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서큘레이션!
: 내 사랑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아.
A
- 나는 사실 모태솔로다.
나는 모태솔로다. 나는 내가 모태솔로인게 부끄럽지 않다. 그냥, 지지리도 운이 없어 연애를 못 했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내가 신체에 무슨 이상이 있거나 얼굴이 못생긴 것도 아니었으니깐. 그리고, 얼굴로만 보고 판단하고 사귀는건 서로가 좋아서 사귀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얼굴은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그냥 흔한 얼굴이다. 그렇다고 난 짝사랑을 한 적도 없다. 아, 딱 한 번 있다. 유치원 때에 같은 반 철수를 좋아했다. 그냥 그땐 철이 없어서 대장같은 아이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인 그냥 진상이었다. 흔히 말 해서 가오 잡는다구 하지. 그냥 질색이었다, 질색 그 자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전부 남자애들과 같은 반, 같은 학교를 다니는 남녀공학이었지만, 그 중에서 내 이상형이라는 사람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그냥 내 눈엔 전부 가오 잡기 위해서 안달난 사람들처럼 보였다. 전부 다 시시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교는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아슬아슬 턱걸이로 입학 할 수 있었다. 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대학교는 잘생긴 남학생들이 잘 다닌다고 했다. 괜히 그래서 기분이 두근거렸다. 중고딩 때와는 다른 남자 사람들이 다닐까봐. 내 인생에도 벚꽃이 피는가 했다. 괜한 상상에 빠져있었다, 그 땐.
내가 사랑에 빠진 거 같았을 땐,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과끼리 모여서 신입생 자기소개 겸 과 총장 님을 만나뵈는 자리였다. 그게 고깃집에서 이루어질 줄 몰랐지만 과 단톡방에 올라온 주소로 가니 익숙한 고깃집이 보였다. 일찍 온 건지 우리 과 예약석으로 보이는 곳엔 신입생들밖에 없었다. 아마도, 모두가 다 쫄았던 거였지. 아니, 어휘를 순하게 만들면 군기가 바짝 올랐다고 할까. 이것도 그닥 순하진 않다. 나는 그냥 제일 가까운 자리에 앉자 그 옆에 한 남자아이가 내 팔을 툭툭 쳐왔다. 귀찮아서 휴대전화만 만지고 있었을까.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사람이 부르는데 왜 반응을 안 하냐."
"초면부터 반말은 실례 아닌가?"
"보아하니 우리랑 같은 동기 아니야?"
"맞긴 한데. 아니었음 어쩔려고."
"사과하면 되는거지, 뭐."
얘도 뭐 재수없기 그지 없었다. 첫인상은 그랬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 명을 제외하곤 전부 남자 동기들이었다. 여동기들은 다들 치장하느라 바쁘겠지. 그나저나, 날 부른 이유는 뭐였지. 왜. 하고 말하자 그 아인 갑자기 내게 손을 건네왔다. 뭐 가위바위보라도 하자는 건가. 조심스레 가위를 내미니 그 아이는 푸핫, 하고 웃었다. 뭐. 뭐. 밉지 않게 그 아이를 째려보니 그 아인 웃으며 내 손을 이끌어 악수를 해왔다. 아, 악수를 하려던거였어?
"난 김민규. 4년동안 잘 부탁해."
"어, 난 이너봉. 나도 잘 부탁해."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그 아인 첫인상만 차갑기 그지 없었던 거였다. 차갑기는 개 코로 차갑네. 김민규라는 아이는 흔히 말하는 멍뭉이상이었다. 아니 작고 귀여운 강아지라기는 덩치가 너무 크다. 대형견? 늑대? 그래, 늑대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대형견이 더 마음에 들겠지. 그래, 앞으로 네 별명은 리트리버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만난 아이들마다 별명을 지어줬다. 그게 너무 즐거웠으니깐, 그랬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민규랑 대화하고 있자 우르르 선배님들과 동기들이 몰려왔다. 마치 한 마음 한 뜻으로 온 것처럼. 나랑 민규는 일어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이러니깐 무슨 조직들 모여서 회의하는 거 같구... 그러네.
"어, 다들 앉아."
"네, 선배님."
보아하니 저 사람이 과 총장인 거 같았다. 과 총장, 별 거 아니네. 4학년 됐을 때 한 번 해볼까. 이런 영양가 없는 생각만 하다보니 신입생 환영회가 지루해졌다. 언제 끝나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 무료함을 깨려는 듯 한 여선배가 일어서더니 박수를 치며 말했다. 우리 후배님들 목소리 들을 겸 자기 소개 해볼까? 아마도, 저 선배는 인기 많겠지. 성격도 좋아, 외모도 반반한 편이고. 몸매도... 응, 좋네. 그저 앞에 물잔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을까. 아까 그 여선배가 날 가르키는 듯 날 보며 말하는 거 같았다.
"우리 저기 물잔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부터 말해볼까?"
"에, 저요?"
"응, 여기로 나와."
이런 건 딱 질색이다.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거. 선배님 말인데 안 따를 수는 없고... 그래서 그냥 앞에 나왔다. 큼, 큼. 목을 가다듬고 있었을까. 민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예쁘다!"
쟤 왜저러는거야... 귀가 붉어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17학번 이너봉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말이 끝나고 인사를 하자 선배님들의 질문 소리가 들렸다. 이거 뭐, 기자간담회도 아니고. 한 선배가 저요, 저요.를 외치며 세상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자 이 모든 진행을 주도하는 여 선배가 그 선배를 가르켰다. 그때 내 심장은 마구잡이로 두근거렸다. 이건 뭐... 첫 눈에 반했다고 말 해도 손색 없다. 나는 그 선배한테 첫 눈에 반했다.
"15학번, 권순영 선배야. 너봉이 혹시 남자친구 있어?"
질문에 당황하길 한 번. 순영 선배의 말에 다들 궁금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것에 두 번. 민규 마저도 궁금해하는 거 같음에 세 번. 나는 총 세 번 당황했다. 앞서 말했듯 난 모태솔로인게 부끄럽진 않다. 근데, 뭔가 여기서 말하면 수많은 질타를 받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 없어요. 모태 솔로..."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응? 뒷이어 들려온 순영 선배의 말에 어이가 지붕 뚫고 대기권 밖으로 날아갔다. 이게 무슨. 그에 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단체로 저 수치플 시키는 건가. 앞에서 진행을 맡은 여 선배가 나보고 들어가라고 하자 나는 씨익, 씨익 콧김을 뱉으며 내 자리로 갔다. 날 보며 키득 웃는 민규에 허벅지를 때리자 아악, 하고 탄식을 뱉었다. 정말로 쪽팔린다. 심지어 첫 눈에 반한 선배가 그런 말하니깐 더 쪽팔린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싶다. 컵에 담겨져 있는 물이 술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민규의 소개 차례가 다가오자 여 선배들은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 인정하긴 싫지만, 민규는 잘생겼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잘생긴건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17학변, 김민규라고 합니다."
"이야, 잘생겼다."
모두들 잘생겼다라는 말만 듣고선 민규는 소개를 마쳤다. 부럽네, 나는 수치스러웠는데. 쓰읍, 하는 소리를 내곤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이 너무 시원해서 눈물이 다 나왔다. 다음생엔 엄청 예쁜 여자로 태어나야지.라는 생각만 했다. 민규가 자리로 돌아오고 나는 민규와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집단적 독백이랄까. 우리의 대화는 아무말 대잔치였다. 그때 우리 사이를 파고 들어온 엄청난 성량의 목소리.
"안녕하세요, 17학번 이석민입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성량 한 번 대단하네. 푸흐... 뭔가 귓구멍 속으로 빠르게 쉭하고 지나간 거 같았다. 쟨 실용음악과 가도 잘했겠다. 민규와 대화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했다. 그냥, 쟨 분위기 메이커였다. 부러웠다. 학교에서도 존재감이 장난 아니었겠지. 응, 아마도 그럴거야. 그러고보니 내 앞에 김민규도 학교에서 인기가 장난 아니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만 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아이인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거 뭐, 뭣같아서 대학교 다닐 수 있겠나.
"뭐 잘 하는 거 있어?"
"저 노래 잘합니다!"
"그래, 한 번 해 봐."
그 아인 갑자기 숟가락 하나를 들더니 목을 가다듬었다. 행동부터 정상적이지 않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은 있다. 딱봐도 반에서 한 명씩 꼭 존재하는 그런 활발한 애라ㄱ,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발성이 장난 아니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떠니 옆에서 민규가 킥킥 웃었다. 저걸 듣고 놀라지 않은 민규사마의 고막을 리스펙한다. 나는 확성기에 대고 말한 줄 알았다. 왜, 왜 웃냐. 괜히 틱틱 거리며 민규에게 말하니 민규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지 않니... 역시 20년동안 모태솔로였긴 모태솔로였나보다.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에 나는 얼굴이 붉어진다.
"귀여워, 너봉이."
"엉...?"
한 순간 정지된 사고 회로에, 이 세상에 나와 민규만이 존재하는 거 같았다. 세상에. 한 번도 이성에게 저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김민규, 선수네 선수. 얼굴이 붉어지고 손을 달달 떨려온다. 이너봉 모태솔로인 거 티내지 말라구... 물 잔에 담긴 물을 또 벌컥벌컥 마셨다. 이번엔 이게 목으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헤롱헤롱, 정신이 위태위태했다.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정신이 알딸딸했다.
"안녕, 모솔녀. 이너봉이었나?"
이건 또 무슨... 자기소개를 다 마친건지 그, 이석민이라는 아이가 내 앞에 와 턱받침을 하며 내게 말했다. 19년동안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남자와 대화한 적이 있던가. 석민이는 털털하게 웃으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미친, 이런거에 설레다니. 어처구니 없게도 난 이런 사소한 것에 자꾸 설렜다. 왜 굳이 내 옆에...라고 내가 물으니 석민이는 다시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가 제일 재미있어 보이고, 옆에 민규라는 애랑 노는 것도 재미있게 노는 거 같아서."
"사실은 누구랑 가팅 지낼지 고민하고 있었거든."
이게 무슨. 재미있어 보인다는 건 반어법인가. 개그우먼처럼 보인다는 뭐 그런 이중적 의미 같은건가...
"물론, 네가 웃기게 생겼다는 건 아니고."
아, 괜한 오해를 또 했구나, 했다. 하지만 민규가 그랬던 것처럼 뒷이어 온 석민이의 말에 내 얼굴은 붉어졌다. 아마도 얘네들은 선수였을거야. 연애 선수. 그 둘 사이 낀 나는 그저 20년동안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 한 한낱 모태솔로이겠지. 하지만, 기분은 좋다. 사랑 받는 느낌을 아는 거 같아서. 알게 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충분히 예쁘거든, 넌."
얼굴이 붉어졌다가 다시 제 색으로 돌아왔다. 셋이서 다함께 아무말 대잔치나 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순영 선배가 우리 쪽 테이블에 와선 내 앞에 떡하니 앉는 것이었다. 아니, 초면에 그렇게 들이대시면 나야말로 땡큐인데. 순영 선배는 뭘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냐며 물었다. 그 질문에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 했다. 순영 선배가 우리보다 2학년 선배라서 무서운 것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한데, 우리의 대화 주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뿐이었다.
"딱히 주제가 없어서..."
"맞아요. 그냥, 밥 이야기에서 자기 학창시절 이야기로 갑자기 넘어가기도 하고."
"너네 내가 지금 무서워서 이러는 거 아니야?"
헉, 전혀 아닌데. 순영 선배는 햄찌같은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는 만난지 1분도 안 돼서 긴밀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선배는 그런게 부러운가...
"그런게 아니면, 나도 끼어줘. 너봉아."
힉, 내 이름을 불러줬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사스가 모태솔로, 이너봉. 이름 불러주는 거 하나에도 설레서 미치겠다니. 단단히 저 선배한테 빠져도 너무 깊게 빠졌구만. 그, 그래도 되지?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애들한테 물으니 민규랑 석민이는 딱 봐도 기분 안 좋은 티를 내며 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방금 전까지 재미있게 아무 말한 애들이랑 동일인물 맞니? 할 정도로...
"될대로... 하세요."
"아 진짜? 고마워, 너봉아. 사랑해!"
미친. 코에서 코피가 나오는게 아닌지 확인했다. 줄줄 흐르지는 않는지 이미 흘러서 턱 끝까지 닿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저 햄찌같은 웃음으로 사람 하나 잘도 홀린다. 나는 대학교에서 첫사랑을 만난 거 같다. 물론 유치원에서 좋아한 철수를 제외하고 만난 첫사랑. 앞으로 대학 생활이 너무 기대 돼, 미칠 거 같다. 같은 과면 MT도 가겠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방긋 웃었다.
++)) 번외
"석민아, 민규야."
"응?"
"그때, 신입생 환영회 때 나한테 한 말 진심이었어?"
"뭐? 우리가 뭔 말 했는데."
"나보구 막 귀엽고... 예쁘다고."
"아, 몰라. 부끄러워. 나 먼저 가 있을게!"
"귀여워 미치겠다, 이너봉."
"그나저나, 너 너봉이한테 귀엽다고 했었냐?"
"그야말로, 넌 너봉이한테 예쁘다고 했잖아."
"난 진심을 말한 거라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 지나가던 순영이의 번외
'저것들이 먼저 너봉이한테 선수를 쳐?'
'그때 나도 사랑해말고, 더 많이 치댈 걸 그랬다.'
'오늘, 같이 밥 먹자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