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隠
: 신이 숨기다
〈1>
“할머니! 저 강에 정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어요?”
으응? 저기 저 강 말이냐? 주말 한가로운 저녁 즈음. 노을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가 의자에 앉아있는 백발의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응! 저 강, 예전부터 말이 많던데-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인상을 쓰며 창 넘어 푸른 강을 바라보던 노인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할머니는 신의 세상에 다녀온 적이 있단다”
“……진짜요?”
“꿈을 꾼것만 같았지…”
“할머니, 얘기해주세요! 네?”
칭얼거리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노인이 고개를 들어 강을 멍하니 바라봤다. 기억에 잠긴듯한 노인의 얼굴에 행복함과 동시에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하아, 한숨을 쉬던 노인은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았다.
“대신, 아무한테도 말 안하기다?”
“와! 당연하죠-”
“그래그래-”
“그날은 나에게 있어 가장 불행한 날이었단다.”
그날은 내게 있어 가장 불행한 날이었다. 아빠 사업이 부도가 나서 사채업자들이 내 학교로 쫓아와 깽판을 부렸고 내가 빚쟁이 자식이란 걸 알아버린 남자친구도 내게 이별을 요구했다. 나쁜놈… 하굣길, 차마 집에 못 들어갈 수 없어 집 밖 강 주위를 배회했다.
그러다 다리가 아파 강 앞에 앉았다. 강을 보고 있잖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더러웠다.
내 마음속 강은 탁한데 왜 너는 맑아? 말도 안 되는 질투심을 느끼는 나는 홧김에 옆에 있던 돌멩이를 던져버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손에 집히는 대로 막 던지다가 헉, 내 핸드폰마저 던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했다”
저거 기기값이 얼만데… 차마 강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이러다간 정말 핸드폰이 밑으로 가라앉아 영영 못 꺼낼 것 같아 미친척하고 강에 들어갔다. 남이 보면 내가 자살 시도라도 하는 줄 알까 봐 최대한 빨리 핸드폰을 찾으려 아래로 손을 뻗어 휘저었다.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핸드폰에 내 마음이 급해졌다. 아, 난 엄마한테 죽었다… 어? 그러다 내 손끝에 뭔가가 만져졌다.
뭐야 이게…? 들어 올리려 해도 꽤나 무게가 나가는 듯했다. 그래도 있는 힘껏 젖먹던 힘까지 더해 끌어올렸다. 그 순간,
“꺄아악!”
정체 모를 강한 힘에 이끌려 그대로 빨려 들어가버렸다.
***
꾹꾹, 무언가가 나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탁, 날 찌르는 누군가의 손을 붙잡았다. 히익, 누군가가 괴기한 소리를 냈다. 비정상적으로 미끈거리는 거에 이상함을 느껴 눈을 뜬 그 순간,
“아악!”
“엄마야!”
나와 동시에 이상한 형체, 그러니까 개구리의 모습을 한 인간 아닌 인간 같은 생물체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저거 뭐야…? 개구리야, 인간이야?
“ㅇ..ㅇ..인간, 인간이다아아아!”
내가 살아있는 걸 확인한 개구리 인간이 저멀리 악을 지르며 달아났다. 인간 처음 봐? 왜 저러는 거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정신차려 김탄소 착착 내 뺨을 때렸다. 물에 젖어 달라붙은 교복이 날 옥죄여 왔다. 여긴 대체 어디지?
주위를 둘러봤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뭐야, 여기… 확실한 건 여긴, 한국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인간 세계가 아닐지도 모르는 풍경에 머리가 아팠다. 내가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된 거지? 아, 핸드폰! 그 잘난 핸드폰 하나 찾겠다고 그 난리를 피워 결국 정체 모를 곳에서 눈을 떠버렸다.
“어떡하지…”
일단 주위를 둘러보면 뭐라도 보이지 않을까? 집으로 가는 길이 있을지도 몰라‥ 몸을 일으켜 가장 밝게 빛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추워- 점점 날이 저물고 있었다. 딱딱 이와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시계 초짐 움직이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여기 대체 어디인 거야…
“어?”
밝게 빛나는 곳에 이끌려 온 나는 세상, 그 어느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너무도 아름답고 밝게 빛나는 유리구슬을 발견했다. 세상에… 저런 게 이 지구 상에 존재했단 거야? 아름다운 빛에 못 이겨 나도 모르게 구슬에 손을 뻗었다.
“악!”
순식간이었다, 위에서 강한 압력이 내 어깨를 짓누른 것은. 으윽, 결국 내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추락했다.
내 뒤에 누군가 있는것 같아 돌아보려 해도 돌아볼 수 없었다. 강한 힘이 날 뭉개듯 옴짝달짝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
“정체를 밝혀라.”
내 머리 뒤 누군가가 속삭였다. 소년, 앳된 목소리였다. 아, 고개를 못 들지? 비아냥 거리는 투로 말을 하던 소년은 쓱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가로로 쓸었다.
날 짓누르던 힘이 사라짐과 동시에 헉,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모양이다.
“감히 인간이 신의 영역에 들어오다니.”
고개를 들어 뒤돌아 봤다.
그곳엔 어린 소년이 날 못마땅하단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기껏해야 내 또래, 아니면 나보다 더 어려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멍해졌다.
“인간이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이 알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야”
“…신?”
“게다가 신의 구슬을 탐하다니 소멸되어 마땅하지”
얼굴과 안 어울리게 어른스러운 말투를 쓰는 소년은 애늙은이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저기 너 말야…”
“너라고?”
“그쪽…?”
“어이가 없네”
“감히 인간 따위가.”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말한 소년이 비웃으며 말을 했다. 인간 따위…?
“그쪽은 인간이 아닌것처럼 말하시네요”
“나 인간 아닌데?”
“…뭐라고요?”
“나 인간 아니라고”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소년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런 내 모습이 가로롭다는 듯 내려다보던 소년은 허공에 음계를 그리듯 손을 휘저었다.
“헉!”
그와 동시에 내 몸이 공중에 떠올랐고 소년은 떠있는 나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네가 소멸하느냐, 아니냐는 신께 달렸어”
그대로 날 어디론가 데려가는 소년이었다.
***
도착한 곳은 궁궐이었다. 호와스러운 궁궐의 모습에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차에
괴기스러운 생명체들이 나와 정국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정국, 정국님! 인간을 이곳에 들어놓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신이 노하십니다!”
“더러운 인간 주제에 감히…!”
아까 봤던 개구리 인간이 보였다. 아니 정체모를 요괴들이 궁궐 앞에 모여있었다.
내게 손가락질하며 울분하는 그들은 인간에게 큰 증오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인간을 데려오라는 신의 말씀이다”
소년, 아니 정국의 입에서 신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요괴들이 황급히 길을 텄다.
요괴들의 손가락질과 눈빛이 내 몸을 관통할 것만 같아 빠른 걸음으로 궁궐 안으로 들어갔다.
***
“신. 정국입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엄청 큰 문 앞에 서서 정국이 말을 했다. 곧이어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꺄악!”
날 뒤에서 미는 힘에 끌려다가 시피 방안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뒤이어 정국이 들어왔다.
“존명, 말씀하신 인간을 데리고 왔습니다.”
신, 이라 불리는 그는 정국의 말에 가만히 눈을 떴다. 나른한 표정인 그는 날 쳐다봤다.
“…”
아무 말도, 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던 신은
“…구나”
뭐라 중얼거렸다. 워낙 작은 소리에 앞말은 듣지 못했으나 신은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내게 손짓했다.
몸이 공중에 붕 떠 그대로 신에게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