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정국에 뷔 예보
" 야, 내가 저 년 내 눈 앞에 띄게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 했을 텐데. "
" 지랄하네. 되도 않는 갑질하지 말고, 꼬우면 네가 나가. "
정국이 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제일 뒷자리, 그러니까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던 탄소를 확인하곤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던 애꿎은 반장 책상을 툭 차며 시선은 여전히 탄소에게 둔 채로 내뱉었다. 반장 손에 끼워져 있던 샤프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가고 살벌한 그 말 한 마디가 무서워 그저 몸만 덜덜 떨어댔다. 탄소는 무관심한 눈빛으로 슬쩍 시선을 내던지며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되받아 치자 정국은 저가 매고 있던 가방을 벗어 정확히 탄소 옆으로 빗겨가게 던졌다. 훅 하고 스쳐지나간 가방에 머리카락이 휘날림에 인상을 찌푸리며 정국을 바라보자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그 시선을 무심하게 다 받아냈다. 볼이 따가워 손등으로 볼을 쓸어내리니 옅은 피가 묻어났다. 아무래도, 가방에 쓸려 상처가 난 것 같았다.
" 아직도 철이 덜 들었네. 이제 철 들 나이 되지 않았나? "
"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거기 내 자리니까 좀 꺼지지. "
" 내가 여기가 좋다잖아, 정국아. 예전엔 내가 좋다면 장기라도 팔아 줄것 같이 굴더니, 왜. 이젠 자리 하나 비켜주기도 고까워? "
" 아가리 멋대로 털어대는 건 여전하네. 찢어버리고 싶게. "
좀처럼 잠잠해질 기미가 없어 보이는 둘의 신경전에 죽어나는 것은 반 아이들 뿐이었다. 일제히 고개를 숙여 책을 보거나, 휴대폰만 내려다 보았다. 그 중 몇 몇은 우리 반 미친 두 놈년들이 또 지랄이라고 몸서리를 치며 욕을 해대고 있겠지. 정국은 익히 저의 학교 안에서 유명했다. 미친 개, 미친 양아치로.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정국을 건들 생각을 하지 못 했다. 그에 선생님들도 예외는 없었고. 그리고 유일하게 그를 건들 수 있는 년이 나타났다. 양아치 못지 않은 양아치가. 정국의 말에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는 탄소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치를 떨었다. 남들이 보기엔 한 없이 예뻐보일지 모르는 미소라도, 며칠간 옆에서 함께 지내온 반 아이들에겐 달가울리 없는 미소였다. 그 미소는,
" 너 나 이후로 여자도 못 만난다며? 트라우마 생겨서. "
" 주접 떨고 앉아있네. "
" 나 살짝 기뻤잖아. 내가 너한테 그렇게 영향력있는 사람이였다고 하니까. "
" 야. "
"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
정국의 심기를 건들이기 전, 그저 정국이 가소롭다는 듯 여기는 표정이었으니까. 탄소의 입에서 뱉어진 말에 정국의 얼굴이 묘하게 뒤틀렸다. 주머니 안에 넣어진 손이 화를 참아내려 주먹을 쥐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정국이 이를 뿌득 갈았다.
정국과 탄소. 둘이 딱히 자신들의 과거를 설명해주지 않았어도 다들 알 법 했다. 둘은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꽤 오랜 시간 만나왔던 사이라는 것도. 정국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도망' 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 또한 탄소였다는 것까지. 탄소는 여전히 정국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얀 피부에 생겨난 작은 피딱지가 앉은 상처가 단연 돋보였다. 정국은 들어왔던 앞문만 거세게 걷어찬 뒤,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마냥 미소를 짓고 있던 탄소의 표정 또한 묘하게 굳어갔다.
" 좆같은 새끼. "
곱디 곱고, 여리고 여린 그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는 저와 정국이 만들어 낸 무거운 침묵만을 유지하고 있는 교실 안에 낮게 울렸다.
* * *
옥상 위에 놓여진 책상 더미 사이에 정국이 누워 있었다. 정확히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 수업이 시작한 지 23분이 지나가는 시간에도 정국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선생님들은 수업에 들어와 저 빈자리는 누구야. 라는 질문에 전정국이요. 라고 대답하면 그저 별 다른 말 없이 수업을 시작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탄소는 반 안에서 지켜봤다. 학교 생활 거지같이 했네.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정국의 가방은 여전히 제 뒤에 아무렇게나 던져저 자리하고 있었다. 내 알바야? 그 새끼가 오든 말든. 그렇게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려고 해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괜히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담뱃갑만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아, 말린다. 입맛만 다시던 탄소 또한 정국이 있던 옥상 위로 올라갔다.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삐걱ㅡ 오래된 쇳소리를 내며 옥상 문이 열림에도 정국은 미동도 없이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탄소는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혔다. 후. 하고 불어낸 연기가 여기저기 휘날렸다. 난간에 기대어 학교 밑을 내려보며 담배를 펴대기도 잠시. 쿠당, 소리를 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가락엔 여전히 담배를 꼽아둔 채.
" 뭐야. 전정국? "
" 아, 시발. 허리야…. "
" 집이라도 간 줄 알았더니. 넌 여전히 옥상 좋아하나 보다? "
책상 더미 위에서 잠을 청하던 정국은 몸부림을 치다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넘어진 자세로 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림에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올리니 담배를 꼬나물고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탄소가 서있었다.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보다 더한 표정으로 탄소를 노려보았다. 금세 뜯어 물어죽일 듯한 표정으로. 탄소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뒤, 다시 입에 담배를 물었다. 정국은 답지 않게 담배 연기에 헛기침을 해댔다. 생긴 건 이 자리에서 한 갑을 다 비울 수 있을 것 같이 생겼건만, 정국은 담배를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어릴 적부터. 손을 휘어 연기를 흩뿌리며 탄소가 물고 있던 담배를 뺏어 저 멀리로 튕궈버렸다. 덕분에 탄소 표정 또한 보기 좋게 찌푸려졌다.
" 뭐하냐, 너? "
" 냄새 좆같으니까 피려거든 딴데가서 펴라. "
" 네가 뭔데. "
" 넌 뭔데. "
또다시 둘의 신경전이 펼쳐졌다. 탄소는 헛웃음을 쳐대며 다시 담배를 꺼내들려고 할 때, 정국이 손목을 잡아챔으로 인해 담뱃갑이 발 언저리로 떨어졌다. 아, 시발 진짜. 담뱃갑을 보며 욕을 내뱉던 탄소의 시선이 날카롭게 정국으로 향하자마자 입술이 부딪혀 왔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상황 판단을 하려고 해도 좀처럼 되지 않았다. 멍하니 정국에게 입술을 내어주기도 잠시, 정국에게 잡히지 않은 팔을 들어 힘껏 밀어냈다. 밀려나지 않을 것 같던 정국은 탄소의 손에 쉽게 밀려났다. 탄소는 우왁스럽게 입술을 닦아내며 소리쳤다.
" 너 미쳤냐? 뭐 하는 짓이야! "
" 왜. 네가 하도 내 앞에서 옛날 일 들먹이길래, 돌아가고 싶은 줄 알았지. "
" …뭐? "
" 너 담배 필 때마다 내가 키스해줬었잖아. 어때. 감회가 새로워? "
" 미친놈. "
탄소는 여전히 정국을 노려다 봤다. 아까 정국이 제게 지었던 표정처럼. 금방이라도 물어 뜯어 죽일 표정으로. 정국은 주머니에 손을 꼽아넣은 채 탄소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그와 동시에 담뱃갑이 정국의 발에 밟혀 보기 좋게 구겨지는 소리만 옥상 안을 가득 메웠다. 몸을 숙여 탄소의 키 높이까지 낮춰 눈을 맞춘 정국이 상황에 맞지 않는, 그러니까 탄소에게 절대적으로 지어보일 것 같지 않던 미소로 싱긋 웃어보였다. 아주 잠시.
" 그리고 네가 뭔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해두는 건데. "
" … "
" 네 말대로 예전의 네가 좋다면 장기라도 팔아 줄것 같이 굴던 새끼 아니니까, 알아서 사려. "
* * *
독방에서 쪄본 글인데 다듬어서 올리겠다고 했긴 했는데 뭘 다듬었지? (의문)
대책없이 막 내는 것보단 스토리 구상 좀 하고 내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방학이니까 같이 달려요 열어분 ^_^ ♡ 암호닉 신청은 감사히 받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