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D
- 열아홉 끝자락, 그곳엔 우리가 있었다.
그날 이후 나와 지민의 관계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겉으로 보기엔 예전과 똑같지만, 우린 예전과 달랐다. 진심을 담아 서로를 대했다. 무엇보다 이제 그 아이와 단둘이 있어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오히려 내 숨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
“이거 먹어 탄소야”
“헐 고기 귀신 박지민이 웬일로 김탄소한테 갈비찜을 다 양보하냐?”
“이상하게 오늘은 고기가 별로 안 땡기네”
그럼 나 줘 짜샤! 어어-? 안 내놔? 내놔, 내 고기! 아 뭐 니 안 먹는다매! 지민과 태형이 때없는 고기 쟁탈전을 보고 있잖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 이 초딩들. 야, 너네 그만 싸우고 내꺼먹어. 오예- 김탄소 최고! 야, 넌 내가 준 걸 김태형한테 도로 주면 어떡하냐?
정반대의 반응.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이 아이들과의 생활이 너무 좋다. 영원히 함께이고 싶었다.
***
“이제 곧 봄이 오겠네.”
점심밥을 다 먹은 후 오랜만에 셋이서 학교 뒷편 벤치에 앉아 꽃봉오리가 핀 나무를 쳐다봤다. 저거 피면 진짜 예쁘겠다. 그러게- 한동안 말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우리 사이 낯선 침묵이었다.
“우리 봄이 되면 셋이서 벚꽃이나 보러가자”
“박지민, 웬일이냐? 네가 꽃을 다 보러가자 하고.”
우리들 사이의 침묵을 깬 건 봄이 오면 꽃을 보러 가자는 지민의 말이었다. 그런 말을 한 게 정말 의외라는 듯 태형이 지민을 쳐다봤다. 나도 뭐 이제 문화생활 좀 즐겨야지- 꽃구경 가는게 문학 생활이냐? 아니냐? 그럼 뭔데-
꽃구경이라… 태형과 지민의 대화를 들으며 마음 한구석에 몽글 몽글, 구름이 생기는 것 같았다. 애들한테 윤기 소개시켜 줄까? 힐끔 유치한 말다툼을 하고 있는 둘을 쳐다봤다. 분명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내 마음 한구석, 근거 없는 확신이 생겼다.
***
“윤기야, 응? 가자-”
말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모양인가 보다. 내 간절한 말에도 안 들리는 척 계속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거 보면 틀림없다. 민윤기! 너 지금 내 말 일부러 무시하는 거지? 내 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정말 너무하잖아, 요즘.
“야 민윤기. 너 요즘 왜이래”
이러다간 끝도 없을 것 같아 피아노를 치던 윤기의 손을 붙잡았다. 윤기의 손이 허공에 멈춰졌다. 뭐냐는 듯 날 올려다보는 민윤기.
“왜, 뭐-”
“너 요즘 왜 그래. 이제 내가 와도 안 반가워? 예전처럼 내 말 들어주지도 않고. 내가 너 보러 여기 오지 너 피아노 연주하는 거 들으려고 오는지 알아?”
“너 되게 웃긴다.”
“뭐?”
“너야 말로 요즘들어 왜 이러냐. 아, 이제 그 망가진 손으로 피아노 못 치니까 베알 꼴려서 그래?”
“…야, 너 지금 뭐라고…”
“아니야? 맞는것 같은데?”
도를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윤기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덜덜 두 손이 떨려왔다. 순식간에 내 시야가 흐려졌다. 윤기의 얼굴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탄소야”
“...”
“슬퍼?”
“민윤기, 너‥”
“고작 손하나 잃었다고 그러는 거 아냐.”
“...”
“누군, 모든 걸 잃었는데…”
“...”
더 이상 윤기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윤기가 주저앉았기 때문에.
***
그날,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하려 해도, 아니 기억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정신 차려보니 난 내 방 침대였다.
그날 이후 더 이상 난 아지트로 찾아가지 않았다. 내가 이제 더 이상 가지 않는다면 윤기도 더 이상 오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도 의문 인게 모든 걸 잃는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문득 궁금해졌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기 싫었다. 생각하는 거 대신, 난 마음속으로 조용히 내 바람을 속삭였다
더 이상 윤기가 보고 싶지 않아. 난 더 이상 윤기가 보고 싶지 않아.
더
이
상
,
윤
기
가
“보고 싶다…”
내 마음 속 한켠, 진심과 거짓이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암호닉]
지민아
태태
짐늬돈까스
땅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