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내가 왜 친구야?
Writer. 저편
"OOO, 내 오늘 장기자랑… 야, 어디 가는데." 레크리에이션 시간 전에 잠시 주어진 자유시간, 친구들과 매점에 갔다가 박우진과 마주쳤다. 녀석이 내게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난 듣고도 모른 척, 지나쳐 갔다. OOO, 내 말 안 들리나. 뒤에서 녀석이 계속해서 날 불렀지만, 그조차도 난 귀를 막은 듯. 그렇게 지나갔다. 그치만 그런 날 가만히 둘 리가 없지. 금세 내게 다가와 어깨를 잡아돌리는 박우진에, 차마 그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고개를 숙여버리는 나였다. "야, 니 왜 내 모른 척 하고 가는데." "……못 들었어, 부르는 거." "어디 아프나." "……줘." "뭐?" "…어깨 좀 놔 달라고."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나의 모습에 당황한 건지 순순히 내 어깨를 놓는 박우진이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그 옆을 지나쳐 숙소로 뛰어갔다. 아니,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에 숙소 옆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두 팔로 세면대를 간신히 짚고 나서야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젠 알 것 같다.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는 거. 너무, 너무 힘들어서 더는 안 될 것 같다는 거. 참는 것도 한계인데, 더 이상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너를 대하는 건 정말, 많이 힘들 것 같다는 거. 우진아 있잖아, 나 오늘 너랑 다 그만하려고. 친구도, 사랑도. 전부 다.06 왜 끝내지 못하는 거야.
"OOO, 울었어?"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박지현이 내게 물었다. …티 많이 나나 보네. 괜시리 머쓱한 기분에 눈을 비비며 바보 같이 웃어버렸다. 울긴 무슨, 먼지 알러지 있어서 그래. 내 말이 영 안 믿긴다는 듯 박지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알러지 많이 심한가 보네… 혼자 작게 중얼거리면서. 쟤도 가만 보면 하는 짓이 꼭 자기 남친 같다. 소심한데 할 말 다 하면서 귀여워. 역시나 여자애들 사이에선 오늘 레크리에이션 시간 장기자랑 라인업 이야기가 한창 떠오르는 중이었다. 물론, 그 중심엔 내가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박우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어디 아프나.' 숙소 구석에 깔린 이불더미 속으로 확 뛰어들었다. 네가 보기엔 내가 아픈 것 같냐? 차라리 확 아파버려서 리조트 양호실에 누워 있고 싶다. OOO 얘 진짜 어디 아프냐? 애 상태 왜 이래. 6반 부반장이 내 팔을 확 잡아끌더니 날 일으켜 세웠다. 아픈 게 아니라 그냥 레크리에이션 같은 거, 안 보고 싶은 검데. 꾀병이라도 부릴까 생각했지만 이미 내 발길은 뒤의 친구들의 손길에 떠밀려 대강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마주쳐야 하는 건지.***
늘상 있어왔던 경우와는 다르게, 이번에 박우진과 그 친구들은 뭘 많이 준비해온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고3, 학창시절 마지막 장기자랑이라 그런 듯 한데. 오늘따라 멋을 한껏 낸 박우진을 멀리서 쳐다보는 내 기분은 들쑥날쑥, 뒤죽박죽. 요동을 친다. 여기서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면, 나 되게 줏대없어 보이겠다 그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박우진만 쳐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한 번을 이쪽을 안 쳐다보는지. 무대에서 무슨 재롱을 떨든 난 무대의 오른쪽 사이드에서 제 친구들과 몸을 풀고 있는 박우진만이 오롯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지막 차례였다. 드디어 어언 1시간 반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움직임이 없던 박우진 무리가 무대 위로 우르르 올라선다. 센터에 선 박우진이 누군가를 두리번거리며 찾더니 내게서 시선이 멎었다. 당연히 녀석을 보고 있던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고 어느 쪽도 먼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와, 박우진 개쩐다 그치." 누군가 내 뒤에서 말했다. 그러게, 오늘 좀 많이 꾸몄네. 저 얼굴을 보면서 내 짝사랑을 끝내야 한다는 게 참, 힘든 사실이다. 오늘따라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나를 또 괴롭히네. 넌 뭘 하든 그냥 나한텐 나쁜 놈이야. 나한테는, 나한테만. 그런 생각이 들어 먼저 눈을 피해버리곤 고개를 숙여버렸다. 안 봐. 못 봐. 하지만 전주가 흘러나오자 결국 난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고개를 듦과 동시에 다시 맞물린 시선에 조금 놀랐다. 왜 계속 날 쳐다보고 있었을까. 아직도 시덥잖은 걱정이나 하고 있을 게 뻔하다. 쟤가 어디 많이 아픈가 보네, 하고. 남자친구도 아니면서 내 걱정이란 걱정은 죄다 녀석의 몫이다. 늘 그랬다. 평소였다면 무대를 보면서 입을 떡 벌리고 있거나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분명, 오늘은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춤과 노래의 무대였는데도. 갈 곳 잃은 시선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그 화려한 춤선 속에서도 녀석은 끝까지 나에게서 시선을 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꼭 다시 울컥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은 느낌에 녀석의 무대가 끝나고 환호성이 터져나오기가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대강당 밖으로 달려나갔다. 복도를 달리는 내내 날 쳐다보던 박우진의 그 눈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화장실을 몇 걸음 채 앞두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가 아팠다. 이렇게까지 힘들어한다는 것도, 넌 아무것도 모른다. 차라리 몰라서 다행이다. 남들이 보기에 그냥 난,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 아마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테지. 정신이 아득해져갈 즈음 누군가 날 뒤따라 달려온 건지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내 앞에 멈춰선 두 발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거짓말처럼 박우진이 서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짙게 한숨을 내쉬는 녀석의 모습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차가운 모습에. "니 진짜… 니 때문에 내 무대 다 망친 거 아나 모르나." "……." "이렇게 내 불편하게 만들면 좋나." …무대 잘해놓고 이제 와서 딴 소리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 재차 물어오는 녀석의 목소리에 목이 메어 대답할 수 없었다. 내게 화가 단단히 난 듯한 그 모습에 난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며 시선을 땅에 박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모두에게 나는, 그저 이상한 사람이다. 원인은 박우진이다. 네가, 네가 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게 따지는 네가 미웠다."진짜 요새 왜 그러냐고. 이제 말 좀 해 봐라." "……." "…끝까지 말 안 할 거가. 니 요즘 내 존나 불편하게 대하는 거 아나. 그래서 니랑 조금이라도 같이 있어볼라고, 일부러 말 붙이고 옆에 있고… 그러는 거 니 아냐고." 왜 박우진이 요 근래 내 옆에 자주 붙어있었던 건지, 이제 알겠다. 이거였구나. 난 티 안 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너까지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 거구나. 어차피 오늘 네게 다 말할 생각이었지만, 그 상황이 이렇게까지 최악으로 흘러오게 될 줄은 몰랐지. 그래, 진작 끝냈어야 할 일이다. 나 때문이다. 전부 다. "아, 뭐라고 말이라도 좀…" "…우진아." "……." 숙였던 고개를 들어 녀석과 눈을 마주했다. 갑작스레 말을 꺼낸 내게 놀란 건지 살짝 눈이 동그래지는 녀석이었다. 살풋 웃음이 나왔다. 이상하게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는데, 어쩐지 이 분위기가 편해진다. 점점. 속에 있던 이야기가 하나둘씩,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나는 웃고 있다. "저번에 있잖아, 우리 헤어졌을 때 기억 나? 그때 니가 그랬잖아. 어차피 우린 친구가 편하다고. 서로 아무 감정 없는 것 같다고." "……." "…근데 난 아니었던 것 같아. 어, 그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난 좀 오랫동안 너 좋아했었거든. 그래서 고백도 했던 건데. 아, 그러고도 사귈 때 아무것도 표현 못한 건… 그래, 그래서 네가 몰랐나 보다. 그러게, 나도 모르겠어. 이렇게 너 좋아하면서 그때는 왜 표현을 못했는지." "……OOO."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야." "……." "나 너 좋아해, 박우진." 마치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우진을 장난스레 밀치며 웃었다. 야, 그런 표정 짓지 마. 사람 뻘쭘하게 왜 이래. 최근에 내가 그에게 보여줬던 모습 중 아마 가장 편한, 친구 다운 모습이었을 거다. 거짓 안 섞인, 그저 친구로만.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 근데… 이젠 괜찮을 것 같아." "……" "너 화내는 거 보니까 이제 좀 정리가 된다. 우리는 친구가 어울려." "니, 진심으로 말하는 거가 지금." "…그럼, 가짜겠냐?" 이 순간이 오면 처참하게 무너지겠구나, 늘 걱정해왔던 나인데 우스우리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점점 굳어가는 박우진의 표정과 반대로, 나는 계속 웃고만 있었으니. 아, 그래서 진심이냐고 되물은 건가. 정말 웃기게도, 슬프지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녀석이 보기에 진심 같지도 않아 보일 만큼. 참 이상한 일이지. "근데 우진아, 당분간만 우리 좀 보지 말까?" "…야, 니 왜 그러는데." "……." 그래, 분명 괜찮았었다. 그랬었는데. 보지 말자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에는. 아니야, 안 되는데. 수도 없이 연습했었잖아. "그냥,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네?" "……." "야, 나 너 진짜 좋아해 이 등신아…" 분명 웃고 있는데, 나는 웃고 있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진짜 미칠 것 같아, 박우진 너 때문에." "……." "너무 힘들어서 좀 벗어나고 싶어…" "OO아, 고개 들고 나 봐봐." 다정한 그 부름에 결국에는, 끝끝내. "아니… 보기 싫어." "야." "나 좀 놓아줘, 제발." "……." "내가 언제까지 너때문에 이래야 해, …응?" "……." "외로워. 이렇게 혼자 이러는 거. 너무 외로워. 진짜 죽을 것 같아." 나는 웃고 있다. 그런데, 울고 있다. 나는 울고 있다. 결국 네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안 돼, 마지막까지 이러기는 싫어. 무슨 정신이었는지 그대로 벽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눈물이 자꾸 시야를 가리면, 손을 들어 닦아내는 대신 그대로 흘려보냈다. 물론 그마저도 녀석의 손아귀에 금세 붙잡혀 버렸지만. 어깨가 돌려진다. 젖은 두 눈이 조금도 속을 읽을 수 없는 두 눈과 마주친다. "…또 뭐." "……." "진짜… 이제 그만ㅎ," 그리고 박우진은 내게 입을 맞췄다.
암호닉 / 주저리 |
다음편은 우진이 시점으로 찾아뵐 예정! 드디어 우진이의 확실한 속마음을 보실 수 있는 시간임니다...! 짝짝짝 (//∇//) 신작 준비도 하고 여러모로 정신이 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에용 이것도 조만간 완결이 날 것이기에... 10화즈음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네용 헤헤 그나저나 저 ㅋ...스는 무엇이야! 이런 데서 끊으면... 그렇게... 재밌다면서요...? 그래서 써먹어봤습니다. 재미있나요? ♥암호닉♥ 암호닉은 [~~~] 형식으로 신청해 주세요 :) [0226] [수 지] [0618] [1102] [원이] [임금] [메모] [두동] [우찐이] [캐도] [112] [복숭아] [바구진] [라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