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기분
그 후로 정호석은 소식 하나 달랑 남겨두고 떠났다. 여행을 간다나 뭐라나. 그냥 그렇게 종적을 감쳤다는 말이다. 욕이 안 나올리가 없었다. 그렇게 거실을 배회하는 여자아이는 겨우 제 건너 사는 여자(인)친구를 불러 씻기고 옷도 몇 개 얻었다.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은 덤으로. 사촌 동생이라고 둘러대긴 했으나 이것도 얼마 못가면? 김태형 인생의 큰 오점으로 남아질테지.
지금은 거실에 단 둘이 마주 앉아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어쩌면 저만 이 일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신기하다는 눈빛을 반짝이며 집을 둘러보는 게 영 여우가 아니라 강아지 같은데. 큰 귀하며 애교스러운 저 입매는 또 여우가 맞단 말이지.
벅벅.
...저 바닥을 모래로 착각하고서 긁어대는 습성도 여우가 맞았다.
하.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언젠가 정호석 망할 놈이 제 여우의 근황을 궁금해 한다면 보여줄 요량이었다. 절대 제 사심이 담기지 않았, 글쎄. 이건 장담을 할 수가 없다. 벅벅. 또 한 번 바닥을 긁다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편 여우는 하품을 하고서 저를 바라봤다. 저 두 눈에 맑은 별이라도 박아놓았나. 순간 멍을 때리다 고개를 저었다. 핸드폰으로 봤을 땐 사과 같은 과일을 먹는다던데. 말이 자취지 거의 자기만 하는 집에 과일이 있을리가 없었다. 심지어 물도 사먹는 마당에. 캬릉. 저를 보며 짧게 울더니 아기들이 기어오듯 기어와 제 무릎 위를 차지하고 앉았다. 눈을 크게 뜨며 몸을 굳히자 익숙하게 어깨에 턱을 괸 채로 눈을 감는다. 미처 넣지 못한 제 몸체만 한 꼬리를 살랑이는게 꼭, 자꾸만 여우인지 강아지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꼬르륵.
"...?"
분명 태형의 배는 아닌데. 그렇다고 다른 강아지나 동거인이 있는 것이 아니니 소리의 원인은 제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이 아이였다. 배고파? 엉킨 머리칼을 빗어주려 구석에 박아둔 빗을 꺼내오며 물었다. 눈을 도륵, 굴리던 아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쥬...탄소 배고파."
아, 이름이 탄소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마저 빗겨주었다. 그게 간지러워 그러는건지 기분이 좋아진건지 한창 고릉 거리더니 이내 휙, 제 품을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이거 묘하게 섭하네.
밖에 나가는 김에 장도 봐올 심상으로 소파 한 구석에 우겨져있던 후드집업을 걸쳤다. 눈에 띄게 자리잡힌 주름을 손으로 벅벅 문질렀으나 펴지질 않는다. 뭐 어때. 머리를 털고 모자를 뒤집어 썼다. 그런 제 모습을 빤히 보던 아이, 탄소가 제 머리도 따라 헤집는다. 꽤 길고 단정한 머리가 엉킨다. 그리고는,
"쥬, 탄소도 그거. 머리 할래!"
머리? 한참을 내려다보니 제 머리 위로 씌어진 모자를 툭툭 친다. 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후드집업을 꺼내와 입혔더니 소매도 축 늘어져 손이 보이질 않더라. 더구나 기장도 기장인지라 족히 허벅지를 가려 무릎 위로 댕강. 제가 생각한 그런 핏이 아니었던건지 입술을 비죽이며 코를 흥, 하는 게 영락없는 애다. 이게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인가. 귀여워 깨물어 버릴까보다. 소매를 접어주고 지갑을 챙겨들어 현관으로 손짓하니 그새 웃으며 쪼르르 달려간다. 크기는 크지만 별 수 없으니 제 슬리퍼를 신겼다. 오면서 슬리퍼도 사줘야겠다. 현관문을 열기 위해 손을 들었다. 뒤에서 아! 크게 손뼉을 친 탄소가 꼬리를 붕붕 흔들다 순식간에 감춘다. 오, 신기한 듯 바라보다 혹여나 잃어버릴까 손을 잡았다.
반인반여우 키우는 김태형의 일지
W. 메로우
그리고 나온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짐했다. 다시는 탄소 데리고 산책도 안 올거라고.
어찌나 궁금한 것 투성이인지 한 걸음 가서 꽃내음을 맡고 한 걸음 가서 저보다 작은 아이에게 안녕!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직도 마트는 커녕 놀이터 입구에 막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암만 제가 유아교육과고, 명절 때 아이들을 도맡아 놀아준다지만. 얘는... . 고개를 저었다. 정말 말 그대로 어디로 튈 지 몰라 노심초사다.
"안녕!"
또 한 걸음을 채 못 가 다른 여자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뛰어간다. 언제 벗겨진건지 모를 모자 밖으로 윤기 나는 머리칼이 찰랑였다.
"탄소야, 손 잡아야지."
"네-."
꼬마와 손을 맞잡고 꺄륵 웃어보이던 탄소가 다시 제게 달려와 손을 내민다. 살짝 엉킨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주고는 내밀어진 손을 움켜쥐었다.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 경쾌하긴 하나 지금은 제발 얌전히, 시원한 마트로 직행했으면 했다.
"와, 저거는 뭐야?"
...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아 바로 그 다짐은 접어 하늘로 올려보내는 김태형이었다.
사담's |
안녕하세요. 메로우 입니다. 금방 1편을 가져왔어요. 재미 없다고요? 죄송합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아, 이런 거 보고싶다 싶어서 공책에 적어놨던건데 얼마 전에 청소하다 찾아서 얼른 들고 올 수 있었어요!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나의 착각)에 정말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맞춤법 같은 피드백 달게 받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따로 이게 궁금하다 혹은 이런 에피소드가 보고싶다 하시면 제게 속삭여주세요. 레드카펫 펼쳐 모셔가겠습니다. 헤헿. |
♡소중한 암호닉♡ |
[땅위] [이상해씨] [즌증국] [뉸뉴냔냐냔] [탬버린] [델리만쥬] [빙구] [디니] [태브이] [잠만보] [쫑냥] [뚝아]
암호닉은 일단 따로 받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쓰는 다른 게 너무...분위기가...절레절레 제가 봐도 노답인지라.. 아무쪼록 제일 최신화에 해주시면 제가 다음 화에 바로 올려드려요 뿅뿅. 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