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대학 후배 전정국 X 시각장애 너탄 04
"학교왔네? 말잘듣네 그렇게 속을 끓이더니."
또 꽃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괜히 또 얼굴이 붉어지는게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점점 흔들리는 파동이 커진다.
내자신이 너무 낯설었다.
"워..원래 오려고 했어요."
멍청한김탄소(은)는 그냥, 아무짝에 쓸모없는 자존심한번 부려보고,
"그래 왔으면 된거지."
그렇게 미련없이 스쳐가는 정국에 혼자 아쉬워한다.
이상하다, 김탄소 너진짜 이상해지금.
귀로 듣는게 다인 수업, 가끔 교수님이 칠판에 내가 볼 수 없는 자료들을 그려대며 떠드는게 지루해 귀를 연채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면.
-쿡 쿡
단단한 손가락이 내등을 찔러온다.
"너 저거 조별과제할때 참고해야 하는건데, 들어서 기억이라도 해둬야지 졸긴 왜 졸아."
정국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바보같은 김탄소(은)는 퍽이나 정국이 다정한 편이라 생각한다.
'뭣같은년 학교 오자마자 병든 닭처럼 졸기나 하고 ,
진짜 도움이나 되려나 몰라.'
정국의 까만속을 드러내는 표정을 읽어내기에 김탄소의 시각장애란 벽은 너무나도 높고 막막했다.
지루했던 수업을 간신히 버텨냈다, 그냥 이유없이 내자신이 너무 대견해서 손등을 탁탁 두드려준다.
칠판수업이 대부분이었던 수업덕에 오늘도 보이지 않는것의 설움을 누구보다 깊게 느꼈지만,
'들어서 기억이라도 해둬야지...'
정국의 말은 왠지 모르게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동아리실로와 당분간 우리 조원들 과제할때 동아리실 쓸테니까."
동아리실에 그닥 좋은 기억이 있는건 아니다만,
아니 사실 좀 두렵지만 용기를 내보기로한다.
동아리실을 기억으로 더듬어 두려운 발걸음을 한발한발 내딪는다.
"X년 눈이안보이면 지팡이라도 짚던가. 존나거슬려"
그래, 대학교에들어와 전공 과실 하나 찾지못하던 그때에, 몇날몇일 지팡이를 짚어가며 건물지리를 익히던 날을 떠올린다.
그때의 반응도 똑같았었지,
"아진짜... 저년저거 지팡이 짚다가 내 다리 한대 칠까봐 무섭다"
저의 보조수단이 남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단 사실에 내 자신이 두려워져 그날부터 미친듯이 걸음 수를 세며 학교 지리를 외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리저리 어깨를 부딪히며 다니기 일쑤지만,
지팡이로 학과 학생들에게 두려움을 사는 존재가 되는것 보단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그래, 그랬다.
"늦네... 이 이 조에 너만 조원인것도 아닌데,"
정국이 김탄소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손목시계를 쳐다보곤 말을 잇는다.
그게또 말투는 전혀 화가나지 않아보이는 차분함이라, 김탄소(은)는 또 그게 퍽이나 설레인다.
정국의 이런태도는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자아내는 요소중 하나였다, 지독히도 화난것같은 겉모습에 말투는 더럽게 나긋나긋했으니까,
동아리실에 앉아있던 남자선배 하나가 화난 정국의 앞에 멍청이 서있는 김탄소에게 동정을 표한다.
김탄소가 늦은 이유야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게 전정국의 입장에선 이해해야하는 이유를 모르는 그저 짜증나고 불쾌한 일에 해당되겠지.
전정국은 바보같은 김탄소의 표정에 또한번 속이 부글부글.
정국은 그 멍해보이는 얼굴을 괜히 울려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오늘은 시간없으니까 여기까지 하고, 김탄소 넌 내일부터 니 아이디어로 ppt만들테니까, 니가 뭘해와야 되는지는 알겠지."
긴 텀을 두곤 삭막한 분위기에서 그저 몇마디 말을 주고받는게 다였던 셋의 조별과제활동은, 정국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막이내린다.
-
정국과 탄소의 망막에 똑같은 어둠이 나렸다.
탄소는 그저 어둠만을, 정국은 불빛이 찬란한 도시의 야경을 담아낸다.
그렇게나 둘의 시선이다르다.
세계가 다르다.
김탄소의 어둠만을 담던 그 고독한 망막에 23년만에 무언가가 들어찬다.
김탄소(은)는 이름과 목소리만 아는 정국의모습을 혼자 그려보다, 그 어둡고 고독한 망막 한가운데 조심히 내려놓는다.
우선은 그것만으로 만족하기로한다.
그것만으로 가슴이 따듯하다.
-
"아진짜 행님들~ 내 편입과정이 쪼매 복잡해서 애매하게 들어오게대뿟는데! 아무튼간에 잘부탁 드립니다!"
건축학과에 특이한 녀석이 하나 더 생겼다.
오자마자 학과내에 시각장애인이 있다는 소문은 어디서 들었는지, 가뜩이나 내성적인 김탄소주변을 맴돌면서
잔뜩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쏟아내는게,
영락없는 비글, 그래 딱 지랄견.
"와 니 진짜 눈 안뵈나? 이거 몇갠지 아나?"
"어...응 안보여 하지마아...."
"와 진짜 신기하다!!!!"
김탄소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진다, 뭐 차라리
'쟤가 시각장애인이라며?'
'학교는 어떻게 다닌데?'
'뒷돈주고들어온거 아냐?'
하는 이상한 헛소문을 만드는것보단 나은 상황이지만.
이렇게 시선이 쏠리는게 느껴지는건 두려움, 그래 영락없는 두려움이다.
한참을 호기심섞인 질문을 쏟아내다, 그제서야 좀 암울해진 내 표정을 봤는지, 소리가 딱 멈춘다.
"하모 내랑친구하자!"
진짜 이상한애네,
나처럼.
김탄소(이)가 그렇게 이상한 김태형과 대면하는 장면을 먼곳에서 지켜보던 전정국이 알수없는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