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전정국] 당신의 짝사랑 전과는 몇범 입니까? 01
내가 맡기로한 그룹의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흡사 내가 애견카페에 온건가, 하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과장이냐고? 과장은 절대 아니다, 그래 선배가 넌지시 이 그룹에 대해 언질을 해줄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선배. 조금 시끄러운 아이들이라면서요. 왜 말씀 안해주셨나요 대기실이 애견카페로 보이는 환상을 심어주는 그런 아이들이라고, 특히나 제일 부산스러워 보이는게 저기 저 노란머리, 이름은 아직 모르겠지만 커다란 탭을 들고다니면서 멤버들앞에서 까불랑까불랑 춤을 춰대는데, 흡사.. 그 뭐더라, 그래 비글. 비글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옆엔 은발의 키가 작고, 입술이 통통한. 일단 이름을 모르니까 망개떡으로 부르겠다. 어릴때 입에 달고살던 망개떡이 떠올랐다, 처음 본 순간. 하, 대기실에 한발짝 들어 섰을 뿐 인데 벌써 기가빨려 땅바닥에 늘어붙고 싶었다. 그 둘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퍽이나 흥미로워보였는지, 오렌지 머리가 일어나 합세하기 시작했다. 그순간이 딱 내가 대기실에 발을 들인지 약 1분하고도 30초 즈음이 흐를 시점이었다. 대기실엔 한바탕 춤바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금발과 은발 그리고 주황머리. 중간중간에 들려오는 '예아~ 호비에요~ 예아' 하는 소리는 그냥 자체 음소거를 하기로 했다. 보아하니 주황머리의 이름이 호비인것같은데... 그래 너 참 밝고 좋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나는 조용히 메이크업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내 존재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내 박수에 탄력을 받은듯 세명의 춤사위가 더욱 거세졌다. 나는 흡사 애견카페에 공연을 관람하러온 손님은 아닐까, 내직업에 대한 의구심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애들이 좀 시끄럽죠, 제가 리더입니다."
갑자기 이어폰을 낀 채로 노래를 흥얼거리던, 근데 참 잘생겼네. 어쨋든 그 남자가 내쪽으로 걸어오면서 말을 걸었다. 듣자하니 리더라는데, 말투가 영국의 신사같았다. 뭐 설렌다기보단. 그냥 뭐지? 하는 표정으로 볼 수 밖에없었다. 뭔가가 잘못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같은 그룹내에 이런 온도차가 발생 할 수 있나.. 나는 입을 벌리곤 멍하니 대기실을 둘러봤다. 즐거웠다. 하하 즐겁지 아니합니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리더라 칭하는 분에게 내 직업을 읊었다.
"새로온 코디겸.."
"메이크업 아티스트, 맞으시죠?"
내말을 가로채곤, 리더가 윙크를했다. 쏘 스윗한 성격이시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메이크업 박스를 내려놓을 곳을 물색했다. 대기실이 참 좋았다, 뭐 예전 신인몇명의 메이크업을 맡아준 적이 허다했었는데, 그때는 대기실이 이만큼이나 넓고 좋은편이아니었다, 나름 인기있는 그룹이었구나 하고 단번에 알아챘다, 테이블위에 간신히 메이크업 제품들을 늘어놓고, 리더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먼저.. 메이크업 받으시겠어요?"
리더가 망설임없이 앉아서 말했다.
"무결점 피부를 완성해주세요."
"네?"
"무결점."
마치 무결점이 아니라면, 내 목을 잡고 짤짤 흔들어 댈 것 같은 단호함에 압도되어, 파운데이션을 파레트에 덜어 피부색에 알맞게 블렌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멤버들 이름은 익혀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질문을 던졌다. 기껏해야 한달 일하는 직장이라지만, 그 한달여동안 어쩃든간에 몸을 부대끼며, 같이 밤새가며 일해야할 사람들이니까.
"진짜 팬이에요, 리더라고 하셨죠. 멤버들 소개좀 부탁해도 될까요?"
팬이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 이었다. 연예계에서 일하다보니 말을 붙일때면 입버릇처럼 달라붙는게 '팬이에요' 라는 말이었다. 우선 나는 직업특성상 여러 연예인들을 만나면서도, 나와 일하고 직접적으로 엮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관심밖이었다. 그건 내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지.
질문을 하면서, 저 댄싱머신 트리오의 정보가 꼭 알고 싶다고 말하려던 걸, 그냥 꾹 참았다.
"보통 팬이면, 멤버들 정보는 다 알텐데, 거짓말을 참 못하시네요."
정말. 조곤조곤 할말은 다하는 쏘 스윗가이시네요.
좀 찔렸지만 묵묵히 베이스를 깔며 입을꾹 다물었다.
"우선, 저는 리더고. 예명은 보컬몬스터입니다. 메인보컬이에요. 그리고 저기 춤추는 저 애들중에, 주황머리 그아이는 제이새드, 저와 마찬가지로 보컬. 그리고 나머지 두명은 래퍼인데, 저 금발이 씨스고 은발이 박 비림이에요. 저기 바닥에서 도시락을 3개째 까먹는 맏형은 이름이 jean이에요 제이이에이엔, 청바지란 뜻이죠."
리더라 불리는 보컬몬스터 분이 빠르게 말을 마치곤 입을 꾹 다물었다. 여전히 댄싱트리오는 나에게 관심이없었고, 보컬 몬스터씨는 팔짱을 낀채 내가 메이크업 하는 모습을 묵묵히 거울로 지켜보고있었다. 무슨섀도우를 올려야 피부가 더 깔끔해 보일까, 섀도우 파레트에 놓인 웜톤과 쿨톤 색감들을 열심히 손등에 발라 보컬몬스터씨의 피부 옆에 대어 보다, 무난한 웜톤 컬러의 음영섀도를 골라 붓의 탄력이 적은 브러쉬로 눈가를 살살 쓸어줬다. 눈이 단조로워 별다른 기교의 필요성을 못느껴 간단히 세로기법으로 섀도를 표현한 후 립 컬러를 블랜딩하던 중,
"형아, 우리 오늘 스케쥴끝나고 양꼬치 먹으러 갈까요?"
"피곤해.."
-벌컥 하고 문이열리며, 들어왔다.
민윤기와, 전정국이 말이지.
난 너무 놀란나머지 보컬몬스터씨의 콧구멍에, 립브러쉬에 묻혀있던 빨간 루즈를 칠해댔다, 지저스. 보컬몬스터씨께서 그 광경을 바라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오늘 컨셉은.. 코피인가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조심스레 면봉으로 리더에게묻은 빨간 립글로즈를 콧구멍에서 닦아냈다.그리곤 보컬 몬스터씨는 대기실로 들어온 두명의 멤버를 가르키며 멤버 소개를 다시 이어나갔다.
"지금 들어온 눈 댕그란애 이름이, 전 철수. 그리고 뒤에들어오는 애가 민 영희에요."
난 그제서야 떠올랐다, 선배가 누누히 강조하던 사항중.
"리더가 허언증이 걸렸으니 조심해."
-
전정국과 민윤기를 보자마자, 지난날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아 이렇게 나의 흑역사 (중학교3년, 고등학교2년) 합이 5년이나 되는구나, 그래 내 5년의 흑역사 발자취를 이렇게 마주하는구나.. 무조건 숨어야지 싶었다. 서로를 알아보면 죽음이다. 그래 죽음보다 더한게 쪽팔림이다. 이미 머리속에 리더의 허언증에 놀아났다는 생각은 저멀리 날아 간지 오래였다. X됐다. 이건 필히 X된 상황이지. 암 그렇고 말고. 브러쉬를 쥔 내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왜 하필, 내 짝사랑 전적들이 다 한통 속이냐고, 나는 이제 막 짝사랑을 시작한 나의 님,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다. 선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제가 그리도 싫습니까.. 아니 그래 이럴수록 정신을 차려야 했다. 선배에게 일하나는 똑 부러지게 해내는 워커우먼으로 낙인찍히기 위해선, 이런 비지니스 관계따윈 아무렇지 않게 다룰 줄 알아야했다.
나는 당당해지자, 하고 생각한 뒤 고개를 쳐들었다. 보컬 몬스터씨는, 아니 그래 허언증이랬지, 이름모를 리더씨는 갑자기 손을 발발떨다가 고개를 치켜드는 내 일련의 행위에 두려움을 느끼곤 몸을 움츠렸다.
"아.. 죄송해요."나는 나즈막이 사과하고 립을 칠해나갔다. 근데 열심히 일에 열중하던 내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혹시...김탄소?"
이건, 필히 전정국이었다. X발 빨리도 알아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브러쉬를 떨구곤 삐걱이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5년전과 똑같은 얼굴로, 카메라 마사지를 잘 받은건지 이목구비가 더 또렷해 져있는 전정국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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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내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나 하나 보자고 여길 기어들어와?"
저기 전정국씨,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신듯한데, 뭐라 할말이 없네요.. 정국이 짐짓 화난 표정을 내비추며 내 손목을 아프게 쥐었다. 방송사 비상계단으로 갑작스레 끌고나와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데, 그 이유가 어이가 없어서 변명할 여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그니까 내가 지금, 너희 기획자분을 짝사랑하는중이라, 이짓 한달만 하면 내가 아주 멋진 워커우먼으로 보여질 기회라 그래.. 오밀조밀 설명하기엔, 내가봐도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정작 대기실 한편에 앉아 있는 민윤기는 내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아는 체 또한 하지 않았다. 정국을 만난 불행과, 민윤기가 날 알아보지 못한 행운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난 그닥 변명을 하기 귀찮기도 했고, 선배가 한달만 일하는 프리랜서라 말하지 말아달라 부탁한 덕에, 그냥 체념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딱 한달만 전정국 착각을 참아내면.. 선배와 친해 질 수 있다.. 후후 나는 속으로 변태같은 웃음을 흘리며, 잘난 정국의 얼굴을 애처롭게 올려다 봤다.
"난 누나랑 절대로 일 못해요, 당장 그만둬."
그만못둬 임마 이게 어떤기횐데, 난 이제 더이상 너에게 아무련 미련이 없단다.. 제발 내 결백을 믿어주길바라..
"공과사는 구분해 나도.."
최대한 불쌍한 척을 했다. 딱 한달만 버티면 되는데 그것도 못참아주냐.. 오해를 풀어주기엔 이미 나를 저를 7년동안이나 짝사랑한 미련퉁이로 바라보는듯 하여, 그 오해를 풀어내길 깔끔히 포기했다. 지금 말해봐야 내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거다.
이쯤에서, 내 상황을 정리 해 보자면 그래,
아직도 저를 좋아해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해 5년의 노력끝에 간신히 제가 속한 그룹의 메이크업아티스트가 된 줄로만 믿는 만인의 남자 전정국과,
혹시나 나를 알아본다면 지난 3년의 흑역사를 몽땅 지닌 다이너마이트같은 존재가 될 민윤기(현재로썬 날 알아보지 못해 정말 다행이지만.),
그리고 날 이 애견카페 겸, 내 짝사랑 피해자들의 소굴로 몰아넣은 장본인...현재내가 징하게 짝사랑하고있는 일우선배.
그리고 대기실에서 자신의 무결점피부에 한껏 취해 있을 허언증 몬스터.
25년 인생중 가장 험난한 한달이 되겠구나, 난 아직도 날 가만히 노려보는 정국의 시선을 마주하며, 불쌍한 내 인생을 도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