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 주장 전정국 X 교대생 너탄
W. 교생쌤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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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뭐해. 나 보고싶어?"
"보, 보고싶기는 무슨. 너 잘하고 있나 살피는거야"
"그러니까 보고싶은 거 맞잖아"
카페 마주앉은 우리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 정국이는 문제집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다고 그렇게 내빼더니 꽤나 열심히다. 공부하는 정국이가 새롭고 낯설게만 느껴져서 모니터 너머로 힐끔힐끔 정국이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볼펜 뚜껑을 입에 문채 열심히 필기하는 정국이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멍하니 쳐다봤다. 그런 나를 살짝 보고는 바람빠진 웃음을 짓는다.
시선은 문제집에 고정한 채 그리 보고싶었냐는 질문을 내뱉는 정국이었다. 아, 내가 보고있는 거 다 알고있었구나. 보고싶었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나도 모르게 변명거리를 내놓았다. 내 변명이 별로 재미있지 않았는지 펜을 내려놓고는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볼이 화끈거렸다. 몇초정도 시선을 주고받다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는 모니터에 집중했다. 귀여워. 낮고 조용하게 울린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나에게 크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정국아, 크리스마스 이브때 뭐해?"
"그때 약속있는데 왜요?"
"약속? 무슨 약속? 누구랑?"
궁금해요?
아니, 누구랑 만나는데
있어요, 누나만큼 중요한 사람
여전히 나를 쳐다보는 정국의 시선이 느껴졌다. 과제하자, 김탄소. 과제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타자를 쳐내려갔지만 이내 집중할 수 없었다. 말이라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데이트라도 잡을까하는 마음에 넌지시 정국이에게 스케줄을 물었다. 물론 대답은 정해져있지. 당연히 나와 시간을 보내겠다 대답해야할 전정국의 입에선 약속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혼자 길걷다가 여자친구랑 놀고있는 박지민 만나는 소리를 하고있어.
깜짝 놀라서 고개를 확 들고서 전정국을 쳐다보면 예상한 반응이었는지 예쁘게 웃어보인다. 웃어? 지금 웃는거냐, 이 자식아. 어이가 없어서 누구하는 약속이냐 물으면 나만큼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하고는 펜을 손에 쥔다. 잠깐만. 전정국 그 펜 내려놔라. 다시 공부에 집중하려는 전정국이었다. 급하게 전정국의 손을 잡으면 왜 그러냐고 태연하게 물어왔고 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내가 이 나이 먹어서까지 이런 질문 하기 싫긴한데 말이지.
"그 사람이야, 나야"
"에?"
"너 대답 잘해라. 나냐고, 그 사람이냐고"
누나 안삐질 자신 있어서 묻는거죠?
아, 말하지마
물어봤잖아요. 대답해 줄게요
아, 싫어. 대답하지마. 진짜 싫어
내 질문을 듣자마자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이는 정국이었다. 아, 누나가 이 나이 먹어서 이런 질문 다시해야겠냐. 화가나서 어금니를 꽉 문채 다시 질문하면 이제야 이해를 했는지 박장대소를 한다. 알아, 지금 내가 얼마나 웃기는지. 알면 진짜 대답 잘하라고. 내가 한 번 째려보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삐질 자신이 있냐며 앞머리를 정리한다. 아 잠깐만 너 왜 그러는데. 너 지금 나 배신하냐?
괜히 무서운 마음에 대답하지 말라고 하면 짖궂게 장난을 치는 전정국이다. 두 귀를 막은채 듣기 싫다고 하면 아예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내 귀에 대고 '누가 더 중요하냐면'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나를 괴롭힌다. 아, 고등학생들은 다 이러나. 내 팔을 잡은채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드는 전정국을 바라보다 웃음이 터졌다. 눈이 마주쳤다. 흔들림이 멈춘다. 그리고 웃는다. 공부 접자, 정국아. 누나가 너 먹여살릴게.
새벽까지 미친듯이 공부하다 아침 여섯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네시다. 많이도 잤다, 김탄소. 멍청히 시간만 바라보다 메시지함과 카톡창만 수십번을 들어갔다가 나왔다. 왜, 없을까. 이브라서 안보내는 건가. 이내 휴대폰을 대충 아무대나 두고는 흰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눈온다던데. 올해 첫눈은 혼자서 구경하게 생겼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부엌으로 걸음을 돌렸다. 밥을 해먹기 귀찮아서 얼마 전에 정국이가 놀러왔을 때 사온 라면을 꺼내들었다. 이것도 전정국이 사온 거였지. 물을 얹어놓고는 라면봉지를 뜯었다. 물이 끓을때까지 카톡 프로필을 구경했다. 여기도 커플, 저기도 커플. 아주 그냥 신났네, 신났어. 여자친구랑 놀이공원이라도 간건지 프로필 사진이 바뀐 박지민이다. 거지같은 놈.
물이 끓어오르자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라면을 집어넣었다. 대충 휘적휘적 저어버리고는 식탁으로 옮겨왔다. 티비를 켜니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라면을 먹다말고 채널을 돌렸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만 들으면 전정국이 떠올라서 괘씸했다. 계속 채널을 돌리던 중 얼마만에 종영된 드라마가 연속방송을 하고 있었다. 리모콘은 내려놓고는 라면을 먹으며 드라마에 집중했다.
딴여자 생긴거지
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그럼 이렇게 중요한 날 연락도 안해?
좋아하고 사랑하면 이런 날 옆에 있어주고 챙겨주는게 당연한 거 아니야?
딴여자라는 세단어가 내 귓가를 파고들자 사레가 걸렸다. 자꾸만 세어나오는 기침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남자를 옹호하는 여주인공이었다. 여주인공의 친구가 내뱉는 말들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아서 가슴이 콕콕 찔렸다. 그래도 정국이는 진짜 그럴애가 아닌데. 다 먹은 라면 국물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혼자 생각에 빠졌다. 근데 진짜 누구를 만나러 간 걸까.
정국이가 나만큼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나는 정국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일까. 젓가락을 돌리는 것을 멈추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민윤기랑 5년 연애하는 것보다 전정국이랑 3달 연애하는게 더 힘드냐.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전정국. 옆에 놓인 물을 한 잔 마시고는 다시 드라마에 집중했다. 생각보다 재미있네. 벌써 끝났는지 예고편이 나오고있다. 다음화도 계속 볼까.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보니 벌써 10시였다. 내 정신 좀 봐. 하루종일 시간 개념을 상실한 것 같다. 급하게 냄비와 컵을 치우고는 냉장고 문을 확인했다. 내일이면 부모님이 오실텐데 냉장고가 휑하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근처 슈퍼는 이미 문을 닫았을텐데. 깊은 고민에 빠졌다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잠바와 목도리를 한 후 지갑을 챙겼다. 버스타고 나가야하긴 하지만 대형마트라면 아직 열려있을 것이다.
방에서 나와 서둘러 신발을 신고는 버스정류장까지 뛰어갔다. 이게뭐야, 진짜. 버스 정류장에는 내가 타야할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숨을 돌리려고 속도를 줄이던 발은 다시금 빠르게 움직였다. 다행히 버스에는 올라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보니 언제부터인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다. 손에 쥔 지갑을 쎄게 잡았다. 첫눈은 꼭 함께 보고싶었는데.
급하게 마트에서 필요한 것을 산 후 버스에 다시 올랐다. 급격하게 몰려온 피로에 졸음이 쏟아졌다. 지금이 몇시지. 시간을 확인하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찾았다. 잡히지 않는 휴대폰에 주머니 속을 헤집어봤지만 나타나지 않는다. 어, 이게 왜 없지. 당황한 것도 잠시 아까 낮에 부엌에 올려놓고선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 기억났다. 나 오늘 진짜 왜 이러니. 손으로 이마를 집었다. 전정국 때문에 하루종일 이게 뭐야.
내 마음을 대변해주기라도 하는지 눈을 미친듯이 내렸다. 첫눈부터 폭설인가. 버스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새끼는 집에 들어갔으려나. 아직도 밖이면 어떡하지. 그냥 걷다가 넘어져 버렸으면 좋겠네. 창밖을 보며 전정국을 저주하는 것도 잠시 내가 내려할 곳에 도착했고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정말 폭설이라도 되는건지 많이도 내리는 눈이다. 장갑을 끼지 않아 짐을 든 양손이 시렸다.
눈을 맞지 않으려고 쓴 모자도 바람에 벗겨져 버렸다. 무슨 시베리아도 아니고 나 혼자 뭐하는 짓이야. 묵묵히 길을 걷다가 가로등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전정국이 생각났다.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터졌다. 눈물이 흐를수록 전정국이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곳, 나에게 익숙한 곳은 다 너에게 알려주고 함께 했기에 어딜가도 너는 머릿 속에 머물렀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구분이 안될정도로 얼굴은 만싱창이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손이 너무 시려워서 너가 보고싶다.
왜 울어, 못난아
너의 큰 손이 내 머리를 가려줬다. 너의 등이 휘어진다. 천천히 나를 바라본다. 너의 손은 모자를 잡아 다정하게 내 머리에 씌워주었다. 멈췄던 눈물은 다시금 세어나와 내 얼굴을 적셨다. 차가운 얼굴과는 상반되게 뜨거운 손이 내 얼굴을 감싸 안았다. 툭. 양손에 가득했던 짐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코가 닿았다. 알 수 없는 떨림이 나를 감싸 안았다. 화를 내고 싶었는데, 보면 한 대 때려주려고 했는데. 눈물은 언제부터인가 멈췄고 떨리는 손으로 너의 옷자락만 살짝 잡았다. 눈이 감긴다. 참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왜 울었어"
"말해주기 싫어. 저리가. 너 왜 왔어"
"여기 살지도 않는 내가 여길 왜 왔겠어"
"못 온다고 말했으면 아예 오지를 말던가. 이브 다 지나서 와놓고선"
이렇게 오면 내가 좋다고 웃을 줄 알았어?
그래도 나랑 첫 눈 맞고, 첫 크리스마스도 보내고
오늘 우리 처음한 거 무진장 많은데 안 기뻐요?
그렇게 다정하게 물어오면 어떻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말하면 목소리가 커질 것만 같아서 져주는 척 고개만 대충 끄덕거렸다. 으흥거리는 정국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국이의 팔이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좋아해요. 어깨에 얼굴을 묻은채 웅얼거린다. 살며시 정국이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움찔거린다. 너는 아직도 서툴구나. 웃음이 났다. 나도 힘껏 정국이를 안았다.
눈물이 났다. 세상 누구를 만나도 느낄 수 없는 감정임을 알기에 너무 기뻐서, 행복해서 눈물이 흘렀다. 훌쩍거리는 나를 알아챈 정국이가 내 어깨를 잡았다. 고개를 들어 정국이를 봤다. 우는 내 모습을 보자 당황한다. 왜 우냐며 쩔쩔매던 정국이는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여서 못 만난 거라며 미안하다고 백번이고 사과했다. 어머니 생신. 그 한마디에 눈물이 쏙 들어갔고 웃음이 터졌다. 나는 오늘 하루종일 뭘 한거지.
"왜 또 웃는데"
"싫어?"
"내가 싫은게 어딨어"
"안추워?"
"괜찮아요. 겨울이잖아"
추운거랑 겨울인거랑 무슨 상관인데
추우니까 겨울이지
이상해
그래서 싫어?
아니, 그래서 좋아
앞뒤가 맞지않는 대화에 우린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무거웠던 짐도 가벼워졌다. 서로 하나씩 손에 쥔 채 나란히 걸었다. 맞잡은 두 손은 눈이 내릴만큼 추운 날씨와는 다르게 땀이 났다. 눈도 힘이 들었는지 천천히 내려온다. 길 위에 내려앉은 눈들사이에 발자국이 생긴다. 이것도 너와 처음하는 일이다.
너를 알지 못해 아쉬웠다. 너에 대해선 모든지 알고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니가 좋아했음했고 니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다 좋아하고 싶었다. 근데 이제는 잘 몰라도, 서로 달라도 괜찮다. 너를 잘 모르기에 너와 하는 처음이 다 설렐 수 있었다. 너를 좋아하기에 달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져도 좋다. 우리의 계절이 봄이 아닌 겨울이 와도 괜찮다. 서로 닮아가지게, 계절은 반드시 바뀌기에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다.
전정국
소리 내 부르고 싶은 이름
사랑한다, 그를 내가
교생쌤 |
안녕하세요, 교생쌤입니다:) 드디어 축구부가 막을 내렸습니다. 완결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ㅠㅠ 첫작품이라서 많이 부족했을텐데 댓글 달아주시고 항상 챙겨봐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댓글 챙겨보고 있고 볼때마다 행복해서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필력 좋은 작가님들에 비해서 부족한 부분도 많고 재미없거나 지루했을 요소도 많았을텐데 읽느라고 다들 고생하셨어요ㅠㅠ 축구부 다음에 나올 작품은 더 발전된 필력으로 오고싶어요! 그럴려면 제가 지금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수정 해야겠지만요 허허. 그래도 축구부 덕분에 저도 방학동안에 새로운 추억거리가 생긴 것 같아서 좋습니다. 음, 사실 곧 나올 새작이 축구부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해요. 그쪽에 관해서 전문적으로 배우고있는 단계도 아니니깐요. 그래도 좋은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할테니까 지켜봐주세요. 축구부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교생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