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그 남자의 사정 下
(강다니엘 시점)
".....제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좀 쉬고 싶어요. 저한테 시간 좀... 주세요."
지친 표정과 목소리, 더 이상 잡으면 그 자리에서 울어버릴 것 같은 모습에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여린 몸이 하나, 둘, 계단을 오르는데 그게 넘어질듯 위태로워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람을 놓아주지 못하고 끈덕지게 붙잡는 것이야말로 더 그 아이를 지치게 만드는 일임을 알았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치 열이 차오른 가슴을 누르며 눈을 감았다.
벽에 기대는 순간 툭, 하고 손에 들린 봉지를 놓쳤다. 밤 사이에 연락은 안 됐어도 아침이라도 먹일까 해서 잔뜩 사온 거였다.
답답했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꼬여버렸는지.
내가 모르는 사이 ○○의 생각이 어디까지 닿아 있던 건지 모르겠어서, 그걸 몰랐던 나 자신이 제일 답답했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든 원인은 결국 나와 옹성우인 건가.
시간이 오래 지나 이제는 더 이상 민감하게 생각지도 않았던 그 시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걸 듣기 좋게 설명해낼 용기도, 나 유리한 쪽으로 잘 풀어낼 재간도 없었다.
그러느니 입을 다물고 아주 마음 속에 묻어두는 게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에 대해 ○○의 의향과 생각을 묻지 않았던 게 내 잘못이라고 한다면, 그래, 그건 내 잘못인 게 맞다.
그렇지만 굳이, 기쁘지도 좋지도 않은 일을 이야기해서 신경쓰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 만큼은 알아주기를 바랐다. 내 바람이었다.
-
"부산대학교병원입니다. 강다니엘씨 되십니까?"
그 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날 밤의 일이다.
나는 다음날에 예정되어 있던 승진평가 차 발표의 시나리오를 수십 번 확인하며 머릿 속으로 발표 상황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렇게 걸어와서, 이렇게 시작해야지. 그리고 이렇게 읽고, 이렇게 눈을 맞춰야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옆에는 성우 형이 있었다. 각자가 홀로 준비하는 것보다는 같이 준비하는 게 백 번 나을 거란 걸 아니까, 나름 의리라며 서로의 곁을 지켰다.
이번에 같이 철썩 붙어서 같이 승진하자. 그렇게 차장도, 팀장도, 부장도, 다 우리가 쓸어버리자며 패기로운 의지를 다졌던 시간들.
대학시절 내내, 군대에 가서도, 또 졸업한 후에도 그렇게 의지하며 지냈던 건 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인연이 회사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행이고 행운이고, 또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 회사에 처음 오게 되었던 건 형의 영향이 컸다. 그런 만큼 앞으로도 쭉 함께 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거다.
"왜 그래?"
".....부산으로 오라는데. 엄마아빠가, 사고 났대."
전화를 받으니 병원이라고 했다. 강다니엘씨 되시냐 해서 그렇다 했더니 부모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응급실에 계시다 했다.
지금 어디냐고 해서 서울이라고 했더니, 상태가 위급하니 빨리 와달라는 말이 들렸다. 아무리 빨리 가도 부산까지는 족히 네 시간이었다.
차분하고 차갑기 그지없는 성격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옆에 있던 형을 쳐다보는 내 얼굴은 보나마나 하얗게 질려있었을 거다.
무서웠다. 혼자 가기가. 부산으로 가는 그 시간 동안 혼자 정신을 붙잡을 수 있을지, 그 불안감을 감당할 수 있을지 겁이 나 입술을 깨물었다.
".....나 무섭다. 형."
"......."
"....느낌이 안 좋아."
".........."
형은 말이 없었다. 나와 같이 가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나는 형이 선뜻 먼저 같이 가자고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상 내가 형에게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단 몇 시간 뒤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나보다 형이 1년은 더 기다려왔을 테니 내가 그의 앞날에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점잖은 척이었다.
부모의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 이제 막 서른도 안 된 사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태연한 척이, 딱 거기까지였다.
형은 내가 사무실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가 짐을 챙겨 나올 동안 한 마디를 하지 않다가,
양 손 가득 가방을 들고 문을 열 때에야 겨우 '미안하다'는 소리를 냈을 뿐이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치, 아주 작게.
"......."
"..........."
미안하다는 그를 뒤에 두고 점점 멀어지면서, 나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형제가 없는 내게 형제보다 더 큰 존재가 되어버린 그.
스무살, 공연 준비하다 다쳐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함께 있어줬던 사람이 성우 형이었다.
형은 전역하고 나는 아직 군대에 있을 때, 병세가 악화되었던 우리 엄마를 나 대신 지켜주던 사람도,
졸업 때가 다 되어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 부산에 내려가야 했던 상황에서 선뜻 본인 집을 내어준 것도, 전부 형이었다.
내 문제와 내 사건들을 본인의 일처럼 받아들여주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나를 외면하고 본인의 것을 챙겼다.
그게 내게는 그렇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데,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최근에 울어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데, 지금 상황에 내가 울고 있다는 게 신기할 만치 오래간만인데,
그 이유가 부모님의 사고인지, 성우 형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더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다.
형제라도 있음 좋았을 걸. 형 하나, 아니면 동생이라도 하나 낳아주지 그랬냐, 엄마아빠야.
아무 의미 없는 원망을 해보다가 이내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온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에 눈 앞이 캄캄했다.
위급하다더니, 정말이었다. 내가 부산에 도착했을 때 이미 두 분은 이 세상과 안녕을 고한 뒤였다.
오히려 눈물은 기차 안에서 다 쏟아냈나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눈물이 안 났다.
이미 안 좋은 예감이 가득했고, 이미 부산에 도착하면 늦어있을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장례식이 시작되고, 급하게 캐나다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할머니와 이모네를 만나 함께 4일 간의 장을 치렀다.
혼자서 너무 두려웠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그래도 할머니와 이모가 와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다.
그러나 그 4일 동안 성우 형에게는 전화 한 통이 없었다. 문자 메세지 하나도,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이모."
"응."
"이모는,
믿었던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떻게 했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구나.
병신 같이 믿었구나.
결국 나는 당했구나.
그럼에도 다시 믿고 싶은 걸 보니 나는 병신이 맞구나...
했지."
"......."
그럼에도 다시 믿고 싶은 걸 보니 나는 병신이 맞구나.
가슴에 와서 쿡 박힌 문장에 그 쿡 박힌 곳이 시리고 아팠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몇 년 동안 누구를 알고 지낸 건지.
내가 부산에 온 그 날 밤에는 같이 못 왔더라도, 그래도 최소한 우리 엄마아빠 장례식에 얼굴은 비춰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화를 내고, 따지고 싶었다. 서울 올라가면 그렇게 해야지. 왜 안 왔냐고, 왜 나를 혼자 두었냐고. 나한테 미안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니엘아."
"응."
"이모랑 같이 캐나다 갈래?"
"......."
"여기보다 살기 좋잖아.
너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이모가 도와줄게."
"........"
흔들렸다. 여기에서의 연고였던 유일한 사람이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생각하니, 여기 있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볼게. 작게 흘린 대답 뒤로 이모의 한숨이 이어졌다. 곧이어 내 뒷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 손길이 따뜻해 눈물이 울컥 날 뻔했다. 억지로 참아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속 그 자리에 머물면 울어버릴 게 뻔했다.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고, 힘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오래 쉴 수는 없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부모님이 불길 속으로 허연 재가 되어 사라진 후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이모와 할머니는 캐나다로 돌아갔다.
서울에 남아있겠다는 확답을 한 건 아니었지만, 떠나겠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으니 어영부영 캐나다로 가자는 말은 허공에 흩어지게 된 거다.
이모는 내게, 언제라도 올 마음이 생기면 연락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입꼬리만 겨우 끌어올려 웃어 보였다. 그리고 고개도 끄덕여 보았다.
출근 후 사내 그룹웨어에 올라온 '인사명령'이라는 제목의 공지사항을 봤다.
그 내용 중 하나는 '마케팅팀 옹성우 과장(前 대리)'이었다. 되었구나. 그렇다면 나는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 건가.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 될 것만 같았다. 내가 회사로 돌아온 걸 알면서도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는 그.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를 찾아가야 하는 걸까. 찾아가서 따지기라도 해야 하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어머니, 아버지 장례식인데 어떻게 안 올 수 있었냐고.
어떻게 연락 한 번도 없을 수 있었냐고. 왜 그래야만 했냐고. 그렇게 붙잡고 따지고, 윽박을 질러야 하는 걸까.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서 맨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안하다."
그렇게 그를 만난 건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그는 짐짓 낮고 점잖은 목소리로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부산행 기차를 타러가던 날 밤 내 뒤에서 나직히 읊조린 그 말을 또 해낸 것이다.
미안할 거면 왜 그랬어. 미안하다면서 왜 그랬냐고. 왜 그렇게 외롭고, 힘들고, 괴롭고, 아플 동안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턱 끝까지 올라온 할 말들이 도통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아니, 내가 내뱉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눈을 마주볼 자신도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지금 생각하기론 차라리 그때 끝장나게 주먹질이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 내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귀 막고 눈 감는 것. 옹성우는 없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
장례가 치러진 4일 간 옹성우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다른 이에게서 들었다.
바로 과장 직급에서 일을 수행해야 했으니 연이어 며칠 이어진 인수인계 회의와 실질적인 인수인계에 잔뜩 치였을 거라고. 그랬다.
그래요, 그렇겠죠. 그럴만 했겠네요. 속에서 나온 반응을 바깥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참으로 대단한 그 이에 대한 반감이 시작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는 본인에게 온 기회를 잡았던 거고, 그 기회를 잡은 데에 대한 대가를 치렀던 것 뿐이다.
그 대가가 본인이 아끼고 사랑했던(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동생의 부모님의 죽음도 위로해주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그에게는 그런대로 치를 만한 대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그의 궤변까지 들어줄 정도의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듣지 않아도 알았다. 그럴 만 했다는 것,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 그걸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지내다 보니 아주 잠시나마 캐나다에 가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걸 후회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미친듯이, 속된 말로 개처럼 일했다. 한 번 놓쳐버린 기회를 다시 붙잡기 위해서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미 과장이 되어버린 옹성우의 뒤를 잇는다는 게 썩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보낸 1년은 내가 일을 하는 건지, 일이 나를 하는 건지 모를 시간이었다. 정신 차려보면 한 분기, 한 분기가 끝나있었는데 누구도 세우지 못한 기록을 줄곧 갱신하고 있었다.
내가 세운 최고 성과를 내 스스로 갈아치우는 상황이 계속되니 승진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막상 과장을 달고 나니 조금은 허무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약간의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다시 옹성우와 동등한 위치가 되었고, 내가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의 자리에 섰다는 데에서 오는 여유였다.
그런데 막상 그 정도의 위치가 되니 옹성우에 대한 관심도, 애증도, 다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할까.
이미 잡은 사냥감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옹성우에 대한 나의 마음도 그러했다.
그리고 다시 옹성우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가 내 마음에 들어왔을 무렵이었다.
-
"내가 너한테 미안했던 마음. 남아있던 거 다."
"......."
"이 만큼 참아줬으면 다 한 것 같은데."
"........"
"나 이제 너한테 미안한 마음 없어."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낯짝이 그렇게 두꺼울 수 있냐는 물음이 절로 나왔다.
애초에 네가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긴 했는지.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나한테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웃기지도 않는 말이었다.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하고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너는,
내가 눈독 들이지 말라고 할 때,"
"......"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내 세상을 한 없이 밑바닥으로 내치고, 무너뜨린 걸로도 모자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까지 빼앗으려 드는 너를 보며 나는 지난날의 우리를 떠올렸다.
외모와 이름만 그대로일뿐, 내가 아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감이 반감을 낳고, 그 반감이 또 증오를 만들었다.
한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네가, 이제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빼앗으려 드는 악역으로 변해 내 앞에 있었다.
그때, 내 세상과 내 마음, 그리고 내 시선은 한바탕 요동친 후 좀처럼 가라앉지를 못했다.
-
"과장님,"
과장급 회의 이후 이어진 회식. 요 며칠 내 속이 정상이 아니었던 탓에 부어댄 술에 취기가 금방 와 바람 좀 쐴 겸 밖에 나왔다.
나를 따라 나온 김재환이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끊었어요. 대답하니, 피우셔야 할 것 같은 얼굴이라서요. 라는 말이 따라온다.
입에 무는 것 만큼 끊는 것도 쉽지 않았던 담배다. 다시 피우면 그대로 계속 피우게 될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김과장은 내게 주려던 걸 제 입에 물고 불을 붙여 스읍, 하고 빨아들였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구둣발로 괜히 바닥을 짓이겼다.
내내 옹성우와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불편하고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이상의 충돌과 갈등은 너무 귀찮고 지겨운데.
굳이 내게 계속 받아치려 드는 모습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거기에 내가 그걸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내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왠지 옹성우가 쥐고 흔드는대로 내가 흔들리는 기분이라, 더 이상 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싶어하는 나는 간데 없이 사라진 기분이라,
그래서 화가 났다. 열이 났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금방 폭발할 것만 같은 상태가 되어버린 거다.
"...강다니엘. 마음에 안 들면 말로 해.
애처럼 비겁하게 딴지 걸지 말고."
어느 샌가 옆에 와 서있는 옹성우다. 입에서 나온 말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술에 취해서인지, 평소 같았으면 무시하면 되었을 말인데도 금방 내게 자극이 되었다.
김과장도 있는데, 말 조심 좀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뜸 훈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땅만 바라봤다.
"자신 없냐, 너.
너는 너가 버려졌다고 생각하잖아.
왜. 또 버려질까봐 무서워?"
주어는 없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너무 잘 알았다. 개새끼. 목구멍을 타고 걸러지지 않은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서 자리를 뜨고자 했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서 짐을 챙겨 나올 생각이었다.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뭔가 해서 뒤를 보니 옹성우의 주먹이 꽂혔다. 예상치 못했던 터라 일단 피하고 봤는데, 상기된 옹성우의 얼굴이 보였다.
"언제까지 피할 건데.
언제까지 할 거냐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주는 데에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참아온 거 다 쏟아내면 너 감당 못해."
"......"
"눈독 들이지 말라고 했을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지. 너가.
...내가 참아주고 눈 감아줬을 때 그만 했어야 했어. 넌."
내가 참아주고 눈 감아줬을 때 그만 했어야 했다. 옹성우는.
내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그동안 해온 원망, 느껴온 설움, 그 괴로움과 고통을 다 쏟아내면 과연 옹성우는 감당해낼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녀석이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다른 말 없이, 큰 대꾸 없이 갈등을 피해왔던 거다.
이번엔 내가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튕겨져 나간 몸이 보기 좋게 나동그라졌다. 김과장이 나를 말렸다. 나는 아랑곳 않고 옹성우에게로 걸어가, 녀석을 깔고 앉았다.
몇 번의 주먹질이 이어졌다. 혹시라도 이성의 끈을 놓고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버릴까봐, 나도 나를 믿지 못해서 그 정도로만 하고 일어섰다.
김과장이 반쯤 우는 목소리로 제발 그만 하라며 뜯어 말렸다. 다 했어. 짧은 문장을 남기고 돌아섰는데 황민현과 ○○○가 보였다.
며칠만에 보는 얼굴. 미운데 반가웠다. 이런 내가 우스울 만큼 그랬다.
"........"
"..........."
나란히 탄 차 안에서 나도 몰래 진심이 나왔다. 쏟아지는 진심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았다.
뱉어낼 수 있을 만치 뱉어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쓰고, 참고, 누르고 하는 것에는 넌더리가 났다.
내 입술에 닿는 그녀의 입술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잠 들지는 않았지만 잠에 들 만큼의 노곤함이 밀려왔다.
몸과 마음이 모두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리라.
-
(여주 시점)
"아이고오... 무거워라.."
강과장 집 앞에 도착한 택시에서 내리려는데 영 몸을 못 가누는 과장님이었다.
원래도 체구가 작은 편이 아닌데 취해서 몸까지 제대로 못 가누니 집 안으로 들여놓기까지가 너무 힘들었다.
와본 적도 있고, 비밀번호도 강과장이 눌러주긴 해서 잘 들어오긴 했는데, 그리고 침대에 눕히기까지는 했는데 여기에서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 이렇게 해본 적이 있어야... 뭘 하지....
"읏차. 과장님, 잠깐만요."
"........"
지난 번에 술 마시고 뻗은 나를 제 침대에 데려다 놓았던 강과장이 나 만큼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벗겨야 하나, 양말을 벗겨야 하나, 하다가 둘 다 하기로 했다. 일단 양말을 벗겨 침대 밑에 내려놓고, 셔츠 단추를 풀어 옷을 벗겨냈다.
런닝셔츠 밖으로 튼실한 팔뚝과 예쁘게 자리잡힌 승모근이 보인다. 기분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편하게 재워야지 싶어 계속 움직였다.
바지는... 벗기자니 영 모양새가 안 좋아보이긴 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벨트를 풀고, 바지 단추와 지퍼를 열어 벗겨냈다. 길쭉하게 쭉 뻗은 다리가 드러났다. 괜시리 꿀꺽, 하고 마른 침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새벽에 비가 올지 몰라 창문은 못 열고, 선풍기만 틀어 두 시간만 움직이게 설정해놓았다. 회전도 설정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시원하게 해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아..... 힘들다."
내 잠은 우리 집에 가서 자는 게 맞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잠든 강과장의 얼굴을 좀 보고 가야겠다 생각했다.
침대 모서리 좁은 공간에 걸터 앉았다. 강과장의 평온한 얼굴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자세히 보니 볼 한 쪽이 불그스름한 게 아까 맞은 곳인 모양이다.
아플까, 하는 생각에 검지손가락으로 아주 살짝 눌렀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끄응, 하는 소리를 내는 강과장이다.
아팠겠다 싶어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볼에 있던 손을 움직여 동그란 이마와 단정한 코끝, 그리고 도톰한 입술을 쓸었다. 빚어놓은 것처럼 예쁜 턱선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잠든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이젠 정말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어어!!!"
손목이 잡힘과 동시에 몸이 침대 위로 내동댕이 쳐졌다. 순간적으로 훅 바뀐 시야에 정신이 없어 고개를 흔드니, 어느새 강과장의 품에 안겨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자는 거 아니었어? 그럼 방금 내가 했던 짓은....... 세상에.
"...뒷모습 보이지 말래도."
"....과, 과장님..."
"가지마."
"...."
"같이 자자. 응?"
"......"
쿵. 쿵. 정적이 흐른 방 안에 오로지 내 심장소리만 가득했다.
내 볼을 감싸오는 그의 손길이, 내가 마주한 단단한 그의 가슴팍이,
모든 게 위태로울 만치 서럽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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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편 암호닉(19편 등록 전 18편에 달린 댓글에 한함. 0~2차 암호닉 신청확인 된 암호닉에 한함. 혹시 위 두 사항에 다 해당하는데 누락되셨으면 말씀해주세요!!) [121027] [피치씌] [#0613] [짠따라] [리베0511] [녤03] [은하수] [밍밍이] [디눈디눈] [응] [크앙] [뚠뚠] [어어] [갓의건] [너부리] [마이관린] [0302] [짱짱맨] [댕댕] [일오] [퍼지네이빌] [헤이헤이헤이] [쀼쀼] [애벌레] [사용불가] [체크남방] [춘쟝] [요거팅팅] [옹피치] [녜리] [이스트팩] [넌내희망] [쫑쫑] [L4L] [댕댕이 강다니엘] [포동이] [1122] [알바생] [딸기시럽] [DMR] [다녜링] [망개몽이] [우주] [분홍색솜사탕] [녤둥] [린] [꽃녤] [참새] [만두] [아마수빈] [히릿] [여지] [덧깨비] [졔졍] [묭묭] [둘셋0614] [11023] [인턴] [0226] [강사모예드] [뉸뉴냔냐] [수저] [아이셔] [주황주왕] [피치수플레] [ㅇㄱ39] [몽글] [녤녤] [자몽] [일개사원] [파요] [K사원] [율예] [괴물] [옹침] [댕댕녤옹] [뀨쓰] [몽구] [불꽃] [차차] [포로리] [녜롱] [국국] [리베르떼] [금붕어] [도앵도] [030901] 안녕하세여 독자님들.... 일단 제가 무릎 한 번 꿇겠습니다..... 댓글로 마니들 찌통이라고... 주인공들 좀 행복하게 해달라고 하셨눈데.... 이번 편까지는 찌통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엉엉ㅠㅠㅠㅠ 이번 편도 슬프게 써서 미안해여.. 그치만 곧 다가올 해피해피한 모먼트를 위해서 조금만 참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뭐 근데 비도 오고 하니깐 슬픈 것도 좋자나여?(아무말) 그리고 오늘 분량도 많다고요!!!!(.....) 아참, 글고 완전 행복한 소식이 두 개나 있었어요!!! 요거 지난 편 올리자마자 독방에 올라온 글에서 저장한 사진인뎅...ㅎㅎㅎㅎㅎ(글 올려주신 독자님 넘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제 글이 인티 인기글에 올라갔더라고요!!! 크으...ㅠㅠ 많은 사랑 주시는 독자분들 항상 넘넘 감사드립니당... 사랑해여... (급하게 그림판으로 작업하느라 굉장히 허접해보이는 점 양해 바랍니닼ㅋㅋㅋㅋㅋ) 그리고 초록글 1페이지 1번에 올라간 거!!!!! 하도 금손분들이 많으시고 해서 1번까지 올라가는 건 늘 어려운 일, 그리고 드문 일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사랑 주신 덕분에 1번에도 올라가보고 그랬습니당....ㅠㅠ 넘넘 감사해용... 부족한 글인데도 늘 좋아해주시고,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더 발전할 수 있게 언제나 건강한 비판과 좋은 충고들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칭찬도 늘 좋고요... >.< 앞으로 더 열심히 글 쓰는 자까 되겠습니다!! 오늘 10시에 3차 암호닉 신청 받으려고 합니다~! 10시 전후로 글 올릴테니 가능하시다면 그때 접속해 계셔서 꼭 암호닉 확인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간 바빠서 올려놓고만 갔는데, 오늘은 댓글창에서 독자님들이랑 소통 마니 할게용.. 헤헤 :) 아참 다들 이니슾 포스터와 퍼스트룩은 겟하셨는지 모르겠네여... 저는 그 현생 땜에 그 어떤 것도 겟할 수 없었지만 슬슬 움직여보려고여....ㅋㅋㅋㅋ 구할 수 있기를 같이 바라주세요... 여튼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창에서 만나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