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 맑음 이라더니 바닥은 아직 덜 마른 빗물이 고여 있었지만 하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완연한 봄이었다. 따뜻해진 날씨만큼이나 옷도 가볍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은 뭔가 기분 좋은 일이 마구 생길 것 같았다.
"여주야 오늘 수업 마치고 나랑 영화 보러 갈래?"
"네?? 영화요??"
"응, 아...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친구들이 다 봤다고 해서... 혹시 별로야??"
"헐... 진짜 좋아요"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뱉어놓고 뜨끔해서 선배의 눈치를 봤더니 선배가 웃으면서 다행이네 진짜 좋아해서라고 말했다.
아 씨 부끄러워...
충분히 예뻐
05
w.갓제로빵민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제히 시선이 나에게로 박혔다. 그리고 내 뒤를 따라 들어온 영민 선배를 보더니 동시에 시선이 거두어졌다. 뭐지? 강의실에 흐르는 공기가 좀 이상했다. 내가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자 영민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왜 그래?"
"아니에요"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나를 바라보는 여자애들의 시선이 묘하게 날카로워진 기분이었다.
기분 탓이겠지라고 생각해 보려고 해도 이상할 만큼 자기들끼리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도 나만 보면 내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피해버린 다거나 평소에 나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애들조차도 내가 지나가기만 하면 쳐다보는 것 같았다.
분명 아침까진 기분이 엄청 날아갈 듯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에 쫓기는 것 마냥 초조했다. 수업에 도통 집중도 안 되고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며 핸드폰의 시계를 수도 없이 확인했다.
[여주야 나 리포트 제출하고 올게 과방에서 잠시만 기다려]
선배의 톡을 보고 과방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날카로운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슬슬 기분이 좀 많이 나빠지려던 참이었다. 과방 문을 열자 여자애들 여럿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윤미소가 잔뜩 울어서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김여주 너 마침 잘 왔다 얘기 좀 하자"
하필이면 거기에 미소랑 같이 다니는 애들이 다 모여 있었다. 그리고 울고 있던 미소를 달래주던 미소의 친구 정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나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야 너 진짜 웃긴다. 좋냐? 그런식으로 미소 뒤통수 치니까 좋냐? 어 좋냐고"
정현이 내 어깨를 툭툭 밀쳤다. 내가 대체 무슨 뒤통수를 쳤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말만 내뱉었다. 손바닥으로 우왁스럽게 밀쳐지는 어깨가 아렸다. 딱히 대꾸할 마음도 할 말도 없기에 입을 꾹 다물고 내 어깨를 밀치는 손을 거둬내니 정현은 기가 차다는 듯 웃어 보였다.
"어제 네가 영민 선배 채가는 바람에 미소 비 흠뻑 맞고 왔더라 야- 너 진짜 대박이다 영민 선배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근데 왜 자꾸 영민 선배 근처에서 알짱거리는데?"
"너 재수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얌전한 척 순진한 척 좀 하지 마"
"작년엔 재환 선배한테 그렇게 꼬리 치더니 재환 선배 군대 가자마자 영민 선배한테 들러붙어서 꼬리 흔드는 거 진짜 꼴사납거든"
"니 어장관리에 대체 몇 사람이 더 상처받아야 되냐?"
"야- 불쌍한척하지 말고 말 좀 해보라ㄱ...."
나를 무섭게 몰아붙이는 이정현 때문에 자꾸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내 등 뒤에 서 있는 누군가와 부딪혔고 동시에 나를 매섭게 노려보던 정현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흔들리고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던 손길이 거둬졌다. 순간 그곳에 적막이 흐르고....
"니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데"
영민 선배의 목소리였다. 지금 이 상황이 뭔가 익숙하단 생각이 듦과 동시에 과거의 사건들이 지금 상황과 오버랩 되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과거의 모든 기억들이 미친 듯이 떠올랐다. 구역질이 나 더 이상 그곳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내 손을 잡으려는 선배를 뿌리치고 급하게 화장실로 내달렸다.
속 안에 있는 것들을 게워냈다. 게워내고 또 게워내고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데도 헛구역질을 했다. 귀에서 삐- 하는 이명소리와 동시에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뚱뚱하고 못생겨서 싫어 그러니까 자꾸 친한척하지 마'
'야 솔직히 네 몸매를 봐 그게 사람이냐?'
'진짜 웃긴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근데 지도 꼴에 여자라고 내숭 떠는 거 봤냐?'
'뭐 했겠냐? 찌든 말든 겁나 처먹기만 했겠지'
'왜 사냐? 나 같으면 쪽팔려서 콱 죽고 싶겠다'
'독학 년 근데 죽을 용기는 없었나 봐 멀쩡하네'
"여주야!! 김여주!!!"
화장실 밖에서 나를 찾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았다. 여전히 귓속에서 삐- 하고 울리는 이 명 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제 거의 다 빠져나왔다 생각했다. 캄캄한 어둠 속 끝이 안 보이는 터널에서 눈앞에 한줄기 빛이 보였고 조금만 더 가면 밝은 세상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보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사람들은 이런 내 간절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짓밟았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듯 죽일 수도 있다는 건 왜 모를까 잔인했다. 나는 사랑할 자격도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인가 보다.
숨이 막힌다. 제발 저 좀 누가 살려주세요....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울어버리라고 때론 그게 약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던 의사선생님 말이 떠오름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웃기게도 그 말처럼 펑펑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겨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시야가 온통 흐릿했다.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걸어가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가다 사람들과 몇 번이나 부딪히고 횡단보도의 신호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차에 치일 뻔도 했다. 그렇게 겨우 집 앞까지 다다랐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지러웠다. 순간 몸이 휘청하고 기우는 게 느껴졌다.
"여주야!!"
쓰러질뻔한 나를 붙잡은 건 영민 선배였다. 심장이 콕콕 쑤셨다. 지금 선배를 보고 싶지 않은데 나를 품에 안은 선배를 밀어낼 힘조차 없었다. 그렇게 기대듯 선배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선배가 울고 있었다.
"선배... 왜 울어요.."
"흐으.. 여주야.... 미안 미안해..."
"...... 선배?......"
"그러니까... 제발.. 또 그렇게 사라지지 마... 나.. 무서워.."
"네가... 그때처럼 또.... 사라져 버리면... 나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살라고..."
"......??!!...."
"미안해... 미안해 여주야... 근데 그때는 그게 널 도와주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어... 근데 그게 오히려 널 더 힘들게 할 줄 몰랐어... 너를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그날... 미안하다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말조차 너에게 상처가 될까 봐... 그래서 차마 하지 못했어..."
"설마... 나 기억하고 있었어요?"
"내가... 어떻게 널 잊어.... 어떻게.. 널..."
선배가 날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선배의 기억 속에서 잊히길 바랬는데 막상 선배가 이렇게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렸다. 손을 뻗어 그런 선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 얼굴을 보던 선배의 시선이 옷소매가 흘러내려 드러난 내 손목으로 향했다. 정확히 사선으로 길게 나 있는 내 손목에 흉터로
"하아.. 어떻게... 어떻게..."
"선배... 울지 마요..."
"미안.. 너무 미안.. 많이 아팠지..."
내 손목을 잡은 선배가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흐느꼈다. 많이 옅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하얀 피부 위에 남은 붉은 흉터 위로 선배의 눈물방울들이 떨어졌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하고 힘든 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충동적으로 일으킨 나의 객기로 인해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려던 선배를 외면하던 그날 그 이후로 죄책감에 살았을 선배의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이 되질 않아 마음이 아팠다.
"선배 탓 아니에요..."
"아니야.. 흐읍.. 나때문에..흐아.. 아.. 어떻게....."
"나한테 유일하게 손 내밀어 준 게 선배인데... 내가 어떻게 선배를 탓할 수가 있겠어요..."
"흐으... 여주야.. 흡...아아..."
"선배.. 나 봐요.. 응? 울지 말고 나 좀 봐줘..."
"................."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대로 선배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을 맞추었다. 사랑한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처음으로 용기 내어 고백했다. 내 이 마음이 그리고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에게 선배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희망이었다고
닿았던 입술이 떨어졌다. 나는 여전히 선배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고 선배는 그런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가까이에서 본 선배의 두 눈에 온전히 나로 가득했다.
"나도 사랑해..."
두 번째 키스는 격렬했다. 마치 오랫동안 서로에게 목이 말랐다는 듯 그렇게 한참을 떨어질 줄 몰랐다.
남기는 말 |
쌍방 삽질을 오지게 하더니ㅋㅋㅋ 드디어!! 드디어!!! 급전개ㅋ 급키츄씬ㅋㅋㅋ 꺄아~ 고구마 오억오조개는 먹은것같은 여주가 많이들 답답했죠? 이제 둘다 꽃길만 걸을거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영미니 우는거 맴찢인데 너무 예뻐서 꼭 쓰고 싶었어요ㅜㅜㅜ 얘는 진짜 우는것도 왜이렇게 이쁘고 난리야ㅠㅠㅠ 하지만 우는걸 텍스트로 옮겨적는건 매우... 제 손발... 아... 현타... 내일 영민이가 브이앱한데요!!!! 우와 저 지금 완전 신났거든여 드디어 움직이는 영민이 볼수 있어!!! 라버지 충성충성!! 하지만 저는 내일부터 또 다시 현생파티ㅠㅠㅠㅠ 그래서 오늘 꼭 쓰고 자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매편 짧게나마 댓글 달아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재미있다고 해 주시는 아니 오롯히 제 사심으로 시작한 이 비루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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