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달 열하루 프로젝트 1 ROUND 블라인드
주군의 순정
(김태형, 그의 과거)
"이로써, 윤 씨는 조선의 왕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바이다"
내 첫 혼인식. 꽤나 큰 가문의 규수인 그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와 동시에 착하고 다정해보이기도 했고. 내가 봐온 그녀의 이미지는 그랬다. 태어날때부터 인간이 아니였던 나는 그녀를 보고 그녀라면 내 모습을 알고도 좋아해주지 않을까.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그녀 앞에서 내 진짜 모습을 보였다. 인간이 아닌,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짐승인 그모습을. 그리고, 그때했었던 그녀의 말은 아직까지 내 가슴에 박혀들었다.
'전, 전하...'
'....부인'
'부, 부르지 마십시오. 당신은 괴물입니다.'
'괴..물?'
괴물이라는 말에 멈칫 했다. 살짝 웃음짓던 얼굴 또한 천천히 굳어져갔다. 괴물이라니. 내 표정을 본 그녀는 더욱 겁을 먹은듯 했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고 소리친 그녀는 나를 혐오스러운 짐승 쳐다보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 눈빛을 본 순간. 나는 굳어져 버렸다. 나를 보는, 다른사람들의 시선이 이렇구나. 그생각에 헛웃음을 쳤다. 나는 다른사람들과 다를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구나.
'제가 정 불편하시다면, 같은 침소를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녀를 배려해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곧바로 침소를 나갔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그날 이후로 조금씩 틀어져갔다. 처음 혼례를 올리기 전만 해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산책을 가기도 했었다. 오히려 그때가 지금보다 사이가 좋은듯 했다. 내가 일을 끝내고, 그녀를 잠깐 만날까 해서, 그녀의 침소 근처로 갔다. 유난히 귀가 밝은 내 귀에 들린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대감께서 며칠만 참으라고 하신걸 보면..."
"저런 괴물과 함께 있으려니, 힘들지 그지 없구나. 하긴, 괴물따위가 어떻게 한 나라의 왕이 되겠느냐"
"맞습니다. 며칠뒤면, 괴물의 숨이 끊어질테니.."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갔다. 저말은 즉슨,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말. 내가 들릴줄 모르고 있었던것일까. 계속해서 듣자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것같아 꾹꾹 참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뒤 내가 예상했던것처럼 새벽에 반란을 일으키려한 왕비쪽 가문에 나는 미리 알고 간단하게 제압했다. 내가 미리 준비하고있을줄 몰랐는지, 당황한것처럼 보였다. 나는 표정없이, 왕비의 침소로 가자. 이렇게 될줄 몰랐다는듯 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보는 그녀가 보였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한달만에 왕비자리에서 쫒겨나게 되었으니"
"괴물과 함께하지 않을수 있어 기쁠 따름입니다"
"역모를 꾀한 죄는, 죽음을 면치 못할것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이런 괴물이라는걸 백성들과 신하들이 알아야 할텐데.."
"..끌고가거라"
한껏 비꼬는 그녀는 이내 군사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그리고 모든게 제압되고난 후, 그녀와 그녀의 아비는 내가 보는 앞에서 사약을 들었고, 그모습을 나는 표정없이 쳐다봤다. 무슨 감정일지 모를 기분에 그모습을 보다가 침소로 돌아왔다. 충성을 맹세했던 대신이 내가 반인반수라는 말에 반란을 일으키고, 나를 평생 사랑해줄것같았던 그녀에게 배신당하고. 그 와중에 그녀가 내뱉었던 괴물이라는 말이 계속 생각났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푸르고, 평온하기만 했다.
"...."
오늘따라,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싶었다.
**
그날이후로 그와 나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가 나에게 마음을 연듯, 그날 이후로부터는 나에게 한없이 다정하기만 했다. 다행히도 그날 새벽이 지나가자 언제 아팠냐는듯 괜찮아진 탓에 한시름 놓긴 했지만. 하루 쉬었다고 그는 밀린 일이 많다며 며칠을 바쁘게 돌아다녔고, 그탓에 나는 하루종일 혼자 있었어야만 했다. 내가 몰래 일하는 그의 모습이 보고싶어 몰래 방에서 나왔다. 궁녀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대신들과 그가 회의를 하는 곳이였다. 내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그를 보자, 나와 있을때와는 달리 처음 그를 봤을때의 무표정으로 회의에 임하고 있었다.
"와...다른사람같다"
내가 조금 그걸 지켜보다가 이러다가 들키겠다 싶어서, 살며시 문을 닫고 다시 침소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려면 많이 멀었으려나, 평소처럼 수를 놓고있는데, 방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왔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벌써 돌아왔냐고 묻자,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왔다고 한다.
"벌써 끝나셨습니까"
"회의가 끝나자마자, 돌아왔습니다. 다른 업무는 여기서도 할수있으니."
"고생하셨습니다. 전하"
"그리고, 부인이 많이 보고싶기도 하고요"
그의 말에 내가 조금 부끄러워 배시시 웃자, 그가 이내 동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가 인간이 아닌, 동물일때는 여느 동물들과 다름없이 사람의 손을 타고싶어하고, 관심을 받기위해 재롱을 떨었다. 그도 비슷했다. 아무도없는 나와 함께 있을때 그는 종종 동물로 변하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나에게 안기거나, 쓰다듬어 달라는듯 내 무릎위에 앉는 그의 모습이 뭐랄까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까 회의를 할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표정도 무표정이고 딱딱 공과 사를 구분했었다면, 지금은 그저 주인의 손을 타고싶어하는 큰 강아지와 다름없었다. 내가 장난스레 그가 쓰다듬어 달라는듯 어리광을 피워도, 가만히 있자, 그가 배싯 웃으며 말한다.
"뭐하고 계십니까, 평소처럼 해주시지요"
"전하답지 않습니다"
내가 못이긴척 그의 등을 쓰다듬다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그가 내 무릎에 엎드려있다가 일어나 나에게 뛰어들어 안겼다. 그런 그 때문에 내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내가 무거워서 끙끙거리자, 이내 다시 사람으로 바뀐 그가 뒤로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면서 그가 밝게 웃어보이는데, 그게 그렇게 보기 좋을수가 없었다.
"그렇게 웃으시니 보기 좋습니다"
"이게 다 부인 덕분입니다"
"제가 한게 뭐가 있다고..."
내가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한껏 웃음을 지은 그가 내 뺨을 쓸어내리며, 부인이 아니였으면 이렇게 웃는 일도 없었을것입니다. 하고 말하며 내 입술에 몇번 입을 맞췄다. 그러더니 앉은채로 내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아왔다. 애정표현도, 사랑한다는 표현도 많은 그를 누가 아까 회의실에서 차가웠던 그와 같은사람이라고 볼까. 그에게 한참 안겨있다가, 산책을 가지 않겠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산책을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부인"
나를 무던히도 사랑해 주는 그 덕에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잎새달 열하루 프로젝트 |
주군의 순정이 끝이 났습니다. 생각보다 분량도 많아지고, 늦어져서 죄송하네요 :) 재밌게 읽어주세요! 개인적으로 너무 넣고싶었어요...밖에서는 차가운 군주이면서 여주 한정 대형견미...ㅎㅎ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