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내가 왜 친구야?
Writer. 저편
시험이 끝났다. 결과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앞에서 말했었지만 정말 시험지에 제대로 쓴 게 박우진 이름 뿐. 오죽하면 마킹지에 내 이름 대신 박우진 이름을 써서 큰일 날 뻔했다. 이 일을 조용히 묻어가지 않으시고 크게 화를 내신 감독 선생님 덕분에 이 일화는 우리 반을 넘어 멀리멀리 퍼졌고, 결국엔 박우진 귀에까지 들어가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스펙타클하지, 내 인생. "아, 또 내 좋아갖고 그랬나." "…닥쳐, 짜증나네."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하지."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내 한쪽 볼을 쭉쭉 잡아당기며 그렇게 말하는 박우진에게 문득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장난으로 툭툭 내뱉는 그 말들이, 다 진짜 내 마음인 걸 넌 절대 모르겠지.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난 내 마음을 다 들킨 것 같아서 괜히 맘졸인다는 것도. 그 와중에 네 웃음이 너무 예뻐서 슬프다는 것도. 내 마음이 이렇게 크다는 것도. 전부 다. 괘씸한 맘에 너도 한 번 당해봐라, 하는 생각으로 녀석을 째려봤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장난인 듯 내 진심을 툭 던졌다. 너 만약에라도 진짜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맞으면, 너 지금 진짜 나한테 못할 짓 하고 있다는 거 알지? 내 말을 들은 박우진이 갑자기 웃음기를 팍 지우고 잡고 있던 내 볼을 놓더니 날 내려다본다. 니 뭔 소린데 그게. 좋아, 걸려들었구나. "당연히 구라지-" "아, 깜짝 놀랬네." "뭐 이런 거 가지고 놀래냐. 병신." 참, 요즘 녀석과의 대화가 어째서 늘 이런 식인 건지 모르겠다. 이게 친구 대 친구의 대화가 맞는 건지. 약간 이상하다. 그 날, 녀석의 집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좋아한다, 안 한다로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는 것 같아. 난 절대 너 좋아할 일 없어, 하는 무언의 암시 놀이인 건가. 어느 쪽이든 나한테 썩 좋은 상황은 아니네. 하지만 자꾸 이렇게 친구 이상의 관계가 유지된다고 느껴질 때면, 괜히 행복하다. 또 다시 시작되는 기대와 후회의 반복이다. "…거짓말 아니어도, 괜찮을 수 있는데." "……." "아, 나도 장난." 아니다, 기대와 기대의 무한 반복. 그리고 뒤늦은 후회. 저 애매한 태도는 매번 내게 독이다.05 한 번만 솔직하게 말해주지.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가오는 건 간부수련회였다. 나는 반의 반장이었고, 박우진은 선도부장이었기 때문에 하필 이번에도 녀석과 붙어 가게 생겼다. 우린 언제나 한 세트처럼 함께 하게 된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좀 떨어지면 좋겠는데. 자꾸 이렇게 붙으니까, 더 놓기가 힘이 들잖아 너를. "야, 같이 가." "……." "니 근데 이게 다 뭔데. 설마 짐이가." 와, 미쳤네. 니 어디 피난 가나. 아침부터 옆에서 조잘대는 박우진을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넌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모르면 그냥 닥치고 있어. 분명 오늘 수련회도 똑같을 걸. 바다 간댔으니까 바다에서 열심히 뛰어놀다가 레크리에이션 시간엔 춤 잘 추기로 유명한 박우진을 꼭 무대에 올리겠지. 그러면 박우진은 또 못 이기는 척 무대에서 춤을 출 거고, 나는 또 넋 놓고 그걸 보고 있을 게 뻔할 뻔자다. "근데 우리는 이번이 고등학교 다니면서 마지막으로 어디 가는 거 아니가." "어? 어, 어. 맞지." "버스 같이 탈 사람은, 정했나." "아니… 가서 정해야지? 왜?" 한참 오늘 있을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데 박우진이 뜬금없는 질문을 해댔다. 그걸 왜 물어보는 건지. 내가 버스를 같이 탈 사람이 있던 없던 쟤랑은 아무 상관 없을 텐데. 쟤는 항상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니 같이 탈 사람이 없을 리도 없고. 나랑은 정말로 아무런 상관이… "내랑, 같이 탈래 버스?" "…친구 없냐?" "뭔 말을 그래 하는데. 내 친구 개많은 거 모르나." "근데 왜 나랑…" "같이 타고 싶으니까." "……?" "아니다. 야, 학교 늦겠다 빨리 가자." 혼자 뭐라고 하다가 혼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을 끝맺는 녀석을 보며 기분이 묘해졌다. …저거 지금, 버스 나랑 같이 타자는 말 맞지. 이건 내 오해가 아니라 확실한 거지. 암만 내가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이건 놓칠 수 없겠다 싶은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나도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다. "아, 버스 같이 타잔 말이지?" "…어?" "그래 그럼, 같이 타자!" 이렇게 잠깐 욕심내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 없잖아. 그치.***
버스에 타자마자 이어폰을 꽂는 내 팔목을 박우진이 재빨리 붙잡았다. 내가 ?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실실 웃으며 그대로 팔목을 잡아내리는 녀석이다. "나랑 놀자." "…뭘 하고 놀아, 또." "그냥, 이런저런 얘기? 우리 오랜만에 이렇게 같이 있는 거 아니가."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아마 수련회장까지 가는 데에는 2시간 정도 걸릴 텐데, 요 최근 등하교 때 잠깐씩 본 거 이와엔 그렇게까지 박우진과 붙어있지는 않았으니까. 그 때… 음, 헤어지던 날 카페에 있던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네. 아, 또 생각났어. 그 날 밤에 나 존나 쳐 울었던 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 천진난만한 박우진은 알까 모르겠다. 분명 모르겠지. 아마 저 새끼는 지금 수련회 때 친구들이랑 뭘 하고 놀지 생각하기 바쁠 것이다. "아, 나랑 놀기 싫나." "……." "니 요새 진짜 이상하다. 왜 이렇게 니답지 않게 어색하게 굴어 나한테." "뭔 소리야, 그건 또… 나 그런 적 없어." "그래? 아님 말고." 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냐? 진짜 회복력 빠른 거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한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가 헷갈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쭈뼛거리던 애가 저렇게 빨리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게 말이 되는 거야? 응, 말 된다… 쟤가 날 정말 친구로 생각하는 게 맞다면 말이 된다. 그러므로 쟤는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가면 갈 수록 가능성이 사라져 가네. 원래도 거의 없던 가능성이 점점 사라져 가는 걸 보는 게 참.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건지. "외롭다." "여친 사귀면 되잖아. 좋아하는 사람 없냐?" "……." "오, 새끼. 있구나?" "…없다, 있었으면 진작 따라댕겼지." 무슨 이유인지 표정이 굳어지며 그렇게 대답하는 녀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 차라리 없는 게 다행인 것 같다. 네가 다른 누구를 좋아하는 건 상상만 해도 싫으니까.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정말 괴로울 것 같다. 그 때는.***
"와, 추워 뒤질 것 같다." "누구부터 샤워할 거임?" "변채은 지금 욕실 들어갔는데." 수련회 장소에 도착한 뒤부터는 시간이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입소식 직후 바로 바다에 들어가 쉴새없이 놀았다. 남자애들이랑은 아예 다른 팀으로 나뉘어서 놀았기 때문에 박우진과는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었고, 간만에 나는 다른 친구들과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같은 숙소를 쓰게 된 3학년 간부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거의 1-2년 된 친구들처럼. 각자 샤워까지 마치고 뽀송한 모습으로 숙소 거실에 동그랗게 둘러앉자, 모든 여자애들이 그렇듯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뭐, 이번에 1반에 전학온 김재환이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더라, 1학년 이대휘가 그렇게 귀엽다더라, 작년에 졸업한 전교생 대표 인기남이었던 황민현 선배가 대학 가서 여친이 생겼다더라… (천유림이 들으면 백퍼센트 오열할 내용이었다. 당시 거의 그 선배 팬클럽 회장 수준이었으니.) 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그렇게 막 수다를 떠는 와중에 7반 부반장이 대뜸 나와 박우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야, 근데 나 전부터 궁금했는데. "OO이는 박우진이랑 뭔 사이야?" "헐, 맞아. 나 예전부터 궁금했음." "둘이 어릴 때부터 친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에이, 말이 친구지 그게 완벽한 친구겠냐?" 친구들이 제대로 맞추셨다. 완벽한 친구라니, 그딴 건 없다. 지금 내 경우만 봐도 그런 건 없다는 걸 잘 알 수 있을 텐데. 물론 그걸 또 그렇다고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뭐래, 걔랑 나랑 아무 사이 아냐!" "그래……? 과연…" "야, 혹시 몰라- 걔가 너 좋아할 수도 있어." "절대 그럴 일 없어." "근데 뭐지, 저번에 진영이가 박우진 좋아하는 애 있다고 나한테 그랬었는데." 그 말을 꺼낸 건 배진영의 여자친구인, 9반 반장 박지현이었다. 바로 그 때 뭔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애가, 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처음 듣는 이야긴데. 순식간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지현이에게 쏠렸다. 뭐야뭐야, 누구래? OOO 아니래? 쏟아지는 질문들 사이에 나는 차마 끼어들지 못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거기까진 모름. 근데 확실한 건 걔 좋아하는 애 있어." "그게 OO이면 대박이겠다." "인정. 아- 나 이런 거 존나 좋아. 소꿉친구의 사랑… 뭔가 낭만적이지 않냐." "아 맞아, 안형섭도 저번에 그랬는데. 내 친구가 사랑에 빠졌다느니 뭐라느니. 그게 혹시 박우진 얘긴가?" "OOO 어디 아파? 안색이 안 좋은데." 어? 어어, 아니야 아니야. 표정이 굳은 내 얼굴을 본 한 친구가 내게 말을 건넸다. 난 대충 얼버무렸다. …배진영이 말한 거라면 분명히 확실한 이야기일 테다. 그런데 왜, 어째서 박우진은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지 않은 거지? 아니, 안 할 수도 있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나랑 제일 친하면서. 아까 버스에서도, 없다고 말했었는데. 그럼 그건 거짓말이었다는 거네? 한순간에 기분이 땅끝으로 떨어졌다.***
간부수련회 전날 밤 _우진과 진영
배진영 야 내일 지현이도 가니까 잘 좀 챙겨줘 오전 12:30 박우진 니 여친을 왜 내가 챙겨 나 OOO 챙기기도 바빠 오전 12:30 배진영 OOO은 니 여친도 아니면서 왜 챙김? 오전 12:31 박우진 누구의 여친도 아니니까 나밖에 챙길 사람 없음 걔 오전 12:31 배진영 그래서 결국엔 니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빅픽쳐 되시겠다 이거네 캬 오전 12:31 박우진 개소리하지 말고 자라 오전 12:32 1 걔 나 안 좋아해 오전 12:56 1더보기 |
~오늘의 떡밥~ 01. 진영이는 일찌감치 우진이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음. 02. 버스에서 우진이는 왜 갑자기 OO이에게 외롭다는 말을 했을까? 요즘 왜케 글이 안 써지는지 모르겠네용... 날씨도 더운데 잘 지내고 계셨나요 독자밈들 。゚(゚´Д`゚)゚。 그나저나 더운 날씨에 또 고구마 투척하고 가서 대다니 죄송합니다... 우진이는 정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표현을 못하는 캐릭터... 거기다 눈치도 없음... 세상 답답... 하지만 다음편부터는 조금씩 풀릴 것이라 예상합니다만...! (본격 기상캐스터 빙의) 여태까지는 떡밥을 뿌리기만 했다면, 이젠 던진 떡밥 주워담을 타임이 시작되니까 다음편 올라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떼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쟈합니다! ♥암호닉♥ 암호닉은 [~~~] 형식으로 신청해 주세요 :) [0226] [수 지] [0618] [1102] [원이] [임금] [메모] [두동] [우찐이] [캐도] [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