아 몇 개를 더 까먹으면 충치 생긴다며 구박받기 일쑤였다. 이렇듯 사탕이란 먹기 전에도, 먹는 중에도, 심지어는 먹은 후에도 어딘가로부터 올라오는 찝찝함이 있는데 왜 요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라고 정국은 생각하며 개미 손톱만큼 남은 사탕을 혀 밑으로 감췄다. 13000원입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책의 바코드를 찍고 모니터에 뜬 액수를 읽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초록색 종이 2장이라던가, 초록 1장에 파랑 3장이라던가, 보이지 않았다. 살짝 미간을 찌부러뜨린 정국이 혀 아래 사탕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며 고개를 들었다.

 

 

" 어…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죄송해요. 지갑이 갑자기 사라져서. "

 

 

 나 당황했어요. 붉어진 얼굴에 잔뜩 써놓고 백팩을 뒤지는 모습이 '무언가'를 닮았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었지만 정국은 그것을 자신의 짧은 가방줄 탓이라 치부하며 생각을 접었다. 사실 학력과는 전혀 무관한 부분 같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깊게 파고들면 복잡해진다. 지난 날의 경험들을 통해 그쯤은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조금 벌어진 제 입술 틈을 가르고 딸기향이 올라왔다. 저 어디 뒷골목 유흥업소 마담에게서나 날 법한 인조적인 싸구려 향이 심기를 건드렸다.

 

 

" 돈 없으면 사지 마세요. "

 

 

 싸구려 향을 풀풀 풍기는 말이 앳된 얼굴 위로 툭 떨어진다. 입을 아, 벌리고 탄식하던 소년이 머쓱하게 웃으며 책을 가지고 왔던 걸음을 도로 줍는다. 왠지 쓸쓸해보이는 뒷모습에서 아주 은은한 복숭아 향기가 나부낀다. 정국은 이미 사탕이 스며든 입 안을 혀로 훑으며 짭짭댔다. 진득하게 잇몸을 감싸는 가짜 딸기와 다르게 코를 간지럽히는 복숭아는 가짜가 아니었다. 과수원 나무에서 막 떨어져 정국에게로 통통 튀어온 복숭아는 그 하얀 솜털을 얼굴에 마구 부비며 호통쳤다. 멍청아, 네가 틀렸어! 아까 전의 소년처럼 입을 아, 벌린 정국이 생각했다. 내가 틀렸네, 시바.

 

 왜 요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고 한 거 취소합니다. 더 이상의 번복은 없습니다, 땅땅. 정국의 귓가에 판사봉 소리가 울렸다.

 

 

 

 

 

소년의 사탕

 

 

 

 

 

 탈탈탈탈. 곧 죽을 것처럼 돌아가는 고물 선풍기를 바라보던 정국이 애꿎은 녀석의 다리를 건드렸다. 산타 할아범을 기다리는 5살배기 꼬맹이가 된 기분이었다. 며칠째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소년이 지갑을 가지고 오느라 늦는 건지, 야자에 치여서 못 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서점으로 가버린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헐, 진짜 다른 데 가서 샀으면 어떡하지? 정국이 더위에 푹 담가져 있던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 힘에 위태롭게 휘청거리던 선풍기가 결국은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서점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면서. 깜짝 놀라 눈을 잔뜩 찡그린 정국이 실눈을 뜨고 처참한 사고 장면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심각한 광경에 수줍은 소녀처럼 입을 가린 정국의 뒤로 중년의 무시무시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전정국 너 이 노무 자식, 또 선풍기 부쉈지! 소설을 읽은 적은 없지만 점장의 대사가 있다면 느낌표가 10개 정도는 붙어 있을 것 같았다. 되는 일이 없었다.

 

 

 생을 마감한 선풍기를 추모한 정국이 남은 잔해를 발로 밀어 치웠다. 내가 부수고 싶어서 부쉈나? 여전히 툴툴거리는 못난 입술은 멈출 생각을 않았다. 작년 여름 리모델링을 한답시고 입구를 꽉 채운 통유리창은 활활 타는 노을을 껴안고 있었다. 어느새 8을 가리킨 모니터 속 시계가 원망스러웠다. 오늘도 소년은 오지 않았다. 도대체 왜? 여간한 책벌레가 아니고서야 서점을 매일 들를 리가 없단 걸 알면서도 정국은 괜히 심통이 났다.

 

 

" 정국아,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해라. 오늘 점장님 결혼기념일이시래. "

" 네? "

" 나도 몰랐어 임마. 빨리 정리해. "

 

 

 시야가 가려질 정도로 책을 가득 안은 남준이 정국에게 통보하고 지나쳤다. '평소' 같았으면 누구보다도 빨리 유니폼을 벗어 던졌을 정국이지만 오늘은 그 '평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앓는 소리를 냈다. 안되는데에에. 답지 않게 말꼬리까지 쭉 잡아당기며 한껏 아쉬운 티를 낸다. 한쪽 구석에 책 덩어리를 내려놓은 남준이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 집 언제 가냐고 징징댈 땐 언제고 지금은 또 가기 싫어서 난리냐. "

" 아 오늘은, 좀, 좀 그래요. "

 

 

 그럼 나 대신 이거 치울래? 잔뜩 흩어진 책들을 가리킨 남준이 물었다. 반은 진담, 반은 농담이었다. 역시 '평소' 같았으면 기겁하고 손사레를 쳤을 정국이지만 '평소'가 아니었기에 화색을 띄고 달려왔다. 정말 얘가 뭘 잘못 먹었나, 남준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제 옆에 쪼그려 앉은 정국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내 뭐가 어떻게 되었건 스스로 기회를 날려버린 건 정국이니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국에겐 그게 오히려 기회였다는 것을, 남준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겨우 깨달았다.

 

 

 같은 시간대 유일한 말동무였던 남준마저 떠나고 서점에 남은 사람은 정국 하나뿐이었다. 슬슬 폐점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해지는 마음은 눈에 띄게 짧아진 엄지 손톱에서 모두 드러났다. 딱, 딱, 초침 소리를 기준으로 불규칙적이게 맞부딪히는 앞니가 얼얼했다. 쪽빛이 가득한 거리는 어둡고 푸르러 서점에서 새어나가는 조명만이 양지를 만들어주었다. 초록불이 켜져도 사람은커녕 길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횡단보도에 여름밤의 한기가 감돌았다. 오늘도 허탕인가. 정국의 눈썹이 팔(八)자가 되었다.

 

 

" 에이씨, 괜히 기다렸네. "

 

 

 '슬기서점'이 하얗게 박힌 빨간 카라티의 단추를 풀었다. 더 기다려야 아무도 안 올 것 같으니 집에나 가자, 였다. 단호하게 결심해봤자 눈 앞에 아른거리는 소년의 얼굴이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푸르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입술을 쭉 내민 정국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 때 조금만 더 예쁘게 말했더라면, 아니 차라리 외상이라도 해줬다면. 점장이 알면 놀라 까무러칠 상상까지 해가며 정국은 자책했다. 지금이라도 나타나준다면 책은 물론이고 원한다면 쓸개까지 다 빼줄 생각이 있었다. 영업 시간이 2시간이나 지났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자리를 지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 저, 아직 문 안 닫았어요? "

 

 

 이제 닫을 거니까 사지 마세요. 퉁명스럽게 움직이려던 입술이 익숙한 복숭아 향에 뚝 굳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제 심박수를 유지하던 심장이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뛰어댔다. 혹시 눈을 마주치면 사라져버리진 않을까, 되도 않는 고민을 하며 풀어헤쳐진 단추를 꿰는 정국의 손이 옅게 떨렸다. '평소'처럼 사탕이라도 집어 먹고 있었더라면 긴장이 덜했을 텐데. 뒤늦은 후회는 더 이상 정국에게 '평소' 같은 나날이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 아, 아, 아직 안 닫았어요. "

 

 

 푸흡. 여름의 습기를 머금은 텁텁한 공기방울 위로 주홍색 웃음이 올라탔다. 눈끝에 추라도 달았는지 아래로 축 처진 눈꼬리와 초승달처럼 올라간 입꼬리가 하얀 얼굴 위에서 교점을 만들었다. 그 사랑오운 선의 교차에 정국은 한껏 벙찐 표정으로 저보다 한 뼘은 작은 소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사탕은 포장지에 들러붙어 있지도, 혀에 상처를 입히지도, 충치를 남기지도 않을 것만 같다고.

 

 정국의 사탕은 그렇게 찾아왔다.

 

 

 

 

 

 

 

 

///

노말로 쓰려다가 이건 도저히 국민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야... 라고 생각해서 전향했습니다

게다가 노말로 갔으면 더 연재도 못하고 끝났을 거예요. 뭐랄까 뮤즈? 가 없어서. 어쨌든!

평소에 서점을 자주 가는데 서점 로맨스는 어떤 느낌일까 상상만 하다가 글로 옮겨봤어요. 아마 저 혼자 쓰고 저 혼자 좋아하는 글이 되겠지만.

되게 짧네요. 프롤로그니까 이해해주세요 헤헤 보잘 것 없으니까 제 글은 구독료 없어요! 기쁜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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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7.202
국민.......국민.....ㄱ... ..ㅜ.....ㄱ....민..... 넘나 좋은거ㅅ!!!!!!제가 첫 추천인건 안비밀-☆
7년 전
소년의
추천 너무 감사해요!!! 국민 넘나 좋은 것 ㅜㅜ 제가 노말을 포기하게 될 줄이야.... 마성의 커플링이에요
7년 전
독자1
꺄 너무 설레요ㅠㅠㅠ [푸헹]으로 암호닉 신청해두대여....? 안되려나.... 잘 읽고 갑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7년 전
소년의
암호닉 신청해주시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8ㅁ8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감사해요 푸헹님!
7년 전
독자2
진짜 너무 좋아요..지민이로 인해서 변해갈꺼같은 정국이가 상상돼서 너무 설레요ㅠㅠ진짜 표현 왜이렇게 잘하세요...정국이 마음표현이 너무 잘되어있어서 저까지 초초했어요ㅜㅜㅜㅜ진짜 이런 글이 구독료까지 없다니...! 너무 사랑합니다 너무 잘읽었어요ㅜㅜ
7년 전
소년의
어떻게든 더 생생하게 표현하려고 어떤 문단은 4번이나 수정했는데! 노력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ㅠㅠ 헤헤 감사해요 딱히 쓸 공간이 없어서 글잡으로 온 거니까!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구독료라니 말도 안되죠ㅜㅜ
7년 전
독자5
헐 근데 저도 암호닉 신청해두돼여..? [라라]로 해주세영...헿
7년 전
소년의
반가워요 라라님 잘 부탁드려요! ♥
7년 전
독자3
스...스크랩....
7년 전
소년의
스.... 스크랩 좋아요.... 다음 편도 보러 와주세요 흫
7년 전
독자4
아니 보잘거 없다니요... 너무 달달하잖아여ㅠㅠㅠㅠ 다음편도 꼭 보러 올거에여!!
7년 전
소년의
사실 이런 달다구리한 글 제 취향입니다.. 하루종일 달달한 얘기만 생각나요 8ㅁ8 다음 편 열심히 쓰고 있을게요!
7년 전
비회원18.112
와 진짜 대박 제가 다 두근두근 거려요!!!!꼭꼭 챙겨 볼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소년의
비회원 분이 어찌 여기까지 알고 와주셨습니까ㅠㅠㅠㅠㅠㅠ 너무 감사해요.... 두근두근..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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