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커플의 일상이란, 두 번째 일상
W. 야끼소바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버스를 놓칠 뻔 했고 겨우 잡아탄 버스에서는 교통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갖다대기도 했다.
"아, 나 오늘 왜 이러지... 제대로 미쳤나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정신이 반쯤 빠져 있는 나를 보신 문 대리님께서 박카스 한 병을 주셨다.
"시민 씨, 오늘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저도 미치겠어요. 평생 안 오던 건망증 오늘 하루에 몰아서 오는 느낌이고 어휴..."
"퇴근하면 집에 가서 푹 쉬어요."
"감사합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타이핑을 하고 멍하니 점심식사를 하고 멍하니 컴퓨터를 바라보고.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퇴근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에 한숨을 폭 쉬었다. 괜히 죄송해지는 마음에 마주치는 직원분들마다 사과를 하고 다녔다. 어서 가서 쉬라고 토닥여주시는 바람에 코 끝이 찡했다. 내가 회사 하나는 잘 왔구나.
가방을 챙겨서 나가던 중, 윗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이민형을 마주쳤다. 이민형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다 날 발견하고서는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 오늘은 왜 먼저 가요."
"오늘 컨디션이 좀 별로인 것 같아서."
"좀 쉬어요.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왔잖아."
"진짜? 가린다고 가렸는데 많이 보여?"
"거짓말이에요. 별로 안 보여요."
"다행이네."
이민형을 올려다보며 대화를 나누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는 알림 소리에 급하게 떨어져 '비즈니스 관계인 척'을 했다. 아직 회사 사람들에게 연애 사실을 알리지 않아서 최대한 조심해야한다. 사실, 온 세상에 '나 연애해요' 티내고 다니는 이민형 때문에 사람들이 다 알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공식적으로 밝힌 건 아니니까.
남은 말은 전화나 문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민형이 없이 집에 가는 길은 굉장히 외롭고, 슬펐다. 여태껏 혼자서도 곧잘 갔으면서 오늘따라 이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저 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또다시 슬퍼졌다. 열쇠를 찾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렸다.
응?
열쇠가 없다.
가방을 활짝 열어서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없다. 열쇠가 없다.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싶더니 결국에는 사고를 치는구나. 요즘 세상 위험하다며 빨리 번호키로 바꾸라는 얼마 전 이민형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귀찮다는 이유로 바꾸지 않았는데 그 귀찮음이 지금의 대참사를 불러왔다. 그렇다고 문을 뗄 수도 없고, 철물점도 오늘 쉬는 날인데.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다같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통화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찜질방은 좀 찝찝하고... 모텔은.. 더 찝찝하고... 집 앞에서 발만 동동 굴린 게 1시간 째, 여름이지만 밤이 되니 꽤 추워졌다. 마지막 희망으로 이민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지만 얼어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뚜르르-
"여보세요?"
"민형아, 어디야?"
"나 집인데, 왜요?"
"음.. 있잖아."
"네."
"사정은 나중에 얘기해줄테니까 나 네 집 좀 가도 돼?"
"....괜찮겠어요?"
"뭐가?"
"아, 아니에요. 빨리 와요. 여름이라도 밖에 추우니까."
---
이민형의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누나예요?"
"응, 나야."
띠리릭, 기계음 소리와 함께 열리는 저 문이 부러웠다. 내가 번호키로 바꿨다면 적어도 이러고 있진 않았겠지.
"무슨 일이에요?"
"아니.. 내가 열쇠를.. 잃어버려서..."
"번호키로 안 바꿨어요? 내가 바꾸라고 했잖아요."
"귀찮아서..."
"내가 누나 때문에 미치겠다. 그래서. 오늘 밤은 어떡하게요."
"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네 집에서 자고.. 갈 수 있으면... 그렇게..."
"미쳤어요?"
"뭐?"
"저도 남자거든요?"
"이민형이잖아. 괜찮아."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남자 혼자 사는 것 치고는 엄청 깔끔한 집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네 집 엄청 깔끔하다."
"그래요?"
"응. 내 집보다 더 깨끗한 것 같기도 하고..."
"누나 집보다요?"
"그렇다고 내 집이 더럽다는 건 아니야. 그래. 그렇다고 해 두자."
"옷 안 불편해요?"
"불편하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뭐."
곰곰이 생각하던 이민형이 방에 들어가서 옷을 몇 벌 가져온다.
"이거 입을래요?"
"고맙긴 한데, 이거 여자옷 아니야? 이게 왜 네 집에 있어?"
"아 그게,"
"야, 너 설마....!"
"아아아 아니에요! 누나가 생각하는 거 그런 거 아니에요!!! 이거 누나 거, 친누나 거!!"
"진짜야?"
"진짜에요. 전화해서 물어봐도 되는데."
"전화까지는 필요 없고, 난 너 믿는다?"
"당연하죠. 누나가 나 아니면 누구 믿어."
---
"아!!!!"
"아팠어요?"
"너 감정 실었지?"
"에이, 아니에요~"
우리는 지금 쇼파에 마주보고 앉아서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 딱밤 맞기'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 맞고 있다는 거. 가위바위보를 더럽게도 못하는 나 때문에 이민형만 신났다. 쟤 나한테 쌓인 게 어마어마했구나?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미친."
"헐 누나."
이번까지 합치면 벌써 다섯 번이다. 총 다섯 판의 가위바위보 중에서 다섯 번을 졌고, 딱밤도 곧 다섯 번을 채울 예정이다. 이제는 거의 체념한 상태로 이민형에게 이마를 내밀었다.
"때려."
"누나."
"안 때리고 뭐 해."
"생각해보니까 내가 늦게 냈던 것 같아요."
"응?"
"누나 차례네. 때려요."
***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저 위에 나왔던 문 대리님... 태일이입니다!!!! 박카스 주는 다정한 우리의 태일! 새로운 인물로 등장시켜 버리면 제가 책임을 못 질 것 같아서 특별출연으로 한 번 해봤습니다..ㅎㅎ 응원해주신 분들,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신알신 눌러주신 분들, 이 글을 보고계시는 모든 분들 다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암호닉 신청은 가장 최근에 올린 화에 []와 함께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회원 분들은 댓글이 늦게 떠서 제가 확인을 못 할 수도 있어요ㅜㅜ 누락되거나 틀린 암호닉은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암호닉 [피치]로 신청해주신 독자43님, 암호닉이 겹쳐요! 변경 부탁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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