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A
“괜찮나? 보건실 갈래?”
약간의 사투리가 섞였지만 서울말에 더 가까운 말투는 그 목소리와 잘 어울렸다. 넘어진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는 일으켜세워 직접 흙이 묻은 무릎까지 털어줬다. 혹시라도 모래알갱이들이 상처에 닿아 따가울까 내 앞에 쪼그려 앉아서는 조심히 털어주었다. 그런 임영민의 정수리를 보고있다 문득 생각이 났다. 나 지금 운동장 한복판에서 뭐하냐.
하기도 싫은 체육을 하러 나간 것이 이 사단의 시작이었다. 피구를 한다는데 우리 반에서 한 명이 모자라다고 했다. 체육부장인 영민이는 스탠드쪽까지 걸어와 피구에 나갈 한 명을 찾고 있었고, 무슨 자신감에선지 내가 나간다고 했다. 애들이 몰려있는 곳에 나도 묻혀있었다. 운이 좋았던건지, 나빴던 건지 어느새 코트 안은 텅텅 비었고 표적은 내가 되었다. 공에 맞기는 싫어 코트 안을 뛰어다녔다. 공은 이리저리로 패스되다가 임영민의 손으로 들어갔다. 나를 향해 공은 다가왔고, 공을 피하려다 발이 꼬여 그대로 운동장 바닥으로 엎어졌다.
“김여주, 니 괜찮나?”
엎어지자마자 밖에서 수비를 하고 있던 박우진이 나를 향해 달려왔지만 임영민이 한 발 빨랐다. 그렇게 임영민의 부축을 받으며 보건실까지 갔다. 뒤에서 박우진의 걱정되는 눈빛이 느껴졌다.
“미안하다. 너무 이길라고 니도 못보고 던졌네.”
“어, 아냐.. 내가 혼자 넘어진건데, 니가 왜 미안해.”
자신때문에 내가 넘어졌다고 생각하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연신 미안하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다정하니 인기가 많을 수 밖에. 학교엔 임영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큰 키에 훈훈한 얼굴, 친절함까지 모든 여자들의 상상 속 남친이었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였고.
“조심해서 다녀.”
보건실 안까지 나를 데려다주고는 옆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보고있었다. 자기가 다친 것처럼 내 무릎에 소독약이 닿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렸다. 밴드를 상처 위에 붙이자 그제서야 다행이라는듯이 표정이 풀렸다. 보건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다시 경기가 한창인 운동장으로 향했다.
“여주야, 앉아있어. 무릎 따가울건데.”
그 말을 뒤로 임영민은 다시 코트 속으로 들어갔고, 공을 잡고 날라다녔다. 결국 영민이네 팀의 승리로 경기는 끝이 났다. 우리 반끼리 한 경기라 이기고 지는 것에 큰 의미는 없었다. 스탠드에 앉아 멍하니 경기를 보고있던 내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누군가싶어 고개를 올려다보니 박우진이었다.
“니는 좀 조심하라고 했재.”
박우진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어디서 다쳐오기만 하면 박우진의 잔소리는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눈은 내 무릎에 고정이 되어 있었다. 걱정이 되면 그렇다고 하면 될 것을 괜히 나한테 다쳐왔다면서 틱틱댔다. 그런 박우진을 받아주다보니 수업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우진아 누나 아프다. 업어도.”
“뭐라는데 빨리 따라온나.”
“무릎이 너무 아프다.”
“아, 빨리 온나.”
툴툴거리면서도 한 칸 밑으로 내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업어주려는건지, 자세를 잡고 서있었다. 고작 무릎 다친걸로 업히기는 미안했지만 순순히 등을 내어주는 박우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어깨동무를 했다. 어렸을 때는 박우진이 자주 업어주기도 했는데, 어렸을 때 생각이 나 괜히 웃음이 났다.
“업기에는 내가 너무 무겁다. 어깨동무만.”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몸을 그 쪽으로 기대어 걸어왔다. 다리를 다쳤다는 명목으로 엘레베이터도 둘이서 탔다. 선생님들이 보면 이것 가지고 타냐고 뭐라했을 건데, 다행히 걸리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A
교실로 들어와서는 자리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멍만 때리고 있었다. 운좋게 이번 달에는 제일 뒷자리에 걸려-하지만 짝이 박우진이었다.- 멍을 때리고 있기도 했고, 또 가끔 임영민의 자리를 훔쳐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동그란 뒷통수와 열심히 필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재미도 없는 수업시간에 한 번씩 영민이 자리를 보는 것은 유일하게 수업시간 중 재밌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또 박우진이 수업에 집중도 안한다며 나에게 뭐라했다.
임영민과 박우진은 라이벌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우리 학년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공부도 체육도 춤도. 임영민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박우진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나뉘기도 했다. 둘은 서로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데 주위에서 경쟁을 못 시켜 안달이었다. 체육시간엔 둘이 달리기를 같이하고, 피구도 박우진팀, 임영민팀 이렇게 나누어졌다. 그래서인지 박우진은 내가 임영민만 보고있으면 더 틱틱대는 것 같다.
“쟈 자리에 꿀 발라뒀나.”
임영민을 한 번 보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다 들리게 혼잣말을 했다. 며칠 전 임영민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밀어달라는 얘기를 한 후로부터 더 나를 못살게 굴었다. 수업시간엔 아예 그 쪽을 못보게 막아버렸으며, 점심도 제일 떨어진 자리에서 먹었다. 이런 박우진의 심술은 며칠 째 이어져 오고 있는 중이다.
점심시간엔 교실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오늘 급식이 맛이 없기도 했고, 박우진이 자신이 라면을 산다며 매점까지 직접가서 라면을 사왔기 때문에 딱히 안 먹을 이유는 없었다. 컵라면을 먹고 있던 우리 둘 사이에 임영민이 걸어왔다. 자기 자리로 가는 길이겠거니하고는 먹던 라면을 계속 먹으며 시선으로는 뒤를 쫓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내 쪽으로 다가와서 비닐봉지를 건넸다.
"여주야."
"..."
“이거 메디폼인데 그냥 밴드 붙이면 흉질거거든. 붙이라고..”
“어, 어?”
손에 비닐봉지를 쥐어주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로 갔다.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메디폼과 비타민 몇 개가 들어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외출증을 끊고는 약국에 가서 사왔나보다. 비닐봉지 안을 보며 계속 웃고 있으니 박우진이 비닐봉지를 들고갔다. 그리곤 자기 자리로 가 가위를 들고왔다. 뭐하나싶어 지켜보고 있으니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뒤로 빼서 옆으로 돌린 후에 그 앞에 앉았다.
“다리.”
상처 크기보다 약간 더 크게 메디폼을 자른 뒤에 무릎에 붙은 데일밴드를 떼기 시작했다. 상처에 손부채질을 몇 번 하더니 상처 위를 메디폼으로 덮었다. 모서리가 안 떨어지게 몇 번 꾹꾹 눌러 붙여 주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따라 둘이 나한테 잘해주기로 경쟁이 붙었는지, 끝도 없이 잘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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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1 |
이렇게 또 새로운 글로 왔습니다. 당분간 글이 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 달에 바쁜 일이 몰려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보니 벌써 6월의 반이나 왔습니다. 새로운 글 재밌게 봐주시고, 이 글이 완결 난다면 오 멜로 피치 다시 가지고 오겠습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BGM |
에이프릴 - 따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