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 홍일점 XI
#1
'전정국도 알고 있을 걸. 아마 이 집에서 너만 몰랐을 거다, 너만.'
김남준은 입만 벌리고 멍한 얼굴로 있는 나에게 나만 몰랐다고 말해왔다. 나는 당장 일어나 전정국의 방으로 쳐들어간다. 씨발! 깜짝이야!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는 전정국은 무시하기로 한다. 나는 지금 할 말이 많다.
"너도 알고 있었어? 근데 왜 나한테는 말 안 해줬어?"
"이게 무슨..."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데? 아니, 어떻게 알았어?"
전정국은 한 손으로 내 입을 잡았다. 조금 낫네. 나는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말하는 전정국의 손을 탁 소리 나게 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입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존나 아프다.
"이거 놔주면 네가 지금 물어보는 게 뭔지, 정리해서, 천천히, 차분하게, 말해."
"......."
"알겠어?"
전정국은 새겨 들으라는 듯이 끊어서 또박또박 말한다. 하지만 나는 전정국의 손을 더 세게 때린다. 빨리 놔달라는 거다. 이건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천천히 말할 필요도 없는 거였다. 전정국은 한숨을 쉬더니 뭔데. 하며 내 입을 놓아줬다.
"민윤기."
"......."
전정국은 내 말에 눈을 세 번 깜박인다. 깜박, 깜박, 깜박. 그리고 전정국은 혀로 입을 축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은 거다. 전정국의 한 팔을 잡고 흔들자, 전정국은 하나하나 내 말에 대답을 해준다.
알고 있었어. 근데 민윤기가 굳이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가 아니라 너한테 말은 안 했어. 언제였는지는, 정확한 건 모르고, 꽤 오래됐다는 것만 알아. 네가 박지민이랑 만나기 전부터가 아닐까 싶은데.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는... 이건 솔직히 모르는 게 병신이지. 그렇게 티를 내고 다니는데.
"...너 지금 내가 병신이라는 거 돌려 말하냐?"
"좀!"
"미안. 계속 말해."
전정국은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긁는다. 나는 계속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필사적으로 끄덕인다. 나 듣고 있어. 말해. 대충 이런 의미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단호하다. 뭘 계속 말해, 이게 전부인데. 전정국은 정말 끝이라는 듯 입을 닫는다. 나는 전정국의 말들을 되짚어보다 다시 묻는다.
"그거 진짜야?"
"이거? 얘가 보는 눈은 또 있어가지고. 어, 정품이야."
나는 지금까지 한 말이 진짜냐고 물은건데, 전정국은 뜬금없이 자신의 손목을 가리키더니 시계 진짜 맞단다. 씨발... 나는 고개를 젓는다.
"내가 지금 손목 시계를 물어봤겠냐? 그거 말고 지금 한 말들. 진짜냐고."
"... 아."
김빠진 얼굴을 한 전정국은 그럼 자신이 지금 소설을 쓴 걸로 보이냐고 타박하더니, 자신의 상상력은 그리 풍부하지 않다는 셀프 디스까지 한다. 그러니까 진짜 맞다고.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괸다. 이렇게 나오는 걸 보니 정말 없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로서는 갑작스러울뿐더러 아직 실감도 잘 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내가 민윤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전정국이 덧붙인다. 정 모르겠으면, 한번 지켜보든가.
"분명 너도 알게 될 테니까."
전정국은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수고. 하고는 방을 나간다. 뭘 수고하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정국이 이미 나간 방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2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노트북을 연다. 인터넷을 클릭해 검색한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할 때. 나만 궁금한 게 아니었는지 아래로 많은 글들이 뜬다. 그 중에 뭐가 제일 낫지... 고민하던 나는 그냥 처음으로 뜨는 글을 누른다.
먼저 연락을 한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최근 통화 기록 들어가 민윤기를 찾는다. 착신. 발신. 착신, 착신, 착신... 먼저 오는 연락이 더 많기는 하다. 그런데 이것도 다 신경 쓰면서 연락을 하는 건가? ... 잘 모르겠다.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다음.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오늘도 자몽 워터를 던지고 간 민윤기다. 아까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만약 김남준이 치킨 먹고 싶다고 하면 돈 아까워 하지 않고 사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꼭 좋아하는 거랑 연결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인상을 쓰며 또 넘어가기로 한다. 다음.
스킨십이 많아진다.
가끔 민윤기가 어깨 톡톡 쳐서 돌아보면 볼 찌르고 갈 때가 있었다. 이것도 스킨십에 포함이 되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가웃한다. 또 다음.
내 행동을 따라 한다.
따라... 했나?
나는 한숨을 쉰다. 정말 이런 걸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는 걸까. 나는 모르겠다.
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분명한 증거는, 함께 있을 때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
영원히 살 수 없으니까 사랑을 하는 거다.
"......."
나는 결국 노트북을 덮는다.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꼭 감는다. 이런 건 나랑 안 어울린다.
#3
학교 앞 문방구에서 돋보기를 하나 샀다. 과학 선생님이자, 예에전에 '이 브라지아 정말 예쁘지 않아요? 선물이에요. 보고 힘내세요!' 하며 내게 프리지아 꽃을 내밀었다가 뺨맞을 뻔했던 호석 선생님한테 혹시 과학실에 돋보기가 있으면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있어도 학교 물건이라 빌려줄 수 없다는 말에 결국 문방구에서 직접 구입한 거다.
"...뭐 하냐."
그리고 나는 문방구 돋보기로 민윤기를 관찰한다. 일단 눈이 두 개고, 콧구멍도 두 개다. 방금 한숨을 쉬었고,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다.
뭐, 정 모르겠으면, 한번 지켜보든가. 전정국이 했던 말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기로 한 거다. 그리고 이왕 지켜볼 거 자세히 지켜보기로 했다. 늘 보는 거지만 참 하얗다. 하얗고... 또 하얗고... 그리고 하얗고. 나는 돋보기를 민윤기의 코앞까지 들이밀고 관찰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수확은 얻지 못했다.
"...그거 이리 내놓고 반성문 써."
그 대신 나는 반성문을 얻었다.
#4
"아이고! 종이가 다 떨어졌네!"
"......."
"이걸 어째! 난 문장 500개 꽉꽉 채워서 쓰려고 했는데 종이가 없네!"
반성문 쓸 A4용지를 모아두던 상자가 텅텅 비었다. 나는 능글맞게 어쩔 수 없다며 돋보기를 들고 다시 민윤기의 주위를 돈다. 오, 여기 점도 있네. 나는 손가락으로 민윤기의 점을 콕 집는다. 민윤기는 한숨을 쉰다.
"분명히 네 입으로 500 문장 쓸 거라고 했다."
"응?"
"내 방에 종이 많으니까 다 줄게."
어, 이게 아닌데. 나는 입을 내밀고 뚱한 얼굴을 하다 창가로 가서 돋보기를 이리저리 돌린다.
"...이번에는 또 뭐 하는데."
"연습 중이야."
반성문 태울 연습. 어떻게 잘 하면 돋보기로 빛을 모아서 종이도 태우던데. 민윤기는 내 뒷목을 잡고 끌고 간다. 나는 민윤기에게 매달린다. 자몽 워터 하나 줄게. 딜? 민윤기는 들은 척도 안 한다. 나는 다시 거래를 시도한다. 아, 대신 오늘 저녁은 내가 할게. 딜? 민윤기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딜. 이번에는 거래가 성사됐다. 대신 돋보기는 민윤기에게 압수당했다.
#5
"어? 선생님이다!"
마트가 원래 만남의 광장이었던가. 혼자는 힘들다는 핑계로 민윤기를 끌고 마트를 도는데, 우리 반 아이를 만났다. 반에서 알아주는 장난꾸러기인 아이는 내가 반가운지 생글생글 웃는다. 혼자 왔니? 아이의 앞에 쭈그려 앉으니 아이는 한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아이의 손 끝에서는 한 여자가 진열대 앞에 서 있다. 어머니인가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를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며 신기해하던 아이는 고개를 들어 민윤기를 쳐다본다.
"... 안녕하세요."
"안녕."
"쌤, 쌤 남자친구예요?"
나는 당황해서 민윤기의 눈치를 살핀다. 그, 그게... 민윤기는 내 손목을 잡고 일으키더니 아이의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누가 아기 싫어하는 거 모를까봐 쓰다듬는 손이 보는 사람도 불편하게 어설프다. 아이는 나를 쳐다본다. 쳐다보는 게 꼭 살려달라는 눈 같다. 나는 민윤기의 뒤에서 소리죽여 웃는다.
"아직... 아직은 아냐, 임마."
"네?"
"너 평소에 선생님 말은 잘 듣냐?"
"...그럴걸요?"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며 대답한다. 자신이 없는 목소리다. 나는 아이를 민윤기에게서 빼내 안아들며 아이의 편을 든다. 그럼, 얼마나 잘 듣는데. 아이는 살았다는 얼굴을 한다. 민윤기의 무표정이 아이에게는 무서웠던 모양이다. 쌤 남자친구 되게 불친절 하시네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아이에 허리를 젖히며 웃는다. 아이는 나와 몇 마디를 더 주고 받다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내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쟤가 뭐래."
"너 싫대."
"잘해줬더니 이상한 말이나 하고, 쪼꼬만 게."
민윤기는 아이의 등에 대고 투덜댄다.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대체 어디가 잘해줬다는 건지 모르겠다.
#6
봉골레 파스타 하나! 삿대질도 하며 이선균 성대모사를 하던 나는 민윤기의 정색에 입을 다문다. 민윤기는 내게 대파를 내민다. 구석에서 이거나 썰어. 웅. 나는 반에서 아이들에게 종종 틀어주던 개똥벌레 노래를 흥얼이며 파를 송송 썬다.
나는야 개똥벌레-. 친구-가 없네-.
예이히예에에에-. 소몰이 창법을 구사하며 열창하던 나는 순간 장난끼가 돈다. 일부러 탁탁 소리나게 칼질을 하다 아! 하는 비명을 지르고 검지 손가락을 부여잡는다. 내가 개똥벌레를 부르든, 개똥벌레로 에미넴 뺨치는 랩을 하든, 신경도 안 쓰던 민윤기는 어느새 내 앞에 서서 내 손가락을 가져간다. 뭐야. 어디 다쳤는데. 민윤기는 눈이 커져서 묻는다.
"... 뻥인데."
"......."
"미안. 네가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
나는 최대한 불쌍한 얼굴을 한다. 근데 진짜 몰랐다. 칼도 내팽겨치고 올 줄은. 두 번 장난쳤다가는 민윤기 손이 다치겠다. 나는 반성문을 쓸 때보다 더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다. 민윤기는 한숨만 푹 쉬고는 뒤를 돈다. 나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다 민윤기의 뒤를 쫓아간다.
"근데... 많이 걱정했어?"
"뭐?"
"내가 다쳤을까 봐 걱정했어?"
"식칼로 목이 동강나서 뉴스에 나오기 전에 조용히 해라."
말 한번 살벌하게도 한다. 나는 미운 얼굴로 민윤기를 째려본다. 민윤기는 나를 옆으로 밀고는 한 손으로 찬장을 연다. 그리고 나는 민윤기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뭐하냐고? 지켜보는 거다. 전정국 말처럼.
하지만 지켜보면 알 거라는 전정국과는 다르게, 민윤기를 지켜볼수록 나는 묻고 싶은 것 투성이였다. 내가 소리 지르니까 바로 와서 살핀 거, 이거 정말 나 걱정해서 그런 거 맞아? 마트에서 의미심장하게 한 말은 또 뭔데? 그리고 너,
"뭘 그렇게 쳐다봐. 얼굴 뚫리겠네."
"......."
"... 사람 심장 떨리게."
나 좋아해?
#7 : 김남준 시점
그녀는 자신의 기분을 숨기지 못하는 편입니다. 지금도 그래요. 말투에서부터 짜증이 묻어나옵니다. 기분이 안 좋은 겁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작업할 때면 이미 예민할대로 예민해지기 때문에 당장 쫓아냈겠지만, 그녀는 다릅니다. 열외예요. 그녀가 누구냐고요? 누구긴요. 제 여자친구입니다.
"언제 끝나?"
"어? 잠시만."
"......."
"... 뭐라고 했어?"
"언제 끝나냐고."
나는 인상을 쓰며 컴퓨터 화면을 보다 겨우 대답합니다. 적어도 세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등 뒤에서는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그럴만도 해요. 그녀가 작업실에 온 지도 벌써 두 시간이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난 밤 9시입니다. 그녀는 여태까지 저녁도 못 먹고 나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그러길래 내가 먼저 먹고 오랬잖아."
"지금 그게 기다리는 사람한테 할 말이야?"
"내가 언제 기다려 달라고 했냐고."
"진짜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너랑 같이 먹으려고 이러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그녀는 내가 기다려 달라고 한 적도 없었지만 그저 나와 같이 먹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버티고 있었어요. 난 오히려 그녀에게 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카드도 쥐여줬습다. 혼자 먹는 게 싫다면 지금쯤 집에서 뒹굴고 있을 토끼 한 마리도 불러주려 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굳이 거절했습니다. 그녀의 날이 선 말투에 나는 입을 다뭅니다. 작업실에 적막이 돌기도 잠시, 민윤기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민윤기는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전화를 받습니다.
"왜. 어, 어. 금방 갈게."
"...무슨 일인데?"
"치킨 먹고 싶대."
나는 얼빠진 얼굴로 민윤기를 쳐다봅니다. 방금까지 한 시간이라도 작업이 늦어지면 밤새야 한다고 성질을 부리던 민윤기입니다. 치킨 먹고 싶대. 주어가 생략된 문장이지만 문제 없습니다. 치킨이 먹고 싶다는 한 마디로 민윤기가 달려가게 만들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뿐이거든요. 당사자만 모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예요. 민윤기는 핸드폰과 지갑만 챙겨 작업실을 나갑니다. 저 새끼는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혀를 내두르며 말하자 소파에 누워있던 그녀가 내 말에 대꾸를 합니다.
"단단히 미친 게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거지."
"......."
"... 누구랑은 다르게."
나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봅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넌 내가 너를 안 좋아해서 이런 거라고 생각해?"
"......."
대답이 없습니다. 나는 한 번 더 묻습니다. 정말 너를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해? 망설이던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덜 좋아하는 건 맞잖아. 나는 질문을 바꿉니다.
"내가 한 번이라도 널 불안하게 만든 적이 있어?"
"......."
"단 한 번이라도 너한테 확신을 안 준 적이 있냐고."
그녀는 느리게 고개를 젓습니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겁니다. 내가 어느 누구보다도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요. 하지만 앞뒤 생각없이 뛰쳐나가는 민윤기를 보니 서운함이 몰려온 모양입니다. 난 민윤기와는 다릅니다. 내가 걔와 똑같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걔랑 연애하는 거죠. 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춥니다.
"전에 말했지.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한 적이 없었다고. 나한테는 네가 너무 중요하다고."
"......."
"그리고 난 중요한 것 앞에서 현실을 먼저 찾는 사람이야."
"......."
"난 같이 배달 음식을 시켜먹느니 너라도 더 영양가 있는 밥을 먹고 오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내 말에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밉니다. 내 눈도 피합니다. 아직도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습니다. 내 손에 다 들어오는 두 손은 이렇게 예쁜데 그녀의 표정은 밉습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서 그녀에게 내 생각이 잘 전해지기 바라며 말을 이어갑니다.
"이게 나고,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야. 민윤기랑은 달라."
"......."
"하지만 방식이 다르다고 널 사랑하는 마음까지 다른 건 아니잖아."
"......."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지는 거야."
"......."
나는 말을 잠시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살핍니다. 눈을 깔고 입을 꼭 다문 그녀는 또 새삼 예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하자."
나는 그녀의 손을 느리게 흔들며 알겠지, 하고 묻습니다. 그녀는 자꾸 고개를 돌립니다. 나는 애교섞인 목소리로 응? 응? 하고 그녀를 따라 움직이며 눈을 꼬박꼬박 마주칩니다. 그러자 결국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습니다. 이렇게 예쁘게 웃을 줄도 알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8
똑똑. 누군가가 내 방 문을 두드린다. 책을 읽던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연다. 김태형이 광대를 뽐내고 웃으며 서 있다. 김태형은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내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다 나를 향해 몸을 튼다. 그리고는 팔을 양쪽으로 벌린다. 나는 인상을 쓰고 김태형을 쳐다본다.
"나 지금 무슨 옷 입었게?"
"...... 어!"
"만져봐도 돼. 특별히 오늘만 이해해 줄게."
나는 김태형이 걸친 옷을 구경한다. 스타벅스 유니폼이다. 김태형의 왼쪽 가슴에는 초록색 로고가 박혀있다. 하루종일 교육 받고 오느라 힘들었어. 김태형은 어깨를 늘어트리며 칭얼인다. 그랬어? 고생했네. 나는 김태형을 안아주며 토닥인다. 키 차이 때문에 내가 안긴 꼴이 되긴 했지만.
"너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는 거야."
"왜?"
"네 덕분에 시작한 거니까."
나는 그제야 김태형에게 막무가내로 시켰던 직업 검사를 떠올린다. 그게 나름의 시발점이 됐나보다. 김태형은 내 책상에 걸터앉아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처음에 김태형이 이쪽에 관심을 보이자 아버지께서 아예 카페를 하나 차려주겠다고 하셨단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자기 힘으로 하고 싶어 혼자 이력서도 쓰고 면접도 보러 다녔다고. 그 동안 우리에게 아무 말 않았던 건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겪었을 일을 뭐가 자랑이라고 말하냐, 싶었단다. 김태형도 참.
"아냐. 난 지금도 충분히 네가 자랑스러워."
"나도 알아."
"야, 네가 좋아하는..."
민윤기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다 우리 둘을 발견하고는 말을 멈춘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다. 쟤가 왜 저러나 생각하다 문득 내가 아직도 김태형과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태형, 나가서 반성문 써."
"힝..."
"네가 말이야? 히잉 거리면서 울게? 두 장 써."
김태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민윤기를 째려본다. 그리고 뭔가 다짐한 얼굴로 '그래! 말이다!' 하고 소리친다. 김태형은 자신의 엉덩이를 내려치며 이랴! 하더니 입으로 다그닥 소리를 내며 방을 나선다. 다그닥, 다그닥, 민윤기 존나 그닥! 민윤기는 머리를 짚고 한숨을 쉰다.
#9
민윤기의 작업실에서 김태형의 첫 취직 기념 자축 파티를 하기로 했다. 빨리 나와! 전정국이 거실에서 재촉한다. 김태형은 스타벅스에서 바로 작업실로 간다고 했고, 김남준과 민윤기는 아침부터 가 있었고. 나는 전정국의 차를 얻어 타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별로 좋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어쨌든 지금 나는 을이므로 얼른 짐을 가방에 쑤셔넣고 양 손에 쇼핑백을 든 채 방을 나선다.
"그거 내놔."
"왜!"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나는 손에 쥔 쇼핑백들을 전정국에게 넘긴다. 탬버린, 트라이앵글, 소고... 물건들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전정국은 한숨을 쉰다. 전정국이 가장 바닥에 깔려있던 단소를 꺼낸다. 나는 급하게 전정국의 손목을 잡는다.
"이건 진짜 안 돼. 오늘을 위해서 김태형 헌정곡을 만들었단 말이야."
"......."
"... 그리고 단소가 메인이야."
전정국은 고개를 저으며 내 손에 단소를 쥐여준다. 오예.
#10
"... 존나 눈물나네. 고마워."
김태형은 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음이 '태'뿐인 단소 연주를 듣고 눈물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민윤기는 내 연주가 끝나자마자 기립 박수를 쳤다. 우리 하숙집 아이들이 점점 사람이 되어간다. 나는 만족한 얼굴로 단소를 내려놓는다.
작업실의 바닥에는 술병이 나뒹굴지만, 내 앞에는 맥주 한 캔뿐이다. 이게 나에게 떨어진 최대 허용치다. 존나 웃긴다. 나는 발끈해서 단소가 살인 도구가 되는 현장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김남준이 내 입에 치킨을 쑤셔넣는다. 다리니까 봐준다. 나는 만족한 얼굴로 치킨을 뜯는다. 아까부터 내 쇼핑백을 곁눈질 하던 김태형이 묻는다.
"단소는 그렇다치고, 가방은 또 뭐가 들었길레 그렇게 빵빵한 건데?"
"기대하시라!"
나는 소파 위에 고이 올려뒀던 백팩을 연다. 며칠 전에 빨아뒀던 동물 잠옷을 하나씩 꺼낸다. 그러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섬유 유연제 넣고 빨아서 향기도 엄청 좋을 거야."
"......."
"......."
"그렇다고 너무 감동받은 표정 짓지는 말고."
조금은 쑥쓰러우니까 말이다.
#11
나는 비장하게 노트북을 켠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노트북에 이어폰을 꼽는다. 그리고 영상 재생. 처음에는 검은 화면만 뜨던 영상에서는 쭉쭉 빵빵한 언니와 오빠가 나란히 누워있다. 호오... 나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없다. 나는 안심하고 영상에 집중한다.
"흡! 으어어... 오우... 오우! 세상에 마상에! 오우!"
"......."
"......."
순간 방문이 열리고 나는 화들짝 놀라며 노트북을 닫는다. 전정국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뭐, 왜. 괜히 찔린 나는 말을 툭툭 뱉는다.
"테이프로 입을 막고 보든지, 그게 안 되겠으면 보지 말든지."
"내... 내가 뭘 보는데!"
"순수한 척 한다, 아주. 야동 말고 네가 오우! 거리면서 볼 게 또 뭐가 있어."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어떻게 알았지... 전정국은 입을 꼭 깨무는 날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방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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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몽들 ♡ |
ㄱ / ㄲ 가로세로 / 가온 / 감자오빠 / 개구락지 / 개빛살구 / 고답이 / 골드빈 / 공룡잇진 / 공배기 / 공주님93 / 귀요미등장 / 꼬부기 / 꾸꾸 / 꾸꾹 / 꾸아바 / 꾸욱 / 꾹쿠 / 꿀슈가자몽 / 꿍징 / 뀹쁍뀹쁍 곤약 / 귤콩 / 그여름과새벽 / 깔깔이 / 깻잎사랑 / 계란두뷰 / 꽁뇽 / 꽃구름 / 꾸꾸리타 / 끼랑까랑 / 낑깡낑깡 ㄴ 나의별 / 낰낰 / 내마음의전정쿠키 / 냐냣 / 냠냠이 / 너라는별 / 너만보여 / 너만볼래♡ / 노량 / 녹차 / 녹차맛콜라 / 눈꽃 / 눈꽃ss 나의 그대 / 낙엽 / 남준이보조개에빠지고싶다 / 냥닝늉 / 누누 /니나노 ㄷ / ㄸ 다송 / 단골 / 달려라망개떡 / 달력 / 대나무죽순맛 / 더위사냥 / 도로시 / 돌고돌아서 / 두부 / 듀크 / 디즈니 / 딘시 / 딸기우융 / 또르기 / 또이 / 뚱이 / 뜌 달뉴 / 도로시 / 둥가둥가 / 들국화 / 띠리띠리 ㄹ 라온하제 / 란덕손♥ / 레몬우워터 / 레몬워터 / 레몽자몽 / 레인보우샤벳 / 록산느 / 롸롸롸 / 룰루랄라 / 리자몽 레몬워터 ㅁ 마루 / 마루나루 / 망개 / 망개구름 / 망실/ 망탄 / 모찌 / 못생긴늉이 / 몽몽이 / 몽자 / 무네큥 / 무리 / 뮤즈 / 미니꾸기 / 미니핀 / 민신합 / 민윤기 / 민윤기최고존엄 / 민융기요미 / 민이 / 밍구짱 / 밍뿌 마티니 / 망망앙 / 멜팅 / 뮹기 / 민슈프림 / 민윤기다리털 / 밍기적 ㅂ / ㅃ 바나나 / 바다코끼리 / 바라바라붐붐 / 발랜트 / 방실방소 / 버뚜 / 번개장터개 / 벌스 / 베스킨라인 / 보고파 / 보라도리 / 보호 / 부띠끄 / 부산의바다여 / 뷔티뷔티 / 블루베리라떼 / 블라썸 / 비데 / 비비빅 / 빠밤 / 빠삐코 / 뾰로롱♥ / 뿌꾸뿌꾸 / 뿌빠빠 / 뿡뿡이 / 쀼뀨쀼 밤이죠아 / 밥먹고통통 / 방방이탄 / 벨리움 / 보로롱 / 브금 / 블루 / 빨빨 / 삐요 ㅅ / ㅆ 새벽별 / 새슬 / 새싹이 / 설레임 / 세젤예세젤귀 / 소다 / 수박맛 사이다 / 숙자 / 숩숩이 / 숭 / 슈가는슙슙 / 슙크림 / 스타워즈굿 / 스틴 / 쓴다 살사리 / 샤랄라 / 수시대박나자 / 슉아블리 / 스페셜캔디 ㅇ 아빠안잔다 / 안녕엔젤 / 알빱 / 액희 / 양갱 / 에리얼 / 에인젤 / 엔프라니 / 엘런 / 여니 / 여지 / 연꾹 / 연꽃 / 연이 / 오늘부터 윤기는 / 오드리에 / 오빠미낭낭 / 옮 / 요2 / 웃음망개짐니 / 유너무너 / 윤기나는 / 윤기는슙슙 / 윤기윤기 / 윤치명 / 융기발랄 / 은박지 / 일일구1 / 입틀막 ㅇ〈-〈 / ㅇㅅㅇ / 아리 / 아이 / 아이라잌치킨 / 앨리 / 에디 / 여름겨울 / 연찌 / 요를레히 / 우유 / 유루 / 이불자리 ㅈ / ㅉ 자몽C / 자몽소다 / 자몽에이드 / 자몽워더 / 자몽자몽 / 자몽청 / 자몽해 / 잘자네아무것도모르고 / 쟈가워 / 저기여 / 전아장 / 정쿠키런 / 정꾸기냥 / 제이 / 준나 / 쥬르주스 / 지민즈미 / 진이진 / 짝짝 / 짱좋음 / 쩌리 / 찌밍지민 종이심장 / 지민이랑 / 지팔 / 짱다리 ㅊ 착한공 / 참기름 / 참치미 / 책가방 / 청보리청 / 청아 / 초록매실 / 초코찐빵 / 충전기 체리체리 / 초코틴틴 / 치자꽃길 / 침멍 / 침침니 ㅋ 캔디 / 컁컁 / 코드마인 / 코코볼 / 쿠마몬 / 쿠쿠옹 / 쿰아몬 / 큐울 / 크림빵 / 크으으으 커몬요 / 코맛 / 코코파미 / 쿄이쿄이 / 쿠우쿠우 ㅌ 태태 / 태태자몽쓰 / 팅팅탱탱 택부 / 토토잠보 / 트리플엑스 / 특별한너 ㅍ 팥빵 / 펩시 / 푸롱리 / 프로테아 / 프우푸우링 / 플렉시 / 플루나 프로자몽러 ㅎ 하루자몽 / 하지 / 핫초코 / 허니인더자몽 / 헹구리 / 호비 / 홀리 / 홍합 / 환타 / 황새 / 흥흥 / 흰색 하바나콩 / 홍시 / 홍홍 / 화라 / 휘이니 / 흰색 / 힐러 # / A - Z @자몽@ / @지민윤기@ / #자몽자몽이 / 74 / 132 / 777 / 0121 / 0331 / 0815 / 0894 / 0997 / 1022 / 1209 / 21세기 / 8ㅁ8 / 8월디디 / EHEH / Kuky !@계란말이@! / ♥심슨♥ / 1600 / 5반 25번 / Hollywoodstar |
암호닉은 더 이상 받지 않습니다.
다음 기회에 신청하겠다고 했던 자몽들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TT
자몽이들 잘 지냈나요! 너무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있는 동네는 지금 비가 오는데, 혹시 비를 맞은 자몽이는 없었나요? 안그래도 추운데 비까지 맞으면 답이 없습니다. 몸 잘 챙기구 옷 많이 껴입구!
오늘은 좀 깔끔하게 사담을 써볼까 합니다. 할 말이 조금 많아서 이렇게라도 정리를 하보려고... 그럼 가볼까여!
a. 암호닉을 받지 않는 이유
앞으로 두 개의 글만 더 올라가면 하숙집 스토리가 끝납니다. 사실 다음 글에서 완결을 내려 했으나 오늘 분량 조절 fail이쟈나... 아무튼 이렇게 완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기에 암호닉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한 자몽이 자기만 아는 암호닉이라며 글에는 없어도 계속 달고 오겠다고 했는데, 그거 되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이름을 달고 오면 제가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다 내 사랑이쟈나...❤️
b. 태형이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던 태형이! 사실 지금 같은 시기에 개인적으로 금수저 캐릭터를 넣고 싶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지만, 부모님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려는 태형이라면야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저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니까요.
수저 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 SO WHAT~ (랩몬빙의)
c.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하자.
남준이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오늘 분량 조절 실패의 가장 큰 원인... 그래도 좋쟈나! 따로 특별편에 넣으려고 했으나 하나의 글이 되기에는 부족할 것 같아 글 안으로 쏙 넣었슴다! 사실 저 말은 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언젠가 초록글이나, 댓글 수에 신경을 쓰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제 자랑은 초록글도, 댓글도, 추천도 아닌 우리 방탄이들과 독자님들인데 말이에요. 그쵸?
d. 혼란을 준 것 같은 지난 사담...
많은 말들이 나왔는데여... 죄송해요... 사실 너무 다 티낸 것 같아서 아닌 척 좀 하려고 했어요.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그게 그겁니다. (그게 뭔데) 남준이와 태형이를 넣겠다는 욕심에 윤기와의 이야기가 - 또 - 미뤄졌습니다. 그래도 다음 편에는 확실한 진전이 있을 거라고 이 연사 목놓아 외칩니다! 다 말한 김에 자몽이들이 기억해주면 좋을 것 같은 떡밥? 밑밥?을 하나 풀자면, 지난 편에 나왔던 해와 바람의 대결 이야기인데여! 이 발언이 또 혼란을 몰고 오지는 않겠죠? 걱정걱정...
e. 근데 저 진짜 말 많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몽이들을 보면 없던 말 보따리들이 어디서 그렇게 생기는지... 결론은 늘 같습니다. 오늘도 사랑해요. 참, 그리고 오늘도 말 많이 하구 가요!
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 수고한만큼 단 잠 자요. 구빰구빰!
BGM : Addi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