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zier - Take Me To Church
안녕, 나의 벗.
이 밤을 함께하자.
몽마 : Night-mare
하나, 둘, 셋. 눈을 감고 천천히 숫자를 되새겼다. 아주 여유롭고 느리게. 하나씩 수를 늘리며 세어가자 피가 순환되며 온몸이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시간마저 천천히 흘러 끝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현실에 치여 주체없이 사는 바엔 죽는 게 훨씬 나았다. 애초에 제 삶에 의욕이나 목표 따윈 없었다. 제 죽음에 슬퍼할 부모도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냥 콱, 혀 깨물고 죽어버렸으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끊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수차례 시도했던 자살은 매번 허무맹랑하게 끝나기만 했다. 남은 건 다른 이들의 날카로운 눈길뿐이었다. 아주 차갑고 위선적인. 불쌍해. 그들은 혀를 끌끌 차며 안쓰럽다는 듯이 질척한 탄식을 내뿜었다. 뭐가 그렇게 불쌍한데?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올곧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었다. 상처를 굳이 더 짊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변색된 모습이더라도 나는 한없이 어렸고 작은 아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빛이 밝았다. 보름달 따위는 아니었지만 꽤나 보기 좋았다. 암흑에 가까운 짙은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 그리고 중앙을 장식하는 커다란 달. 난 네가 부러워. 밤의 주인은 너잖아. 나도 너처럼 되고 싶다. 달은 들을 수 없는 말을 멀리서, 아주 멀리서 속삭였다. 그렇게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가끔씩 달이 대답을 하는 듯한 착각마저 드문드문 들기도 했다.
주인, 그깟 거 하면 되잖아. 중저음의 아주 낮디 낮은,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른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그 말씨에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눈앞에 어둠이 드리우자 온몸이 녹아 내려가는 느낌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오금이 저릿저릿했다.
- "…고마워."
휘잉, 하는 바람 스치는 소리와 함께 거듭 환청이 들려왔다. 아까 전, 달이라고 단정지었던 바로 그 소년의 음성이었다. 환청까지 들리고…, 이제 정말 죽는 걸까. 그제서야 괜시리 삶에 대한 미련이 들었다. 눈물이 나려는지 눈이 화끈해졌다. 늘 준비했던 죽음이었지만 막상 느닷없이 찾아오자 깔끔하지 못한 건 제 마음가짐이었다. 죽여줘, 더 후회하기 전에 얼른. 말을 내뱉으려 입을 벌리고 싶었지만 제 의지처럼 쉽지 않았다. 내 몸이 내 것 같지 않은 이질감에 고였던 눈물이 얼굴 굴곡을 따라 흘렀다. 눈물도 채 닦지 못하고 그저 숨을 넘기지 못해 헐떡거렸다.
- "첫만남부터 눈물이라니, 날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또다시 귓가를 울리는 환청에 아득한 정신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그간 이런 경험은 수도 없이 많이 겪어봤지만 방금처럼 온전한 의미를 지닌 경우는 처음이었다. 첫만남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아- 이런, 눈과 입을 막아 놓았구나. 나도 참 멍청하지. 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야."
소년의 개구진 웃음과 함께 경쾌한 마찰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굳게 감겨져 있던 제 눈이 떠졌고, 나는 곧장 환청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반가워, 꼬마야."
진회색 니트를 입은 소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나를 싱글벙글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누구야? 떨리는 음성을 애써 감추며 입술 새로 소리를 내보냈다. 소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더니 이내 다시 익살스런 웃음을 지었다.
"말해봤자 모를텐데."
일반인은 이해 못하거든. 오히려 적반하장식인 경우도 많았지. 나를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인간들도 있어서 말이야. 걔네 손에서 벗어나느라 고생 꽤나 많이 했거든. 소년이 거친 한숨을 내뿜었다.
"…알려줘."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알려줘. 간절함이 가득한 어조로 소년에게 빌었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와 나 사이에 기나긴 정적이 드리웠다.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달처럼 깊고 별처럼 아름다웠다. 그의 눈이 바다라면 그대로 뛰어들고 싶을 만큼, 잠겨 죽어도 괜찮을 만큼 소년의 눈은 매력적이었다. 사람을 홀리는 듯한 메두사의 눈처럼.
"몽마."
"…."
"난 꿈을 갉아먹는 몽마야."
갉아먹는다라…. 썩 좋은 단어는 아닌 듯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자 소년은 그런 나를 보았는지 다시금 입술을 떼었다.
"네가 부른 거야, 나를."
"…내가?"
"매일 밤 달에 기도했잖아.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자꾸만 흥미가 생기더라. 그래서 보러왔어, 널.
"…그럼 이건, 꿈이야?"
"응, 내가 만들어낸 꿈."
내가 꿈만 꾸면 언제든 네가 올 수 있는 거야? 소년은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네가 스스로 자각몽을 꿨을 때만 올 수 있어. 물론 내 능력을 쓰면 쉽게 올 수 있겠지만, 아직 미숙해서 말이야.
능력이라, 나와는 동떨어진 조금은 초현실적인 단어였다. 마냥 친근하게만 보였던 소년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밖에도 조건은 많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온전해야 한다는 거지."
"…그게 무슨 뜻이야?"
"으음, 네가 건강하지 못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꿈에 들어온 나조차도 위험하게 돼."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버린다면 나는…. 소년이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뚝 떨어뜨렸다. 꿈과 현실, 그 어딘가를 영영 헤매겠지. 맥없이 흘러나온 말에는 그 특유의 장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슬픈 건 익숙함이라는 걸 나 또한 알고 있었다. 불행한 나를 위로하러 온 너조차 불행하구나.
"너, 울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나보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물기를 닦아내자 소년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바닥에 처박자 소년은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머뭇거리기만 했다. 아까 전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가 묘했다. 아마 자신 때문일까봐 걱정이 되었겠지. 갈피를 못 잡는 그의 발꿈치가 퍽 웃겨서 웃음이 샐 뻔했다.
"…울지 마."
그의 커다란 손아귀가 시야에 들어오더니 볼에 착 달라붙었다. 앞으로는 울지 마. 네가 흔들리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숙였던 머리를 들자 슬픔이 서린 소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주는 오지 못할 거야."
"…."
"혹여나 내가 보고싶다면 달을 찾아줘."
안녕, 잘 있어. 짤막한 끝인사를 남긴 그는 폴짝 가볍게 뛰어 창가로 올라탔다. 소년이 금방이라도 떠나려는 모양새를 취하자 다급히 그를 따라 창가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움직이면 안 돼."
소년이 나를 향해 손을 뻗자 마치 거짓말처럼 내 몸이 딱딱히 굳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꿈은 깨기 쉽거든, 꼬마야. 소년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이내 내게 손을 세차게 흔들어보였다.
"내일도… 올 거야?"
"흐음, 내일은 무린데."
내 물음이 꽤나 구질구질하고 질척거렸음에도 소년은 어떠한 불평 없이 대답했다. 왜 못 오는데? 그러자 그의 눈빛이 조금 서늘해졌다.
"못 오는 게 아니라 안 오는 거지."
"…."
"잡아 먹기엔 너무 아까운 상대라서."
괜한 욕심이 생기네. 소년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일렁였다. 그가 눈을 깜빡이자 속눈썹이 예쁘게 오르락거렸다.
"나 없는 동안 죽지 말고 잘 있어."
"…."
"그리고 기다리지는 마. 잊혀질 만하면 찾아올테니까."
소년은 그 말을 끝으로 창가로 뛰어내렸다. 활짝 열린 창문이 이를 증명했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마법처럼 몸이 자유로워졌고 나는 곧장 창가로 달려갔다. 아무것도, 없어. 아래엔 키가 큰 나무들만 북적거릴 뿐 소년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혹여나 내가 보고싶다면 달을 찾아줘.'
'네가 부른 거야, 나를.'
도대체 무엇이길래 내 마음을 이렇게 휘저어놓고 가.
'몽마.'
"…."
'난 꿈을 갉아먹는 몽마야.'
그래, 너는 몽마다. 나를 갉아먹는 지독한 몽마.
사담 |
요즘따라 새로운 장르가 써보고 싶어서 어두운 분위기에 한 번 도전해봤어요 8ㅅ8,,! 아예 글을 놓는 것보다는 뭐라도 가져오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새벽감성으로 무작정 저지른 글인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반응 좋으면 다음 B편도 가져오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ㅎㅎ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우선 원우는 몽마에요. 인간세계에 내려와서 꿈을 갉아먹고 자신의 기를 채우는 어찌보면 악령인 존재죠. 옛 신화에 따르면 뱀파이어의 일종이라고도 여겨져요. 너봉이 원우를 만나게 된 까닭은, 매일 같이 달에 대고 기도를 해서였죠. 이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도는 결국 달에 닿았고 원우는 너봉을 만나러 지상세계에 내려와요. 원우는 점차 흥미를 느끼고 너봉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더이상 말하면 스포가 될 것 같아서 말할 수 없네요 ;ㅅ; 중요한 것 단 한 가지만 말씀 드리자면, 원우는 악령이고, 너봉이는 엄연한 몽마의 숙주에요. 아무리 의도가 순수하더라도 몽마 자체가 불순하다는 것,,, 언젠간 끝도 있고, 파멸도 있고, 누구 하나는 사라지는,,, 네, 그렇습니다 ㅎㅎ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글 중 원우의 말처럼, 잊혀질 만하면 다시 찾아올테니... ㅠㅁㅠ 잊지 말아주세요!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타나 치환 오류는 편하게 댓글 주세요!
+) 설정을 잘못해서 ㅠㅠ,,, 포인트 10p로 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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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 암호닉은 작품 별로 각각 받을게요. 기존 암호닉 분들도 새로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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