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09
도영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일까 싶어 발끝이 저렸다.
"어제도 하루 종일 보건실에 있더니 진짜 아픈 가보네."
짧게 내뱉어진 정재현의 말에 괜히 나 혼자 뜨끔했다. 손에 쥔 샤프로 교과서에 김도… 까지 쓰다 이내 그 이름을 낙서로 지워버렸다. 시선이 느껴진다. 그 주인은 정재현이겠지.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한 채 가만히 낙서에 덮인 네 이름을 보려 애썼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게 꼭 우리 같아서 또다시 울컥한 마음에 나는 샤프를 놓았다.
"어? 야 이태…"
"김시민 안녕."
야 정재현 이거 알려준다며. 아직 인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태용은 나를 보며 짧게 인사한 뒤 곧바로 정재현에게 말을 걸었다. 끝맺지 못한 말은 그렇게 목구멍 뒤로 삼켜냈다. 나를 없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그런 이태용이 낯설어서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당황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태용은 제 할 말이 끝났는지 정재현의 대답을 듣자마자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정재현의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시선도 얼마 안 가 머졌다.
학교가 끝이 나고 무작정 달렸다. 그 끝은 김도영 너였다. 이를 꽉 깨물었다. 이제 와서 이러는 너도 이태용도 전부 모두가 엇갈리고 있었다. 작게 생각했던 마음이 눈 깜빡할 사이 엄청 커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뛰고 있는 건가. 숨이 차올랐다. 집 앞에 도착하고서야 뛰던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빨간 불이 켜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엘리베이터 옆에 작게 공고문 하나가 붙어있었다. '엘리베이터 고장…' 아 진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머리를 작게 헝클였다. 그리고 바로 걸음은 계단으로 향했다. 한층 씩 오르며 또다시 숨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너한테 가는 길이 이렇게 평탄치 않았다. 날이 날인 것처럼 모든 게 삐걱거린다.
차오르던 숨이 멈췄다. 계단 위에 서 있는 너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에.
"… 왜 왔어?"
네가 하는 말은 고작 왜 왔어 이 세 마디였다. 아직 아프다며 나의 말에 줄곧 나를 보고 있던 맑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사방이 어두웠다.
"김도영."
나는 너를 불렀다. 너는 답하지 않았다. 답 없는 네가 익숙해졌는지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나 너 못 기다려."
"…."
"못 기다리겠어 도영아."
그러니까 말해주면 안 돼? 나는 옅게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린다. 내 말에 너는 내 시선을 피했다.
왜… 왜?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길래 저렇게까지 숨기는 걸까.
"미안."
미안하다는 말과 끝으로 도영이 너는 들어가려 했다. 이 상황을 피하려고만 했다. 또, 또 너는 나를 피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데!!"
"…."
답답한 마음에 나는 소리를 질렀다. 주먹을 꽉 쥔다. 작게 주먹이 부들거렸다. 너는 끝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들은 말이 고작 미안, 그 한 마디가 다라니. 허무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데. 그건 너도 잘 알 잖아. 눈물이 차올랐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입술을 꾹 닫았다. 떨어지지 마라 떨어지지 마. 속으로 되뇌며 나는 고개를 꼿꼿이 들어 너를 곧게 쳐다봤다. 너는 웃는 것도 그렇다고 화내는 것도 아닌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슬픈 건 난데, 아픈 건 난데 왜 네가 더 아픈 표정을 짓고 있는 건데.
나는 너에게서 등을 돌렸다. 꾹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진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잘한 거야.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는 그냥 꿈을 꾸고 있었던 거라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계단을 밟았을 때 등 뒤로 들리는 떨리는 음성에 나는 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좋아해."
"…."
"근데 좋아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럼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거잖아."
"…."
"울지마."
난 너가 안 울었으면 좋겠어 시민아. 도영이의 마지막 말에 한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을 참지 않고 펑펑 쏟아냈다. 좋아한다는 네 말에 그리고 자꾸만 차갑게 대하던 네 표정에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는 네 표정에 이 모든 게 한꺼번에 겹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려댔다. 꾹 깨문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울음은 점차 커져갔다.
너는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왔다. 허리를 굽혀 물기 가득한 내 얼굴에 제 오른손을 갖다 댔다. 그게 꼭 예전의 너 같아서 나는 또 눈물을 터뜨렸다.
"울지 말라니까."
영화 보던 날의 네가 떠올랐다. 그때도 넌 이렇게 내 얼굴을 쓸어줬는데. 나는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애써 꾹 참고 입을 열었다. 나 너 좋아해. 이 말을 네게 언제 전할까 했는데 이렇게 말하게 됐네. 조금은 무서웠다. 네가 무슨 답을 할지 몰라서 그래서 무서웠다. 하지만 너는 그런 내 표정을 흘끔 보더니 푸스스 웃어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알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네 대답에 의문을 가졌다.
"어떻게 알아?"
"…."
"…."
"그냥."
"…."
"그럴 것 같아서."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둠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그 긴 어둠 끝에 맞이한 빛은 그 누구보다도 환했다. 맑게 웃는 네 모습이 그랬다.
어니언's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이번 편은 8의 작은 편이었다가 수정해서 9편으로 올려요!
빠르게 갖고 오고 싶어서 빠르게 썼습니다. 진짜 흑흑 댓글 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가 진짜 다 독자님들을 기억할 정도로요. 독자님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많이 좋아합니다! 감사해요.
다음 글은 아마 어니언으로 안 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아마도? ... (먼 산) 아닐 수도... 있고....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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