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달 열하루 프로젝트 1 ROUND 블라인드
주군의 순정
처음 그를 봤을때의 첫인상은 무(無)였다. 아무런 감정조차 없어보였다. 혼인 당일에도 말이다. 아무런 감정도 없어보였다. 혼례식을 올리고 나란히 앉아 광대들과 궁녀들의 춤을 보고있을때 조차도 표정은 좀처럼 바뀌지않았다. 다른 신하들이나 사람들은 웃기 바빴음에도 그는 표정하나 바뀌지않았다. 혹여, 내가 마음에 안드는것인지, 아니면 그리 큰 가문이 아닌 집 딸인 내가 왕비가 되어서인지. 아무말 없이 내 옆에 앉아있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전하. 혹, 무엇이 마음에 안드는게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그는 나를 잠깐 보더니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아니라고 말한뒤. 다시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원래 이런 분이신가. 그래도 그렇지, 혼례날에도 아무표정없으니 조금 속이 상하는것 같기도 했다. 그는 혼례가 처음이 아니였지만, 나는 처음 이였으니. 속으로 그래도 조금 다정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바램'으로 남겨두어야 하나보다. 혼례식의 모든 절차가 끝나고, 그와 함께 그의 침소에 들어갔다. 올렸던 머리를 그가 풀어주고, 그와 나 둘다 혼례복장이 아닌 편한 옷차림이 되었을때, 나는 놀랄수밖에 없었다.
"놀랐느냐?"
입꼬리를 비죽 올려 웃은 그는 인간이 아니였다. 평범한 사람 같았음에도 그의 눈동자 색은 달라져있었다. 연한 푸른빛과 회빛이 도는색. 그리고 제일 눈에 띄는. 곱게 정리한 머리카락 위로 솟은 귀. 인간의 것이 아닌, 동물의 귀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개의 귀였다. 내가 놀라 입을 가리고 그를 계속해서 쳐다보자, 내 눈빛을 봤는지 그가 픽 웃었다. 그 웃음은 뭐랄까, 정말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닌 씁쓸함이 섞인 미소였다.
"내가 괴물같느냐, 징그럽고, 혐오스럽느냐"
"아,아닙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
"정말로, 그런 생각 한적 없습니다. 전하"
정말이였다. 사실 놀라긴 했지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그냥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정도. 예전에 읽은 책에서 본적이 있는것같았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 인간이면서 동물의 피가 섞인 존재. 사람들은 그것을 半人半獸(반인반수) 라고 불렀다. 그도 그런것일까. 내가 그를 다시 쳐다봤을때는 이미 시선을 거둔후였다. 표정은 더할나위없이 쓸쓸해보였고, 외로워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아는것일까. 내가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다른 대신들도 전하를 알고있습니까?"
"알지못한다. 알았다면, 내가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르지. 괴물이 어떻게 나라의 군주가 되겠는가"
"괴물이라니요...당치도 않습니다"
내말에 나를 무표정으로 쳐다보던 그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작게 한숨을 쉬고는 호롱불을 입으로 불어 껐다. 그러자 금새 깜깜해진 방안. 내가 앞이 보이지않아 당황해 눈을 다급하게 굴리는데, 그가 내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왔다. 내 손목을 한손으로 잡아도 남을만큼 큰고 따뜻한 손이였다. 그러더니 이부자리로 나를 당겼다. 앞이 보이지않는 나를 배려한듯 싶었다. 내가 더듬거리며 이불을 찾아 덮고 눕자, 나와 마주누워 나를 잠시 쳐다보던 그는 이내 나를 등지고 몸을 돌렸다. 그렇게 궁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
"전하 오늘도 늦으십니까....?"
"먼저 주무시고 계십시오 부인"
"아닙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처리할 일이 많습니다. 고집부리시지 마시고 주무시지요."
내 고집에 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평생을 그런 사이로 지낼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기다리겠다고 말하자, 나를 쳐다보던 그는 이내 방에서 나갔다. 그 날 이후, 그에게 나는 살갑게 굴었다. 원체 내가 정이 많은 성격이기도 했고, 그때의 씁쓸한 표정이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였다. 다행히도 그는 나를 밀어내진 않았다. 그러나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을뿐 사이는 예전과 같았다. 어색한듯 아닌듯 미적지근한 사이. 그래도 더 나빠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 수틀을 꺼냈다. 그가 올때까지 수를 놓을 작정이였다.
"흐아암..."
한참을 수를 놓다보니 피곤이 몰려왔다. 눈이 조금 침침하기도 하고, 밖을보자 새벽 임을 알려주듯 푸르스름한 하늘에는 은은한 달이 떠있었다. 꾸벅꾸벅 졸면서까지 수를 놓다가, 못참을것같은 졸음에 상 위에 수틀을 내려놓고 눈가를 살짝 문지르는데 방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왔다. 아직 내가 기다릴지는 몰랐는지 조금 놀란 표정이였다. 정말 생각조차 못한듯 놀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봤다.
"아직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아까 말씀드렸지않습니까. 기다리겠다고..."
"제가 언제 돌아올지 알고 기다렸다는 말입니까."
그가 그렇게 말하며 졸음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를 안아들어 잠자리로 데려갔다. 평소였다면 내려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웠겠지만 졸음에 아무행동도 할수없었다. 나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그가 편한차림으로 갈아입고 와서 내 옆에 누웠다. 내가 그를 향해 돌아누우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피곤,하시지않으십니까..."
"저를 걱정할게 아니라 부인이 더 피곤해보입니다. 제가 늦는다고 했었는데도, 기다린 연유가 무엇입니까"
"방으로 돌아왔을때 아무도없이 혼자인것보다 누군가가 기다려주는게 더 기쁘지않습니까"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살짝 멍한 표정을 짓던 그가 처음으로 외로움, 쓸쓸함 등 어두운 미소가 아닌 약간이지만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봐야 입꼬리를 올려 조금 웃은게 다 이지만. 그러더니 오른쪽 손을 들어 내 머리를 가만 가만 쓰다듬어 내렸다. 그의 손길이 나한테 닿은것은 처음이였다. 많이 놀랐지만, 졸음에 그마저도 반응하지못하고 느리게 눈을 깜빡거리자 부드러운 손길로 내 눈을 감겼다.
"피곤하실텐데, 주무십시오"
"부인"
**
그날이후 그는 조금씩 바뀌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서 유해졌다고 할까?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였지만 말이다. 예전에는 항상 늦은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면 요즘에는 그와 달리 일찍 방으로 들어오곤했다. 예전처럼 어색했던 사이가 조금은 나아지기도 했고. 한번씩 산책을 나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 내가 일어났을때 그는 조금 아픈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가 걱정이 되어, 그의 이마를 짚어보자, 불덩이 처럼 뜨거웠다.
"전하, 어디 아프신것입니까? 열이 심하십니다.."
"괜찮으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이렇게 열이 많으신데, 어떻게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말입니까"
식은땀을 흘리는 그가 안쓰러웠다. 내가 의원을 부르려 하자, 하지말라며 나를 잡는 그였다. 많이 힘든듯 끙끙거리는 그를 보다가, 침소 바로 밖에 있는 지민에게로 달려갔다. 그와 죽마고우였다던 지민이라면 뭐라도 알지 않을까 해서. 나와 지민만이 궁에서 그가 반인반수라는것을 알고있었다. 내가 다급하게 지민에게 달려가자. 무슨 일이냐며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전하께서..많이 아프십니다. 어제만 해도 아무렇지 않으셨는데..."
"혹, 증상이 어떻게 되십니까?"
"열이 많이 나시고...식은땀을 흘리십니다"
"아, 그렇다면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내말에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며 지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아픈데 어떻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성큼성큼 전하가 계시는 침소로 들어가더니 전하 옆에 앉았다. 그를 살펴보더니, 제가 생각한게 맞았는지 그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나를 향해 뒤돌았다. 뭐때문에 그가 아픈건지 지민은 아는걸까.
"전하께서는 두달에서 세달에 한번씩 이렇게 아프셨습니다"
"어디가 많이 안좋으신것입니까?"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전하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지라 그것때문인거 같다고는 하시는데..."
"아...."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말은 약도, 어떻게할 방도조차 없다는 말과 같았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지민에게 괜찮다고 하고 보내고나서 그의 옆에 앉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소리를 내며 앓고있는게 보통 안쓰러워 보이는게 아니였다. 하루가 지나도록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였다. 아침 수라를 내왔을때에도 생각이 없다며, 물리더니 점심과 저녁까지 거르려 하는걸 내가 계속 드시라고 권하자, 억지로 몇 숟가락 먹고는 수저를 놓았다. 밤이 깊어질때까지, 열이 내리지 않기에 수건을 물에 적셔 그의 얼굴을 계속 조심스레 닦아내렸다.
"전하 더 필요하신건 없으십니까"
"괜찮으니, 쉬십시오. 하루종일 그러고있으면 피곤하지도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전하의 몸상태가 이리 나쁘신데...."
"오늘이 지나면 괜찮아 질것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수 있습니까!"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큰소리를 냈다. 우리는 엄연히 부부인데. 어떻게 신경을 쓰지 말라는건지. 내가 큰소리를 내자 그가 놀란듯 나를 쳐다봤다. 아플때 제일 서러운 법인데. 아프면서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않고 혼자서 참으려는 그가 안타까웠다. 왕이라는 직위 때문에, 반인반수라는 남들과 다른점 때문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아픔을 참아왔을 그를 알기에 더 안타깝고, 속상했다.
"부인"
그가 살짝 놀란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나도모르게 눈물이 났나보다. 내가 소매로 눈가를 문질러 닦고, 아직 일어나시면 안된다고 말하자, 내말은 듣지도 않고 몸을 일으켜 앉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를 계속 보던 그가 처음으로 다정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왜 울고 계십니까. 제가 아프니까 많이 속상하십니까"
"...네, 많이 속상합니다"
"부인을 위해서라도 빨리 나아야겠네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방 괜찮아 지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의 말에, 내가 그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 하자, 나를 달래오듯, 손으로 내 볼을 쓸어왔다. 다정한 그의 행동에 더 눈물이 날것같아 억지로 눈물을 참고있는데, 처음으로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탄소야"
그 다정한 목소리에 홀린듯 그를 쳐다보자,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나와 그의 입술이 맞물렸다.
잎새달 열하루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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