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06
그날 이후로 나와 이태용은 전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 듯 정재현도 나와 녀석을 보고는 너네 언제 그렇게 친해졌냐? 하고 물었다. 글쎄? 이태용과 지내다 보니까 의외로 맞는 구석도 많고, 좀 바보 같은 게 챙겨줘야 될 것 같고 막 그러더라고? 나만 그런 게 아닌 듯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정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야 내가 뭐 어때서?"
"영화관 갔을 때 생각 안 나? 그때 진짜 웃겼는데."
"자기는? 자기도 울었으면서?"
"나 그때 찍은 사진도 있는데."
"… 미안."
한 번 해보자고? 내가 눈을 부릅뜨자 이태용은 마치 강아지처럼 깨갱거렸다. 저번 주 일요일이었나 그때 이태용이랑 영화를 보러 갔는데 슬픈 영화였다. 보면서 눈물을 찔끔 흘린 게 창피해져 슬쩍 옆자리에 앉은 이태용을 봤는데 이건 뭐…… 나보다 더 심각한 얼굴이었다. 얼굴엔 온통 눈물로 뒤덮여있고 훌쩍이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이태용은. 영화가 끝나고서도 그치지 않은 눈물에 나는 정말 얘 뭐지? 싶었다니까? 얼굴은 되게 날카롭게 생겨서는 아주 꼬질이가 따로 없다.
"둘이서 영화 봤어?"
"응. 저번 주에."
"와 김시민 나는?"
너는 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재현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지금 삐쳤다고 대놓고 티 내냐?
"다음에 같이 가자."
"진짜?"
"응. 진짜."
"그 말 까먹으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짧게 뱉은 내 대답에 정재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다. 어린애. 이태용은 그런 정재현의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야 김도영 이번 주에 영화 보러 갈래?"
그때였다. 정재현이 동영이를 부른 것은. 저 앞에서 가만히 책을 보던 도영이가 이쪽을 쳐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도영이는 어느새 정재현의 옆에 섰다. 그 모습에 나는 조심스럽게 위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도영이 앞에만 서면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놈의 주둥아리.
"저어… 시간… 괜찮으면…."
"갈게."
"어?"
"영화 보러."
쿵. 나를 바라보는 도영이의 맑은 눈에 먼저 눈을 피한 건 내 쪽이었다. 저번에도 이런 것 같은데 도영이의 눈을 빤히 쳐다보기 민망했다. 부끄러워서 일까? 글쎄다. 이유야 뭐 어쨌든 중요한 건 도영이랑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전부터 궁금했는데 처음엔 나를 싫어하는 것 같던 도영이가 갑자기 왜 이러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정재현한테 물어본 적도 있다. 그때마다 정재현은 다 내 덕이라는 개소리를 왈왈거리곤 했다. 나중에 좀 더 친해지면 물어봐야지. 아직은 어색해.
"언제 어디서 만날 건지 정해지면 알려줘."
그 말을 끝으로 도영이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눈이 살짝 마주쳤지만 이번엔 서로 피했다. 그래. 아직은 어색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날 밤. 나 정재현 그리고 이태용과 도영이까지 이렇게 네 명이 있는 단톡방이 생겼다. 수영이에게도 같이 갈래? 하고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거길 왜 가."
"왜? 다 같이 가면 좋잖아."
"김도영이랑 잘 보고 와."
"정재현이랑 이태용도 가는데?"
"걔넨 진짜 답 없네."
혀를 쯧쯧 차는 수영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도영이랑 둘이서 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어색한 조합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사람이 많은 게 더 좋을지도…. 아니 더 좋은 것 같다. 아직은 어색하니까. 이번 기회에 더 친해져야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영화 보고 저녁 먹고 바로 들어오는 거라서 준비하는데 시간은 꽤 충분했다. 영화가 6시 30분이니까 끝나면 8시쯤 되려나? 고개를 돌려 시계를 쳐다봤다. 4시, 충분하네.
"일단 그럼."
먼저 씻어야겠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고 하면 5시쯤 되겠네.
정말 씻고 머리를 말리고 시계를 보니 딱 5시였다. 어젯밤 골라놓은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시작했다. 평소에 하던 것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썼다. 특별한 날이니까 도영이를 밖에서도 보다니 김시민 정말 많이 발전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영화관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살펴보니 시간은 딱 6시였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징- 하고 울리는 핸드폰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화면창엔 도착했다는 도영이의 톡이 와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어깨를 툭툭 쳤고 깜짝 놀라 고개를 확 들었다.
"일찍 왔네?"
사복 차림의 동도이는 내 심장을 땅끝까지 뚝 떨어뜨렸다. 아니 뭐 저렇게 잘 생겼어? 영화 표를 예매하는 도영이의 옆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뭐라도 먹을래?"
영화 표를 받아 들고는 도영이는 턱 끝으로 팝콘을 가리켰다. 그, 그럴까?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맛을 고를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내 어깨 위로 불쑥 얼굴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고 그렇게 도영이와 나는 꽤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 골랐어?"
"어? 아직."
얼굴이 후끈거리는 탓에 고개를 휙 돌렸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도영이는 무슨 맛으로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핸드폰이 징- 하고 울렸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정재현의 전화였다. 갑자기 왜 전화했지?
"여보세요?"
- 어 난데. 지금 김도영이랑 같이 있어?
"어. 같이 있는데 왜?"
- 옆에 없지?
도영이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받았고 동영이는 저 멀리서 팝콘을 사고 있었다. 응 옆에 없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정재현에게 말했다.
- 그럼 됐고.
"너 왜 안 와?"
- 내가 거길 왜 가.
"뭐? 무슨 소리야?"
- 데이트 잘 해. 이런 기회 흔치 않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럼 지금 너네 안 온다는 거? 그럼 뭐야? 도영이랑 단둘이 영화를 봐야 된다는 거잖아 지금. 허얼? 뭔데? 후기나 들려달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렇게 정재현과의 통화는 끝이 났다. 도영이는 팝콘 하나와 콜라 두 개를 사들고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누구 전화야? 하는 물음에 나는 눈알만 도르르 굴려댔다. 이걸 어떻게 말하지…? 단둘이 보게 된다는 걸 알면 그냥 가버리는 거 아냐? 하는 걱정에 바닥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정재현이랑 이태용 안 온다는데."
"…."
"어떡하지? 그냥 갈래?"
"…."
멋쩍은 듯이 웃으며 괜히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아무 말도 없는 도영이의 모습에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에 도영이가 내 손을 잡았다.
"나랑 보기 싫어?"
"어? 그건 아닌데……."
"그럼 됐네."
작게 웃는 도영이의 모습에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더라. 안심이 된 것 같기도 하면서 순간 너무 기뻐서 크게 웃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영화관으로 들어섰고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어두운 공간 주황빛의 조명만이 영화관을 밝히고 있었다. 몇 번의 광고가 스크린을 지나갔을까 서서히 조명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했다. 나는 영화가 하는 내내 옆을 쳐다보지 못 했다. 너무 떨려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영화가 끝이 났다. 슬픈 역사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였다. 1930대의 그 차갑고 쓸쓸한 현실을 두 어린 배우가 잘 표현해냈다. 이제 앞으로 이태용한테 꼬질이라고 놀리면 안 되겠는걸. 이 자리에 이태용이 없음에 감사했다. 아, 물론 정재현도. 얼굴을 뒤덮은 눈물을 대충 소매로 슥슥 닦아냈다. 그때였다.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린 게. 옆을 슬쩍 쳐다보니 팔짱을 낀 채 도영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아, 미안. 웃으려고 한 건 아닌데."
"…."
"너무 펑펑 울길래."
"응?"
무슨 말인지 뜻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멈추고는 제 손을 뻗어 물기 어린 얼굴을 쓸어주었다.
"아."
"…."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앞에 서 있던 도영이는 아무 말이 없는 내 모습에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 했다. 마치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갈까? 말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우리는 그렇게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저녁이라도 먹고 가야 하나? 팔목에 걸쳐진 시계를 확인했다. 8시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배고파?"
"별로? 너는?"
"나도 괜찮은데."
저녁 먹기엔 조금 늦은 것 같아서. 덧붙여진 말에 나는 작게 맞장구 쳤다. 응 그러게. 사실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는 걸까? 했는데 뒤이어 나온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우리 조금 걸을래?"
도영이의 말을 듣고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더라. 글쎄다. 글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 꼭 감기에 걸릴 것 같다.
어니언's
안녕하세요. 3월이면 아마 다들 바쁘실 것 같아요. 아무래도 현생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저 역시도 개학하고 나서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까 조금 늦어졌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조금 늦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보니 그래도 시간 나면 자주 올게요. 글도 쓰고 싶고, 독자님들도 보고 싶으니까요 ^ㅇ^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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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좋아해주셔서,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