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0
화면을 빤히 바라보다가 결국 컴퓨터 전원을 끄고 말았다.
머리가 아프다.
D-25
회의실. 무뚝뚝한 얼굴로 탐사 계획을 발표하는 이태일에게 다들 질렸다는 듯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태일은 차분한 어조로 탐사 인원 총 네 명, 나와 우지호 박경, 그리고 본인의 이름을 말했다.
전혀 의외의 인물들이라 처음 이태일이 나를 따로 불러 탐사 이야기를 했을 때 당황했었다. 고작 네 명이요? 네 명? 그걸로 어떻게, 되요? 이태일은 된다며 또 신경질을 냈고 결국 나는 꼬리를 내려야 했다. 멍한 표정으로 펜만 돌리고 있다가, 건너편에 앉은 박경과 눈이 마주쳤다. 히죽 웃으며 살짝 손을 흔드는 녀석. 좋냐? 가운데 손가락으로 대답한 나는 다시 펜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거 언제 끝나.
D-23
X구역에 가기 전, 아무리 우지호가 있다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며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다. 각자 맞는 활동복을 갖추고, 식량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태일의 다리. 한 달 전 탐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박경을 비롯한 의료진이 매달려 있었고, 드디어 오늘 이태일에게 맞는 의족이 도착했다.
"헐."
"뭐."
이태일이 조금 짜증이 어린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아니, 근데, 이건. 내 앞에 서 있는 이태일. 평소처럼 내려다보지 않아도 보인다. 물론 나보다 10cm는 훨씬 작아보이지만 저렇게 두 다리로 서 있는 이태일은 굉장히 낯설다. 바지 안으로 착용한 의족 덕분에 이태일의 지금 모습은 아무런 장애도 없는 일반인같다. 한 손은 부들부들 떨며 받침대를 잡고 있었지만.
"박사님이 이렇게 서 있는 거 보니까 되게 어색하네요."
"나도 니 면상 이렇게 편하게 보니까 어색하다."
"박사님, 일단 간단한 운동 한 번 해보실게요."
손에 차트를 들고 나온 박경. 이태일이 다시 휠체어에 앉아 재활실로 들어간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무슨 개마냥 헥헥대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김유권이 목발을 짚고 후들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뭐냐, 넌."
"바, 박사님. 저 넘어질"
그와 동시에 바로 앞으로 기우는 녀석의 몸. 목발 하나가 뒤로 휙 날아가고 내가 "야!"하고 김유권의 몸을 받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김유권이 오른손에 꽉 쥐고 있던 목발을 다시 짚어 후들후들 일어난다. 얼굴이 가관이다.
"이민혁은 어디가고 너 혼잔데."
"오, 오늘 바쁘시대요."
"그래서 아무도 없이 이러고 왔냐? 어휴. 저기 복도 끝에서 여기까지 오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이렇게 낑낑대."
"박사님이 제가 되면 아실 거에요."
"사양할게."
그 때, 유리 너머로 '윽'하고 낮은 신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이를 악물고 두 발로 서 있는 이태일이 보였다. 박경이 굉장히 사무적인 자세로 차트에 뭔가를 기록하고, '한 발자국 움직이세요'하고 지시한다. 이태일이 가만히 굳어있던 두 다리를 천천히 움직여 작게 한 발자국 움직였다. 한 번 더. 그 말에 이태일은 인상을 쓰며 한 발 더 움직였다. 굉장히 힘겨워보이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다. 김유권도 입을 헤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사님 다리 전혀 못 쓰시는데, 어떻게 또 걸으시네요."
"의족이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감각조차 없는 다리로 걷는 게 쉽진 않을 거 아니에요."
"너 이태일 성격 몰라? 저 인간은 한다면 하는 인간이야."
"그러게요. 근데 엄청 아프신가봐요. 저건 그냥 힘들어서가 아니라 아파서 인상 쓰는 것 같은데."
가만 보니, 음. 그러네. 얼마나 이를 세게 물었는지 턱 근육이 잔뜩 긴장되어 있고 꽉 쥐고 있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와, 무지 아픈가 보다. 멍청하게 중얼거리는 김유권을 힐끗 내려다 보았다.
"너도 재활 받잖아."
"그래도 저보다야 박사님이 더 아프시겠죠. 전 고작 몇 달이고 박사님은 몇 년인데...편하게 걸으실 수 있으면 좋겠다. 솔직히요, 이태일 박사님 다리가 불편하셔서 지금 생활에 제약을 받고 계서서 저렇지. 사지 멀쩡하셨으면 분명 발로 뛰면서 연구 같은 거 엄청 하셨을 텐데."
"시끄러우니까 너도 재활 들어가, 그냥."
"아아아아아아, 왜요. 아아아아, 싫은데. 아아아아."
내가 때리려는 시늉을하자 그건 또 무서운지 투덜거리며 재활실로 들어가는 김유권.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이태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기운이 쏙 빠진 표정이다.
과연, 저 인간이 갈 수는 있을까.
D-15
우지호에겐 필요없는 일이겠지만, 우리 네 명은 모두 기초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연구소 들어오기 전에 질리도록 받은. 극소량의 불순물이 주입되는 방 안에서 죽다 살아나고 있을 무렵에도 우지호는 밖에서 멀뚱멀뚱. 안에 들여보낸 뒤 불순물을 주입시켜도 멀뚱멀뚱. 너무 멀쩡하다. 부러운 놈.
눈코입 뭐 하나 빠짐없이 벌게져서 기침을 하고 있는 박경, 이태일. 물론 나도 다르지 않았지만. 기계를 작동시키는 안재효가 다가와 물을 건넨다. 헉헉대느라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잠시 멈춰 있으려니, 안재효가 혀를 찬다. 쯧쯧.
D-12
오랜만에 켠 컴퓨터. 참으려고는 했지만 결국 그 사이트로 들어갔다. 송민호가 알려준 접근 방법. 지난 번에도 한 번 들어가느라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딱히 쉽진 않았다.
한국H연구소.
히든 사이트라 그런지 그냥 평범한 굴림체로 크게 적혀 있고 아래에 작은 검색창과 메뉴 등만 정말 간략히 만들어져 있다. 이런 사이트면 나도 만들 수 있겠는데. 가만히 입술을 뜯으며 이것저것 클릭해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애써 피하고 있던 연구로 들어갔다.
이 연구소에서 비밀리로 진행한 연구는 많았다. 하지만 이 연구만큼 규모가 큰 비밀 연구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에 연관되어 있는 사람 중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둘.
D-10
이제는 탐사를 핑계로 우지호와 마음대로 만나곤 했다. 방석에 엎드려 동굴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우지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다시 보고서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낯익다. A4용지에 빼곡히 적힌 검은 글자들을 바라보다가(절대 읽은 게 아니다)다시 우지호를 돌아보니 어느새 눈을 감고 있다.
"자냐?"
"아직."
"그럼 잘 거야?"
"몰라, 졸려."
아, 하여간. 변덕스러운 거 알아 줘야 돼. 자리에서 일어나 '그럼 갈게'하고 나가려는데 놈이 내 팔을 붙잡아 다시 앉힌다. 뭐냐는 듯 쳐다보니 살짝 눈을 떠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연다.
"나 자는 거 보고 가."
"나도 바쁜 사람이야, 인마."
그러거나 말거나. 내 허벅지를 베고 눕는 녀석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마, 불편해. 알았어. 바닥을 더듬어 리모콘을 찾아 조명의 밝기를 최대한 낮췄다. 그러자 한결 편해보이는 우지호의 얼굴. 놈의 머리카락 끝을 살짝 매만지다가, 툭툭 당겨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귀찮다는 듯 팔로 쳐내는 우지호에 또 웃음이 나왔다.
"우지호."
대답이 없다.
"너 몇 살이야?"
여전히 대답이 없다. 자는 건 아닌데, 그냥 대답하기 싫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나. 하긴 괴물이 자기 나이 세는 것도 좀 이상하다. 어두운 불 아래로 보이는 우지호의 얼굴. 볼을 손등으로 살짝 문질렀다. 괴물 주제에 피부도 좋다. 앳된 얼굴에 평온함이 들어차고 색색대며 숨을 쉬고 있는 우지호가 괴물이라는 게 다시 봐도 굉장히 이상하다.
넌 왜 괴물이냐. 인간이면 차라리 편하게 살았을 텐데.
그러고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리가 저려올 때 쯤 우지호의 머리를 살짝 들어 방석 위에 편하게 올리고 불을 완전히 끄고 나서 방을 나왔다.
D-3
"박사님, 안 힘들어요?"
"힘들지, 병신아."
무뚝뚝한 얼굴로 욕을 잘도 내뱉으며 서 있는 이태일. 그래도 처음보다는 좀 낫다. 뒤늦게 재활실로 들어온 박경이 이태일을 보자마자 만면에 웃음을 피우며 입을 열었다. 박사님, 걸어요!
오냐, 고맙다. 쳐 죽여도 모자랄 새끼야. 이태일이 욕을 읊조리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 두 손도 아무것도 잡지 않고 걷고 있었다. 여전히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처음처럼 기계같지도 않고.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이태일은 조금 힘들긴 하지만 뛰기도 하고, 심지어 암벽도 성공했다. 진짜 독한 인간. 박경은 그런 이태일의 모습을 보며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젠 좀 괜찮네요. 처음엔 진짜 어떻게 저렇게 걷나 싶었는데."
"니가 내가 되면 이해할거다."
이태일이 툴툴대며 자리에 앉았다. 감각도 없는 다리를 주무르며 끙끙거리는 이태일. 나는 박경의 차트를 뒤에서 슬쩍 바라보았다. 박경이 아무래도 나보다 작다보니 까치발을 하니 내용이 한눈에 보였다. 이태일의 기록이나 상태가 매일매일 좋아지는 것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라면 동굴 탐사 가도 이태일 아주 날아다니겠네.
"이제 사흘이에요. 사흘 지나면."
박경이 차트를 옆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진짜 제대로 목숨걸고 해야 되요,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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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급해서 똥마무리..ㅠ나중에 좀 고치던가 해야지 저 요즘 컴켜도 이것만써요 이제 얼마 안 남은 느낌에 꽁기꽁기 ㅠㅠㅠㅠㅠ 아ㅓ히낭ㅓ히ㅏㄴ어ㅏㅣㄴ어 수정했따 이허나헝니ㅏ허ㅣㄴ암ㅎ 근데도 다른게없다 그래도 수정전보단 ㄴ..낫겠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