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너 좋아한대
연락 … 연락이라. 새벽이 다 가도록 핸드폰 홀드키만 계속 눌러 화면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이 밤에 박지훈에게 연락할 이유가 단 한 점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같았으면 심심하다고, 뭐하냐고 물어볼 수 있었을텐데, 박지훈이 학교에서 한 행동도 그렇고 날 피하는게 눈에 훤히 보였으니 나도 좀처럼 다가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하기엔 내 딴에서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니, 난 정말 서로 좋아하는 줄 알고 그런건데. 생각해보면 내가 뭐 사람 마음가지고 장난 친 것도 아니지않나..?
──
그렇게 생각에 생각은 커져만가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래, 잠이 든 것 까지는 좋았는데 꿈을 꿨다. 꿈을 꿔버렸다. 박지훈이 나를 아는 척 하지 않는 꿈. 게다가 다른 여자애들과는 잘지내는 꿈. 평소에는 내가 박지훈에게 귀찮다며 나말고 다른 여사친 사귀라고 몇 번 말했었는데 이렇게 상황이 확 다가오니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이상한 기분을 안고 준비를 다 마쳐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왔을 땐, 그 꿈이 사실로 느껴졌다. 오늘도 박지훈은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문을 통과하고 학교 계단을 올라 반을 들어가려고 했을 때, 창문을 통해 책상에 엎드려있는 세현이가 보였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나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더 다가가지 못했다.─원래 성격이 그러기도 했다─ 메고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음과 동시에 세현이가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걸어왔다. 이름이 왔네.
" 나 눈 많이 부었지. 웃기지 않아? "
웃기지 않냐? 너때문에 이렇게 됐어. 진짜 짜증나. 이런 식의 말이 아니라 정말 내 얼굴 웃기지..? 붓기 어떻게 빼지?.. 이런 뜻의 말이었다. 나는 정말 너무 미안해서 세현이의 눈을 마주치도 못하고 아니, 괜찮아. 라고 말했더니 오히려 세현이는 저도 나와 같이 의자에 앉아 내 눈높이를 맞췄다. 이름아. 나 정말 괜찮아. 어쩔 수 없는거지, 뭐.
──
세현이의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좋은 덕분에─이래서 인기가 많나보다─ 쉬는시간에 웃고 떠드는 중에 복도를 지나가는 박지훈이 보였다.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눈 마주친거 맞는데... 박지훈은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지나갔다. 그모습을 세현이도 본 것인지 나에게 물었다.
" 어제 박지훈이랑 연락 안 했어? "
" 어? 어... "
" 왜? "
" 어? 아... 그냥... "
지금 가봐. 지금? 어, 지금. 빨리 빨리. 지금 안 풀면 너 타이밍 완전 놓치는거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세현이에게 등 떠밀려 교실을 나오기는 했는데 방금까지만해도 복도에 있던 박지훈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 내가 찾으러 다녀야하는건가. 그래,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고 내가 먼저 다가가보자. 라는 생각으로─왜냐하면 그 전에도 박지훈과 내가 사소한 걸로 다퉜을 때 박지훈이 먼저 다가와줬다─ 발을 떼려 한 순간, 수업 종이 울려 교실로 다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
세현이는 원래 급식을 같이 먹는 친구가 있어 그 사이에 끼기도 애매하고─세현이는 같이 먹어도 안 불편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내가 불편해서 사양했다─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딱히 들지않아서─이 말은 오늘 급식이 별로라는 말이다─ 반에 혼자 남겨졌다. 종소리가 나기 무섭게 뛰어가던 남자애들은 벌써 급식을 다 먹은건지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이 보였다. 박지훈도 저 무리에 껴있으려나? 괜히 애석한마음에 애꿎은 실내화만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누가 날 뒤에서 툭툭 건드렸다.
" ……박지훈. "
" 왜 밥 안 먹고 창문만 내다보고 있어. "
" …… "
" 가자. "
" …어딜? "
" 밥 먹으러. "
나를 건드리는 느낌에 누군가 싶어 뒤를 돌아봤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지훈이 급식을 다 먹고 운동장에서 남자애들과 축구를 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내 눈 앞에 박지훈이 있는 것에 놀래 눈이 커졌다가 너무 티내는 것 같아 이내 줄어들었다. 너무 놀라 박지훈의 이름을 부르자 박지훈은 왜 밥 안 먹고 창문만 내다보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이 상황을 다 설명하기엔 내가 너무 처량해져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내 손을 잡더니 나를 일으켜 세우며 '가자'라고 말했다. 어딜? 이라고 묻자 자신의 턱으로 내 배를 가르키며 급식실. 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급식을 받으러 갔을 때, 너무 늦게 간 것인지 배식 줄은 이미 끊겼고, 아주머니들도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매점으로 가 빵과 음료수를 하나씩 사들고 학교 뒷 쪽에 놓여있는 벤치로 가 그곳에 앉았다. 왠지 모르는 어색함에 빵 봉지를 트지는 못하고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만 주변에 남았다.
" 배고프니까 먹어. "
" …어, 너도. "
아악! 이렇게 어색한거 싫은데. 진짜 곧 죽어도 어색한거 참지못하는 B형인데.─B형이 제일 어색한 걸 참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빵만 우걱우걱 먹으며 볼이 빵빵해져 있으니 되게 돼지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렇게 퍽퍽하게 먹다간 체할 것 같아 옆에 있는 음료수를 먹으려 빨대를 텄다.
" 이름아. "
" …응. "
" 미안해. "
지금 상황에서 미안해야할건 나같은데 갑자기 박지훈이 미안하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미안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뭐가 미안하다고 물어야하나.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들어서 입을 열지 못했다. 분명 나도 오해한건 미안하다고 해야할 것 같은데. 그게 또 맘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 어제 혼자 학교 오게 하고, 먼저 밥 먹어서 너 밥 못 먹게하고, 혼자 집가게 해서 미안해. "
박지훈의 말을 들으니 괜히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얘는 나를 이렇게 배려하는데. 원래 보통 사람 같으면 먼저 학교 가서 미안해. 먼저 밥 먹어서 미안해. 먼저 집가서 미안해.라고 말할텐데 박지훈은 끝까지 내 중심으로 말을 이었다.
" 내가 화가 나긴 났었는데, 너때문에 난 건 아니었어. 그냥, 내 마음 하나 좋아하는 사람한테 못 전하고 이런 상황 만든게 나같아서. 나는 너 옆에 있을 자격 조차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하루 동안 너한테 멀어지려고 다짐했는데, 안되더라. "
" …… "
" 사실 중학교 때 부터 좋아했는데, 무서웠어. 내가 얘한테 고백했는데 그 다음에는 친구도 뭣도 안 되면 어쩌지? 라는 마음에. 너무 무서웠어. 너랑 멀어지는건 죽어도 싫었거든. "
" …박지훈. "
" 그래서 그냥 성인되서 근사한데서 고백을 하던지 하고싶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안 되네. "
" …… "
" 좋아해, 성이름. "
눈은 마주치지 못하고 계속 땅만 보고 말하던 박지훈이 고개를 들고 한숨을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화가 나긴 났었는데, 너때문에 난 건 아니었어. 그냥, 내 마음 하나 좋아하는 사람한테 못 전하고 이런 상황 만든게 나같아서. 나는 너 옆에 있을 자격 조차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하루 동안 너한테 멀어지려고 다짐했는데, 안되더라. 이 말을 듣고도 그 '좋아하는 사람'의 대상은 누구인지 몰랐다. 평소에 눈치가 없기도 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박지훈을 한 번 흘깃 봤는데 여전히 먼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박지훈이 그 다음으로 하는 말에서 진심으로 무서움이 느껴졌다. 공포영화 볼 때의 무서움이 아니라 친구관계가 틀어질까봐 걱정하는 무서움. 여기서 '너'라는 말에 나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박지훈의 이름을 불렀는데, 박지훈은 이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그냥 성인되서 근사한데서 고백을 하던지 하고싶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안 되네. 좋아해, 성이름.
" 대답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냥, 단지 그냥. 내 마음 솔직하게 말한거 뿐이야. "
" 대답을 어떻게 안 해. 너가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줬는데. "
" …어…. "
" 몰랐어. 너가 이런 마음 가지고 있을 줄은. 사실 몇 주 전까지만해도 그냥 친구였는데, 막상 항상 옆에 있던 네가 없으니까 되게 허전하고 처음에는 친구로서 허전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원래 남녀 사이에도 친구가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 안 믿을래, 그 말. "
" …… "
" 나도 너 좋아하나봐. "
마지막 말을 할 때, 나도 널 좋아한다고 말했을때, 우리 둘은 서로의 눈을 맞췄다. 박지훈을 10년 동안 봐왔지만 눈이 이렇게 예뻤는지는 처음알았다. 여자애들이 왜 그렇게 잘생겼다, 눈이 은하수다. 라고 하는 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둘 다 부끄러워 뭐 어떻게 할지를 몰라 할 때, 수업시간 5분 전을 알리는 예비종이 쳤다. 그리고, 박지훈은 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세워 제 품에 꼭 안더니 토닥여주고는 안고 있던 팔을 풀어 내 손을 잡았다.
" 가자, 이름아. "
그 말이 왜그렇게 설레였는지, 마음이 간질거렸다.
+ 원래 제 스타일이 모든건 빨리 끝내자 주의라서,,,, 하루 만에 세개를 쓴....
걱정ㅁㅏ세여! 여기서 끝이 ㅇㅏ닙니다! 아직 두 편 더 남았다구요! 그 뒷이야기와 지훈이 버전!
이제 암호닉 받을게요!!!!!! [암호닉]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 편에 끝내야해서 너무 급 전개 느낌이 나지만 그래두... 머리를 쥐어 짜냈스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