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가 발칵 뒤집혔다. 이유는 이태일.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 온 월중회의. 몇몇 사소한 일들을 빠르게 넘긴 회의는 거의 우지호 위주로 진행되었다. 우지호에 대한 연구에 대해 이태일과 나를 비롯한 연구진들이 발표를 하고, 긴 회의가 끝나갈 무렵. 이태일의 중대 발표가 있었다.
다름아닌 X구역 지하의 거대 동굴 발견.
X구역의 지상과는 달리 지하는 공기도 정상이고 불순물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언제 저런 걸 알아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왜 안 말했냐고 조금 삐지려고 할 때였다. 탐사 계획에 관련된 질문이 나왔을 때였다.
"탐사의 경우 저도 참여합니다."
그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싸해지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나도 당황해서 이태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얌전히 휠체어에 놓인 두 다리를 바라보았다.
정적을 깬 것은 한 연구원이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하지만, 박사님. 다리가 정상이 아니신데 동굴이라는 특성상 탐사가 불가능할텐데요. 그 말에 이태일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굳을 줄 알았는데, 변화가 없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연구원을 바라보는 이태일. 이에 움찔한 건 연구원이었다.
"네, 저는 다리를 쓸 수 없습니다. 특히 동굴이라는 지형은 사지 건강한 성인 남자도 쉽게 탐사하기 힘들죠."
"저, 그게, 박사님. 혹시 기분이 상하셨"
"하지만 저라고 다리를 전혀 쓸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물론 저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기계의 도움을 빌리면 가능합니다. 의족도 있고, 근육에 일시적으로 자극을 줘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물론 제약이 크겠지만, 제가 저 동굴의 존재를 먼저 알아냈을 뿐더러 지금까지는 가장 많은 정보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탐사에 참여할 수 없다면, 이 동굴에 대한 정보는 비공개 처리하겠습니다."
그 말에 또다시 회의장은 술렁였다. 비공개라니, 지금 무슨 소릴 하는겁니까.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이태일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손가락 장난을 치느라 빙빙 돌리고 있던 볼펜이 바닥에 툭 떨어졌지만 주울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연구소장이 입을 열자 회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것 마냥 조용해졌다. 연구소장은 이태일 뺨치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태일을 바라보았다.
"이태일 박사."
"예."
"자신 있습니까?"
이태일이 잠시 조금 날카롭게 변한 눈으로 소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네."
회의가 끝난 후에도 이태일이 남긴 말의 파장은 컸다. 평소에 X구역에 대해 관심은 많은 편이라 동굴이란 말에 피가 쏠리는 기분마저 느낀 나였지만, 아무래도 우지호가 밟혔다. 우지호, 우지호. 김유권 일 이후로 한 번도 못봤다. 보고싶다.
근데 내가 왜 우지호를 보고싶어해?
"아,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주어진 쉬는 시간이라 모처럼 방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입고 있던 스웨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안 그래도 어지럽던 머리가 더 핑핑. 한숨을 내쉬며 책상으로 가 컴퓨터 전원을 켰다.
스크린에 빈 사이트를 띄어 놓고, 뭘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태일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이태일 그 인간이 이 연구소 오기 전에, 서울 사태 있기 전에 무슨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있었다고 하던데. 소문에 의하면 인턴이면서도 큰 규모의 연구에 웬만한 연구원들 못지 않게 활약했다는 얘기도 있고. 하긴 이태일 그 인간이면 그럴 수도 있겠네. 멍청하게 화면만 바라보다가, 그 연구소의 이름을 떠올리려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어디더라?
'한국 H연구소'
검색창에 친 후 엔터키를 누르지만 뜨는 건 기사 몇 개. 보통 기관 이름을 치면 나오는 링크는 없고 그냥 기사와 사람들이 올린 글 정도만 나온다. 연구소 사이트는 사고가 있었던 이후 폭주하는 비난으로 인해 아예 없앤 걸로 기억하는데. 하지만 그 연구소 사이트 자체가 워낙 방대한 정보와 연구 관련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닫았을 것 같지는 않다. 전에 이태일이 몇 번 말한 적 있는 '히든 사이트'라도 되는 건가.
전에 내가 자주 들어가던 외국의 고급 주택 사진을 모은 사이트가 통째로 사라져 절규하고 있을 때, 옆에서 이태일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던진 한 마디가 기억난다. 히든 사이트라도 있나보지, 뭐. 그 말에 며칠을 졸졸 쫓아다니며 히든 사이트가 뭐에요, 히든 사이트가 뭐에요. 계속 물으니 결국 이태일이 소리를 빽 지르며 설명해준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숨겨진 사이트다, 영어 못 해? 어? 일반적인 방법으로 들어갈 수 없고 관계자들끼리 소통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건조한 공기에 잔뜩 튼 입술에 침을 몇 번 묻히며 스크롤바만 올렸다 내렸다 무의미한 짓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인물에 오랜만에 전화기를 들었다.
연구소 안에서는 다들 호출기를 쓰고 그 편이 더 빠르기도 해서 핸드폰을 쓸 일이 별로 없다. 연락 오는 사람도 없고 뭐...3일만에 킨 핸드폰이지만 텅 빈 배경화면이 씁쓸하다. 학교 다닐 땐 인기도 꽤 있었는데. 혼자 툴툴대며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다가 '송민호'를 찾았다.
[어얽, 얽. 크흐. 여보세요?]
"뭐냐, 그 괴상한 소리는."
[목감기 와서 그런다. 니가 웬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 그래. 죽을 날이 온 거냐? 그래, 말만 해. 죽기 전 소원은 들어주마.]
"닥쳐."
[예. 그래, 뭔 일인데.]
"숨겨진 사이트 같은 거 찾아낼 수 있냐?"
[숨겨진 사이트? 웹사이트? 뭔데...아, 혹시 히든 사이트?]
"너도 히든 사이트 아냐?"
[너 나 놀리냐? 내가 컴퓨터만 몇 년을 만졌어. 내가 히든 사이트 유명할 때 뚫은 게 몇 갠데. 아,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찾아보고 싶은 사이트가 있는데, 지금 그 사이트가 폐쇄돼서 없어졌거든. 근데 내 생각엔 여기가 히든 사이트로 아직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
인터넷과는 거리가 굉장히 먼 이태일이 그런 개념을 알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한국H연구소는 애초부터 밖으로 드러난 사이트와 숨겨진 사이트. 두 군데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송민호가 '거기가 어딘데'하고 묻고,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한국H연구소? 어디서 들어봤는데...아, 그 시발 놈들.]
그 연구소가 워낙 안 좋게 기억되고 있어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물론 지식인들은 그 연구소에서 이룬 많은 실험과 업적을 알기에 조용히 넘어가지만 일반인들에게 한국H연구소는 그저 한국을 내리막길로 밀어버린 원흉일 뿐이다. 사태가 일어났을 때 폭락하던 주식들, 현장 복구를 하려다 죽어간 사람들과 어마어마하게 깨진 돈, 껑충 뛰어오른 세금. 서울 통제령을 내리고 허허벌판이 된 곳, 지금으로 치면 X구역 바로 직전의 곳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군인들이 서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했다. 서울에 살던 가족, 친구, 모든 사람을 잃어버린 자들의 시위였다. 그리고 지금은 X구역 근처는 물론, 그 주변 수도권의 인구까지 절반 이상이 빠져나가서 한국의 중심이 사라지고 균등하게 도시에 인구가 분포된 상태이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몇 십년간 지적받던 서울에만 집중된 도시 기능들. 그 고민이 해결된 셈이었다.
한참을 궁시렁궁시렁 욕을 하다가 이내 다시 또렷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놈이 다시 말했다.
[근데 갑자기 거긴 왜.]
"그냥, 내가 아는 사람이 거기서 일했었거든. 근데 궁금한 게 생겨서."
[아는 사람? 아, 전에 니가 말한 이..이 뭐였나. 아무튼 그 키 작다는 박사?]
"어어. 그 박사. 이태일 박사."
[본인한테 물어보지, 귀찮게.]
"물어본다고 대답해주면 큰절 올려야지, 그 인간이 그럴 인간이 아니니까 내가 너한테 부탁하는거다."
[아 근데, 나라고 해서 뭐 천재 해커도 아니고, 그 연구소면 아마 보안도 장난 아닐텐데 어떻게 거길 뚫냐.]
"아까 니가 뚫은 곳이 몇 군데라고 자랑하던 송민호 어디갔냐."
[야, 그건 애새끼들이 허접하게 그냥 만든 거고. 차원이 다르잖아.]
"그래서 못 해?"
내가 묻자 저 쪽은 대답이 없다. 마우스 휠만 드르륵드르륵 돌리다가 한숨을 내쉬며 '알았어'하고 대답하려던 찰나,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볼게, 대신 되면 한 턱 쏴라.]
오케이. 히죽히죽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끄려고 하다가, 화면 구석에서 뜨는 창에 잠시 멈췄다.
이태일 님에게서 메일이 도착하였습니다.
뭐, 니가 왜 내 과거를 캐고 다니냐 이런 내용이면 어떡하지? 아니 애초에 이태일이 그걸 어떻게 알아.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마우스를 옮겨 창을 클릭하자, 메일이 떴다. 우지호와 관련된 문서와 사진 등이었다. 아, 모처럼 쉬는 시간인데. 이 인간은 진짜 모든 사람이 자기같은 줄 알아.
투덜대며 창을 닫으려다가, 사진 하나만 내 바탕화면으로 다운받았다. 받아진 사진을 클릭하자 화면을 가득 채우는 고화질의 사진.
우지호. 증명사진이냐? 웃으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얀 얼굴에 표정하나 없이 가만히 앞만 바라보고 있는 눈. 정리하다 만 듯 조금 어수선한 머리카락과 살짝 벌어진 입술이 귀엽다, 아주그냥.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창을 닫고 전원을 꺼버렸다.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털썩 누웠다. 눈을 감으니 더 또렷하게 생각나는 우지호의 얼굴. 가만히 그 얼굴만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지호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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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글이네여 오랜만이에여..^^...나 보고 싶었어요?그럼 댓글 좀 달아봐요..쿸....ㅈㅅ 이번 편은 뭘 말하려는 건지 저도 모름^^ 아 완결 어떻게 할지는 대충 생각해놨는데 그 전까지의 내용은 어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떻게 하죸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로 제 글은 역시 똥글 제 손도 똥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