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하모닉스 - 편지
끝나지 않을 여름
(Eternal summer)
' はっしん '
안녕?
나 기억하니?
혹시 날 잊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거 같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아주 가끔 널 만난 그 해를 떠올리곤 해.
너의 모습이 마지막이 되고 난 후 나는 우리가 만났던 그 곳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모든 게 바쁜 도심 속에 돌아왔어.
이젠 이 곳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그 곳에서 너를 만났던 기억이 마치 너무도 달콤해서 잠에서 깨어나고도 잊혀지지 않는 아련한 꿈 같기도 해.
하긴. 정말 꿈 같은 일이었으니까. 영화에서도 찾아 보긴 힘들 걸?
그 해, 그 여름은 그만큼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마음 아픈 추억이었어. 너는 그때를 어떻게 느꼈었는지.
나에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아서 날 참 답답하게 만들었지. 그래서 한편으로는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기억이 나만 끙끙 앓고 있는 병 같기도 했어.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았던 네가 참 미웠던 건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내 기억에 네가 그저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 위한 이유였을까?
그때 네가 어떤 마을을 다녀갔는지도 기억하니?
온통 하얗고 푸른 벽들로 이루어진 작은 집들이 언덕에 줄을 지어서 사람들이 그 청량함에 흠뻑 젖어 버리기도 했었지.
나도 예외는 아니었어.
찰랑대는 파도 소리, 비단결 같은 바닷 물결은 아마도 작은 집들과 함께 그곳이 환상의 섬이라는 걸 똑똑히 보여줬었지?
얼마나 예뻤냐 하면 쨍하게 채도 높은 하늘 빛이 아침,점심,저녁으로 수채화 마냥 각양각색으로 섬을 물들여서 그걸 다 사진에 담겠다고 하루에 수백 번도
카메라를 들이 댔다가 모래사장에서 혼자 밤을 꼴딱 새어 버릴 정도였다니까.
너도 그런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찾아왔던 거지?
어느 날은 그 아름다운 바다를 구경하다가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어.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긴데.
난 그 섬보다 멋진 걸 본 적이 없었거든.
그무작정 내 발걸음이 향한 곳에는 바로 너가 서있었어.
최고의 행운이었지.
너는 다가오는 나를 피해 점점 시선에서 멀어졌지만 그 까맣고 부드러운 머리칼에서 퍼져 나오는 너의 향기가 짠 바닷 바람에 흩날려 내게 전해졌을 때 그 섬에서의 기억은 이미 너의 냄새로 물들어 버린 거야. 솔직히 반하지 않고서야 눈을 뗄 수가 없었어. 조금 과감한 표현이지?
너 때문에 그 날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왜 그때 너에게 말을 건네지 못 했을까. 나는 왜 바라 보고만 있었을까.
머릿속이 후회로 가득 차서 그 날도 밤을 꼴딱 새어버렸다는 건 너도 몰랐을 거야.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만 감상하고 있었다니. 풉.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양새가 참 웃겼을 것 같기도 해.
널 다시 마주칠 줄은 사실 꿈에도 몰랐어. 그땐 정말 우연이었지?
내가 지내고 있었던 펜션은 2층집이었는데 수영장도 있고 바깥을 구경할 수 있는 테라스도 있는 멋진 집이었어.
그런 멋진 펜션에서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언덕 너머의 잔잔한 파도를 감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있었던 참이었어.
그 날 따라 지는 노을이 너무 예뻐서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만져보고 싶단 생각에 테라스의 하얀 목재 난간을 잡고 이만치 손을 뻗었는데,
우리 눈이 마주쳤지?
나는 옆 방 테라스에 나와 있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너는 아주 크게 동그래진 내 눈을 보고 조금은 놀랐을 거야.
그리고 너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 때문에 많이 당황해 했던 너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
그 순간 정말 꿈인 줄 알았거든.
나는 소심한 편이라 네가 옆 방에서 지내는 걸 알면서도 한 동안 말을 붙이지 못 했어. 속으로는 엄청 애탔는데 말이야.
거의 매일 오늘은 어떻게 말을 걸까 고민만 했었지. 나도 참 바보 같아.
저번에 너의 뒷모습만 바라본 걸 그렇게도 후회했으면서 이제는 저녁마다 테라스에 나오는 너의 옆모습만 바라보고 있어.
네 얼굴만 봐도 쑥스러워 고개를 숙였던 건, 그때의 내가 좋아한다는 감정을 처음 알아가는 풋풋한 시절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냥 너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해 했던 것 같아.
지금은 그런 감정 두 번 다시 못 느껴 볼 어른이 됐지만.
그래도 좀 더 일찍 용기 냈으면 좋았을텐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내가 처음으로 말을 건넸지?
같이 바다 구경 가지 않을래?
하고 말이야.
용기 내서 같이 가자고 했었어. 너도 나처럼 섬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아서 함께 구경이라도 하면 좋을까 싶었지. 처음 건네는 말 치고는 꽤나 당돌했지만.
나 그거 엄청 떨면서 얘기 했던 거야.
그런데 넌 애매한 답을 했었어.
혹시 거절하는 건가 싶었는데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고는 금방 눈웃음을 보였지? 그 때 나 또 너한테 반해버렸잖아.
솔직히 너. 나한테 일부러 그런 거였지?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다 알고 말이야.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먼저 말 걸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그 날 이후로 우리 많이 친해진 것 같아서 정말 기뻤어. 같이 해변도 구경하고 밤하늘 별도 구경하고. 나에겐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너에게도 그 순간이 행복한 기억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는 아마 서로 이름도 몰랐고 나이는 물론 어디에서 왔는지 조차 알지 못 했었지?
그 해 여름은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는데 결국에는 나 혼자만 우리였다고 느꼈던 것 같기도 했어.
넌 나를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너에게 이것저것 더 묻고 싶었지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어.
난 일방적으로 너를 좋아했던 거니까.
널 좋아하면서 섬에서 보내는 시간도 꽤 많이 흘렀어. 그 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 해 여름이 그저 추억에 그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 떠나는 날에는 내가 너를 영영 못 볼 거라는 걸 상상도 하지 못 했었어.
널 놓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
벽을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 너를 바라봤어. 지금 너는 내 생각이나 할까, 보이지도 않는 너의 행동을 하얗기만 한 벽 앞에 그려 보기도 했었지. 몇 번은 망설였어.
아니 수십 번, 수백 번은 더.
그때 마음 먹지 않았다면 평생 후회했을 거야.
처음으로 너의 방에 찾아 갔던 날은 사실 그 섬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으니까.
그동안 좋아해도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던 내가 너무 한심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똑똑도 아니고 쾅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두드렸는데도 놀라지 않고 나를 반겨 주었던 너는 눈시울이 붉어진 나를 보고는 금세 표정이 굳어졌었지.
무작정 너를 껴안았어. 네 품에 내가 꽉 잠기도록. 서럽게 울면서
정말 좋아해.
그 말만 외쳤어.
그동안 너를 최선을 다해 좋아했던 마음에 아픔을 감출 수가 없었어. 이별 앞에서 말이야. 그 순간 너의 표정을 보지는 못 했어.
그저 포근하고 따뜻한 너의 품 안에서 여름 밤을 끝 마쳤을 뿐이야.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는 너의 품 안에서.
다음날 아침. 너는 나보다도 빨리 떠났었지. 비워진 너의 방을 보고는 네가 너무 미워졌어.
어제는 나뿐만이 아니라 너에게도 마지막 밤이었다고.
네가 먼저 말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았던 너에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나 혼자서만 쌓은 추억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바보 같이도 너를 미워했었어.
내가 참 어리숙했지.
좋아한다면 너의 마음을 배려했어야 하는 건데. 무작정 감정에 취해버린 나에게 실망 했었다는 걸 왜 그땐 눈치채지 못 했을까?
일상에 다시 돌아온 후에 네가 너무 그리웠지만 너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어.
아직까지는 내게 아픈 가시였으니까.
그래도 너와 함께한 그 시간이 너무 그리워서, 어디로 떠난지도 모르는 너를 한동안 마음에 두고 짝사랑 했었어. 마음 아파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는데. 널 병처럼 앓았으니까. 하지만 몇 년이 지났을까 그제서야 나도 너를 좋은 추억 안에 묻어둘 수 있게 됐어. 너는 진작 나를 잊었겠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
쓰다 보니 꽤 길어진 것 같네.
이젠 마무리할 때가 됐나 봐.
안녕 나의 첫사랑아?
잘 지내고 있니?
난 그럭저럭 괜찮은 일상을 보내고 있어.
너의 대답이 궁금한 건 예전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아쉽게도 이 편지는 너에게 전해질 수 없을 거야.
지금 너는 어디 있는지, 넌 어떤 사람이었는지 난 평생을 가도 알 수 없을 거거든.
너를 잊고서야 말할 수 있는 거지만 그 해 여름. 넌 내게 잊을 수 없는 꿈 같은 기억을 선물해준 고마운 사람이었어.
우리 사진 한 장도 찍지 못 해서 나는 너를 기억으로 간직해야 하지만, 회상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너에 대한 감정들 잊지 않고 잘 간직할게.
이건 자신 있게 약속할 수 있어.
그러니 너는 부디 기억 속에서 평생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사람으로 남아줘.
너에게 바라는 건 그것 뿐야.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넌 내게 끝낼 수 없는 여름 같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세상에 하나 뿐인 내 첫사랑이었으니까.
잊혀지지 않는 한 그때의 너를 좋아했던 나는 여전히 그 해 여름 속에 살고 있을 거야.
그만큼 널 진심으로 좋아했어.
소중한 추억이 돼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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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글이죠...
해석의 여지는 크게 열려 있으니 '너'의 심리는 어떻게 해석하셔도 좋을 거 같아요.
언제까지나 꿈 같은 이야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