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대학 후배 전정국 X 시각장애 너탄 03
"학교를 안나온다고? 김탄소(이)가?"
정국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사람 신경 거슬리게 알짱대더니, 막상 찾을때가 되니 학교를 안나온다니
여러모로 귀찮게 하네, 진짜 김탄소.
정국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조별과제발표가 고작 일주일앞인데,
정국은 제 눈앞에 시계초침이 까닥거리는 듯한 짜증나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교수님 연락도 안되고 학교도 안나오는 애를 무슨수로 조원으로 받아들이는데요,"
정국이 애꿎은 머리를 헝클이며 교수의앞에 다가가 선다.
"니가 학교 나오게 만들어, 그리고 과제 꼭 하게 만들어."
정국은 제손에 쥐고있던 전공교과를 바닥에 던질까 순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하늘높은줄 모르는 자존심을 교수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듯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휘갈기더니 정국의 이마에 떡하니 붙인다.
신경질난다는듯 거칠게 이마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어낸 정국이 포스트잇을 꾸기듯 손에 쥐곤 교수실을 나선다.
교수실에 홀로남은 여교수가 차분히 흘러내린 앞머리를 한손으로 쓸어올린 채로 한숨을 내쉰다.
"또 혼자 숨었네, 김탄소.. 당당해 지라고 분명히 말했건만."
-
교내에서 유일하게 김탄소의 사정을 꿰고 있는게 김교수였다.
지난날, 김탄소가 차마 입에 담기도 꺼려지는 일에 휘말렸을때,
그 수사를 맡았던 총 책임자의 아내였으니까,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의 무기력함과 책임 회피적사고에 지쳐 이혼을 결심했던게
무려 10여년 전이다.
김탄소(이)가 제가 교수로 있는 이 대학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얼마나 기쁘던지,
제 남편이 행해주지 못했던 책임감을 제가 대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었다.
하지만 김탄소(은)는 예상보다 더, 고독했고, 홀로 숨기를 좋아했다.
그런 성격탓에 이렇게 말한번 못건네 보고, 숨어서 김탄소가 세상에 완벽히 적응될 수 있도록,
제앞에서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몰래 도움을 주는 일밖엔 할 수 없었다.
그걸 가능하게끔 도와줄 수 있는게,
오로지 전정국일 것만 같았다.
-
김 탄소
-010 1995 1013
교수의 반듯한 글씨체가 구겨진 포스트잇 위에서 앞으로 나왔다 뒤로 나왔다 춤을 춰댄다.
이유없는 분노감에 눈앞이 핑 돌고 머리엔 열이 채인다.
-뚜르르르
"여..여보세요?"
"야..."
"네?"
"너 왜 학교 안나오는데,"
"누..누구세요?"
"전정국, 나몰라? 니가 내 동아리 들어오고싶다며."
"아.."
답답해 돌아버릴 것 같다는게 이런기분이었구나, 정국은 김탄소(이)가 눈앞에 있다면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 대고싶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분노를 겨우겨우 삼켜낸다.
김탄소(은)는 내 학점이다... 내학점은 김탄소(이)다...
"내일 전공수업부턴 꼭 나와, 조별과제해야지."
김탄소(이)가 말이없다.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이거지. 정국은 한숨을 쉬고는 이를 갈며 말한다.
"안나오면 쳐들어간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쿵짜자 쿵짝을 코러스로 불러 줄 것만 같은 아이러니한 말을 남기곤 정국이 전화를 끊었다.
-
"뭐지..?"
몇일째 학교를 나가지 않은건 순전한 내 의지였다.
난 지쳐있었고, 혼자있을 시간이 남들보다 많이 필요했고.
위로받아야했고,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타당하다 생각했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는게.
전정국이 처음이었다.
왜 저가 학교에 나오지 않느냐고 물어주는게,
그 차갑던 언행들이 한번에 지워지는 것만 같았다.
방안이 온통 꽃향기로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바보같은 김탄소(이)가 싸가지 없는 전정국한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김탄소(은)는 아직도 모른다 그 두근거리는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가 받아야할, 견뎌야할 상처의 깊이를.
그래서 이렇게 쉬이 마음을 줘버리겠지.
-
정국은 전화를 끊고는 액정에 떠있는 번호에다 대고는 중얼거린다.
김탄소 진짜.. 조별과제만 끝나면 아주.
그래도 내 학점이 걸려있으니까, 과제하는 동안만 구슬려 본다 내가.
그러곤 열이 채인다는듯 머리카락을 탈탈 털곤 벤치에서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