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
김진표 (feat.제이레빗) - 아저씨
"같이 가요!"
문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에 급하게 발을 끼워넣자 작은 틈 사이로 제법 큰 남자 손이 뻗쳐 들어왔다.
다시금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라타자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조금은 찬 손길이 느껴졌다.
"내가 너 이러지 말랬지, 위험하다니까 왜 말을 안 들어."
"습관이에요, 습관."
"고쳐라."
대답이 들려오자 머리에 얹은 손을 걷어내고 거울에 기대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몰래 쓰윽 훑어보니 한두번 아닌 일에 질려버렸다는 표정이다.
살벌한 눈빛에 차마 눈도 못 마주치고 깨갱. 진짜 안해요, 약속. 다시 다짐을 받아내고나서야 입꼬리가 살짝 풀렸다.
그것도 잠시, 교복치마를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는 부담스러운 눈길에 괜히 목을 가다듬고 치마를 끌어내렸다.
"아저씨."
"왜."
"아저씨 되게 이상해요."
그제서야 치마에 구멍이라도 날 듯 쏘아보던 눈길이 거둬졌다. 대신 못마땅한 눈빛을 한 몸에 받아야했지만-.
뭐냐는 듯 턱끝을 움직이는 그를 보며 괜히 눈을 피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쳐다보는 게 너무 노골적이라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타이를 끌어냈다. 겨울 바람이 매서웠던지 볼이 발갛다.
"아니, 자기 좋아하지 말라면서-. 왜 이렇게 잘해줘요?"
띵-. 타이밍도 거지같다. 대답 좀 들으려는 새 엘리베이터는 도착해 문이 열렸다. 찡그린 표정을 본 건지 대답을 하려던 참이었는지
움직이지 않는 내 발걸음에 그가 [닫음] 버튼을 꾸욱 눌렀다. 다시 닫히는 버튼에 고개를 들자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지하 1층을 꾸욱 누른다.
"왜 안 내려?"
"아저씨는요."
"차에 놓고 온 거 있어서."
"난 아저씨 대답 들으려구요."
너무 솔직했나,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려본다.
재밌어? 그래, 열 아홉 밖에 안 된 애가 지 좋다고 쫓아다니니까 아주 재밌어 죽겠지? 툭하니 쏘아보자 콧바람을 내쉬며 입을 연다.
"너한테 왜 잘해주냐고?"
"응."
"어쭈, 이제 말도 막 까냐?"
밉다, 진짜 미워. 뚱해져서 입술만 삐죽이자 주머니서 바스락거리며 사탕을 꺼내 건넨다. 먹을래?
안 먹어요. 짜증스럽게 대꾸하자 사탕 한 알을 까더니 자기 입속에 쏘옥 집어넣는다. 진짜 얄밉다. 대답은 안하고 사탕만 우물거리는 입이 진짜 얄밉다.
딱 2층까지만 기다리고 대답 안 하면 그냥 내릴꺼야. 층수만 뚫어져라 노려보자 내 눈 앞으로 손을 흔들며 입을 연다.
"넌 나 좋아하면 안돼."
"왜요."
"아저씨니까."
"5살 차이가 무슨 아저씨야, 진짜 이해 안가."
"뭐가."
"다른 사람들은 오빠 소리 듣고 싶어 환장하는데, 왜 그쪽만 유독 그러냐구요."
"넌 나한테 애지, 임마."
이제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싫어 그쪽이라고 툭 쏘아붙였다. 검지 손가락을 들어 그의 가슴을 쿡 누르며 임팩트를 주자 똥씹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거둬낸다.
그가 딱소리 나게 이마에 땅콩을 날리는데 땅콩이 아니라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눈을 흘기며 장난스럽게 넘어가자, 여기서 울면 너 진짜 최악이야.
최면 거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시큰하다. 벌써 눈가가 촉촉한 거 같기도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무섭게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자 다시 우걱스럽게 잡는다.
"야."
"진짜 나빴어."
그에게서 거칠게 손목을 끌어냄과 동시에 결국엔 눈물이 터져나왔다. 다시 잡힌 손목을 풀어낼 생각도 못하고 그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서럽게 울었다.
왜 그렇게 약았어요, 그냥 좋게 정리해주면 좀 좋아? 흐릿하게 비춰지는 눈 앞으로 벙쪄선 당황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 진심이야?"
"그럼 장난이겠어요?"
울음 섞인 말로 빽하니 소리지르자 그가 움찔하며 손목을 놓는다.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넘기는 그를 올려보다 입술을 앙물었다.
지금 이 상황이 정리는 안 되는데 앞으로 아저씨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거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아니라고 했어야지."
"참나, 왜요."
"내가 어떻게 참고 있었는데."
"......."
"너 나랑 연애할래?"
"네?"
툴툴 대답하다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큰 눈으로 올려다보니 여전히 진지하긴한데 살짝 웃는 그였다.
"너 나 성격 더러운 거 알지, 훈련 때문에 잘 만나지도 못해."
"알아요."
"욕도 졸라 잘하고 소녀 팬도 많아서 너 길가다 돌 맞을지도 몰라."
"근데요?"
"그래도 내가 좋아?"
자기 할 말을 다 끝낸 듯 입을 꾹 닫고 대답을 기다리는 그를 보며 새삼 놀라웠다. 눈물은 벌써 쏙 들어간지 오래고 막상 이렇게 고백 아닌 고백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좋긴 되게 좋은데 꿈만 같고, 그래서 날아갈 것 같진 않은데 오히려 심장이 쿵-. 떨어진 기분이다.
"좋아요, 그래도 좋아요."
"하나만 말해주는데 나랑 연애하면 너 도망가고 싶을껄. 엄청 후회할지도."
"왜요?"
"안 놔줄거야."
"괜찮아요-."
대답을 입에서 떼어내기 무섭게 입술이 내려앉았다. 손목을 꾹 죄던 손이 내려와 손가락을 감쌌다. 너무 좋아서 그런건지. 첫 입맞춤이 조금 무서워서 그런건지.
(물론 내 생각엔 전자인 거 같지만) 눈물이 났다. 입술을 가볍게 뗀 그가 축축한 눈을 닦았다.
"아 이래서 애는 싫은데 넌 왜-."
"......"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 흔들던 그는 뜬금없이 울음을 터뜨리자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품 속에서 서서히 눈물을 그쳐가자 퉁퉁 부은 눈에 후우 찬김을 불어주는데 목캔디 향이 났다.
"먼저 꼬셔줘서 고마워."
"꼬신 거 아니에요."
"우기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