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Love
; 사랑에 빠진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08
: 하나씩.
서툴게나마 그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6년의 마지막 날을 알리는 자정 알람이 울렸다. 12월 31일이었다. 그는 알람 소리와 동시에 자신의 생일이 끝났다며,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생일이 끝난 게 싫은가 싶어, 그의 입술을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생일 끝나서 싫어?'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내 어깨 위로 제 얼굴을 묻어왔다. 나이 먹기 싫어서 그래. 하며. 생일과 일 년의 마지막이 불과 하루 차이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칭얼거림에 배시시 웃으며, 그와 마주 잡은 손을 이리저리 간질였다. 처음 봤을 때의 그 예민하고 까칠한 김태형 씨는 어디 가고, 미운 네 살이 여기 있나 싶었다.
그의 생일 케이크를 테이블에 올려둔 채로, 소파에 앉아 담요를 덮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벌써 새벽 세 시를 가리켰다. 별 다른 스케쥴이 없는 그는 오늘 하루를 나와 보낼 것이라며, 내 계획을 물었다. 선약이 있는지. 나는 다행히도 없는 약속에 오늘은 약속이 없다는 말을 전해주고는, 며칠 전 윤기 오빠가 잡아온 특종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줄곧 음악방송에서 그렇게 서로 같은 악세사리를 끼고 나오더니, 결국은 윤기 오빠에게 걸린 아이돌 커플의 이야기였다. 사실, 연애 쪽에는 큰 관심이 없는 윤기 오빠였는데, 어쩌다 밥집에서 마주친 그 열애설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찔려 윤기 오빠에게 진술을 늘어둔 모양이었다. 그 오빠는 기사 낼 생각도 없는데. 뭐, 지금도 없어 보이고.
"그래서 윤기 오빠가 그 커플 결국 잡아냈잖아. 대박이지?"
"그 맨날 '이번 작품으로 얻고 싶은 게, 있나요?' 이거 물어보시는 분이지."
"응. 맞아. 오. 윤기 오빠 성대모사 잘 한다."
"근데 그 분은 몇 살이야?"
"윤기 오빠?"
"응."
"이제 스물 다섯 살!"
"근데 윤기 씨는 오빠고, 나는 왜 김태형 씨야?"
"...그, 그 애인이라고 해주잖아."
"그래도 나도 오빠 소리 듣고 싶은데."
"...뭐래."
"오빠 해줬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을 피하는 내 시선을 끝까지 따라오며, 불쌍한 척을 해보였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나는 그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 한 척, 일부로 배를 통통치며 말했다. 배고프다. 하고. 그러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오빠 소리 듣기를 포기하고는 입고 온 점퍼를 챙겨 입고는 내 자리에서 내 점퍼를 챙겨왔다.
"일어나세요."
"왜요?"
"밥 먹으러 가자."
그는 내 손을 잡아 나를 일으키며, 직접 점퍼를 입혀주고 지퍼까지 채워주고 나서는 모자까지 꼭꼭 씌워 주고는 말했다. '밥 먹으러 가자.'
"오늘은 라면 말고.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
"밥 사주게?"
"응.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음. 나 여기 전철역 앞에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
"..."
"거기 진짜 맛있어! 아니면 그 여기 건너편 빙수집 빙수?"
"..."
"...왜? 별로야?"
밥을 사준다는 그의 말에 먹고 싶은 음식을 나열하자, 점점 굳어가는 그의 표정이었다. 떡볶이랑 빙수 못 먹나? 나는 그의 낯선 표정을 살피며, 내가 말한 음식들이 별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점퍼에 가려진 내 손을 찾아 잡으며, 말했다. 사뭇 진지한 분위기였다.
"나도 너랑 같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도 먹고 싶고."
"응."
"빙수집에서 빙수도 먹고 싶은데."
"...아."
"그런 건, 우리한테. 나한테 조금 많이 어려운 일이라."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다."
"너가 왜 미안해. 나 때문인데."
미처 계산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내 말을 듣는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집이나 차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미안하다는 내 말에도 끝까지, 제가 미안하다며 마주 잡은 손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어느새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춘 그는 내게 '다른 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크게 외쳤다. '집에서 먹는 거! 나 김밥도 좋고, 라면도 좋고. 어... 시켜 먹는 것도 좋아!' 그러자 그는 내 대답에 제 코 끝을 찡그리며 웃고는 답했다. '그럼 우리 집 가자. 내가 요리 해줄게.'
**
"답답했지?"
"아니. 근데 아까 그거 오빠 차야?"
"아니. 매니저 형 차. 내 차는 좀 끌고 다니기 그래서."
"나도 알아. 내가 기자인데?"
"기자들은 주로 어디 숨어 있다 나타나는지, 힌트 좀 주지?"
"안 돼요. 영업 비밀입니다."
"뭐야. 차는 왜 물어 봤어?"
"아. 그냥!"
"시시하게."
직원용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빠르게 타고는, 의자 시트를 뒤로 한껏 젖히고는 담요를 덮고 누웠다. 그의 차가 아니라 그런지, 창문은 어둡게 세팅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사진이 찍히기 좋은 각도였고. 그는 운전을 하는 중간에도 자꾸만 나를 살피며, 내 손을 단단히 잡아왔다. 내 모습이 마치 애벌레 같다면서, 혼자 키득이기도 하며. 회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그의 집은, 고층의 빌딩이 아닌 높은 담장으로 쌓여진 주택이었다. 나는 그의 차고까지 도착해서야, 덮인 담요를 걷어낼 수 있었다. 답답했냐고 묻는 그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지나치게 미안해 하는 그의 표정에 되려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집은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깔끔한 느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는 먼저 집으로 들어가, 새 슬리퍼를 뜯어 건네주며 말했다. '우리 집에 오는 첫 여자. 아. 엄마 빼고.' 나는 그의 말에 장난스레 '난 남자 집 처음 아닌데.' 하면서, 그가 건네준 슬리퍼를 받아 들어 신었다. 그리고는 혼자 살기에는 넓다 못해 공허한 공간을 살폈다. 와. 이게 이 층도 있는거야? 그는 집안을 살피는 내 시선을 따라 움직이며, 내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남자 집이 처음이 아니야?"
"그냥 한 말이지."
"아닌데. 되게 자연스러운데."
"...뭐, 뭐가."
"집 스캔하는 게. 되게 자연스러워. 지금."
"...그래?"
"지금 말하면 용서해줄게."
"뭘?"
"전 남자친구 집에 가 봤어?"
"...기억이 잘 안 나."
"눈 또 흔들린다. 빨리."
"...진짜 아닌데."
"수상해."
그는 끝까지 아니라는 내게 수상하다는 말을 끝으로, 내 손을 잡고서는 부엌 식탁에 나를 앉혔다.
"아직 취조 안 끝났어. 나."
"아. 왜애."
"...어?"
"어? 뭐가?"
"일부로 그랬지."
"뭘 또. 내가아."
"노렸네."
"...모른 척 좀 해줘. 나름 애교인ㄷ,"
"완전 넘어갔다. 졌어. 내가."
**
그는 자신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부엌에 나를 데려오고는 몇 번의 실수 뒤에 갑자기 나를 거실로 내몰았다. 그리고는 부엌만 들어오지 말고 집 어디서든 놀고 있으라며 말하고는, 어디선가 나는 타는 냄새에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그에게 그냥 같이 하자고 몇 번이고 청했지만, 그는 제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아랫입술을 앙 물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 애인의 자존심은 내가 지켜줘야지. 나는 결국 많은 방들의 문을 살짝 열어보며, 각 방의 용도를 살폈다. 그리고 그 중에 침실처럼 보이는 방으로 향했다. 침실은 침대와 테이블 위에 향초 한 개가 전부였다. 침대 위에는 열기구 모양의 장난감이 공중에 떠 있었다. 우와. 신기해.
그의 침실에는 작은 문이 함께 있었는데, 그 문을 열자 지금까지 그가 받은 상들과 그의 팬들이 준 것으로 보이는 편지와 사진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여기는 완전 김태형 박물관 같네. 나는 혹여나 그의 소중한 물건들이 망가질까 싶어, 제자리에서 방을 둘러보고는 서둘러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침대 옆 테이블의 향초가 있는 곳으로. 향초를 좋아하나? 향초의 뚜껑을 열자, 옅은 프리지아 향이 풍겨왔다. 애인 품에서 나는 향이다. 이거.
"향 좋아?"
어느새 내 뒤로 다가온 그가, 백허그를 하며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향초를 제자리에 내려두고는 침실 옆의 문을 가리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짱이더라. 하면서. 그러자 그는 내 손을 잡아 부엌으로 이끌며 물었다.
"들어가봤어?"
"응! 완전 박물관 같았어."
"내가 이따가 자랑하려고 했는데, 먼저 선수쳤네. 애인이."
"몰랐지. 나는 - "
"장난이야. 들어가서 뭐 만지고 그런 건 없어?"
"왜. 내가 뭐 훔쳐 갔을까봐?"
"아니. 그냥 저 방에 팬들이 준 편지랑 선물이랑 그런 거 있어서."
"그래서?"
"애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팬들이 준 거는 같이 소중히 해주세요. 말하려고 한 거지."
"당연하지. 걱정마. 완전 로봇처럼 서서 고개만 돌렸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아니야. 나 사고뭉치라서 조심해야 돼."
혹시라도 내가 기분이 나쁠까 또 내 눈치를 살피며, 제 팬들이 준 선물과 편지를 소중히 하는 그였다. 그 모습에 한 번 더 반했고. 다른 이의 사랑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나 이 세계에서. 하지만 그는 사랑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새삼 그의 마음이 예뻐, 그를 올려다보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부엌이었다.
"...무슨 냄새야?"
"...먹을 수는 있을 걸."
"...그, 그치?"
"와. 말 더듬는 거야? 보지도 않고?"
"아니야! 나 완전 배고파."
**
"호빵."
"응."
"미안."
"뭘 사과까지 해. 괜찮아!"
"짜장면은 어떻게 좀... 괜찮았어?"
"응! 탕수육도 맛있었어!"
"그치? 거기가 짜장을 또 그렇게 잘해."
"응.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요리 내가 할게요."
"...그릇 밖에 두고 올게요."
"응."
짜면서 싱거운 된장국과 다 타버린 계란말이 그리고 익지 않은 밥은 결국, 배달 전단지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그 스스로. 그는 시켜 먹은 음식의 그릇을 정리하며, 나름 제가 맛집을 소개 시켜준 것에 대해 뿌듯해 하는 듯 했다. 그래서 서둘러 다음 요리의 선수를 내가 빼앗았고. 그러자 그는 잔뜩 축 쳐진 뒷모습으로 그릇을 챙겨, 현관 밖으로 나섰다. 비에 젖은 강아지 마냥.
**
그의 옷을 빌려 입고는 나란히 서서 함께 양치를 했다. 자꾸만 흘러 나오는 웃음에 서로를 보며, 왜 웃냐고 다그치다가 결국은 평소보다 더욱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화장을 지운 얼굴은 처음이 아님에도 여전히 부끄러웠다. 그래서 두 손에 얼굴을 푹 묻고, 욕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나보다 빠른 행동의 그가 어느새 내 앞에 서서 민낯의 내 얼굴 곳곳에 잘게 입을 맞췄다. '애기야. 애기.' 하며. 이번에도 얼굴을 붉히는 건, 나였다.
그의 침대에 누워, 반대편 벽으로 빔을 쏘아 그의 출연작들을 함께 보았다. 그의 첫 데뷔작과 첫 수상의 순간, 첫 주연의 영화 등을 보면서. 그때의 그를 나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짙게 묻어나는 지금의 모습이 신기해, 그때의 그와 지금의 그를 몇 번이고 번갈아 보면서. 그는 그럴때마다 부끄러운지 이불 속을 파고 들었다가, 다시 눈을 빼꼼 빼고는 내 허리에 제 손을 둘렀다. 잔뜩 붉어진 귀를 한 채로.
"놀리지 마."
"나 안 놀렸어!"
"근데 왜 자꾸 비교해. 나랑 쟤랑."
"쟤라니! 저것도 애인인데?"
"그래도 옛날의 나잖아."
"귀엽기만 한데. 뭐."
"그래도..."
"어어. 키스신!"
"...나 잠 와요."
"손 치우시고. 와. 대박. 방금 봤어?"
"뭘?"
"막 아주, 어? 잡아 먹겠어."
"호빵 안 졸려?"
"뭘 졸려. 아직 밤도 아닌데. 와. 왜 안 끝나. 키스신?"
"...애인. 우리 낮잠 자자."
"혼자 주무세요."
"나 비행기 타고 오자마자 호빵 보러 가고, 호빵 맛있는 거 해주려고 요리하고..."
"결국 시켜 먹었잖아."
"아니... 그래도 나 엄청 바쁘고 힘들었는데..."
"...그건 맞네."
"토닥토닥 해줘. 키스신은 자고 일어나서 혼날게."
"...알았어."
"그리고 재연도 해줄ㄱ,"
"자."
-
Q. 어떤 데이트를 하고 싶으세요?
A. 포장마차에서 같이 떡볶이 먹고, 빙수집에서 빙수를 먹는.
뭐 그런 소소하지만, 저는 결코 할 수 없는 데이트요.
아. 그래도 괜찮아요.
당연한 거니까.
-
차의 주인 |
"차에 뭔 호빵 봉지가 이렇게 많아."
내가 두고온 서류를 자신이 챙겨오겠다며, 사무실로 다시 올라간 그였다. 나는 그를 기다리며 누구의 차인지 모를 차를 살폈다. 차의 바닥에는 각종 호빵 봉투들이 한가득이었다. 심지어 뜯지 않은 호빵 박스도 두 개나 있었고. 박스 위에는
'지가 먹지도 않을 걸 왜 시키냐고.'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ㅠㅜㅠㅠㅠㅠ' '김태형 몰래 숨기기.'
라는 글자가 매직으로 크게, 아주 크게 적혀 있었다.
이거 누구 차야? |
왕짜장 |
"오랜만에 시켜드시네요?" "네... 계산해주세요." "오늘은 집에 손님이 계신가봐요? 두 개 시키셔서." "아. 네..." "근데." "네?" "혹시 집에 뭐 불 났습니까? 냄새가 좀 이상한데." "...불만 안 났고, 망했어요. 다."
|
9화 미리보기 |
"...그래서 어디 간다고?" "그, 클럽은 아닌데... 클럽처럼 생긴 술집을..." "간다고. 가겠다고. 가도 되냐고." "...가도 되냐고... 물어 보는 건ㄷ" "가기만 해요. 싫어. 나는." "...힝." "힝? 잠깐만 옷은 그거 뭐야." "응?" "담요 내려 봐." "..." "나 어깨 다 봤어. 빨리." "..." "오. 사. 삼. 이. 일." "...그, 그렇게 야하지는 않은데." "와. 미친다.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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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겨울소녀입니다!
조금 빠르게 찾아온 8화인데, 이번 화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
우리는 이제 9화로 만나요.
암호닉은 6화 업데이트 당일 12시까지 신청해주신 분들 선에서 추가 했습니다!
혹시 기한 내에 하셨는데, 누락 되신 분은 말씀 해주세요!
당장 암호닉은 받지 않고 있어요 ㅜ_ㅜ
그래도 다음주 중에 암호닉 신청과 제 전 작품 제본 관련 글, 텍스트 파일 글이
정리 돼서 한 번에 올라올 예정이에요.
그때도 신청하실 수 있으니, 너무 속상해 하시지는 말아주세요!
그럼 다들, 잘 자요!
예쁜 꿈.
사랑스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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