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written SOW.
자그마한 새가 소리쳤다. 그가 돌아왔노라고. 숲 전체에 울려퍼지고 나서야 새들은 바삐 움직였다. 잡히면, 죽는다.
잡히지 않아도, 죽을껄.
나뭇잎 한 장 마저도 불태워버린 악마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숲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수많은 희생을 낳고서야 낳아진 아이.
드디어, 내게로 와주었구나.
나의 아이야.
5. 아이가 악마의 서재에서 놀 때.
태형님, 언제까지 책만 보고 있을 거에요. 어느 새 18살이 된 여주가 말했다. 성인식이 고작 2년 남은 아이치곤 여주는 순수했다.
태형이 지금 보고 있는 책이 29금 이라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볼을 붉히며 어수선하게 방을 나갈 것이다. 마침 주인공이 절정에 달하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태형의 친구, 지민의 책이었다. 지민은 태형과는 다른 구역의 악마로 대악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만한 급은 아니었다.
대악마인 태형과 석진이 드문 거지, 지민의 가문은 꽤 상급에 속했다. 그런 상위 가문의 자제인 지민이 이런 책을 낸다는 게 마계에 알려지면 아마 지민은
파문 당할지도 몰랐다. 지민이 이런 책을 쓴다는 건 태형과 몇몇 악마들만이 알 뿐, 다른 이들은 그저 익명의 작가인 줄만 안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열심히 읽어요?"
" ‥ 유명한 책."
유명하긴 유명했다. 지민이 낸 책 중 가장 히트를 쳤다고 봐도 무방한 책. 히트를 친 이유를 물었더니, 지민은 이렇게 대답했다.
여주인공을 여주로 모티브 삼았거든. 물론 태형에게 얻어맞았지만, 18년간 참아온 태형의 작은 위안이 되어준 엄청난(?) 책이었다.
태형에게 여주가 소중한 존재이기도 했지만, 태형 역시 악마라, 추악한 본성은 어찌 감출 도리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여주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자신을 보며 태형은 자신의 추악함을 깨닫는다. 지금도 여주를 그리며 책을 보고 있었더니 제 앞으로 와서 말을 거는 여주마저 색기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아, 이러지 말자.
"뭔데요? 저도 읽어볼래요."
"넌 안돼. 넌 구독 불가야."
"에, 야한 거에요?"
"응."
태형도 남자구나! 앞뒤 문맥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주의 말에 태형이 오히려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볼을 붉히며 허둥지둥 나갔을 여주 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태형은 읽던 책을 접어 고이 책상에 올려 놓았다. "Tous les jours " 매일이라는 뜻의 책 표지가 드러났다.
하여튼, 변태가 따로 없어 박지민.
"이거 처음보는 거 같아요. 무슨 뜻이에요?"
" ‥ 어?"
"무슨 뜻이냐고요."
아직 까지도 책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태형은 몽롱한 기운을 감추지 못하고 여주에게 되물었다. 아, 오랜만에 잠이나 잘까.
"매일."
"흠, 매일? 매일 뭘 하는데요?"
" ‥어,어? 뭐라고?"
"뭘 하냐고요, 매일."
여주가 씨익 웃었다. 이거, 완전 변태 다 됬네. 태형은 자신이 여주 때문에 이렇게 까지 당황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알면서 물어보는 거 같기도 하고, 정말 모르는 거 같기도 하고. 도통 여주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태형은 이내 제 페이스를 되찾고 여유 만만하게 웃었다.
뭐겠어, 여주야.
" ‥."
"이 책에는 남자 악마와 인간 여자가 나와."
"‥."
"그리고, 이 책은 29금 이지."
"아‥."
"뭐가 나올 거 같아?"
6. 아이가 악마를 속일 때 (1)
태형은 언제나 그렇듯, 아침 - 이라기엔 애매하지만 태형이 깰 시간- 에 여주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을 잘 안 자는 태형이 자는 날이면
태형이 깰 시간에 맞추어 여주가 깨우러 오곤 했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물었었다. ‘ 처음 보는 얼굴이 나라서 좋죠? ’ 하고.
그런데, 왜 자신이 깼는데도 깨우러 오지 않는 걸까. 태형은 그래도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도 많이 피곤 했나 보지 뭐.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그래도 안 깨우러 오면 내가 깨우러 가야지.
태형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베게에 얼굴을 묻었다. 오랜만에 잤더니 기분이 이상했다. 인간을 좋아하는 여주는 인간과 비슷한 삶을 살길 원했다.
그래서 항상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났는데. 자신도 그런 여주에 물든 건지 언젠가 부터 '잠'이 자고 싶더라. 여주를 만나기 전까진 잠 자는 게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태형은 제 금발 머리를 이리저리 헤집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안되겠다. 아가 생각하니까 보고 싶어졌어.
태형이 문을 열고 나갔다. 자신을 반기는 건 조식을 내오던 집사였고, 자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조식을 받으니 아마 여주도 지금쯤 일어나
조식을 먹고 있을 것이다. 태형은 제 흐트러진 모습을 주문으로 정리하고 집사에게 조식을 물리라고 했다. 그리고 꽤 빠른 걸음으로 여주의 방에 들어갔다.
아가, 나 들어간ㄷ….
없었다. 여주의 침실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나간지 얼마 안되었는지 아직 침대에 온기는 남아있었다. 뭐야, 어딜 간거야.
짜증난다는 듯, 입술을 한 번 짓이긴 태형이 집사를 크게 불렀다. 그에 순식간에 날아온 집사가 부르셨냐며 대답했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득달같이 묻는 태형에 집사가 휘청 거렸다. 아, 아가씨요? 조식 들고 정국님이랑 정원에 … 태형님!
뭐? 전정국이랑 정원에? 나를 깨우러 오지도 않고?
태형의 날개가 펄럭였다. 반도 펼치지 않았지만 태형의 날개가 펄럭임과 동시에 복도에 걸려있던 촛불들이 꺼졌다. 낮과 밤이 어중간한 마계에선
촛불을 썼는데, 그게 꺼져 버리자 복도가 밤이 된 듯 했다. 그래서 태형이 더 무서워 보였다. 물론 집사에게는.
*
태형이 소유욕이 원래 많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본래 악마들은 욕심이 많은데, 태형은 태어나자마자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자랐으니 딱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그저 그런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었다. 그런 태형에게 욕심을 안겨준게 바로 아이, 여주였다. 오직 자신의 것 이라고만 생각했던 여주가
태형을 깨우러 오지도 않고 정국과 조식을 먹으러 정원에 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태형은 곧바로 정원으로 날아갔다. 그야말로 '날아'갔다.
정원에 착지 한 태형은 태형의 날개 덕에 그릇들이 모조리 날아가 여주의 드레스에 스프가 떨어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제 드레스에 스프가 떨어져 흐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태형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주, 조용히.
"앞으로,"
"…."
"24시간 동안, 2m이내로 다가오지 말아요."
그 말이 너무 고요해서, 옆에 있던 정국마저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근데 그걸 직접 들은 태형은 어떨까,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물론 자신이 잘못한 건 맞지만, 먼저 다른 남자(?)와 놀아난 건 여주가 아니던가. 반박하려 입을 벌린 태형은 이미 떠나버린 여주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아 ‥ 어떡하냐.
*
태형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정국에게 딱밤 하나를 놓아주곤 곧바로 여주를 따라갔다. 보폭이 좁다고 놀렸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다 커선 치맛자락을 날리며 고고히 걸어가고 있었다. 새삼 아가가 성인이 다 되어간다는 게 느껴져 심장이 떨렸다고 하면, 난 변태인가.
남몰래 귀를 붉힌 태형이 급히 여주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가.
" ‥."
화내는 게 차라리 나을 텐데. 여주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울려고 해.
" ‥, 이거 남준님이 사준 건데."
"그래, 걔가 사준 거지."
"근데 태형님이 더럽혔잖아요."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레스인데."
"아 ‥."
"미워하기 싫은데, 오늘은 좀 밉네요."
태형은, 차마 멀어지는 여주를 다시 잡지 못했다. 남준이 여주에게 준 드레스가 어떤 의미인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김남준. 전 마왕이자 현재 마왕 자리를 던지고 인간계로 가버리신 분. 지민은 "Tous les jours " 라는 책을 여주에게 영감을 얻었다고 했지만,
사실 그 소설은 남준과 남준의 그녀가 모티브였다. 남자 악마와, 여자 인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었으나, 남준은 그걸 가능케 했던 인물이었다.
남준은 여주를 많이 아꼈다. 태형은 그걸 싫어했지만, 여주가 남준을 잘 따랐기에 참았는데. 여주가 남준을 각별하게 생각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정국을 만나기 전 부터 남준과 여주는 친구처럼 지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남준은 여주의 눈높이에 맞춰 잘 놀아줬었다.
유일하게 태형 자신이 못하는 걸, 남준은 잘도 해주었다. 여주에게 남준은, 처음 사귄 친구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남준이 인간계로 영영 떠나버렸으니,
마지막으로 선물 받은 드레스를 애지중지 할 수 밖에.
"아, 이걸 어떻게 풀어줘."
7. 아이가 악마를 속일 때 (2)
태형은 자존심 상하지만 여주의 유일한 또래인 정국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그 상대가 정국이라니. 기분이 더러웠지만 자신의 상식만으론 여주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여주가 원하는 걸 해주는 건 어때요?"
"학교면, 절대 안돼."
"아니요, 그거 말고요."
"뭐."
"인간계."
"안돼."
아, 이러면 안되는데. 정국은 약 3시간 전 들은 여주의 계획을 실천하려 노력해보았지만, 태형은 철벽같았다.
얼마 전 부터, 는 아니고 정국 자신이 여주를 만난 10살 때 부터, 여주는 인간계에 가보고 싶다, 며 말해왔었다.
가서 자신도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학교다니고 싶다고. 그래서 여주가 세운 계획은 이거였다.
태형의 약점을 잡아, 인간계를 탐험하는 것. 마침 태형이 여주가 아끼는 드레스에 스프를 쏟아부었겠다,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됬다.
하지만, 태형은 단호했다. 하긴, 마계 내 학교 다니는 것도 질색하는 태형인데. 여주를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인간계에 보낸다는 건 태형이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뜻일 거다.
"그럼 여주 화는 어떻게 풀어주실 건데요."
" ‥ 씨발."
"다른 방도라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태형은 튀어나온 제 뿔을 꾹꾹 넣었다. 화만 나면 나오는 제 뿔마저 한심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전정국이랑 둘이 조식 먹는게 뭐 어떻다고 날개를 펼치냐, 펼치길. 아니, 하필 오늘 김남준이 선물한 드레스를 입을게 뭐람.
태형은 결심했다는 듯, 앉아 있던 폭신한 의자에서 일어나 여주의 방으로 향했다. 일단, 사과부터 하고 보자.
8. 악마가 아이가 자신을 속인 거라는 걸 알았을 때.
"잘못했어요 ‥."
"누가, 나 속여 먹으래."
"‥."
"전정국, 넌 내가 아가 이런 짓 하는 거 도와주라고 너 살려둔 줄 알아?"
"아니요."
"네가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겠네. 맞지?"
" ‥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태형이 여주의 앙큼한 계획을 들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 태형이 여주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여주는 나가라고 단호하게 말했고,
태형은 여주의 차가운 태도에 충격을 받고 방으로 돌아갔고, 그 틈을 타 정국이 다시 여주와 얘기를 하던 중 다시 돌아온 태형에 의해 발각됬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고.
"정국이 건들지 말아요."
"너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전정국을 감싸네.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지?"
" ‥,"
"진작에 죽일 걸 그랬어."
악마. 인간에겐 두려움의 상징이다. 인간인 정국에게 그냥 악마도 아닌 대악마인 태형은 두려움이 아니라 공포, 그 이상을 상징했다.
겨우 생을 연명해온 정국에게 여주가 있는 마계는 꽤나 즐거웠는데, 여주로 인해 죽을 위기이니. 정국은 착잡함에 몸을 떨었다.
"그렇게 인간계가 가고 싶으면,"
"‥."
"지금 당장 전정국이랑 떠나."
충격 받은 듯한 여주의 표정을 뒤로 하고 태형은 인간계로 통하는 마법진을 순식간에 그려냈다. 1,2,3. 3초만에 열린 마법진이 정국과 여주를 끌어당겼다.
태형 ‥!
"혼 좀 나봐야지, 우리 아가."
태형은 제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정국과 여주를 뒤로 하고 아까 물린 조식을 먹으러 향했다.
.
.
.
.
.
.
뭐여, 반응 좋아서 하나 더 올리구 가여. ㄳ해여 항상.... 이런 글에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다들 사랑합니다.
이거 모바일로 보면 한 쪽으로 쏠리죠? 미안해요 그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수정 못했어여... 사랑합니다...
암호닉 원하시는 분들 있던데 이번 화부터 받을게여... 아직 수위 나올 부분이 아닌거 같아서 공지는 나중에 !
포인트 오른거 미안해요..!
+ 아 ㅏ 빨리 디마보랑 연애의 온도 완결ㄴㅐ고 버뮤다 가져오고 싶네여 증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