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 강동호 썰 2.
격동의 중학교 시기를 나름대로는 잘 보내고, 동호랑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음. 우리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비평준화였던 진학 방식이 평준화가 돼서 결국은 또 육상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같이 다니게 됨.
어린 시절부터 다른 애들보다는 확실히 남성호르몬이 지나치다, 라고 생각 했을 만큼 발육이 남달랐던 동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제법 성인 남자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음. 키가 엄청나게 큰 편은 아니었어도 타고난 덩치 자체가 워낙 크기도 했고, 운동을 하다 보니 선이 굵은 느낌이 강해졌음. 점점 곰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고 할까, 털도 너무 많고.. 암튼 그랬음.
나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본 얼굴이라 잘생긴 건 전혀 못 느꼈지만 운동부다 보니 1학년 때부터 학교의 온갖 누나, 동갑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음. 무슨 데이, 무슨 데이 할 때마다 초콜릿이고 빼빼로고 선물이고를 그 큰 덩치에도 들기 버거울 정도로 받으면 자연스럽게 내 반에 와서 와르르 쏟아 놓곤 했음. 이런 건 너 같은 돼지들이나 먹는 거 아니냐. (하면서 지가 계속 까먹음) 하면 나는 진짜 이해 안 간다, 어떻게 너한테 돈을 쓰지? 라고 물었음. 그러면 초콜릿 두어 개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나? 잘생겼잖아. 햑햑 하고 개소리와 함께 듣기 싫은 웃음소리를 내곤 했음.
그러던 어느 날 영어 수준별 수업 때문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던 옆옆반 여자애(동호와 같은 반)가 영어 시간이 끝나고 자기랑 얘기 좀 하자며 나를 부름. 얼굴과 이름은 알았지만 얘기를 나눌만한 사이는 아니었어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일단 따라가 눈치를 보는데 너, 동호랑 사귀는 사이야? 라며 갑자기 뜬금없는 발언을 함. 그 당시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허 참. 핫 참. 소리만 나왔음. 그랬더니 사귀는구나.. 하길래 다급하게 아니야, 걔랑 나랑 불알친구야. 어렸을 때부터 친했어. 라고 대답 했더니 사늘하게 굳어 있던 표정이 풀어지며 아, 진짜? 다행이다. 고마워. 하곤 다른 얘기 없이 가버림.
초등학교 때부터 워낙 붙어 다니다 보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를 알던 친구가 아니고서야 처음엔 다들 궁금해하는 관계라 한두 번 들어본 질문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기분이 묘했음. 내가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 동호한테 호감 있는 건 알겠는데, 근데. 나랑 별로 상관없는 얘기인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가 않았음.
그 날, 학교가 끝나고 복도로 나오자 강동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 그냥 가만히 쳐다보는데 야, 나 어무니 떡볶이 먹고 싶어. 오늘 니네 어무니 집에 계시냐? 하면서 지 팔걸이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내 어깨에 언제나처럼 팔을 올리는 강동호가 이상하게 짜증이 남.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손을 팍 쳐내고선 안 계셔. 울 엄마가 분식집 사장님이냐? 하고 벙쪄있는 강동호를 내버려둔 채로 혼자 집으로 돌아옴.
집에 도착해선 엄마한테 간단히 인사하고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고꾸라져 있는데
[ 떡볶이를 먹자 해서 화가 난 거야, 아님 어무니한테 해달라고 할라 해서 화가 난 거야? ]
라며 문자가 옴.
[ 몰라 그냥 니가 시름 ]
[ 너 그날이냐????? ]
미친. 물론 나도 짜증나게 답장을 했지만 다음에 온 문자는 더 짜증나서 핸드폰 꺼버리고 베개에 얼굴을 파 묻음. 아 왜 짜증나지. 곰새끼 왜케 꼴보기 싫지. 라는 생각으로 온통 머릿속이 범벅되어 있었음.
씻지도 않고 잠들기 직전의 상태에 방문이 열림. 엎드린 상태로 잠들 뻔해서 옆으로 돌려진 얼굴에 침까지 흘리기 직전이었던 내 이마를 누군지 볼 필요도 없는 강동호가 두꺼비 같은 손으로 아프지 않게 딱밤을 때림. 아! 있는 힘껏 짜증을 담아서 소리를 내며 눈을 뜨니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꼴보기 싫은 그 얼굴로 개죽이처럼 웃고 있는 강동호가 보임. 와, 방금 진짜 개 못생겼었다 너. 하는 강동호를 한 팔로 있는 힘껏 밀어내니 힘 없이 밀려나 와닥 뒤로 넘어감.
어무니가 떡볶이 해주신대. 안 계신다고 왜 뻥쳐, 어무니 내 편이야. 하며 지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는데 얄밉기도 했지만 쟤랑 뭔 얘기를 하냐... 하게 됨.
떡볶이를 먹으며 눈치를 사알살 보던 나는 떡을 두세 개씩 찍어 입에 밀어 넣는 강동호에게 할까 말까 고민하던 말을 꺼냄. 너 아영이랑 친해? 하니 아영이가 누구야? 함. 나는 살짝 열받아서 야, 육상부도 육상부지만 반에도 좀 붙어 있고 그래라. 반 여자애 이름을 모르냐 9월인데? 하니 샐쭉 웃으며 어헝 나는 너무 여자들한테 인기 많아서 여자 이름 다 기억 못해! 라고 함.
나는 으휴, 이런 애가 뭐가 좋다고. 하다가 문득 궁금해짐. 근데 너 인기 그렇게 많다면서, 왜 연애 안해? 하면 그릇에 남은 떡볶이 국물을 긁어 먹던 강동호가 나를 쳐다봄. 뭔 말을 하려는지 몇 번 입을 쩝쩝하더니 짐짓 낮은 목소리로 운동하잖아. 니도 가끔 니랑 안 놀아준다고 난린데 여자친구는 더 할 거 아니야. 하는데 더 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음. 그냥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음.
강동호가 떡볶이를 해치우고 과일에, 집에 있던 과자 부스러기들까지 다 먹어 치우고 아빠가 퇴근 후에 사온 치킨까지 무서울 정도로 먹고 나서야 돌아간 그날
나는 조금, 잠을 설쳤음.
*
혹시 글씨가 너무 작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나요? 불편하신 분 있으면 댓글로 의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