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정국에 뷔 예보
탄소는 하루 종일 학교 안에서 멍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차 자각하지 못 했다. 그저 정국이 했던 말만 머릿 속을 맴돌 뿐이었다. 정국은 저를, 미워하지 않았던 걸까. 아님, 미워할 수 없었던 걸까.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속이 시원했다. 하고 싶었던 말을 했고,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으니, 됐다. 그래서 계속 눈물이 났다. 입꼬리는 웃는데, 눈은 자꾸 울었다. 기뻐서. 반 아이들은 힐끔힐끔 그런 탄소를 쳐다봤다. 그 중심에 정국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다. 이번에도 교실을 빠져나가던 정국을 잡지 못한 이유는, 겁이 나서도, 무서워서도 아닌 시간이 필요한 정국에 대한 배려였다.
" 김탄소. "
" ……박지민? "
" 또 울었네. 안 그렇게 생겨선 눈물 왜 이렇게 많냐? "
" ……. "
" 수업 끝났는데. 집 안 가? "
가방을 울러맨 지민이 탄소의 자리 앞, 반장의 의자를 꺼내 앉았다. 멍하게 있느라 학교를 마친지도 몰랐나 보다. 퍽 다정한 눈길로 탄소를 바라보던 지민이 손을 뻗어 탄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탄소는 그 다정한 그 손길에 멍하니 지민을 바라보았다. 분명 마지막에 헤어질 때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 뭐가 좋다고, 뭐가 착하다고 이리 다정한 손길 내비치는지. 한참 그 다정한 손길을 받아내던 탄소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너 바보야? "
" 뭐가. "
" 병신같아, 너. 내가 그렇게 못되게 굴었으면 욕하고 싫어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니야? "
"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
" 뭐? "
" 내가 왜 그래야 하느냐고. 그건 내 마음이지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지 않나. "
탄소가 입을 꾹 다물었다. 지민은 탄소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치우고 주머니에 꼽아넣었다. 지민은 알고 있었다. 이미 저 머릿 속과 마음 속에 누가 있는지 쯤은. 의자에서 일어난 지민이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다 탄소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이 꼭 무언가 텅 빈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너 나 좋아해? "
" 응. "
" ……야. "
" 네 표정을 보니 혹시나해서 하는 말인데, 날 받아줄 생각 없으니 그 마음 접어라.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라. 따위의 말을 내뱉을 거면 난 그럴 생각 없으니까 그딴 말 내뱉으려고 했던 거면 네 목구멍으로 다시 삼켜. "
" 박지민. "
" 말했다시피 내 마음이라 네가 이래라 저래라한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거든. "
" ……. "
"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어. 내가 뭐가 부족해서 너같은 양아치를 좋아하나, 에 대해서. "
" 뭐, 미친놈아? "
" 봐. 말마다 욕이고 지 멋대로고. 다정한 모습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어. 못 돼 쳐 먹어서. 근데 난 그게 좋은가 봐. "
" ……. "
" 그런 놈들은 한심하기 그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넌 이상하게 보고 있으면 내가 편해. 웃기 싫어도 웃게 돼. 내 앞에 없으면 보고 싶어. 며칠 전에도 그러고 사라지길래 저 년은 도대체 뭐하는 년일까 싶었는데, 그러고 가버린 네가 자꾸 보고 싶더라. "
" 야, 박지민. "
" 어, 너 전정국 좋아하는 거 알아. "
" ……. "
" 나 사겨달라는 것도 아니고, 나 좋아해달란 말도 아니야. 난 네가 좋아하냐고 물어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니까 전처럼 친구로 지내자고. 친구. "
" ……. "
" 그 정도는 아무리 못 돼 쳐 먹었어도 해줄 수 있지? "
탄소는 아무런 말 없이 지민을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을 받아낸 지민은 그저 예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지민의 말대로 그 마음을 거절하려고 했으나 역시나 지민의 말대로 그의 마음이었다. 제가 어찌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그걸 겪어봤기에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이 저를 좋아하는 상대방에게는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 알았기 때문에 탄소는 여전히, 입을 닫았다. 저를 좋아해주는 지민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이 침묵이 대답이 되길 바라며.
지민은 저를 그렇게 두고 가버린 탄소 덕에 하루 하고 반나절을 꼬박 탄소의 생각에 잠겨 펜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끔씩 웃어보이는 얼굴 낯이 예뻐서, 우는 모습마저 예뻐서, 그 웃고 우는 이유가 저였으면 좋겠어서, 그 모습을 저만 보고 싶어서. 책상에 고개를 꼴아박고 연신 한숨을 내쉬다가도 놀이터에 앉아있던 그 조그만한 뒷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피어올랐다. 제자신도 그 모습이 낯설어 고개를 젓고 다시 펜을 들어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진짜, 진짜 내가 김탄소를 좋아하는 건가. 낯설고 이질적이게 뛰어오는 제 심장을 부여잡고서 허탈하게 웃었다.
" 진짜 좋아하나 보네, 나. "
이젠 부정할 수도 없는 제 마음을 인정했다. 저가 아닌 다른 이를 좋아했고, 좋아하고, 좋아할. 그 작은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 * *
" 어이, 울보. "
정국은 신경질적이게 머리를 털며 저를 발 끝으로 꾹꾹 찌르고 있는 태형을 노려보았다. 그 표정이 한 없이 얄미워 당장이라도 얄밉게 웃는 얼굴에 주먹을 꼽고 싶을 지경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있는 정국은 안중에도 없는지 계속해서 울보라며 약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허공을 보며 허탈하게 웃은 정국이 몸을 일으켜 태형의 목에 팔을 걸었다.
" 아, 시발! 잠시만! 악, 미친 새끼야! "
" 하지 말라고, 시발 새끼야. "
" 아, 컥.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좀 놔 봐, 새끼야! "
그제야 팔을 푼 정국에 태형을 목을 부여잡고 연신 기침을 해대다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정국을 노려봤다. 계속해서 흐르던 눈물 탓에 교실을 나와서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본 태형이 줄곧 정국을 손가락질 하며 들러붙어 볼을 톡톡치며 놀렸다. 눈물이 그치지 않는 상태에서 정국은 태형을 밀쳐내며 눈물을 닦기 바빴다. 탄소가 저에게 했던 모든 행동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그 안도감 때문인지, 계속 흐르는 눈물은 끝을 모르고 줄줄 흘러내렸다.
" 야, 왜 울었는데? 너 저번에 우리 집 처음 온 날 빼곤 짜는 걸 본 기억이 없는데. "
" …몰라, 인마. "
" 이 새끼 봐라. 또 말 안 해주네. "
" 나중에. "
" 뭘 나중에. "
" 나 아직 정리 못 한게 너무 많다. 다 정리되면, 그때 말해줄게. "
정국의 말에 태형이 빤히 정국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 몸을 실어 누웠다. 단 한 번도 얘기해준다고 한 적 없던 정국이 드디어 입을 열 준비를 했다. 평소 눈치가 빨랐던 태형이라 이미 눈치를 깠다는 걸 정국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태형이 고마웠다. 아직, 민윤기와의 일도. 저를 낳아 키운 부모님도. 정리하지 못한 게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는 건, 네가 내게 진실을 말 해주어서가 아닐까. 침대에 누워있던 태형이 무언가 생각이 난 건지 바짓 주머니를 뒤적이다 흰 봉투를 건넸다.
" 아, 그리고 이건 말할까 말까 고민했던 건데, 그래도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
" 뭔데 이게. "
" 너 어제 늦게 들어왔잖아. 나 여기서 라면 끓여먹고 있는데 문 두드리길래 누군가 했더니 엄…. 너희 어머니 찾아오셨더라. "
" ……. "
" 그, 난 너희 어머니 얼굴을 몰랐잖아. 그래서 머리 긁적이면서 병신같이 서있었는데. 네가 아니라 내가 있어서 놀랐는지 한참 멍하게 계시다 니네 집 아니냐길래 맞다 그랬는데, 되게 환하게 웃으시더라. 네 친구냐면서. "
" ……. "
" 그리고 이거 봉투 쥐어주시면서 너 맛있는 거 많이 먹여달라고 하시던데. 얼굴, 많이 상하셨어. 네 걱정 많이 했나 보더라. "
" 지랄하지 마. 그거 너 가져, 안 써. "
" 염병떤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써? 저금해 둬. 고집 피우지 말고 한 번 찾아 봐. "
" 하, 시발. 네가 뭘 안다고…! "
" 몰라, 새꺄. 모르니까 가 봐. 말도 안 해주면서 나 보고 뭘 아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해? 쨋든 이걸로 데이트를 하든 뭘 하든 써. 그래야 너희 어머니 마음이 편하실 거 아니야. "
정국의 책상 위에 얹은 태형이 외투를 입으며 요 며칠 집에 못 들어갔다고 가 보겠다며 정국의 어깨를 두어 번 쳤다. 제 앞에 놓여진 봉투 안에서 삐져나온 돈들에 얼굴을 쓸어내리며 서랍을 열어 이미 수없이 쌓인 봉투 위에 쌓였다. 제 어머니가 저를 찾아온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꿋꿋이 문을 열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문 앞에 돈 봉투만 두고 돌아가곤 했다. 태형이 문을 열었을 때 태형이 있어서 놀란 게 아니라, 문이 열려서 놀랐을 게 분명했다. 이런 돈 다발을 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직도 표현이 서툰 저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 그래. 아직 정리할 게 너무 많지, 나…. "
선명하지 않았다. 흐린 얼굴이었다. 늘 치장을 하고 있던 어린 날의 젊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정국은 희미하게 떠오르는 제 가족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 * *
탄소는 저가 자주가는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도 따라 온다고 떼를 쓰는 지민의 머리를 쥐어박고 나서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냥,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네에 앉아 열심히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다 어둑해지는 하늘에 엉망이 된 몰골로 저희를 데리러온 엄마의 품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귀엽다. 풋풋하다. 보통의 생각들이 그랬으나, 탄소는 늘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워 했다. 나도 한 때 저랬는데.
" 염병. 애들 보면서 부러워하고 자빠졌네, 진짜. "
발을 움직여 그네를 타다 얼마 올라가지 못 하는 그네에 신경질적이게 모래 더미를 신발코로 찼다. 누가 밀어줘야 재밌는데. 박지민 데려올 걸. 휴대폰을 꺼내 전화부를 뒤적이다 정호석 연락처 위에 적힌 '전정국' 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번호, 바꿨겠지. 그렇게 헤어지고 단 한 번도 정국에게 전화를 걸어본 적 없었다. 물론, 전화번호도 바꿨겠지 싶은 마음에 연락을 취한 적도 없었다. 그 번호를 멍하니 바라보며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만약 번호를 안 바꿨더라면 전정국이 받을 테고, 그럼 싫어할 테고. 또 미움받는 건 싫었으니까. 코를 훌쩍이며 폰을 넣으려다 다시 폰을 바라봤다.
" 번호 백퍼 바꿨을 텐데 한 번 걸어 봐? "
코를 슥슥 문지르다 눈을 질끈 감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연결음이 얼마가지 않아 끊겼다. 살며시 눈을 떠 화면을 보니 통화 시간을 계속 흘렀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번호, 안 바꿨구나. 탄소는 휴대폰을 쥐고서 가만히 화면만 바라보았다. 얼마만에 걸어보는 전화인지도 모를 정도로, 입에 외우고 살던 번호가 낯설어 보일 정도로 오랜만인 전화였다.
[ ……밖이냐. ]
" …어? 어, 응. "
[ 밖에 추우니까 빨리 집 들어가라. 감기 걸릴라. ]
" ……. "
[ 끊는다. ]
" ……그네 밀어줄래. "
탄소의 말에 정국은 한참동안 대답이 없다 전화를 끊었다. 뭘 기대한 거야. 미쳤나 봐. 괜한 오지랖이야. 손에 휴대폰을 꼭 쥔 채 머리를 쥐어박았다. 담배를 피려 치마 주머니를 뒤적였다, 요 며칠동안 담배를 피지 못한 것이 생각나 얼른 꺼내 입에 물었다. 몇 번이나 켜도 올라오지 않는 불씨에 집어 던지려던 찰나 붙은 불이 따뜻했다. 그래도 전화 받아주네. 그 사실이 좋아 자꾸 웃음이 새어나왔다. 줏대없이 흘러나오는 웃음이 한심스러웠다. 후, 내뱉어진 연기가 앞을 가렸다. 알싸하게 풍겨오는 냄새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담배도 끊어야 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을 때 옆으로 불쑥 튀어나온 손이 담배를 뺏어들었다.
" 아, 시발. 누구, "
" 담배 이제 끊을 때 된 것 같은데. 좀 끊지. "
" ……전정국? "
" 암 걸려 뒤지고 싶냐. "
담배를 바닥에 던져 비벼끈 정국이 탄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뛰어온 건지 연신 속으로 숨을 고르는 그 모습이 벅찼다.
내가 너를 사랑했던, 사랑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 할 이유였다.
* * *
잉차잉차 뭘 쓴 건지 모르겠담 ㅎ 양은 굉장히 많이 쓴 것 같은데 뭘 쓴 건지 정말 도대체 1도 모르겠습니댜 ㅎㅅㅎ 쓰레기야, 아주.
하지만 오늘의 킬링 파트는 그네 밀어달라는 말에 달려온 정국이에요.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왜냠 글이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장난이에요.. (쭈굴) 그냥 학교 주변 놀이터는 하나 뿐이었던 걸로 합시댜 (섬세)
여러분 오늘 글로벌 뭐시기 방탄 가요 애들 너무 씹덕 터져.. 내 심장 살려내! 돌려내! 빨리! 이제 화랑 한성이 보러 가야지. (주섬주섬)
아, 나 빨리 다음 작도 쓰고 시퍼. 제가 사실 지금 글 쓰고 있는 방법이 음, 뭐랄까 제 스타일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아무말)
제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원래는 되게 지문도 길고 대화가 많이 없어요. 근데 양아치는 뭐랄까, 지문도 긴데 대화도 많단 말이조?
새작은 아마도 본래 제 글 쓰는 방식으로 쓸 거라 편하기도 할 테고? 뭐 쨋든 빨리 쓰고 싶단 말이에요! 헿 (아무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