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vs 첫 사랑
w. 비이
3학년 명찰을 달고 2학년 교실을 기웃거리는 김여주의 명성은 전교에서 자자했다. 학기초부터 시작 된 저 행동은 한학기가 다 지나감에도 사라질 기미는 커녕 날로 날로 더 심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그로인해 가장 고통받는 건,
"녕아..."
김여주가 쭈뼛쭈뼛한 모습으로 아련하게 불러대는 이민형이었다.
첫사랑 vs 첫사랑
등교 시간이라 조금은 어수선한 교실 안을 차마 들어가지 못한 채 뒷문을 서성이며 이민형을 애타게 불러대는 내 모습에 복도쪽 뒷자리에 앉은 그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에 내 얼굴에는 화사하게 미속 피어올랐지만 그런 내 모습과는 상반되게 이민형의 한숨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어제가 우리 교실오는 거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 어제를 끝으로 7월 모의고사 준비 하다고 나랑 약속했잖아요."
"헤- 그게 어디 사람 맘대로 되는 거야 말이지? 그게 됐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도 않아요. 그래도 많이 줄었잖아...조종례 시간만 맞춰 오는건데..."
"됐고요. 줄 거나 빨리 주고 가요. 수학 풀던 거 마저 풀어야 하니깐."
"이욜~ 누가 전교 1등 아니랄까봐 열공중이었어요? 우리 미녕이."
"아 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죠."
"알써, 알써. 자 이거."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가 담긴 종이가방을 내밀자 그 안을 잠깐 살핀 이민형이 종이가방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어제 용돈 받는 날이었거든. 새벽에 베이커리가서 샌드위치도 사봤는데 어때? 괜찮아?"
"그걸 나한테 물어 뭐해요?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매정한... 울 미녕이... 그래도 너도 같은 남자니깐... 이런거 받았을때 느낌이 어떨 것이다, 그런 감이란게 있잖아. 응? 응? 재현쌤이 좋아하실까?"
"몰라요, 난. 그런거."
"이거 왜 이러실까? 너 인기 많은 거 전교생이 다 아는데. 이것보다 더 좋은 선물 많이 받는 거 다 알거든? 우리반에도 네 얘기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관심 없어요."
"에효, 우리 미녕이가 이렇게 어리다, 어려. 이런 걸 다 내조라고 하는 거야. 오늘 나 쫌 여우같지? 응?"
"곰이 여우인척은."
"나 곰 아니거든. 여우 맞거든."
"내 눈엔 곰 맞아요. 눈치는 쥐뿔 없는, 곰!"
내가 여전히 뒷문을 서성거리고 있는데도 이민형은 쌩하니 돌아서 교실안으로 들어간 뒤 매정하게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복도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난 그럼에도 뭐가 좋다고 폴짝폴짝 뛰어 재현쌤도 없는 교실안을 두어번 더 들여다본 뒤 3학년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사랑 vs 첫사랑
"오늘 미션 썩세스!"
교실로 들어가며 내가 브이를 그리자 내 짝이자 절친인 정수정이 혀를 끌 찼다.
"넌 우리 소중한 민형이한테 그런 부탁 하고 싶니? 다른 애들은 걔한테 말 한번 못 걸어봐서 안달났는데. 너 정말 이민형보면 아무런 감정도 안생겨? 그 잘생긴 얼굴을 매일 보고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뭐래? 걘 그냥 재현쌤 반 학생일뿐인데. 옆집 살아서 조금 친해서 이런 저런 부탁 할 수 있는."
"민형이랑 옆집사는게 복인지도 모르는 년. 재현쌤도 물론 잘생기긴 했지만, 노땅 좋아해서 뭐할래?"
"노땅이라니! 군대 면제에 졸업전 임용 합격해서 졸업후 올해 바로 부임한 젊디 젊은 사람한테! 이제 몇달만 지나면 나와 쌤 사이를 가로막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법의 장벽이 사라질 거라고. 그럼 그냥 오빠동생이나 다름 없는 나이차이야."
"그래그래, 김여주를 누가 말리겠니. 꼭 졸업후에 재현쌤과 사귀는 거 성공해서 백년해로 하세여~"
"콜당오!"
"미친년."
정수정이 더는 대화를 이어가기 싫다는 듯 문제집을 펼치자 난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반에서 떠들고 있던 애는 우리밖에 없는 듯 했다. 아니 나 밖에. 갑자기 고3이라는 현타가 급 밀려와 우울함이 밀려왔다.
내 6월 모평 등급이 어땠더라... 아...책을 펴야 겠다.
평소보다 집중해서 수업하고 필기하는 내 모습에 정수정이 어쩐일이냐고 우쭈쭈 해줬지만 내 진지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점심을 먹고는 재현쌤을 찾아다니는 나는 시방 한마리의 짐승이었다.
매점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고 있는 재현쌤을 발견한 난 한마리의 치타가 되어 쪼르르 그에게 달려갔다.
"쌤~ 재현쌤~"
내 부름에 재현쌤이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내게로 향했다. 그런 그의 모습, 넘나 모델인것. 넘나 오예인것.
재현쌤이 뽑은 커피 고티카, 메모하자 고티카.
"아... 여주구나. 점심 벌써 다 먹은 거야?"
"네. 쌤 제가 드린 건 드셨어요?"
"아, 잘 마셨어. 그런데 여주야.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젠 그러지 않는 게..."
"아 쌤~ 저녁때 캔커피 가져다 드릴려고 했는데, 벌써 커피 드시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나중에 제가 드린 거 또 드셔야해요."
재현쌤의 괜한 잔소리가 시작 될 것 같아 서둘러 말을 끊고 난 제 할말만 한 채 돌아섰다. 재현쌤은 요즘들어 날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내색을 종종 드러내셨다. 그런다고 굽힐 마음이 아니기에 그저 쌤의 말이 더 이어지지 않게 말을 끊고는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칠전팔기 나라도 이럴때는 기운이 좀 빠진다. 축쳐진 어깨로 걸음을 걷는데 마주 걸어오는 누군가의 손에 내가 새벽에 샀던 것과 같은 샌드위치가 들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허리 아래로 보이는 실루엣이 낯이 익은데, 가느다랗게 쭉 뻗은 저 다리, 참 낯이 익은데.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려다 본 그 곳엔 역시나 내 예상대로 익숙한 형체가 서 있었다.
"미녕아. 네 손에 왜 그게 들려있는지 내게 해명 플리즈?"
"그동안의 심부름값으로 쳐도 되는 거잖아요."
"내가 용돈 받은 날이라서 특별히 사왔다고 했잖아. 그러고보니 방금 재현쌤도 잘 마셨다고 했지, 잘 먹었다고는 안하셨네. 이런 미련 곰탱이! 그것도 눈치도 못 채고."
"선배 곰이라고 내가 그랬잖아요."
"야!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너 이렇게 내 뒤통수 치기 있냐? 내가 약속 어겼다고 반항하는 거야, 뭐야! 감히 선배한테, 어?"
"선배가 선배 같아야지."
비아냥거림은 아니었다. 평소 민형이의 말투와 별반 다를게 없었지만 조금 전 기분이 다운된 상태에서 그런 말투를 들으니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와 눈가가 시큰거렸다. 금세 붉어진 눈가를 보여주기 싫어 살짝 고개를 틀자 민형이가 놀란 눈으로 내가 비튼 쪽으로 같이 고개를 틀어 시선을 마주했다.
"울...어요?"
"뭐? 뭐? 아니거든?"
"눈가가 빨간데요?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샌드위치때문에 그래요? 지금 담임한테 주고 오면 되잖아요, 네?"
달래려는 건지 다그치는건지 알수 없는 민형이의 말투에 결국 서러움이 폭발해 고였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자 이민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서...선배... 아씨."
급기야 제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초조한 표정으로 날 보던 민형이 손을 뻗어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미안해요. 내가 다 잘못했으니깐 울지 좀 마요."
한결 다정해진 이민형의 목소리에 이상하게 눈물이 멈추기는 커녕 더 서럽게 새어나왔다. 민형이 때문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재현쌤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민형이에게 풀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못났다, 김여주. 후배앞에서 정말 못났다.
그렇게 속으로 나무라는 것 말고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서럽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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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두고 올릴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글잡 무료라는 이유를 핑계삼아 용기내서 올려봅니다~
내일까진 무료라고 하니깐 구독료 조금 높게 잡았어요.
무료 풀리면 포인트 확 내릴게요.
혹은... 글이 내려질지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