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너 좋아한대
친구가 있다. 흔히들 말하는 남사친. 요즘 그 남사친때문에 내가 딱 죽겠다는 말이다. 애가 좀 잘생긴건 알아가지고 주변에 여자들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꼬인다. 물론 걔한테만 꼬이면 나야 뭐 문제 없는데, 진짜 문제는 나한테도 꼬인다는 것이다. 남자가? 아니, 여자가! 시작은 괜찮았다. 그냥 단지 그 애의 전화번호를 묻거나, 성격은 어떻냐 등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물어봤다. BUT, 지금은 다르다. 심지어 박지훈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려고 나에게 고백을 한 여자애도 있었다.─이 일에 난 정말 충격을 받았다─ 며칠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하면...
" 이름아, 너 지훈이랑 얼마나 친해? "
" 응. 별로 안 친해. "
" 아, 정말? 그럼 지훈이한테 고백해도 되는 거지? "
학교에 좀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소문난 애가 갑자기 내 옆에 앉아서─그 전에 말을 단 한 번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다짜고짜 나에게 박지훈과 얼마나 친하냐고 물었다. 이렇게 당한게 한 두번이 아니라서 예의상 웃어주고는 별로 안 친하다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능청스럽게 '그럼 지훈이한테 고백해도 되는 거지?' 아니, 이런걸 왜 나한테 물어보지? 내가 걔 여자친구야, 뭐야. 알아서하라는 눈빛을 읽었는지 어쨌는지 자기 혼자 신나서 내 옆 자리에서 일어나 싱글벙글 웃으면서 반을 나간다. 진짜 이해 안 가.
" 야, 걔한테 고백 받았냐? "
" 아, 그거 또 너냐? 너가 고백해도 된다고 했지? "
"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걔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 "
" 그건 그렇고 너 나랑 안 친하다고 했다며. "
급식 시간이라 마치 이 시간만큼은 내가 우사인볼트라고 생각하고 달리면 항상 급식실 앞에서 날 기다리는 박지훈이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종 치자마자 이렇게 열심히 뛰어서 오는데 쟤는 도대체 얼만큼 빨리 뛰는거야? 생각해보니 걔네 반이 급식실에서 더 가까웠다. 오늘은 떡볶이가 나오는 날이라─제일 좋아한다─ 우걱우걱 씹고 있으면 천천히 좀 먹으라고 물을 떠다주는 박지훈이다. 밥 먹을 때 물 마시면 더 소화 안 되는 거 몰라? 라고 물었지만 너 그래도 마실 거잖아 라고 말하는 박지훈. 역시 날 너무 잘 안다. 그러다 오전에 있었던 그 여자애가 궁금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야, 걔한테 고백 받았냐? 박지훈은 정말 별로라는 표정을 짓고는 너가 고백해도 된다고 했지? 라고 물었다. 난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해주고 그 여자애는 정말 나한테 들은 거 곧이 곧대로 전했는지 안 친하다고 한 것도 박지훈 귀에 들어갔나보다. 당연하지. 친하다고 하면 또 내가 피곤해질거잖아. 이것도 맞는 말이라 박지훈은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 그래도 앞으로는 친하다고는 해주라. 좀 피곤해도. 괜히 나만 이상해지는 거 같잖아. "
──
" 이름아! "
" 어, 왜? "
박지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많이 친한 세현이가 자기 혼자 무언갈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내 이름을 불렀다. 너무 크게 부르기도 했고 다급히 부르기도 해고 깜짝 놀랐지만 절대 깜짝 놀란 티는 내지 않으며 왜냐고 물었다. 세현이는 쭈뼛거리며 내 옆에 와서 앉더니 뜸을 들으면서 박지훈..... 이라며 말을 꺼냈다. 박지훈? 평소에 세현이는 남자에 '남'자도 모르는 아니, 딱히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애가 박지훈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내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질투 이런거 말고. 얘가 남자 말도 해? 약간 이런 느낌?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세현이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세현이는 내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내게 물었다.
" 걔가 나 좋아해..? 아니, 좋아하나..? "
질문이 좀 웃겼다. 나 걔 좋아해. 도 아닌 걔가 나 좋아해? 라니. 남이 들으면 걔가 뭔데 날 좋아해? 아니면, 걔 나 좋아한데? 왜? 약간 이런식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절대 그 뉘앙스도 아닐 뿐더러, 세현이의 성격 자체가 그런 성격이 아니다. 그냥 정말 단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 같아서 왜? 걔가 너한테 뭐했어? 라고 물어보니, 저번부터 복도에서 마주치면 항상 자기보고 웃는다고. 여기까진 그렇다치더라도 저번에 선생님 심부름하다가 종이 좀 떨어뜨렸는데 우연히─세현이 말로는 그것도 우연이 아니라 박지훈이 거기 일부러 있었던거 같다고 했다─ 박지훈이 앞에 있어서 다 주워주고 웃으면서 조심해라고 하는데 걔가 자기를 좋아하는 거 같다고 했다. 음… 그래. 박지훈이 여자한테 그렇게 호의적인 편은 아니니까. 나한테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 요즘엔 안 그러지만 중학교때는 그만 좀 먹으라며 자기는 무슨 돼지 친구를 옆에 둔 거 같다고..─사실 그때 좀 상처받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그래서 말인데, 이어줄 수 있어..? "
" 어? 너랑 걔랑? "
이번에도 고개를 미묘하게 끄덕이면서 부끄럽다는 듯이 웃는 세현이다. 그 순수한 미소에 홀리다시피 고개를 끄덕였다. 세현이는 뛸 듯이 좋아했다. 아니, 잠시. 그럼 세현이 얘도 박지훈한테 관심이 있다는 말인가? 철옹성같던 이세현이? 계속 파다보면 끝도 없으니까 그냥 잘됐다 생각하고 세현이한테 나만 믿으라며 큰소리를 뻥뻥쳤다.
왜 난 책임 지지도 못 할 말에 큰소리만 뻥뻥쳤을까.
+) 와,,,,,,, 인스티즈 들어와서 처음 써보는 글이네요.....
블로그에서는 가끔 썼었는데 뭔가 되게 어색하고 부끄러운 느낌......
제목부터 짠하지 않나요 내 친구가 너 좋아한대..... 진짜 이럼 어쩌죠......
근데 너무 급전개인 이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