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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현은 이틀 째 소파에 앉아 얕은 잠만을 반복해서 청했다.
여주를 집안에서 마주친 그날 민현은 혼란스러워하는 여주에게 설명대신 탁자위에 놓여져있는 혼인관계증명서를 가르켰다.
가만히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던 여주는 사색이 되어서 멍하니 서있다 그대로 메고있던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이틀 째 민현은 홀로 밤을 보냈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여주의 이유가 자신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운 채로 출근길에 나섰다.
버스에서 내린 민현은 오늘 해야할 일을 되뇌이며 경찰청 골목에 들어섰다.
"황반장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네 윤경위도 잘 잤습니까?"
"당연하죠~"
윤경위의 안부인사에 민현은 웃으며 화답했고 이어 경찰청 입구에서 민현과 윤경위를 보고 인사하는 강경위에게도 크게 손을 흔들었다.
어제 들어온 살인사건의 조사로 밤을 샜다며 점심은 반장님이 쏘라는 강경위의 말에 민현은 조사말고 딴짓했으면 앞으로 영원히 밥을 먹으라고 장난을 치며 눈꼬리를 휘어보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민현은 잠시 후 있을 현장조사에 필요할 것 같은 장갑을 구매하기로 했던 것을 떠올리며 경찰청 앞 편의점을 보았다.
민현의 입꼬리에 걸쳐져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편의점 안에서는 흰 가운을 입고 갈색 머리를 단정히 묶은 여주가 피곤해보이는 얼굴로 전화를 받으며 한손에는 우유를 든 채 바쁘게 뛰어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출근은 했나보다 하는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여주의 모습이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민현의 시선은 여주를 따라갔다.
"황반장님, 안들어가세요? 할 일이 산더미에요~"
멍하니 서있는 민현의 모습을 유심히 보던 윤경위가 민현의 어꺠를 검지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말했다.
고개를 돌린 민현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강경위와 윤경위의 모습에 아차 하며 몸을 돌렸다.
경찰청 안으로 들어온 민현은 자신의 자리에 쌓여있는 서류들을 보며 재빨리 가방을 자리 아래 내려 두고 분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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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이었던 여주는 단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정신없게 쏟아지는 수술들에 불려다니기도 했고 잠시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떠올리느라 마음이 복잡했다.
게다가 당직까지 겹친 터라 집에는 더더욱 들어갈 겨를이 없었고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들을 보냈다.
편의점에서 먹을 거리를 사던 여주는 어젯 밤 수술했던 환자의 갑작스러운 발작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손에 들고 있던 우유만 잽싸게 계산하고 병원을 향해 뛰었다.
곧바로 수술실에 들어가 원인을 살펴 수술을 마감한 후에는 어느덧 두시간이 흐른 후였다.
"뇌졸중환자야?"
휴식을 취하기 위해 휴게실로 걸어 들어가는 여주의 뒤로 들려오는 이선생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활짝 웃어보이는 이선생에게 얕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번 끄덕거리자 자신의 옆에 다가와 서는 이선생이었다.
"고생 많이했네 우리 김쌤~오늘은 밥 같이 먹는거지? 어제는 하루종일 굶는다며"
"아..먹어야지 어젠 너무 바빠서..."
"무슨일 있어? 뭔가 어제부터 김쌤 정신이 나가있는거 같아"
"아냐 그냥 집에 사고가 있어서"
"사고? 큰사고야?"
"근데 괜찮아 해결...해결했지"
걱정스러운 물음에 여주는 씁쓸하게 한번 웃으며 괜찮다며 이선생을 안심시켰다.
여주의 반응에 나름대로 안심하던 이선생은 휴게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박지훈 쌤 어제 병원왔어"
"아 그래?"
"성격 안죽었더라~ 성우씨랑 어제 같은 수술 들어갔는데 같이 들어간 레지던트가 좀 큰 실수를 했나봐, 근데 쳐다보지도 않고 소리지르기 전에 당장 나가라고 했대. 컴백 하루만에 커리어가 대단하지 않냐"
"그러게......"
"근데 수술할 때 말고 사람은 되게 괜찮은거 같아"
"아...그래?"
예전같지 않은 여주의 반응에 이선생은 여주를 빤히 쳐다보다 가운 안에서 느껴지는 진동소리에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응~남편~"
애교섞인 이선생의 목소리에 여주는 고개를 돌렸다.
진짜 결혼하기로 했나보네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더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되는 여주였다.
그래도 결혼식 날이 부케를 받아달라더니 자신이 먼저 유부녀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선생은 어떤 반응을 할까.
그리고 자신이 저렇게 살갑게 민현과 통화를 할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여주의 머릿속에 또 가득 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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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의 위치와 루미놀 검증을 통해 혈흔의 발견으로 살인사건이 맞음을 확신한 후 현장조사를 진행하였고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범인의 발자국 크기와 머리카락 몇 올을 발견해 국과수로 넘겼습니다. 아무래도 빠른시일내에 검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역시 황반장일세. 기대한 것보다 훨씬 성과가 좋아"
"아닙니다 팀원들을 잘 만났죠"
"그럼 일단 국과수 결과를 기다려보고, 음 퇴근할 시간은 훨씬 넘은거 같으니 퇴근 빨리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현장 조사에서 쉽게 실마리를 찾은 민현은 예상보다 빨리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윤경위와 강경위를 먼저 보낸 후 브리핑 자료를 준비하던 민현은 며칠전 다친 어깨가 욱신거림을 느끼고 다시 병원을 방문하라던 여주의 말을 그제서야 떠올렸다.
성공적으로 브리핑을 마치고 나왔을 떄 경찰청 밖은 이미 어두웠고 시간은 아홉시를 가르켰다.
민현은 고개를 돌려 옆의 종합병원을 보았다. 모든 층에 불이 켜진 종합병원은 밖에서 보기에도 바쁘게 돌아가는 듯 해보였다.
민현은 경찰청과 병원 주위를 계속해서 배회했다. 그리곤 며칠동안 했던 생각을 환기하고 또 정리했다.
이윽고 옆의 상점의 불이 하나 둘씩 꺼져갈 때 쯤 민현은 발걸음을 병원으로 옮겼다.
접수를 할까 고민하던 민현은 접수를 하지 않고 곧 바로 예전에 여주를 보았던 그 진료실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민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전에 의사로 마주했던 여주를 다른 느낌으로 마주하게 되니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진료실 앞에 선 민현은 걸음을 멈추고 진료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텅 빈 진료실에는 민현의 예상대로 여주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인기척을 느낀 여주는 이내 고개를 들었고 문 앞에 서있는 민현의 모습에 토끼눈을 하고선 민현을 쳐다보았다.
"어깨 때문에 다시 왔는데요"
"어...."
"접수는 따로 안했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민현의 말에 여주는 아...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와 앉으라 말했다.
민현은 며칠전 자신이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아 물품을 찾으러 간 여주의 뒷모습을 보았다.
"윗 옷 좀 벗어주시겠어요?"
여주의 부탁에 민현은 또다시 자켓을 내려놓고 입고 있던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어 어깨를 내보였다.
여주는 일어나 민현의 어깨에 난 상처를 살피며 어느정도 아물었음을 확인하고 실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진료실에서는 그때처럼 정적이 흘렀다. 민현과 여주의 얼굴이 한뼘도 멀어지지 않은 채 둘은 가까이 있었다.
이상하게 크게 느껴지는 자신의 숨소리를 애써 줄이려 숨을 참는 여주와 코에 은은하게 와닿는 여주에게서 나는 섬유유연제 향기를 느끼는 민현이었다.
한참 치료를 하던 도중 민현은 갑자기 여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두사람의 거리에 여주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잠은 계속 여기서 잤어요?"
"아...네"
"나 때문에 안들어온거에요?"
"아니에요. 아 진짜 아니에요. 민현씨 때문 아니에요"
여주는 세게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민현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불편하면 내가 나갈게요. 여주씨는 들어와서 살ㅇ.."
"아 아니에요 정말. 당직이었어요 그래서 못들어간거에요"
"아..."
치료가 끝나자 여주는 민현에게 이제 다시 옷을 입어도 된다고 말을 건네었다.
천천히 옷을 챙겨입은 민현은 어정쩡하게 서있는 여주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우리 할말이 많지 않나요"
민현의 말에 여주는 민현을 쳐다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민현 역시 여주를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동병상련. 며칠전 일방적으로 자신이 피해자 같다는 생각이 들던 민현의 머릿속에 새롭게 박힌 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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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만에 집으로 돌아온 여주는 낯설지만 그래도 나름의 아늑함을 느꼈다.
민현은 여주를 돌아보곤 부엌 불을 켜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탄산수를 꺼내 투명한 잔에 따라부은 후 민현은 서있는 여주의 손에 손잡이를 들려주며 탁자에 앉을것을 권했다.
그리고 여주가 자리에 앉자 의자를 꺼내 여주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았어요?"
여주는 다정한 민현의 목소리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뛰어나간 그날 곧바로 부모님의 댁으로 가 화를 내었다.
싸울 생각으로 본집을 찾아갔던 여주는 부모님과 오빠의 의외의 반응에 놀랐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며 눈물을 쏟았고 오빠는 평생 속죄하고 갚으며 살겠다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전해들은 이 말도 안되는 결혼의 전말은 여주마저 울리고 말았다.
요식 사업을 하던 오빠는 잘해보고자 하는 욕심에 여기 저기로 손을 뻗었고 그 욕심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화를 부른것이었다.
갚아야 할 돈은 집안 전체를 날려버릴수 있을 정도였고 오빠는 교도소로 수감될 위기에 처했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비상구가 유일하게 민현의 집이었다.
평소 여주의 어머니를 영입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황사장님 부부에게는 여주의 오빠를 구제해주는 것쯤은 일종의 투자로 생각되었고 사법계 유명인사인 여주의 아버지 또한 자신들의 비지니스에 엄청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렇게 두 집안은 결합하기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원래 자신의 오빠와 민현의 누나의 결혼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민현의 누나는 이를 알아챈것인지 해외 출장을 예고없이 떠났고 그 타겟은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여주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미리 알렸을떄 일어난 후폭풍과 자기 주관이 센 여주의 행동패턴을 분석한 부모님의 결정이었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결혼을 무를 생각으로 집으로 달려갔던 여주는 알지못했던 집안 상황을 알고 허탈함에 주저앉고 말았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정을 마음대로 해버렸다는게 너무나 화나고 싫었지만 지금으로써 집안을 구할수 있는 방도가 그것뿐이라는 것도 너무나도 싫었다.
여주는 오랜 대화끝에 제안을 하나걸었다. 자신도 기여할테니 오빠가 그 금액의 1.5배를 벌게될 때 이 결혼의 유효기간을 종료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오빠는 그에 동의했고 그렇게 여주는 어쩔수 없이 현실을 받아드려야만 했다.
"최대한 막아보려고 했는데 그게....제맘대로 안됐어요"
미안한 마음에 여주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민현을 보았다.
민현은 팔꿈치를 세워 코 앞에서 양손을 잡고 여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주는 어떤말을 꺼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민현씨한테 정말 미안하게 됐어요"
"......."
"그래서 내린 나름 가져온 차선책은...일단 최대한 빨리 해결해볼테니 일을 수습할때까지만 이 관계를 민현씨가 유지해줬으면 좋겠어요"
"효력이 사라질수 있게 2년 안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볼게요"
"그때까지만 음.... 우리 좋은 친구로 같이 잘 살아봐요"
여주와 민현의 시선이 부딪혔다. 똑부러지면서도 자존감이 높은 여주의 성격이 민현은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께 결혼 사실을 통보받았을때보다 이 결혼이 최악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어쩌면 여주의 말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친구가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고 그 모습에 여주도 살풋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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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닝뀨입니다!
자 어느정도 초반부는 달려온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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